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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장에 들리는 습관

공부보다 습관 - 좋아하지 않는 일의 습관을 형성하는 방법

1. 달리기의 의미

대학시절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읽고 그의 독특한 필체에 매료된 적이 있다. 지금 70세를 넘긴 나이에도 꾸준히 베스트셀러를 출판해내고 있는 그는 마라톤 예찬자인데 그의 책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다가 달리고 싶어서 뛰쳐나갈 뻔한 적이 있다. 그는 '달리기가 건강에 좋으니 꼭 운동하세요.'라고 하지 않았지만, 독자로 하여금 달리기 직전의 상태까지 만드는 필력을 가졌다. 거장의 힘이다.

20대 중반까지 차가 없던 시절, 버스를 놓칠까 봐 집에서 정류장까지 달렸던 것을 마지막으로 내 인생에 두 발을 동시에 공중에 부양시켰던 기억이 없었다. 걷는 것은 자신 있지만 달리는 것은 글쎄.. 다리가 아픈 것보다 심장이 조여 오는 기분이 별로였다.

하지만 일본의 거장은 독특한 필력으로 나에게 속삭였다. "지금 너 몸의 장기들이 40년 넘게 중력의 영향을 받아 아래로 쏠리고 있으니, 이제 좀 달려주어 제 자리로 위치를 시키는 것이 어떻겠니?"라고 한다. 나는 대학시절 지금의 뉴발란스? 정도의 대중적 유행(뉴발란스가 유행이 지났을 수도 있음)을 했던 브랜드인 리복 운동화를 구매하고 운동장 100m 트랙을 달려보았다. 심장에 가벼운 압박이 왔지만 기분이 상쾌했다. 다음날 110m를 달렸는데 달릴만했다(100m 트랙을 달린 후 어림짐작으로 10미터를 더 달렸음). 매일 조금씩  눈대중으로 달리는 거리를 늘려보았다. 운동장 한 바퀴 400m를 달리던 날. 이건 좀 힘겨웠다. 그래서 아주 천천히 달려보았다. 빨리 걷는 것보다 느리게 느꼈졌지만, 나의 목적은 두 발을 동시에 공중에 떼보는 것이다.

역학적으로 걷기는 체중의 20~30% 정도의 충격을 가하는 반면, 달리기는 체중보다 더 강한 충격을 가한다. 나에게 있어서 달리기란 체중감량도 건강을 위한 것도 아니라 몸 안에 충격을 가해서 몸의 장기들의 위치를 바르게 잡아주는 일이다. 걷기는 이게 잘 안된다.


2. 정체성

하루키 덕분에 달리기를 시작하면서 스트레칭, 근력, 점핑, MTB, 실내 바이크 등 몸을 움직이는 다양한 일들을 하게 되었다. 운동을 하면서 매일 아침 일어날 때 몸과 정신이 가볍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떤 일을 지속적으로 하는 게 덜 힘들었다. 이것이 사람들이 말한 운동의 효과인가? 운동이 좋긴 좋구나 싶었다. 내 주변에 운동을 안 하는 이들에게 운동을 하라고 권했다. 그리고 나처럼 운동을 싫어하는 사람도 운동을 하니까 정말 몸이 개운 졌다고 당신들도 좀 하는 게 어떠냐고 이야기했다. 

올여름 동네에서 자전거를 타다 살짝 미끄러지면서 다치게 되었는데 왼쪽 무릎에 유독 돌출된 뼈가 충격을 받았는지 한동안 무릎이 아파서 운동을 쉬었다. 이 통증은 내가 운동을 하지 않아도 되는 합리적인 이유를 제공해주었다. 이 상태로 운동하면 큰일 난다. 문제는 나의 무릎은 시간이 지나 자연적으로 나았지만 나는 다시 운동을 시작하지 않더라는 것이다. 운동의 유익함을 그렇게 누렸음에도 선뜻 다시 운동을 시작하지 않았다. 밖에 날은 덥고, 실내엔 마스크 때문에 힘들다. 운동하는 클럽의 코치가 남자로 바뀌어서 불편했다. 자전거는 헬맷을 써야 해서 불편하다. 운동을 안 할 수밖에 없는 오만가지 이유가 생겼다.

나는 왜 운동을 빨리 시작하지 않았는가? 이것은 나의 정체성 문제이다. 나는 운동을 열심히 하면서도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다녔다. 이것은 사실이다. 갑자기 여유 시간이라도 생기면, 그동안 못한 일을 하지 그 시간에 운동을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운동은 내가 의지를 내서 할 뿐이다.

나는 내가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나는 운동을 좋아한다. 좋아한다. 좋아한다... 자기 암시 같은 것도 잠깐 해봤으나, 그때마다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이라는 진실이 종이 귓가를 울렸다.


