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보다 습관2 - 맛이냐 영양이냐 (Feat. 메타인지)
퇴근하는 길에 치킨을 배달하시는 분과 엘리베이터를 같이 탔다. 고소한 후라이드 치킨의 유혹적인 냄새를 참을 수 없다. 야식이 건강에 좋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저녁 10시만 되면 배달앱에서 치킨을 검색하고 있다. 근 한 시간을 기다려야 배달해준다고 하는데도 기어이 시켜서 먹고야 만다.
인간이 무엇인가를 먹는 행위는 다양한 의미를 가진다. 하루에 세 번의 식사를 하고, 식사와 식사 사이 일명 간식까지도 먹는다. 잠, 세면, 공부, 옷, 청소, 빨래와 같은 일상의 다른 일들에 비해서 가장 횟수가 많은 것이 먹는 일이다. 습관 형성에서 중요한 원리 중 하나가 반복하는 '횟수'이며 이러한 반복적 행위는 자신의 정체성과 자존감에 영향을 준다. 그러므로 먹는 행위는 나의 정체성과 자존감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나에게 컵라면과 삼각김밥을 일회용 나무젓가락으로 먹이는 것과 현미, 싱싱한 과일과 푸릇한 야채, 삶은 계란으로 구성된 도시락으로 먹이는 일은 내가 나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를 증명한다. 그러므로 우리 한번 정도 시간을 내어 내가 나를 어떻게 먹이고 있는지를 정리해보면 내가 나를 어느 정도 존중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아침은 바빠서 건너뛴다.
냉장고에 먹다 남은 음식이 아까워 배가 부른데도 먹어 치운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나 동료와 맛집 투어를 하고 음식 사진을 찍어 인스타에 올린다.
늦은 밤 습관적 배고픔을 못 견뎌 배달앱에서 야식을 주문해서 유튜브를 보면서 먹는다.
공부에 집중하기 위해 커피나 초콜릿을 먹는다.
단체 급식을 하는 학교나 회사에서는 배식 시간에 맞추어 먹는다.
오전에 배가 고플까 봐 간단하게라도 아침을 챙겨 먹는다.
퇴근하고 가족들과 저녁 식탁에 앉아 음식을 나누며 대화한다.
건강과 체중감량을 위해 닭가슴살이나 샐러드를 먹는다.
식사 습관을 잘 형성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메타인지'를 활용해보자. 메타인지란 자신의 생각을 판단하는 능력으로 일종의 자신을 객관화해서 보는 인지 방식이다. 일반적으로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이 메타인지가 발달되어 있는데, 이들은 공부할 때 자신이 교사와 학생이 되어 자기가 자기를 가르치는 형태를 취한다. '나'라는 학생이 뭘 알고 뭘 모르는지를 '나'라는 선생님이 잘 파악하고 있으니,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가 명확해져 공부의 효과와 효율이 높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리도 이 메타인지를 식사에 적용해서 좀 더 똑똑한 식사습관을 만들어보자. '나'는 먹는 사람이기도 하고 먹이는 사람이기도 한다. 나는 내 끼니를 매번 챙겨주시는 엄마이다. 오늘도 '나'에게 세 번의 식사와 두 번의 간식을 먹여야 한다. 자녀의 건강을 생각하는 엄마는 아이의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에 관심이 많다. 그 음식 하나하나가 아이의 성장과 성숙에 기여하기 때문이다. 아이가 건강하게 키가 쑥쑥 잘 크도록 영양이 풍부하고 균형 있는 식단을 준비한다. 채소를 싫어하는 아이에게 어떻게 채소를 먹일 수 있을지 고민한다. 자녀를 사랑하는 엄마는 아이가 가공식품을 먹는 일에 관대하지 않다. 저렴한 액상과당이나 나트륨이 과하게 들어간 가공식품을 매번 자녀에게 먹이는 것은 그것이 혈액에 일으키는 염증을 알고 있는 이상 부모로서 쉽게 허락할 수 없다.
두뇌의 에너지원이 되는 포도당은 섭취 후 12시간 후에 대부분 소모된다는 것을 안다면 아무리 바빠도 공부하러 가는 자녀에게 아침식사를 먹여야 한다. 집중력과 이해력 등 뇌 활동을 주로 하는 학생이라면 적당한 수준의 아침식사를 '뇌'에게 먹여야 한다. 먹을 때 먹는 일에만 집중하도록 해야 한다. 같이 식사하는 사람들과 가벼운 대화를 나누는 것을 넘어서는 멀티태스킹은 음식을 소화시키고 영양분을 몸의 각 기관에 보내는 일을 소홀하게 한다. 밥을 먹으면서 유튜브 영상을 보거나, 카톡을 보내거나, 업무 처리를 한다면, 소화기관으로 가야할 피가 뇌로 보내져 소화능력이 떨어진다. 간혹 식당에서 어린 자녀들에게 태블릿 영상을 틀어주고 밥을 먹이는 부모들을 종종 보곤 하는데, 제 아무리 비싼 음식을 먹여도 그것이 건강하게 아이의 피와 살이 될지 모르겠다. 나는 그저 밥 한 숟가락에 마약 한 숟가락, 밥 한 숟가락에 마약 한 숟가락... 이렇게 먹이는 것으로 밖에 안 보인다.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연구팀은 밥 먹을 때 TV를 보면 비만 위험이 37% 증가한다고 발표하였다. 그리고 가정에서 요리해서 먹는 사람은 가공식품이나 외식의 기회가 많은 사람에 비해 비만 위험이 26% 낮았다.
