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의 마음이 머문 자리는 어떤가요
요조 에세이 <오늘도, 무사>를 읽고
나는 에세이를 자주 읽지는 않는다. 아마도 읽어야 할 글들이 기하급수적으로 쌓여가는 정보의 홍수시대를 살다보니 한가하게 에세이를 읽을 여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좋은 에세이를 읽을 때 작가의 정서에 가장 많은 공감을 한다. 그가 전하는 살아있는 문장들로 인해 내 삶이 위로 받을 수 있음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에세이 분야의 책을 읽어야한다는 당위성을 크게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나는 어느 순간에 에세이를 찾게 되며 읽게 되는 것일까.
한동안 묵직한 무게감이 드는 책을 읽어 머릿속이 복잡하거나, 사는 게 힘에 부치거나 복잡해져서 책이 더 이상 눈에 들어오지 않을 때, 나는 에세이를 찾는다. 틈이 벌어진 벽에 시멘트를 개어 넣어 갈라진 담벼락을 보수하듯, 갈라져가는 마음을 단단하게 바로잡고 싶을 때, 나는 에세이를 읽는다. 마음이 바삭거릴 정도로 건조해져 말랑한 감성을 되찾고 싶을 때, 나는 에세이가 읽고 싶어진다.
이런 순간에 좋은 에세이 한권을 만나기라도 한다면 나는 어떤 사람을 만난 것보다 더 큰 위로를 받게 된다. 그러나 내가 에세이를 읽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따로 있다. 내가 어느 작가의 에세이를 찾아서 읽는 행위는 그 사람을 몹시 애정 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겠다. 마치 사랑하는 사람의 연애편지를 읽듯, 평범한 이야기들이 비범한 이야기로 둔갑하는 경험을 하는 것과 같은 연애감정. 무한한 사랑의 감정에서 비롯된 호기심의 발로와 같은 심리.그러므로 내가 어떤 이의 에세이를 읽는 다는 것은 그가 내린 정서의 비를 흠뻑 맞을 준비가 되어있다는 의미와도 같다. 그의 글이 설혹 어설프더라도 어떤 글이라도 읽을 준비가 되어있다는 뜻이니까.
내겐 요조가 그런 사람이다. 사실 요조의 글은 폭발할 만큼 뛰어난 것은 아니다. 요조가 말하던 떡볶이가 뭐 어쨌다는 말인가. 그가 책방에서 진상을 만났을 때의 이야기를 내가 굳이 알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 그러나 나는 그의 사소한 모든 이야기들에 반응했다.
『왜 독서가 취미에요? '게을러서'라고 대답했다. "게으른 사람에게 적격이에요. 그냥 자기가 가장 편안한 자세를 취한 다음에 책을 펴고 눈알만 굴리면 됩니다." 간단하게 눈알만 굴리며 영위해온 게으른 사람의 독서라는 취미.(…)사실 여건이 되지 않는데 굳이 고생스럽게 책을 펼쳐야 할 이유는 없었다. 책과 관련된 일을 하는 것도 아니었고 책을 읽지 않는다고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기어이 책을 읽었다. 아니, 사실 읽지 않고 들고만 다닌 날들이 많았을지도 모르겠다. 읽지 않더라도 가방에는 무조건 책이 있어야만 했다. 왜냐하면 그즈음 나에게 삶의 만족도를 좌지우지 할 수 있었던 것은 독서 행위가 맡았기 때문이다.』
눈알만 굴리면 되어 게으른 사람에게 적격이라서 책을 읽는다니…. “풉!” 하며 실소 짓게 하는 그녀의 털털한 감성이 좋아 그녀의 에세이를 계속 읽었다. 생각해보니 나또한 움직임이 적은 환경에서의 가장 손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책읽기라서 독서를 시작했던 이유가 분명히 존재했다. 책을 읽지 않아도 꼭 가방에 책을 넣고 다녀야 마음이 편한 요조. 나또한 그랬다. 어떻게 보면 남들에게 가식처럼 보일 수 있을지 몰라 신경이 쓰이는 행위. 요조가 나와 같은 구석이 있어 반가 왔다. 솔직한 요조의 고백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오늘도, 무사>는 그녀가 책방 <무사>를 열면서 기록한 책방일기이다. 이 책에는 독서가 돕는 그녀의 삶의 이유들과 태도들이 잘 들어 나있다. 책을 읽는 사람은 많지만 독서의 정석을 깨닫고 책의 가르침을 자기 삶에 포개어 사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요조는 책에서 획득한 사유대로 살아가려 노력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녀에게 독서의 의미란 삶의 유의미를 좌지우지하는 표석이었다.
『그 모진 시간을 견디며, 나는 변했다. 스스로 끝이 많이 물러졌다는 것을 느낀다. 예전의 나는 굉장히 뾰족한 사람이었다.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혐오가 많았고, 그것을 굳이 감추려 하지 않았다.』
『이를테면 책방 무사에 남자끼리 뽀뽀하는 그림을 보고 불편해하는 아이가 있을 때, 그건 이상한 게 아니라고 말해주는 것. 책방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여성을 보고 불편해하는 아이가 있을 때, 담배는 건강에 좋지 않다는 것과 그러나 여성이라고 해서 밖에서 담배를 피우면 안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동시에 알려주는 것.』
나의 사유의 스펙트럼 안에 그의 사유가 겹쳐지는 경험이 너무도 소중하게 생각되었다. 나를 온전히 이해해 줄 친구가 없는 세상이 너무도 서글픈 내게 요조와 같은 에세이스트는 친구 이상의 존재인 것이다.(누구에게라도 이런 사람이 없는 건 기정 사실 아닐까? 가족도 친구도 모두 날 외롭게 하는 것은 마찬가지라는 걸 나는 이미 오래전에 알아버렸다. 그래서 사람에 대해 별로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 스스로 마음을 다독이고 평정하려는 마음가짐이 오히려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책을 대하는 그의 감정과 정서가 맘에 들었다. 예술을 허세로 시작했다던 그녀의 고백도, 처녀성을 유리처럼 여기던 사회분위기와 어른들의 꼰대 같은 인식들에 반기를 드는 마음으로 서둘러 대충 처분해 버렸다는 솔직함도 좋았다. 착하고 맑은 이미지 안에 깃든 사회성 짙은 강렬함이 나와 동일시되어 끌렸다. 나는 모두의 무사를 기원하는 그의 정의성, 인간성, 위트가 있는 언어의 온도, 사람다운 마음의 온도가 좋았다. 그녀는 마치 제주의 옥빛 바다에 맞닿은 민트향 하늘을 닮아 있다. 나는 제주에 가면 제일먼저 책방 <무사>에 가야겠다고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