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롬비아, 보고타: 몬세라또 언덕, 그라피티 투어- 15/08/04(화)
아이들과의 여행이었으므로, 처음 여행을 계획할 당시 콜롬비아는 남미에서 가장 위험한 나라로 보였기 때문에 여행지로 고려할지 말지 자체가 고민스러운 곳이었다. 그래서 멕시코와 쿠바가 있는 북미로 이동하기에 위해 아주 잠깐 들르는 나라 정도로만 생각했었는데, 남미를 여행하면서 만났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렇게 위험하기만 한 곳은 아닌가 보다 라고 생각이 살짝 바뀌었다가, 나중에는 한 두 곳 정도 여행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데 까지 생각이 미쳤다. 그렇게 에콰도르에서 콜롬비아로 국경을 넘으면서 국경에서 가장 가까운 여행지로 낙점된 곳이 살사의 도시 깔리였고, 멕시코로의 이동을 위해서 들러야 하는 곳이 보고타였기에 깔리 다음으로 보고타를 선택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사실 콜롬비아에서 시간적인 여유가 조금 더 있었더라면 커피농장에 가보고 싶었으나 이동거리와 시간을 감안하니 도저히 불가능한 일정이었기에 보고타 여행은 이래저래 필연적인 것이 되어 버렸다.
예정에 없었던 깔리에서의 여행은 살사 공연 그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가치를 지녔기에 만족스러운 것이었으나, 보고타에서의 여행은 마치 타지에 살면서 서울구경 온 사람들이 단골로 들르는 곳을 가는 관광코스를 도는 것처럼 느껴져서 좀 심드렁하기까지 했다.
그중 가장 최악의 장소는 몬세라또 언덕이었다. 케이블카의 가격도 1인당 15,000 페소로 만만치 않았는데 막상 올라가 보니 서울에서 남산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서 보는 풍경보다 못한, 이렇다 할 개성도 없는 도시의 전경을 내려다보는 것이 전부였다. 언덕 위에서 먹었던 곱창구이도 주말 벼룩시장의 가판대에서 먹었던 것보다 훨씬 맛이 없었는데 가격은 두 배 넘게 비쌌다. 그렇게 실망스러웠던 몬세라또에서의 기억을 상쇄시키기 위해 오후에는 콜롬비아를 대표하는 화가 보테로 미술관을 방문하려고 했으나 하필이면 매주 화요일은 보테로 미술관의 휴관일이란다.
이렇게 남미대륙에서의 마지막 일정을 실망스럽게 마무리할 수는 없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선택한 오후 일정은 그라피티 투어였다. 그리고 이것은 보고타가 우리에게 준 모든 실망감을 단 한 번에 상쇄할 수 있을 만큼 훌륭했다.
남미를 여행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각 도시마다 그 도시의 얼굴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그 도시의 느낌을 표현한 그라피티를 거리에서 쉽게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사회, 경제, 정치, 문화에 대한 비판의식을 담은 그라피티는 어쩌면 미술관에 걸려 미술관을 찾는 사람들에게만 메시지를 전하는 소극적인 예술 활동보다 더 적극적인 예술 활동이자 사회참여 활동인 셈이다. 사회 전반적으로 안전하지 않고 자유롭지 않은 보고타에서의 그라피티는 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1980년대 초 거리에서 거리에 그림을 그리고 있는 10대 소년을 경찰이 총으로 사살한 끔찍한 사건이 있은 후 시민과 예술가들이 공권력의 무자비한 만행에 대해 거세게 항의했고 그 결과 보고타는 거리에 그림 그릴 자유를 얻었다. 그 이후 보고타의 그라피티는 예술의 경지까지 이르게 되었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그라피티의 성지가 되었다. 사람 사는 거리 전체가 거대한 캔버스가 된 셈이니 이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 그런 역사를 가진 보고타의 그라피티는 남미의 다른 나라들 보다 화려하고 예술적이고 다양하다.
라스 아구아(Las Agua) 역 근처 광장에서 두 시에 출발한 그라피티 투어는 스무 명 남짓 하는 인원으로 시작되었는데, 골목을 돌며 점점 더 늘어나서 나중에는 쉰 명 가까이 되어 좁은 골목길이 종종 막히곤 했다. 그러니 스피커도 없이 생목으로 작품을 설명하는 도슨트의 목소리를 들으려면 그녀를 놓치지 않고 바짝 붙어 다녀야 했다. 문제는 어린 제나가 사람들에게 치이면서 도슨트의 이동 속도를 따라잡는 게 불가능했으므로 두 시간 가까이 진행되는 투어 시간 내내 제나를 업고 다녀야 했던 것이다. 한 시간 반 정도 지나자 제나는 내 등에서 잠이 들어버렸고 축 늘어지는 제나를 업고 더는 투어를 계속할 수 없었다. 아쉬운 마음에 형주에게 열심히 설명을 듣고 사진을 찍으라는 미션을 주고는 제나를 업고 숙소로 돌아왔다.
2년이 지난 지금, 보고타의 어느 골목길에서는 비판의식을 담은 새로운 그라피티가 그려지고 있을 것이다. 한 10년쯤 후에 완벽히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은 보고타의 거리를 보러 다시 올 수 있다면 참 좋겠다.
그라피티 투어를 마치고 아이들과 여행에 필요한 물건들을 사러 길을 나섰다. 길 위에서 방향을 잃고 헤매며 언덕길을 오르락내리락 한참을 걷는데 보고타의 거리가 이전의 거리와 다르게 보였다. 젊은이들이 이야기를 나누며 서있는 바로크 양식의 고풍스러운 건물들로 들어차 있는 대학가의 좁은 골목길, 귀가 시간 직장인들의 분주한 발걸음으로 소란스러운 보도, 가로등이 켜지기 시작하는 어둑한 거리,... 보고타는 우리에게 더 이상 범죄가 난무하는 어둡고 두려운 도시가 아니다. 거리 곳곳에 사회정의와 소수자의 권익을 노래하는 아름답고 신비로운 작품들이 가득한 예술과 희망의 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