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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in Aug 16. 2018

독일회사에서 영어로 일한다는 것


지금이야 영어 조기교육이 일반화되어 있지만 경상도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 그리고 그 시절에 조기 영어학습은 거리가 먼 이야기였다. 일부 아이들은 초등학교 때 윤선생 영어교실을 수강하거나 (지금도 존재하는지 모르겠지만 일주일에 한 번씩 학습지 선생님이 집으로 방문하는 형태였다) 학원을 다니기 시작하는 정도였다. 나는 또래 친구들에 비해 아주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영어를 배웠고 그 방법은 중학교 1학년이 되기 전 겨울방학 보습학원을 다니면서부터였다. 그때 알파벳을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익혔고 그 순간부터 영어과목을 가장 좋아했었다.


이후 대학 교내 영어신문사 기자로 2년 넘게 활동했지만 영어를 잘하는 편은 아니었다. 시험이 아닌 실전 말하기 듣기를 가장 많이 늘렸던 것은 이후 독일에서 했던 인턴쉽을 통해서였다.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왔지만 쓸 수 있었던 영어는 단순 아르바이트 정도였던 것 같고, 6개월간 했던 인턴생활에서 영어가 많이 늘었다. 이메일을 쓰고 컨퍼런스를 하고 동료들과도 항상 영어로 얘기했었으니까.



흔히들 말하는 '토종'으로 20년간 한국 밖을 벗어난 적이 없었는데 지금은 독일에 위치한 글로벌한 회사에서 영어로 일한다. 한국과 비지니스가 없는 회사이기 때문에 당연히 한국말을 쓸 일도 없다. 한국인은 나 혼자였기에 한국말로 수다를 떨 사람도 없었고 (중간에 한국인 동료 한 명이 팀에 합류했었다), 유럽 지사에 있는 동료들과 영어로 이메일, 전화, 화상회의를 한다. 석사 공부 시절부터 지금까지 5년 정도 영어를 바탕으로 공부하고 일했지만 모국어가 아니기 때문에 중요한 프레젠테이션이나 문서작성을 위해서는 한국어보다 좀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일을 하는데 영어를 원어민처럼 할 필요는 없다.

인턴 시절 그리고 학생 아르바이트 시절 첫 이메일을 쓰던 때를 기억한다. 물론 석사 공부를 하면서 모든 것을 영어로 했었지만 비즈니스 영어는 조금 달랐고 심지어 떨리기까지 했다. 문법이 틀리면 어떡하지, Hi로 써야 하나 Dear로 시작해야 하나,  서명은 어떻게 넣어야 하지 등등. 걱정할 것들도 많았고 무엇보다도 단수/복수/시제 같은 문법이 틀리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이 컸던 것 같다.


지금도 중요한 이메일을 쓸 때, 특히 영국 동료와 이메일을 교환할 때는 보내기 전 한 두 번 더 읽어보게 된다. 모국어가 영어가 아닌 이상 사람들은 소소하게 문법적인 실수를 하지만 그 실수가 내 업무역량에 크게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물론 마케팅팀이나 법무팀 등 스펠링 하나로 이미지와 법적 효력이 좌지우지될 정도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영어를 쓰지는 않고 말하고 글 쓸 때 실수를 덜 하려고 의식하는 편이다. 사소한 실수일지라도 작은 것들이 쌓여서 나라는 사람의 이미지와 업무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무실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들도 대다수가 독일인 혹은 유럽 국가에서 왔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가 영어에 있어서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맡은 일을 문제없이 해낼 수 있고, 네이티브가 가장 업무를 잘하는 것은 아니듯 언어는 일정 수준에 이르면 도구로써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보게 된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영어를 모국어로 하지 않는 독일이기 때문에 해당되는 이야기다.




정확한 문법보다 중요한 것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이다.


영어뿐 아니라 어느 나라 언어로 소통하더라도 가장 중요한 것은 본인이 원하는 바를 얼마나 효과적인 방법으로 전달하는가에 있다고 본다. 문법적으로 백 프로 맞다고 해서 언제나 의사소통이 원활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영어를 업무에서 잘 활용하는 사람들은 아래의 특징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1) 말이든 글이든 장황하지 않고 간결하게 핵심을 알아볼 수 있게 소통한다

2) 어려운 말보다는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단어/문구로 이야기한다

3) 상대방이 받아들일 수 있는 형태로 제안하고 협의한다. (요청을 할 때는 그것들이 왜 필요한지 배경을 알려주고, 100프로 만족하는 협의가 불가능할 경우 서로가 최소한으로 원하는 것들을 이야기하고 합의한다)

4) 공손한 태도로 임한다. 상대에게 다 맞춰주고 지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예의를 지킨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어를 잘하면 잘할수록 유리하다

그 누구도 나를 대체할 수 없는 특별한 기술을 갖고 있지 않다면, 일반적 회사생활의 절반 이상은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고 설득하여 내 주장을 피력하는 것에 있다고 본다. 엔지니어일지라도 고객에게 우리의 기술을 설명하는 프레젠테이션을 해야 하는 순간이 오고, 회사라는 울타리 안에서는 그 누구도 '소통'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업무능력에서 서로 큰 차이가 없다면 이왕이면 다홍치마라는 옛말이 맞다. 영어를 잘할수록 유리하고 원어민 들일수록 본인의 주장을 더 자주 그리고 효과적으로 펼치는 것들을 많이 본 적이 있다.



독일회사에서 영어로 일한다는 것

가끔 나의 독일 생활이 반쪽짜리라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석사학위도 취득했고 전통적인 독일 기업에서 일하고 있지만 업무는 다 영어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오랜 시간 독일에서 살았으면서 독일어를 못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지만 업무를 무리 없이 할 정도는 아니기 때문에 영어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한다. 이곳은 학교도 아니고 사적으로 만난 친구들이 있는 공간이 아니기 때문에 나의 신변잡담을 늘어놓기보다는 업무이야기를 해야 한다. 더듬더듬하는 나의 중학생 수준도 안될 것 같은 독일어로 이 회사에서 일하기란 불가능하다. 물론 내 업무를 수행하는 데 있어서 독일어가 필수는 아니지만 그로 인해 얻을 수 있는 기회의 폭이 좁아진다.


종종 나에게 '독일에서 영어로 석사 취득' '독일에서 영어로 일하기'에 관해서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는데 지금은 예전보다 영어로만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지 않고, 있다고 해도 굳이 추천하지는 않는다. 처음 정착과정에서 조금 더 많은 고생을 하더라도 독일어부터 일정 수준에 이르도록 한 다음에 다음 단계를 밟아도 늦지 않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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