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유산했을 당시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마음으로 간직하고 있는 감정을 글로 풀어내고 정리하고 싶었다. 어젯밤 아이를 재우면서 유산했을 당시를 떠올리다가 울어 버렸다. 그래서 아직 쓰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산 이후, 나의 솔을 만나고 나는 지금 내 아이와 함께 정말 행복하지만 그렇다고 그때의 상처가 아무렇지 않은 것은 아니니까.
우리 솔은 밤 9시쯤 잠이 든다. 아기 때는 그렇지 않더니, 4세가 되고부터는 잠드는 과정이 너무 힘들다. 적어도 한 시간은 뒤척여야 잠이 들고, 그 시간 동안 내가 지쳐서 아이에게 화를 내는 일이 잦아졌다. 아이를 재우며 나도 함께 자고 싶지만 내게는 할 일도 많고, 나만의 시간도 필요하니까, 아이에게 쉽게 채근하게 되고 결국엔 화를 내게 된다. 그래서 아이를 재우고 난 후, 나는 급격히 가라앉고 지친다.
어제도 몹시 지친 채로 거실에 누워있었다. 빨래를 개고 티브이를 켠 채로 누워있는데 남편이 곁에 왔다. 남편은 내 감정을 살폈고, 나는 "내가 점점 희미해져 가는 것 같아."라는 말을 내뱉음과 동시에 눈물이 났다. 울지는 않았다. 그저 눈물만 흘렀다.
"나는 그냥 이솔 엄마고, 이동건 아내야. 그게 전부야"
계속 눈물이 났지만 울지는 않았다. 눈물만 흐를 뿐 감정은 더없이 차분했다. 나 역시 내가 저 말을 하면서 눈물이 날 줄 몰랐으니, 말을 뱉은 나나 나를 지켜보는 남편이나 당혹스럽긴 마찬가지였다.
"미정이 하고 싶은 거 해봐. 뭐든 배워도 좋고, 하고 싶은 거 해"
이런 내 모습이 염려된 남편은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라고 했다. 그런데 나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아니, 지금도 없지, 과거형이 아니지. 하고 싶은 것도 없다. 나는, 너무 지쳤으니까. 어떻게 쉬어야 할지도 모르겠고,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아이가 돌이 되기 전까지는 내 삶이 부유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의도치 않은 방향으로 둥둥 떠다니는 느낌이었다. 내 의지는 없고, 아이의 욕구와 사회가 바라는 엄마로만, 나는 그렇게 부유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암초에 걸려 허우적 대고 있는 느낌이다. 누구도 구해줄 수 없고, 혼자 헤엄쳐 빠져나오기엔 용기도 나지 않고, 성공할 수도 없을 것 같아 궁여지책으로 그 암초에 쥐 죽은 듯 매달려 있는.
내 삶이 흘러가고 있다 느꼈을 때는, 어디든 정착하고 싶었으나 이런 식으로 매달려 있다 보니, 그 어떤 의지도, 용기도 나지 않는다.
슬프지만, 나는 이렇게 살다 죽을 것 같다.
남편과 솔이가 내게 큰 행복과 안온을 주긴 하지만, 나는 시들어간 채로. 분명 행복하긴 하나 내 존재를 무시한 채로. 나중에 솔이를 다 키우고 나서, 그때의 나를 스스로 가엾게 여길 수 있을까. 아니면, 왜 스스로를 찾지 못했냐며 책망하게 될까.
스무 살 때 하던 고민을 서른일곱이 되어서도 똑같이 하고 있다니. 인생이 참 너무한다. 그때도 나는 뭐가 되고 싶었었는데, 지금도 나는 그 무엇이 되고 싶어 한다. 도대체 그 무엇은 언제 될 수 있으며, 결국 되기나 할는지 의심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