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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리아나 Mar 23. 2022

‘예민 감성’ 인간이 말을 소화하는 방법

무례한 말을 어떻게 소화하는가

나와 엄마


예민하고 민감한 몸으로 태어나서 무엇이든 먹으면 전부 토해내는 바람에 집안 할머니들께서는 내가 100일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고 보셨고, 죽으면 보험금이라도 남겨야 한다며 신생아 보험도 들었다고 한다. 신기하게도 그런 내가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사실,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살이 안 찌는 체질인 데다가 저혈압으로 인해 아침마다 빙빙 도는 천장을 바라보며 일어나는 것이 지옥 같았고, 소화기관이 전부 안 좋아서 많이 먹으면 체하거나 장염에 걸리기 일쑤였다. 알레르기 비염은 환절기마다 나를 괴롭혔으며 사시사철 감기를 달고 살았고, 심지어는 성격도 예민했다. 이렇게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인 나를, 엄마는 애지중지 키웠다.


가능성이 없는 것에 희망을 가지는 사람이 우리 엄마다. 나쁜 일은 금방 잊어버리고 웃으며 남의 잘못도, 자신의 잘못도 크건 작건 곧잘 잊고 산다. 60이 넘은 웃음에서 순수함이라는 것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은 아직 우리 엄마밖에 못 봤다. 원하는 대로 세상을 해석하는 엄마는 자신의 세상을 견고하게 완성시켰다.


남들은 그런 엄마에게 “고생을 안 하고 살아서”라고 말하곤 한다. 순수한 웃음 하나로 엄마의 인생을 한마디로 응축하는 사람들 덕분에, 겉으로 보이는 면모 만으로 한 사람의 복잡한 인생을 마음대로 단순화시키는 무례함에 대해 알게 되었다.


몸이 약하고 민감했던 내가 가장 병적으로 예민했던 것은 ‘말’에 관한 것이었다. 말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부터 엄마가 나를 향해 ‘야’, ‘너’라고 지칭하면, “나는 이름이 있다"라며 반박했고 사람들이 무심코 내뱉은 가벼운 한마디가 뼛속 깊숙이 박혀 잊히지 않았다.


이런 나에게는 병이 하나 더 있다. 보이는 직업이나 사정 만으로 그 사람이 불쌍하다고 단정 짓지 못하는, 함부로 동정하지 못하는 병이다. 쉽게 누군가를 불쌍하다고 말하는 순간, 그 사람의 인생을 내 멋대로 송두리 채 비참하게 만들어버리는 것 같은 죄책감이 몰려든다. 가난하여 고생해도 행복할 수 있다. 우리 엄마처럼.


순수한 웃음 뒤에 가려진 엄마의 지난한 세월을 말한다면 사람들은 ‘고생 안 해본 사람’ 이 아니라 ‘불쌍한 사람’, 혹은 수많은 굴곡 앞에 여전히 순수함을 간직한 ‘철없는 사람’이라며 더 불쾌한 낙인을 추가로 찍을 것이다. 그렇기에 ‘고생 안 해본 사람’ 앞에 해명은 없다. 애초에 누군가의 인생을 한마디로 정의하는 사람들에게 해명할 에너지도 없거니와 그 말 끝에 남을 ‘불쌍한 사람’이 더 싫기 때문이다. 불쌍함으로 시작된 관심은 무관심보다 못했다.


우리 엄마의 인생은 물론이고 내 인생 또한 불쌍하지 않다. 어떠한 일이 있었든지 간에 그 안에서 우리는 행복을 알았고 희망을 찾아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다.


불행이 더 큰 불행 앞에 행복이 되던가?
행복이 더 큰 행복 앞에 불행이 되던가?
적어도 우리는 그런 삶을 살지 않았다.
지식이나 능력에는 객관적인 지표나 순위가 있다. 그러나 이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인생에 객관적인 지표나 순위를 매기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래서 내가 얻는 것은 당신보다 낫다는 공허한 위안인가?


안식처와 먹을 것이 없어서 고통받는 이들의 모습을 가리키며 “그래도 우리는 쟤들보단 행복한 거지.”라는 말에 내가 왜 거북함을 느꼈는지 이제 와 실마리가 풀린다. 우리는 그저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할 수 있는 행동을 취할 뿐이다. 올바른 행동 앞에는 말이 필요가 없다.


순수한 엄마의 웃음 앞에 찍힌 ‘고생을 안 해본 사람’이라는 낙인. 당황스러운 사건 앞에 웃음이 많은 나에게 ‘단순하며 생각이 없는 애’라는 말을 들어도 이제는 화가 나지 않는다.


우리의 웃음은 고통스러운 불행을 이겨낸 트로피이며 어떤 장애물 앞에서도 주저앉기보다 어떻게 넘을 수 있을지에 집중해온 노련함이기에, 겉으로 보이는 행동으로 한 사람의 인생을 한마디로 정의하는 그 어떤 공허한 말에도 화가 나지 않는다. 그들은 잘못한 것이 없으니 용서할 것도 없고 우리가 남다른 대우를 받을 사람도 아니기 때문에 달라질 것도 없으며, 사실도 아니니까 불쾌할 것도 없다.


그들은 솔직하게 말했다. 그뿐이다. 듣고 싶은 말만 들으며 살 수는 없으니, 이제는 말을 어떻게 소화하는가, 그것만이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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