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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 공부에서 홀로서기 - 개념의 덩어리를 구워보자

청년들의 홀로서기 응원가 3절

오늘은 H와 교육학 논술에 대해 이야기했다. 교육학 논술은 임용고사 1차 시험 중 하나로 학교 현장에서 발생하는 문제상황(주로 교사들 간의 대화문)을 지문으로 주고 교육학의 주요 개념, 이론, 모형을 적용하여 문제상황을 해석하고 해결방안을 제시하는 논술을 1,200자로 쓰는 것이다. H도 다른 임용준비생처럼 인강을 들으며 정리하고 있다. 교육학에도 교육심리, 교육과정, 교육공학, 교육평가, 교육행정 등 세부 영역이 다양하고, 각 영역에서 다루는 이론들이 방대하다. 대학에서 교직과목을 이수했더라도 현장 경험도 없고, 교육 연구도 해보지 않았는데 방대한 내용을 빠르게 훓어주는 인강은 외국어 듣기보다 어려울 수 있다. 마치 주식 초보자에게 선물, 옵션, 공매도, S&P 500지수 이런 것을 한꺼번에 설명해 준 후, 곧바로 얼마 쥐어주고 수익률 30% 내오라는 것과 같다. 시험은 개념을 적용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논술인데, 공부는 수험서에 요약된 내용을 읽고 강사가 말하는 것을 덧붙여서 메모한 '글자'를 외우는 식이다. 공부방식과 시험방식이 안맞다.


개념은 형성하는 것

많은 학생들이 새로운 개념이 나오면 정의를 읽거나 외우는 것으로 개념을 이해했다고 하는데, 이는 큰 착각이다. 개념은 읽기나 암기가 아니다. 수학의 집합이나 미적분 문제를 그렇게 많이 풀어놓고도 이 개념들을 내 언어로 잘 설명하지 못하는 것은 개념을 형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개념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면 같은 성질의 것들이 뭉쳐있는 것, 실 뭉치와 같은 덩어리(chunk, 청크) 정도가 되겠다. 청크는 초콜릿 쿠키를 만들기 위해 밀가루 반죽을 꽁꽁 뭉치거나, 실 뭉치에 털실을 둘둘 감듯이 뭉쳐져 형성(formation)되는 것이다. 때론 우리가 개념을 악(把握)한다고도 표현하는데, 여러번의 뭉쳐보는 시도 끝에 덩어리가 손으로 꽉 잡아쥘 만큼, 초콜릿 쿠키를 입속에 넣어 그 맛을 확인하듯 명확해지는 그 순간을 의미한다. 안 보이는 것을 보이는 것처럼 설명하려니 힘드네.. T.T 아뭏든 개념은 외우는 것이 아니라 형성되는 것이다.

야구공은 엄청나게 단단한 청크, 맞으면 아프다. 개념이 견고하게 형성된 사람은 자유자재로 변화구를 던질 수 있다. |https://joshmadison.com/


개념 형성 과정

그렇다면 공부할 때 개념의 청크는 어떻게 형성되는가?

첫째는 먼저 형성하고자 하는 청크들에 집중(Focused attention)해야 한다. 집중은 방해하는 것만 없애주면 쉽다. 인간의 뇌는 새로움 편향이 있어 새롭기만 하다면 먹을 것을 얻거나 짝을 찾는 일보다 더 집중한다. 그러기에 카톡에 아직 읽지 않은 새 메시지가 있음을 안 채로 책을 펼 때 우리의 IQ는 10가량 떨어진 상태에서 공부하는 셈임을 잊지 말자.*

둘째로 개념에 대해 읽거나 들으면서 이해(Understanding basic ideas)를 시작한다. 학생이 이해를 할 때 가장 먼저 해야하는 것은 공교롭게도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개념과 관련해서 이미 알고 있는 사전지식을 끄집어 내는 일이다. 이때 사전지식이 풍부한 아이는 꺼내는 분량 자체가 다르다(그래서 독서가 중요하다). 

