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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경화 Dec 28. 2017

유까딴의 검은 꽃

멕시코, 깐꾼: 마야 유적지 뚤룸 - 2015/08/06(목)

깐꾼의 직사광선은 그야말로 숨이 턱 막힐 지경이다. 한국에서는 평생 겪어보지 못한 강렬한 태양이 깐꾼의 하늘 위에 떠 있었다. 태양을 피해 에어컨이 있는 곳으로 숨는 것만이 살길일 듯싶었지만 멕시코에서 첫 일정으로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는 강박이 우리를 숙소에서 내몰았다. 오늘의 여행지는 마야의 고대 유적지 뚤룸(Tulum)이다. 

아도 터미널(Ado terminal)에서 버스를 타고 쁠라야 데 까르멘(Playa de Carmen)까지 가고 거기서 뚤룸행 꼴렉띠보를 타고 뚤룸까지 갔다. 그렇게 세 시간 가까이 걸려서 도착한 뚤룸은 바닷가에 버려진 채 복구되지 않는 마야의 유적지다. 

태양을 피할만한 나무 그늘조차 없는 폐허에는 제대로 된 영어 설명문도 없었고 경내에 화장실이 없어서 쉬가 급한 제나를 데리고 한참을 걸어서 출입구까지 돌아 나와야 했다. 영어로 설명을 들으려면 터무니없이 비싼 가이드비를 내야 했으며 그게 싫으면 스노클링이나 유람선 투어를 해야 했는데 오후에 도착한 우리에게는 시간도 여의치 않았을뿐더러 더운 날씨에 썩 내키지도 않았다. 아무래도 깐꾼의 살인적인 더위에 아직 익숙하지 않은 우리에게 뚤룸으로의 여행은 너무 무리였던 모양이었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한국에서 두 번의 여름을 나는 동안,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 날씨에 아이들이 투덜대기라도 하면, “뚤룸 기억나?” 한마디에 순식간에 한국의 여름에 감사하는 마음이 들만큼 뚤룸에서의 기억은 혹독했다.)


뚤룸 매표소에서 유적지 내부로 들어가는 열차
지금은 막혀버린 좁은 문
한때 번화한 마야의 도시였던 뚤룸. 지금은 옅은 흔적만 남은 유적지이다.
바다가 보이는 언덕 위의 요새
남은 유해로 반만 복원된 마야 건물
유적지 아래 바다로 뛰어들고만 싶을 만큼 살인적인 더위다.
출구 표지판에 그려진 마야 문양
출입구가 낮고 좁은 것으로 보아 고대 마야인들은 현대인보다 키가 작았었나 보다.


깐꾼으로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오며 창밖을 보니 세 시간을 차로 달리는 내내 도로 양 옆으로 펼쳐진 것이라고는 끝없이 검푸른 정글 숲이었다. 그러고 보니 어제 보고타에서 깐꾼으로 오는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유까딴 반도는 대부분 이런 검푸른 정글 숲으로 뒤덮여 있었다. 

문득 김영하의 소설 ‘검은 꽃’이 떠올랐다. 소설의 배경이 되었던 멕시코 메리다는 유까딴 반도의 북쪽에 위치한 곳으로 유까딴 반도의 동쪽 끝인 이곳 깐꾼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다. 이 살인적인 더위와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없을 듯한 척박한 땅으로 식민지 조국을 떠나 온 1,033 명의 첫 한인 이주민들이 느꼈을 절망감이 새삼 절절하게 와 닿는다. 역사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한 그 소설은 일제 강점기 멕시코의 에네껜(선박 밧줄의 원료가 되는 식물) 농장으로 거의 팔려오다시피 했던 조선 이주민들이 겪었던 인권유린과 멕시코 땅에 정착하기 위해 벌였던 처절한 고군분투, 그리고 빼앗긴 조국일지언정 자신들의 뿌리를 잃지 않기 위해 지구 반대편에서 숭무학교를 세우고 민족교육에 애썼던 그분들의 삶을 실감 나게 그려냈던 작품이다. 실제로 우리 조상의 처절한 이민 역사의 배경이었던 유까딴 반도에 와 보니, 아픈 지난 역사 위에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가야 할 한국인으로서의 책무가 결코 가볍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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