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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경화 Dec 29. 2017

추억의 서부영화

쿠바, 뜨리니다드에서 산따 끌라라로 이동 - 2015/08/17(월)

호텔 식당에서 푸짐한 아침 식사를 마치고 해변으로 나가 아침 바다를 산책했다. 석양이 지는 바다도 낭만적이었지만 호수처럼 잔잔하고 푸른 바다와 아기 살결처럼 하얀 백사장에 야자수가 드리워진 아침 바다도 깨끗하고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눈 부신 바다
그리고 보드라운 모래사장
호텔의 우리방에서 바라본 바다 풍경


호텔방으로 들어와 내가 배낭을 꾸리는 동안 아이들은 방에 놓여있는 LG 로고가 달린 구식 브라운관 TV를 켜고 볼만한 채널을 찾아 이리저리 돌리다가 오래된 서부영화 한 편을 찾아냈다. 예쁘고 총도 잘 쏘고 춤도 잘 추고 못하는 게 하나도 없는 여자 주인공 둘이 의기투합해서 못난 남자들을 혼내주고 의적이 된다는 촌스럽고 조악한 영화였다. 대형 화면에 실물처럼 선명한 화질을 자랑하는 LED TV만 봐 왔던 아이들에게는 볼록한 화면에 거의 흑백 화면처럼 어둡고 가로로 줄이 가서 화면 중간이 휘어지고 가늘게 떨리는 그런 TV는 낯선 물건이었을 텐데 아이들은 나란히 침대에 걸터앉아 키득거리며 영화에 몰입했다. 녀석들이 뚱뚱한 TV 앞에 앉아 영화를 보고 있는 모습이 오히려 오래된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보인다.


호텔 방안 브라운관 TV로 서부영화를 감상 중인 남매


호텔에서 체크아웃을 하고 산따 끌라라로 이동하기 위해 뜨리니다드 시내에 있는 비아술 버스 터미널로 이동했다. 쿠바의 마지막 여행지가 될 산따 끌라라는 아르헨티나 출신 혁명가인 체 게바라의 게릴라전이 성공하면서 쿠바 혁명의 성지가 된 곳이다. 

오후 늦게 산따 끌라라 터미널에 도착해서 비달 광장 근처에 위치한 까사(Casa Ysabel)에 짐을 풀었다. 야자수와 나무가 우거진 비달 광장에는 늘 사람들이 많았지만, 영업시간이 끝나서 그랬는지 이 도시에서 가장 번화하다는 인데뻰시아 거리의 상점은 대부분 닫혀 있어서 식사할 곳을 찾기도 쉽지 않았다. 인데뻰시아 거리의 한 코너에 있는 작은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숙소에 돌아와 침대에 누우니 천정이 유난히 높았다. 3층 건물의 높이만큼 멀리 있어서 자려고 침대에 누우니 지붕이 뚫린 것처럼 허전해서 마치 지붕이 없는 곳에서 자는 것만 같다. 셋이서 달과 별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잠이 들었다. 


산따 끌라라 가는 길의 주유소
산따 끌라라의 비달 광장
가장 번화하다는 인데뻰시아 거리. 영업 중인 상점이 별로 없다.
까사에서의 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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