셋째가 중요하다. 책이나 선생님으로부터 새롭게 들은 것과 내가 알던 사전지식을 연결하여 뭉치는 일이다.  아직 잘 뭉치진 못했지만 모아둔 청크 재료들을 가지고  문제도 풀고, 말로 설명도 해보고, 그 개념을 사용하여 글을 써보기도 하고, 개념이 사용된 글을 읽어 보는 등의 연습(Practice in context)을 하는 것이다. 구체적 맥락에서 개념을 사용해보는 연습은 재료들 사이에 접착제를 바르듯 서서히 청크가 뭉쳐지게 한다. 사전지식이 풍부할수록, 구체적 맥락에서 개념을 적용한 횟수가 많을수록 개념은 좀 더 명확하게 형성된다.


여기서 한가지 공부 전략을 말해주자면, 이해와 연습 사이를 오가며 공부하는 것이 유익하다는 점이다. 모든 책은 항상 개념이 먼저 나오고, 사례를 설명한 후, 문제가 나온다. 문제를 풀고 나서 맞든 틀리든 개념을 설명한 페이지로 다시 돌아가 읽어보면서 개념을 명확하게 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 완벽주의자들은 이론을 다 공부한 후에 문제를 풀겠다고 하는데, 개념이 외우는 것이라면 완벽한 암기라는 것이 가능하지만, 공부하면서 청크를 지속적으로 견고하게 성장시키는 일이기에 완벽한 개념 이해란 없다. H도 그놈의 완벽주의 성향 때문에 이론(개념)을 먼저 다 공부한 후에 기출을 풀어보겠단다. 참패할 것이 뻔한 전장에 준비없이 나가기 싫은 군인의 마음이 이해는 된다. 하지만 어떤 개념이 어떠한 상황에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알 때 덩어리가 좀더 단단해진다. 미분의 정의를 달달 외운다고 미분 문제를 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개념의 청크를 형성하려면

공부를 시작할 때에 머릿속에 새로운 지식을 집어넣는다는 생각을 하지 말자. 공부는 이미 알고 있는 것과 새롭게 알게된 것들을 연결지어 견고한 청크를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해보자. 여기서 또 한가지 공부 전략을 말해주자면, 공부에도 십일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시간을 공부한다면 6분 정도는 따로 떼어 두어야 한다. 공부를 시작하기 전, 3분 정도만 먼저 투자해 페이지를 넘겨가며 그 부분의 챕터명, 소제목, 그림, 표, 수식, 문제 등을 훓어보는 것이다. 이것이 각각 작은 청크들이자 청크 재료들이다. 나머지 54분 동안 청크 재료들 각각을 이해하고 연습하여 부지런히 연결하고 풀칠을 하여 커다란 청크를 만든다. 그리고 남은 3분 동안 다시 작은 청크들의 연결성을 확인해본다. 십일조 떼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아야 질 좋고 견고한 청크를 만들 수 있다.


H야, 개념은 시간을 들여 스스로 형성할 때 비로소 네가 그 개념을 써먹을 수 있단다. 인강은 방대한 분량의 내용을 훓어서 정리해줄 뿐이다. 강사가 아무리 유명하고 탁월해도 그들이 너의 머리속에 뭐가 들어있는지는 알수 없으니 청크를 만들어 줄 수 없단다. 아쉽게도 초콜릿 쿠키를 굽듯 한시간 만에 개념의 청크가 뚝딱 만들어지지는 않지만, 20대가 가진 것이 시간밖에 없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학습에서 나같은 중년보다 훨씬 유리하다는 점을 점을 잊지 말길.  그렇다고 기성세대를 너무 무시하진 말거라. 교수님은 시간은 부족하지만 청킹할 좋은 재료가 많고, 오랜 시간 이 일들을 해와서, 청크를 단단하게 만드는데 아주 능숙하니까. ^^

견고한 크리스털 청크는 값비싸다. 다이아몬드는 더 가치있다.



다음 글에서는 2022년 교육학 논술 기출문제에서 다룬 '학교중심 교원연수'라는 개념을 가지고 개념 형성의 실재를 생각해보자꾸나.



참고자료

대니얼 J. 래비틴 (2015). 정리하는 뇌. 와이즈베리

Learning How to learn: Powerful mental tools to help you master tough subjects. Coursera Cour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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