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제 나의 이야기를 쓰겠소’라고 다짐해보지만,

당신의 마음이 머문 자리는 어떤가요

by 헬로해피 최유영

브런치 작가가 되고 가장 먼저 드는 걱정이 ‘나는 무슨 글을 써야 하나.’였다. 그다음이 ‘내 글을 좋아할 사람이 있을까?’ 또는 ‘나는 왜 글을 쓰려하는가?’ ‘나까지 굳이?’ 이와 같은 자존감 낮은 질문들이 자꾸 내 혀끝에서 맴돌았다. 이 몇 가지들의 질문 중 내가 글을 써야 하는 이유는 나의 글쓰기 선생님께서 답을 내려 주셨다. 선생님께서는 우리가 민주주의를 완성하려면 “특별하지 않은 보통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당당하게 말하고 써야 한다.”라고 하셨다. <김경윤의 책 쓰는 책 참조 >


나는 특별하지 않은 보통사람이다. 탈 권위의 수평적 세계관과 가치관을 가지고 산다. 그리고 누구나가 자기 말을 할 수 있는, 자신의 존엄함을 인정받을 수 있는 민주사회 실현을 꿈꾸고 있는 사람이다. 선생님의 말씀대로라면 글을 쓸 이유는 충분히 찾은 샘이다. 하지만 ‘나의 사유의 방식에 사람들이 공감을 해줄까?’라는 걱정은 여전했다. ‘내가 하는 말들이 나만의 편협한 사고와 초라한 상상에 불과하다면?’ 그런 두려움도 여전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나의 글쓰기를 가장 막아서는 것은 ‘나는 진실할 수 있느냐?’였다.


‘나는 내 이야기를 쓸 용기를 가지고 있는가?’


글을 세상에 내보낸다는 것은 나의 일기장에 일기를 쓰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이다. 꼭 논픽션을 말할 필요는 없겠지만 글은 ‘나’를 담는 일이다. 부족한 지식, 철학의 부재, 불안정한 심리 상태까지 결핍된 내가 그대로 드러날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런 불편함을 나는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처음 글쓰기를 시작할 때 최대한 ‘나’를 뺀 글쓰기를 했다. 겉도는 산만한 이야기. 글을 쓰는 기술도 부족했지만 어떤 글을 써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어디서 어떻게 말문을 열어야 할지 자신이 없었다. 학술적인 논문을 쓰는 것도 아닌데 내 글에는 ‘나’가 빠져 있었다. 나를 감춘 체 객관적인 사실과 남의 이야기만 쓰려고 애를 썼다. 궁여지책으로 쓴 가짜 글에는 타인을 향한 이타심을 가장한 값싼 동정과 연민만 더덕더덕 붙어 있었다.


그런 과정에서 또 하나의 고민이 생겼다.


내가 과연 그들을 불쌍히, 가엾이 여길 자격이 있는 것일까? 그들은 그들대로 자신들의 인생을 나보다 더 잘 살고 있을 것인데, 내가 무슨 이유로 그들의 인생에 관여를 하고 말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일까? 어쩌면 나는 타인의 고통을 핑계로 나의 고통을 녹여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나를 감추기 위한 수단으로 타인의 아픔 뒤에 나를 숨기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내가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두려웠다. 남들에게 보여지는 나의 모습이 진짜 나인 것인지 조차 알 수가 없었다. 타인의 고통에 값싼 동정을 보이는 나의 심리가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 나는 글쓰기의 방향을 새로이 정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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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나의 이야기를 쓰겠소.’


마음을 다져 본다.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내가 사람들의 감정을 움직이고 공감을 얻는다는 것은 욕심이다. 내가 읽고서 주로 공감하고 감동을 했던 글의 경우를 보면 글에서 작가의 얼굴을 보았을 때이다. 그들 자신이 스며든 글을 읽을 때 나는 공감을 했고 감동했다. 나는 작품 속에 작가 자신이 투영되어 있는 글에 열광했다. 글에 작가의 진실이 없다면 독자는 동요하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내 글에 ‘나’가 등장하는 것을 여전히 두려워하고 있다. 내가 누구인지를 나 자신이 아는 것에 두려움을 느낀다.


나는 지금까지 나 자신을 회피하고 살아왔던 것은 아닐까? 글쓰기는 이제껏 숨겨두었던 나를 찾아가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