먹을 것이 부족했던 시기의 인간은 생존을 위해 먹거나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서 먹었다. 지금은 매 끼니때가 다가오면 집 안팎으로 지천에 널린 음식들 중 무엇을 먹을까를 고민하는 게 일상이다. 고민이 해결되는 선택의 순간 우리가 적용하는 잣대는 주로 '맛'이다. 아이의 건강을 걱정하면서도 아이스크림을 사주는 부모의 심리는 무엇인가? 늦은 밤 야식으로 치킨을 먹고 나면 그다음 날 몸이 찌뿌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야식을 먹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먹는 행위의 본질인 '영양공급'보다는 일시적인 혀의 만족감인 '맛'을 더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순간적인 행복감에 사로잡힌 아이의 모습을 보기 위해 액상과당* 그득한 아이스크림을 사준다. 먹는 행위가 영양의 공급이 아닌 선택 가능한 수많은 음식 중에서 무엇이 가장 내 입에 맛있을지를 고민하는 일이 되었다. 내가 무엇을 가장 먹고 싶어 하는지가 선택의 잣대이다. 이러한 혀의 맛을 위한 선택적 행동이 반복될수록 우리는 매사를 일시적인 만족감을 위해 의사 결정하는 사람이 돼버린다. 자신의 중요한 미래가 달린 일의 본질을 보지 못하고 눈앞의 쾌락을 좇게 된다. 새로운 맛집이 나왔다고 하면 언제든지 갈아탈 의향이 있다. 과거의 나는 쉽게 무시된다.
먹는 행위는 배고픔을 해소해주고, 맛과 멋을 즐기고, 친구와 가족들과 사회적 관계를 맺게도 한다. 몇 달 전부터 스타벅스에서 업무를 볼 때마다 치즈케이크를 먹기 시작한 나는 체중이 급격하게 불어버렸다. 케이크 한 조각에 당류가 31g, 나트륨이 241mg이며, 칼로리는 586kcal나 된다. 일에 집중하기 위해 카페인과 과당을 먹였더니 몸이 나에게 반항을 한다. 도시락을 싸는 일은 재정이나 시간관리에 도움이 된다. 최근 인플레이션으로 도시락을 싸다니는 직장인들이 늘어났다고 한다. 친구들과 맛집을 다녀오는 것은 우정을 돈독하게 한다. 먹는 일에 대한 습관을 잘 설정해두는 것은 식사습관을 잘 형성하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일상들을 올바르게 세워나가는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반대로 잘못된 식사습관은 체중 증가, 소화불량, 재정낭비 등의 문제를 불러온다.
먹는 일을 좀 더 고상하고 성스러운 일로 생각해보자. 나라는 귀한 사람에게 좋은 음식과 영양분을 대접하는 일로 생각해보자. 값 비싼 음식이 아니어도 좋다. 인공첨가물보다는 자연 그대로의 음식으로, 환경호르몬이 걱정되는 일회용 용기가 아니라, 사과 한 조각을 두어도 단정하게 보이는 하얀 접시와 식기로 나를 먹이자. 음식을 준비하고 먹는 시간을 너무 아까워하지 말자. 그 시간은 내가 나의 자존감을 높이는 시간이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후라이드 냄새의 유혹에서도 자제력을 발휘한 나를 칭찬해보자.
10년 전쯤 영어교육과의 한 남학생이 현미밥을 싸가지고 다니는 것을 보았다.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던 그 친구는 무슨 반찬을 먹을지에 대한 의사결정은 구내식당의 전문 영양사에게 맡기고 공부에 몰두했지만, 밥만은 집에서 준비한 현미를 먹었다. 자신의 식사를 설계하는 지혜로움과 절제력만 보더라도 그 친구가 시험에 안정적으로 합격하고 졸업했다는 것을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 바로 나의 식사습관을 점검해보자. 나는 건강하고 깨끗하고 영양 가득한 음식으로 나를 존중하고 있는가? 아니면 나를 순간적으로 만족시키지만 결과적으로 나의 건강을 해치는 음식으로 나를 학대하고 있는가?
[참고한 자료]
습관이 영성이다. 제임스 K. A. 스미스 지음. 비아토르
Tumin, R., & Anderson, S. E. (2017). Television, Home-Cooked Meals, and Family Meal Frequency: Associations with Adult Obesity. Journal of the Academy of Nutrition and Dietetics. 117(6), 937-945.
* 액상과당(液狀果糖, 고과당 옥수수 시럽 HFCS, High Fructose Corn Syrup): 옥수수 전분에 인위적인 과당을 첨가해 만든 물질로 저렴해서 설탕 대체재로 각종 가공식품에 쓰인다. 혈액 속에서 단백질 성분과 엉겨 붙어 혈액 속의 염증을 유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