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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헬로해피 May 14. 2024

이제 막 아빠가 된 조카에게

◦◦야, 먼저, 사랑스럽고 벌써부터 핸섬하고 야무진 유안이의 백일을 축하한다.

유안이의 모든 날들이 축복된 날들로 가득 찼으면 좋겠어.

너희 가정이 매일매일 행복한 일들로 가득 채워졌으면 좋겠다.

우리 가족이 유안이를 만나는 날, 하필 5월의 비가 아주 많이 왔지.

미리 약속된 일정이라 미룰 수도 없는 만남이었지.

우중에 유안이를 데리고 와야 하는 너희가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단다.

식당 룸에서 너희를 기다리는데 우렁찬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리더구나.

우리는 미리 유안이가 울보라는 정보를 접수하고 있는 상태였지.

울음소리도 겁이날 정도로 쩌렁쩌렁 우렁차 다고.

‘아빠가 어릴 쩍 엄청 울었는데 아빠를 닮았네~’ 라며 농담을 주고받고 있었지.

유안이 모습이 아직 보이진 않았지만 저 울음소리가 유안이란 걸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단다.

유안이 비를 난생처음 만나서 울었다고 했니?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본 비가 마치 폭우처럼 내려서 무서울 만도 했을 거야.

너는 유안이가 너무 겁쟁이라고 걱정을 했지.

그게 바로 부모의 마음일거야.

앞으로 세상을 살면서 더 무섭고 처음 보는 낯선 것들이 많을 텐데 걱정도 되었겠지.

그러나 나는 그런 유안이 얼마나 귀엽던지?


나는 유안이 50일이 되었을 때 처음 만났지.

조막만 한 손과 발이 너무 사랑스러웠고 존재만으로도 정말 감격스럽더구나.

신생아를 25년 만에 처음 안아보는 거라서 어떻게 안아야 할지도 잘 모르겠고.

너의 부모, 그러니까 나의 언니와 형부는 유안의 존재만으로 얼마나 행복해하던지.

나는 네가 부모에게 큰 효도를 했다고 생각했지.(애국은 물론이고.)

효도가 별거라니? 이렇게 네 삶을 잘 살아주는 것이 효도지.

아차… 꼭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것이 효도라는 유교적 사상은 절대 아니란다.

오해는 하지 말아 줘.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너희들의 삶을 잘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예쁘단 뜻이야.

거기에 네 가정과 유안의 존재는 몇만 배의 보너스 같은 것이지.


사실 나는 ◦◦가 조금 걱정되는 부분이 있었어.

너는 자기 주관이 분명하고 사회생활을 아주 잘하는 능력 있고 똑똑한 어른으로 성장했지.

그러나 나는 우리 사회의 페미니즘 성향과는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단다.

한 번은 이 문제에 대해 이모와 약간의 의견충돌이 있기도 했었지.

◦◦가 전 직장에 다닐 때였지.

상사가 여성이고 둘째를 낳고 육아 휴직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그래서 네가 매일 야근을 해가며 그 상사의 몫까지 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고.

그 업무 스트레스 때문에 원형탈모가 생겼다고 고통을 호소했지.

그러면서 차라리 이럴 거면 퇴사를 하지 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냐고 토로했었지.

그런 너에게 나는 말했어.

“◦◦아, 너의 고통도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너무 안쓰럽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말하면 안 돼.

이 문제는 기업 대표가 해결해야 할 문제고 사회가 해결해야 할 문제야.

그러니 문제 해결을 원한다면 너의 대표에게 문제 제기를 해야 하는 게 맞는 거야.

그 육아휴가 중인 여상사가 아니라.

육아 휴직 동안 대체 근무 인력을 보장해 달라고.

네 여상사는 당연한 권리를 누리고 있는 거란다.

만약 네가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다면 곧 네 아내의 일이 될 수 있는 일이야. ”

화가 잔뜩 난 네가 내게 다시 말을 되돌려 줬지.

“그래서 저는 일반 회사에 다니는 아내를 얻지 않을 거예요.”


그 당시에는 나는 네가 벌써 꼰대가 된 것 같아 답답하게만 생각되었지.

나는 볼품없고 쓸모없는 내가 가진 편견의 잣대로 너를 평가했었던 거야.

지금 이렇게 네가 너의 아내와 유안이에게 잘하고 사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그때의 내가 얼마나 교만했는지 반성이 되는구나.

옳은 말이라고 충고질을 해댔던 내가 부끄럽기만 하단다.

너는 다만 너의 힘든 상황을 가족들에게 위로받고 싶었을 뿐이었을 것이다.

너의 대표에게 문제 제기를 해보았자 해결될 실마리가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사회 분위기대로라면 쉽게 말할 수도 없었던 것이지.