3-1. 신호: 운동하러 나가라는 신호 만들기

새벽형 인간이라 일찍 일어나 이것저것 좋아하는 일들을 한다. 아파트 헬스장 문이 6시 열어 그곳에서 운동을 하기로 했다. 5:40분쯤 되면 갈등이 생긴다. 지금 읽고 있는 이 책 너무 좋은데 마저 읽고 오늘은 건너뛸까? 오늘 일정이 너무 많으니 운동은 하루 미루고 일 좀 처리하고 출근하자. 내 눈앞에 할 일들과 읽을 책들이 러브콜을 보내온다. 하지만 내 방에는 운동에 관한 신호는 단 하나도 없다.

운동에 관한 신호를 만들기 위해 일어나자마자 운동복으로 갈아입는다. 양말까지 갖춰서 신고 있는다. 그리고 포스트잇에 학사일정 6주차, 800m라고 써서 붙인다. 실은 이번 학기 시작 2주 전부터 운동을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하고 다시 100m부터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매주 100m씩 추가해서 달리고 있다. 학사일정에 2를 더한 만큼 달리면 된다. 교수는 학사일정을 외우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이번 주가 몇 주차인지 늘 명심하고 있기 마련이다. 예상대로라면 기말시험기간엔 1.8km를 쉬지 않고 달릴 수 있게 된다. 매일 2km를 달리면서 올해를 보낼 수 있게 된다. 


3-2. 열망: 운동하는 시간을 즐겁게 만들기

운동하는 시간이 기다려지게 하려면? 첫째, 운동이 쉽다고 생각해야 한다. 어떤 책에서는 습관을 만들려면 그게 무엇이든 2분 이내로 마칠 수 있는 수준에서 시작하라고 한다. 지금 당장이라도 할 수 있는 난이도여야 한다는 것이다. 6주차 수업을 하는 이번 주엔 800미터를 아주 천천히 달리는데 7~8분 정도 소요된다. 7~8분 정도는 숨을 고르면서 서서히 걷는다. 15분을 채운다. 더 걸을 수 있지만 힘들어질까 봐 욕심내지 않는다. 힘든 느낌이 조금이라도 들면 헬스장에 안 오게 된다. 그러고 나서 랫풀다운(lat pulldown) 8개씩 3세트, 래그프레스(leg press) 8개씩 3세트를 한다. 역시 나는 운동보다 운동기구 이름을 찾아보는 게 더 재밌다. 7주차엔 9개씩, 8주차에 10개씩 3세트를 할 것이다. 그리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벨트 마사지를 3분 정도 한다. 이렇게 하면 운동화 갈아 신고, 헬스장 출입 등록부 쓰는 시간 포함해서 헬스장에서 30분 정도 머무른다.

둘째, 운동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붙여서 운동을 즐겁게 만든다. 러닝머신 위의 15분을 즐겁게 해 줄 것을 찾는다. 운동할 때는 가급적 딴짓을 하지 말고 몸의 근육의 느낌을 느끼는 것이 좋다고 하는데, 이것은 운동을 즐기는 사람에게만 해당한다. 나는 15분간 무엇을 할까? 영어 듣기? 강연 듣기? 강연을 듣는다면 무엇에 대해? 15분간 매일 만나고 싶은 이를 만날 수 있다면? 여러 가지 고민을 하다가 내가 멘토로 삼고 싶은 인물들의 방송이나 영상 콘텐츠를 듣기로 했다. 음 며칠 열심히 강연을 듣다가 러닝머신 앞에 있는 TV를 켜봤는데, 홈쇼핑 채널을 보게 되었다. 정말 몇 년만의 TV홈쇼핑인지 너무 반가웠다. 열심히 보다 보니 15분이 훌쩍. 좋아 일단 나는 당분간 운동의 횟수를 누적하여 습관이 될 때까지는 이 15분간 TV를 보자! 러닝머신 위의 15분이 기다려진다.


3-3. 반응: 운동하러 가기 쉽게 만들기

운동복은 이미 입고 있으므로 됐고, 운동하러 나가기 더 쉽게 하려면? 이어폰과 스마트폰을 방문 앞에 가지런히 둔다. 나는 5:55분에 저걸 들고 운동화를 신기만 하면 된다. 처음엔 어디로 운동하러 갈까? 고민했다. 운동을 할 수 있는 곳이 많다. 일단 학교 운동장 트랙. 그곳에선 마스크도 필요 없고 공기도 좋다. 하지만 거기까지 가는 것이 힘들다. 해가 점점 짧아지는 요즘 아침 6시는 깜깜해서 무섭다. 아파트 쪽문에 있는 클럽은 주차장 나가자 마자라서 괜찮다. 하지만 이른 아침엔 문을 안 연다. 아파트 헬스장. 지하주차장으로 가면 바로 연결되어 있다. 비와도 비 안 맞고 갈 수 있다. 일단 운동하러 가는 횟수를 늘려 습관을 형성하기까지는 아파트 헬스장으로 간다. 운동화도 가져다 놓을 수 있어서 갈 때 편안한 슬리퍼를 신고 가도 되니 아주 편하다. 사실상 가장 가까운 곳은 거실에 있는 실내 바이크지만 내가 부여한 운동의 의미인 몸에 충격 주기는 불가능하다. 이곳은 아파트 헬스장을 열지 않는 공휴일에 들리는 것으로. 


