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깐꾼에서 쿠바 아바나로 이동 - 2015/08/09(일)
미국의 오바마 정부가 지난 7월 20일 쿠바와 미국의 외교관계 정상화의 일환으로 양국 수도의 대사관을 부활시키면서 쿠바와 미국 사이에 본격적으로 훈풍이 불기 시작했다. 그러나 쿠바는 여전히 폐쇄적인 공산국 가이다. 쿠바 유일의 항공사인 쿠바나 항공의 직원은 입국세로 1인당 25달러, 비자비로 1인당 25달러를 받아갔다. 쿠바 땅을 밟기 위해 비행기 티켓 값을 제외하고 추가로 20만 원(3인)에 가까운 돈을 더 내야 하는 셈이다.
남미 여행을 하는 동안 내내 사용했던 시티카드도 시티은행이 미국 은행이라는 이유만으로 쿠바에서는 사용이 불가했다. 그러니 쿠바로 들어가기 전에 쿠바 여행경비 전부를 멕시코에서 인출해야만 한다. 달러 환율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전부 멕시코 페소로 인출한 다음 높은 수수료를 내고 그것을 모두 달러로 환전해서 들고 들어가는 수밖에 없다. 쿠바라는 특별한 나라를 여행하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마친 후 오후 세 시 비행기를 타고 한 시간을 날아서 쿠바 아바나 공항에 도착했다.
어두운 카키색 제복을 입은 경찰들과 거친 느낌의 한산한 공항 건물 내부, 쿠바는 다른 나라들과는 어딘지 좀 다른 느낌이다. 짐을 찾고 어렵게 물어물어 공항 내 환전소에서 오늘 하루 정도 필요한 경비를 CUC(외국인들이 사용하는 화폐)으로 환전했다. CUC는 내국인 화폐인 MN에 비교해 환율도 좋지 않을뿐더러 외국인이라면 무조건 CUC으로 비싸게 부르는 현지인들 때문에 여행자로서 불편함이 컸지만, 쿠바는 그 어떤 어려움도 감수하고 꼭 와 보고 싶었던 많은 이유를 가진 여행지였으므로 이 정도의 불편함은 기꺼이 감수하기로 한다.
베다도 지역에 위치한 숙소는 공항에서 택시로 한 시간 정도의 거리에 있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올드카들의 향연과 군용 차량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가는 사람들, 체 게바라식 오토바이를 탄 사람들의 모습이 우리가 진짜 쿠바에 왔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했다.
남미와 멕시코의 인구가 인디오와 유럽인의 혼혈인 메스티소인데 반해, 이곳 쿠바는 스페인 침략 초기에 침략자들에 의한 전염병의 창궐로 원주민들이 전멸되다시피 했다고 한다. 이후 많은 수의 흑인 노예들이 유입되어 흑인이나 혼혈된 흑인이 인구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17세기부터 시작된 흑인 반란은 19세기 쿠바 독립전쟁으로까지 이어졌는데, 미국이 이 독립전쟁에 개입해 승리하면서 미국의 내정간섭이 시작되었다. 이후 집권한 대통령들이 미국과 결탁해 정치적 부패와 불평등을 심화시키던 중 1959년 체 게바라와 함께 게릴라 활동을 해오던 피델 까스뜨로가 혁명에 성공함으로써 오늘날의 쿠바가 만들어졌다. 그 후 약 60년 동안 쿠바는 라틴아메리카의 반미운동에 앞장서며 독자적인 정치노선을 지켜왔는데, 오바마 정부에 들어서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 시도되고 있다. 쿠바 내부도 미국과의 관계가 좋아지면 미국 자본이 들어와 쿠바 경제에 활력을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분위기다.
베다도 지역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아바나 리브레 호텔(Hotel Habana Libre)에서 세 블록 떨어진 곳에 우리가 머물 까사(Casa: 쿠바식 민박집)가 있었다. 이 동네에는 고풍스러운 저택들이 모여있었는데 마그다 아줌마네 가족이 사는 건물의 뒤편 독채가 우리가 머물 숙소였다. 1층에는 식당과 주방이 있었고 2층에는 침실과 작은 욕실이 있었고 바닥의 타일, 계단, 침실의 가구들까지 모두 하나 같이 고풍스럽고 아름다웠다. 어린 제나는 특히 1층에서 2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좋아했는데, 마치 만화영화 겨울왕국의 얼음성에 사는 엘사 공주라도 된 듯이 계단을 오르내리며 행복해했다.
짐을 풀고 저녁식사를 하러 밖으로 나오니 거리는 벌써 어둑해져 있었다. 점심도 제대로 먹지 못해 지친 아이들을 데리고 한 시간 가까이 헤맨 끝에 가이드북에 소개된 식당에 도착했으나 음식을 만들 재료가 없다며 다음에 오라고 했다. 나름 유명한 식당이고 지금은 일요일 저녁인데 음식의 재료가 없다는 말이 그때는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아바나의 물자 부족이 심각한 상황이라는 걸 파악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아직 그렇게 늦은 시간도 아닌데 아이들과 갈만한 다른 식당을 찾을 수도 없었고 주위에 식재료를 사다가 음식을 해 먹을 만한 가게도 없어서 지친 제나를 등에 업고 그냥 숙소로 돌아왔다. 배낭을 뒤져 콜롬비아에서 사 온 비상식량인 라면을 끓여 먹고 오지 않는 잠을 억지로 청했다. 돈을 손에 들고 있어도 마음대로 원하는 것을 살 수 없는 이 상황이 너무 낯설다.
쿠바에서의 첫 번째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