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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인 Nov 01. 2023

1. 가장 완벽한 타인에게.

"어떻게 찾아오셨어요?"


"배가 아파서요. 그런데 찾아간 병원 전부다 아무 문제없데요."


"그건 참 다행이네요."



내심 신체 어딘가에라도 문제가 있었으면 했다. 문제의 원인을 알게 되면 약을 먹거나 입원을 하거나 수술을 하거나, 힘들고 돈은 좀 들겠지만 해결할 방법은 있다. 그런데 아무 문제가 없다니.. 그 흔한 용종하나 없다니..! 심지어 건강하다니....!!!


극심한 복통은 아니었지만 빨리 걷거나 뛰지 못할 만큼 배가 아팠고 허리를 곧게 피거나 똑바로 누워있는 건 시도조차 못했다. 한번 잠들면 누가 업어가도 모르는 내가 배가 아파 몇 번이고 깨다니, 대단한 병을 얻은 게 아니고서는 이럴 수 없다 생각했다.




그러나 나의 예상은 아주 빗나갔다!

다른 때 같았으면 기뻤을 만한 '당신은 매우 건강합니다'라는 결과를 찾아가는 병원마다 들었고 그때마다 나는 불행한 이야기를 듣지 못해 절망했다. 꼭 불행을 찾아다니는 사람처럼 이 병원 저 병원 기웃거리다 결국 처음 진료를 받은 병원을 다시 찾아갔을 때 의사 선생님께서는 의외의 대답을 해주셨다. 


"보통 이런 경우 정신과를 추천드리거나 신경안정제를 처방해 드려요. 맹장이었으면 벌써 터지고도 남을 시간인데... 그런데 저는 신경안정제는 별로 처방해주고 싶지가 않네요. 젊으니까 한번 참아보면 어때요? 오늘은 다른 약도 처방 안 해줄게요. 참아보다가 너무 아프면 그때 다시와요."


나는 내 평생 병원에 진료를 받으러 갔다가 '신경안정제'나 '정신과'와 같은 <무시무시>한 단어들을 듣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런 곳에 다니는 사람은 엄청난 사건사고를 겪어 트라우마가 남은 사람이거나 만성 우울증 환자, 연예인, 아주 바쁘고 잘 나가는 사업가 및 회사원들만 가는 곳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몸에 이상이 없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된 후 나는 저 <무시무시>한 단어들로부터 멀어져 보려 최대한 일상으로 돌아가려 했다. 그러나 비가 세차게 오던 어느 날 자동차 와이퍼 소리가 거슬려 와이퍼를 끈 채로 운전을 하는 날 보며, 결국 내리는 빗소리까지 거슬려 미팅에 참여하지 못하겠다는 연락을 하는 날 보며 '아, 나 혼자는 절대 해결 못하겠구나' 생각했다. 


나는 그날로 집에 돌아가 여전히 배가 아파 누에고치처럼 한 움큼 이불에 몸을 돌돌 만 채로 핸드폰을 뒤적거리며 정신과, 상담실, 심리센터 등 다양한 곳을 찾기 시작했고, "심리"라고는 교양서적으로 밖에 접해보지 않은 내가 나름의 철저한 리서치를 통해 제일 거부감 없어 보이고 신뢰 가는 박사님이 계신 상담센터에 예약을 했다.  



건물 높은 층에 초인종을 눌러 허락된 사람만이 입장이 가능한 이 <무시무시>한 심리상담센터는 아이러니하게 편안한 인테리어와 더불어 방문객들의 완벽한 프라이버시를 보장해 주었고 이를 보며 나는 알 수 없는 안정감과 불안감을 동시에 느꼈다.


상담실에 들어가 귀여운 "산" 모양의 쿠션이 깔린 소파에 앉은 채 나에 대해 아는 거라곤 사전 질문지의 답변이 전부인 사람에게 질문을 받고 대답을 하며 불편한 대화를 이어나갔다. 중간중간 적당히 할까 싶었지만 '숨기며 말할 거면 뭐 하러 왔나. 돈이 아깝다'라는 생각이 들어 이 <무시무시>하고 심각한 순간에 조차 계산적인 내 모습이 어처구니없었다. 


사실 상담을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별 기대가 없었다. 그저 누군가에게 나의 이야기를 하기만 해도 괜찮아지겠지라는 막연함 뿐이었고 주변 지인들도 스트레스로 몇 번 상담을 받아보니 좋다더라 라는 후기가 있어 '괜찮은가 보다' 정도였다. 또 무엇보다 평생 이렇게 배가 아플까 걱정이었고 이렇게 걱정만 하며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나 가벼운 마음이 무색할 정도로 나는 나를 눈곱만큼도 모르는 사람에게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무엇을 했는지 왜 배가 아픈 것 같은지 이야기했고 이 모습은 마치 "오늘 학교에서 친구가 때렸어!!"라며 집에 돌아와 엄마에게 종알 종알 이르는 어린아이 같았다.




선생님께 이르는 내내 울고 싶은 감정이나 서러움보다 더욱 확실한 감정은 지금 이 대화는 "전혀 폭력적이지 않다"라는 안정감이었다. 누군가의 강요 없이 스스로 나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순간이었고 그렇게 이성과 본능을 오가며 한 시간 남짓의 대화를 마쳤다.


상담실에서 나와 건물을 빠져나오며 나는 이전보다 더 복잡해졌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긴 시간 동안 만나보자고 했던 선생님의 제안, 그 정도로 내가 심각한가?라는 자괴감, 그리고 그동안 누구에게도 말하기 힘들었던 나의 감정과 생각을 <완벽한 타인>에게 이야기했다는 사실이 큰 위로를, 동시에 비참함을 가져다주었다. 





                    



                    

작가의 이전글 프롤로그. 상담실의 문을 두드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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