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를 보내고
울지 말아야 할 순간이 있다. 어른이 되어가며 그런 순간이 많아지는 것이 아쉽지만, 나는 눈물을 참는 것이 아직도 어렵다. 그래서 그런 순간들을 모른 척하거나, 생각을 차단하는 쪽으로 눈물 흘릴 일을 만들지 않는다. 우는 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이상하게 눈물은 남들에게 드러내는 게 부끄럽다. 나는 감정 조절에 미숙한 인간이라 웃고 화내고, 기분을 자주 드러내는 편이지만 눈물은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다. 심지어 내가 운다는 사실을, 나조차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고, 나 스스로 자존심이 조금 상하는 편이다.
아이는 잘 우는 아이였다. 모든 아이가 그렇듯 짜증이 나도 울고, 배가 고파도 울고, 내가 눈앞에서 사라지기만 해도 우는 아이였다. 아이는 자주 울었고, 나는 그런 아이를 달래거나 혼내거나 했다.
추석 당일 아침, 내 마음은 바빴다. 시댁에서 얼른 차례를 지내고, 밥을 먹고, 짐을 챙겨서, 차가 막히기 전에 시댁에서 나와야만 했다. 부지런히 움직이고, 남편을 채근하고, 아이를 챙기고, 어머님께 인사를 드리고 겨우 차에 올라탔을 때, 나는 뒤를 돌아 아이를 보았다.
아이는 울음을 삼키고 있었다.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차있고, 입술은 삐죽삐죽,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이었으나 애써 참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는 할머니를 무척 좋아한다. 2박 3일 시댁에 머무르는 동안 아이는 무엇이든 할머니와 함께 했다. 사랑한다는 말을, 할머니가 보고 싶었다는 말을 수도 없이 쏟아냈다. 마음껏 표현하고 마음껏 사랑했다. 아이와 시댁에 내려오기 전, 이번에는 할머니와 헤어질 때 울지 말자고, 약속을 했었다. 그 약속 때문인지, 아니면 아이가 조금 자란 건지, 아이는 삐죽이는 입술을 앙 다물고, 애써 내 눈을 피하며 그렁그렁한 눈으로 창밖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눈물이 왈칵 났다.
나 역시 그랬다. 어릴 적, 지방에 살았던 우리 가족은 명절 때만 친척들을 만날 수 있었다. 명절 내내 친하게 지내던 사촌 오빠, 언니, 이모들과 헤어지는 게 아쉬워서 차에 올라타면 나는 늘 눈물을 삼켰다. 한 번쯤은 엄마 앞에서 엉엉 울었던 적도 있지만, 헤어져서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일에는 변함없음을 알고 있었고, 엄마 역시 내 감정을 읽어주지는 않았던 기억 때문에, 헤어지는 게 슬퍼서 나 혼자만 우는 그 순간이 무척 창피했던 기억이 났다.
아마 아이도, 몇 번의 경험을 통해 -주로 내가 준 경험이겠지- 할머니와 헤어질 때 울면 안 된다는 걸 느꼈을 테고, 감정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겠지. 그래서 아마 이번에는 눈물을 애써 참았을 것이다.
나는 "우리 솔이가 많이 컸구나."라고 말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 말을 하지 말 걸 그랬다. 많이 컸다고도, 울지 말라고도, 참으라고도 하지 말고 그 감정을 가만히 안아줄 걸 그랬다.
어느 순간, 아이도 나만큼 자랐을 때, 아이가 혹시나 여덟 살의 솔이를 마주할 순간이 온다면, 아이는 그때의 솔이에게 무얼 말해줄까? 여덟 살 솔이는 어떤 말이 듣고 싶었을까?
나는 어떤 말이 듣고 싶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