3-4. 보상: 만족스러운 보상들을 아주 구체적으로 생각해보기

운동하고 온 나에게 무엇이 만족스러운 보상으로 주어지나 아주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자. 그냥 운동하면 좋아..라고 하지 말고 그 유익을 구체적으로 나열해서 생각해보자. 운동을 1주 정도만 해도 몸의 변화가 찾아온다. 첫째, 일단 속이 편안하다. 특히 나와 같은 데스크 인력은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더부룩함이 금방 느껴진다. 그래도 강의라도 하러 책상을 떠날 수 있긴 하지만, 장시간 운전에 장시간 작업을 앉아서 하기 때문에 뛰어주지 않으면 속이 불편하다.

둘째, 안 하던 운동을 시작하면 3일 정도는 더 피곤하지만 4일째부터는 이전보다 덜 피곤하다는 것을 느낀다. 몸과 정신에 생기가 느껴진다. 나는 이것을 주로 새벽에 일어날 때 느끼는데 일어나는 것이 어렵지 않고 잘 잤다는 생각이 들면서 몸이 개운해진다. 

셋째, 몸의 장기가 중력을 거슬러 제 위치를 찾는다. 나이가 들수록 근육이 중요한 이유다. 코어 근육들에 텐션이 생겨 장기들의 위치를 잡아주어야 하는데, 아주 많은 경우 장기들의 위치가 아주 미세하게 틀어져서 만성적인 질환들이 생긴다. 이런 경우 의사도 원인을 알 수 없다. 의사가 스트레스성 만성질환이라고 진단하면 내가 스트레스가 많구나 싶지만, 글쎄. 정신과 의사가 아닌데 3-5분간 만나는 의사가 내 삶에 대해서 아는 게 무엇이라. 사실 잘 안 믿긴다. 몸의 장기가 제 위치를 찾으면 만성적인 어깨 결림, 소화불량, 허리 통증이 사라짐을 느낀다. 

넷째, 걸음걸이가 달라진다. 걷는 모습을 보면 그 사람의 삶의 태도를 진단할 수 있다고 한다. 뒤뚱거리지 않고, 다리를 힘차게 들어 올려 걷는지, 바른 자세로 걷는지, 시선을 어디에 앞에 두고 걷는지. 인생을 길을 걷는 것에 비유하는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 나도 운동을 하면 다리가 가볍다는 생각이 들어 걸음걸이가 달라짐을 느낀다. 걸을 때마다 운동의 보상을 몸으로 느끼게 된다.

다섯째, 옷을 안 사게 된다. 아무 옷을 입어도 편안하기 때문에 옷 쇼핑을 하지 않게 된다. 간혹 유럽의 상류층 사람들이 부모가 입었던 옷을 물려서 입는다고 한다. 이것은 이들의 클래식한 의복 취향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자기 신체 관리를 통한 적정 수준의 신체 사이즈를 유지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운동의 수만 가지 유익한 보상들을 퉁쳐서 생각하지 말고 구체적으로 하나하나 써보는 것이다. 일반적인 유익 말고 나에게 느껴지는 유익과 보상을 써보는 것이다.


4. 실천 인증


5. 새로운 정체성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운동을 다른 활동에 비해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 나는 나의 장점을 생각해보았다. 나는 운동을 제외한 다른 일들을 꾸준하게 지속하는 장점이 있다. 약간의 변형이나 중단이 있지만 금방 다시 시작한다. 옳거니.. 그거다. 운동에 대해 좋다 싫다는 가치판단으로 나의 정체성에 혼란을 주지 말자. 그저 나는 지속적으로 하는 것을 잘하니까. 헬스장에 지속적으로 가는 것으로 나의 정체성을 삼자. 그냥 헬스장에 매일 아침 출근도장을 찍으러 간다. 실제로 출입 등록부를 써야 하기 때문에 내가 방문하는 시간과 이름을 쓰게 되어 있다. 그래, 나는 운동하는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헬스장에 매일 출근하는 습관을 가진 사람이다. 

헬스장에 가보면 다들 우월하고 건강한 신체를 가지신 분들이 계시다. 물론 새벽에 가면 다들 중년, 노년의 남성분들이지만 그들 모두 건강해 보인다. 삶을 활력 있게 보내고 있어 보인다. 적어도 질병으로 자신과 가족에게 고통을 주고 있진 않다. 그래. 그런 집단속에 나를 두면 되겠지? 그게 나니까. 그래, 이제부터 달리기가 아니라 헬스장(운동하는 장소)에 매일 한 번씩 들리는 것을 연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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