결국 네가 참아 내어 그 긴 시간을 버티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을 거야.

그래서 너는 원형탈모와 피로감으로 어떤 말도 들려오지 않을 만큼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던 거야.

그런 상황에서, 그 자리에서 굳이 내가 너에게 충고를 해야 했는지 후회가 되는구나.

그저 너에게 위로의 말 한마디가 더 나았을 것인데.

너도 이미 다 알고 있었을 것이므로.

왜냐하면 내가 네게 충고를 할 정도로 넌 꽉 막힌 남자가 아니거든.

지금 네 아내를 존중하며 사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는 일이지.

너 그리고 지금의 젊은 세대들은 우리가 충고를 하지 않아도 이미 행동파라고  생각하거든.

모든 면에서 우리 세대보다 현명하고 지혜롭지.

나의 어떤 지인이 말하더라.

우리 세대가 페니미즘을 극단적으로 강조하지 않아도 젊은 세대들은 이미 알아서 행동으로 삶으로 실천하고 있다고.

변화하고 있다고. 그들은 이미 달라지고 있다고.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날 식사 시간에 나는 너를 자꾸 불편하게 만든 건 사실이다.

아이를 안고 식사를 전혀 하지 못하는 네 아내가 안쓰러워서 음식을 먹여 주라는 등

자꾸 잔소리를 했으니 말이다.

네 아내는 네가 너무도 잘해준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지.

나도 우리 조카가 훌륭한 남편이자 아빠라고 지인에게 칭찬을 하고 다니지.

그러나 나는 자꾸 네 아내가 힘들지 않을까 불편한 건 없을까 살피게 되더구나.

이런 내 모습이 오히려 네 아내에게 더 불편감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나는 자꾸 너에게 내 남편, 그러니까 네 이모두에게 느꼈던 불편했던 것들을 너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단 마음이 컸던 것 같아.

물론 역지사지로 보면 나도 이모부를 만족시키는 그런 착하고 순종적인 아내는 결코 아니란다.

네가 아주 잘 알다시피 말이다.

아니 여자라는 이유로 순종형 인간으로 살아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난 페미니즘 운동은 내 가정에서 먼저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

안에서 해결되지 않는 것을 밖에서 다른 누군가가 해결해 주길 바라는 마음은 너무 모순된 현상 아닐까?

그런데 나는 종종 아내로서 가사를 하면서 남편에게 불편했던 일들을 친구들에게 말할 때가 있는데

돌아오는 말들에 실망스러운 경험을 많이 했단다.

그 말인즉슨 ‘남자들은 다 그래요. 뭘 바라요.’라고

내가 잘못된 것처럼 말할 때,

그냥 여자인 내가 맞춰 살아가는 것이 정답인 것처럼 말할 때,

나는 너무 답답했단다.

그런데 생각보다 대부분의 여성들이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실망스러운 것은 그런 그들은 나보다 더 강한 페미니즘 성향을 가지고 있는 여성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위축된 마음을 갖고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멈추고 싶지는 않단다.

왜냐하면 아직도 이 세상의 가정들은 여성이 아주 많이 불합리한 조건에서 살고 있으니 말이다.

어쩌면 현대 여성이 우리 부모 시대의 여성들보다 더 힘든 상황일지도 모르겠다.

여성의 경제활동이 보편화된 사회인데 가사노동은 여전히 여성에게 머물러 있으니 말이다.

나는 내가 여성으로서 느낀 이 불합리한 것들이 너희 세대에선 이어지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할 뿐이다.

그래서 나는 너를 비롯 세상의 모든 조카들에게, 또는 내 아들들에게 결코 보내지 못할 이 편지를 쓰기로 했단다.

직접 보낼 수 없는 것은 잔소리 같은 이글들이 결코 듣기 좋을 리 없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 세상의 기혼 여성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기로 조심스럽게 결심한다.

이런 나의 마음 이해 해줄 수 있지?


그리고 ◦◦야, 앞으로 오늘처럼 시댁식구들을 만날 땐 아이는 네가 안고 있었으면 좋겠다.

아내에게 먼저 식사를 하라고 권한다음 그 후에 네가 식사를 할 수 있다면 너무 좋을 것 같구나.

아마도 이 부분은 네가 캐치하지 못하고 있었을 거라 생각해.

나도 그날의 식사시간이 지난 다음 하게 된 생각이거든.

아마도 너도 몰라서 그랬을 거야.

우리는 대부분 몰라서 실수하고 못하는 것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이런 잔소리를 하는 내가 너무 미안하고 부끄럽구나.

나도 잘 살지 못했으면서 이럴 자격은 있는 것인지.

경험을 통해 너도 알아가야 할 것들 일지 모르는데 말이다.

그래도 ◦◦야, 이 조바심 나는 내 맘 너는 이해해 줄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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