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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글 Jul 30. 2019

겨울 카지노 여행 - 2

PM 5:05

그때 뒷자리에서 항의하는 소리가 들렸다. 딜러가 당첨 번호를 누락했다며 항의하는 소리였다. 매니저급 되는 사람이 와서 상황을 파악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말씀이 맞으시다면
이 구역 CCTV를 확인하겠습니다.


그때서야 나는 카지노 천정을 올려다보았는데, 곤충의 눈을 확대한 것처럼 수천 개의 렌즈가 우리를 보고 있었다. 현기증이 나는 풍경이었다.


PM 5:32

이대로 나가기에는 아쉬워서 덜 치열해 보이는 슬롯머신을 해보기로 했다. 마침 자리가 있어 앉으려 하니 주변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살기 어린 눈빛으로 쳐다봤다. 알고 보니 슬롯머신 같은 기계는 한 대당 주기적으로 당첨되는 확률이 정해져 있어서 사람들이 아침부터 와서 자리를 맡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정말로 비어 보이는 자리가 있어서 “언니 이거 비어있는 거 아니에요?”하고 나도 모르게 기계의 버튼을 눌러버렸다. 그 순간 기계에 들어가 있는 판돈의 숫자가 바뀌었다...!!! 그리고 저 멀리서 이 자리를 향해 한 아저씨가 오고 있었다. 비어있는 자리는 그 한자리 뿐이었기에 순간 너무 무서워 언니와 빠른 걸음으로 카지노를 빠져나왔다. 카지노 형광등 불빛은 여전히 너무 밝았고 수천 명이 토해내는 이산화탄소 농도는 짙었다. 돈에 취한 건지 약에 취할 건지 모를듯한 눈빛들은 어떻고...



PM 6:10

카지노에서 나와 잠시 숨을 고르며 걸었더니 허기가 몰려왔다. 저녁을 먹기로 하고 카지노 옆 식당 메뉴를 살폈는데 음식 가격이 사악했다. 짜장면이 39,000원…?? 그런데도 식당은 앉을자리가 없었다. 다른 식당 음식값도 바깥세상의 3배는 되어 보였다. 시내를 나가기엔 늦은 시간이라 그냥 먹기로 하고 대기하는 곳에서 기다렸다. 그때 옆에 아줌마 두 분 이야기가 들렸다.


270만 원 날린 건 너무했다. 그렇지?
응 심하긴 심했다.
100만 원 날렸을 때 그만했어야 해.


270만 원이라... 보통 직장인들이 열심히 한 달을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이다. 도박을 하면 숫자 개념이 바뀐다더니 저 사람들은 짜장면이 비싸게 안 느껴지는구나 싶었다. 여기서는 짜장면을 5만 원을 받아도 불티나게 팔릴듯싶었다. 밥 먹으면서도 숫자를 부르는 소리가 자주 들렸는데 왠지 다 돈 얘기인 것 같았다. J언니와 피곤에 지쳐 방으로 향했다.



PM 7:27

방으로 향하던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아주머니는 통화 중이었다. 


언니 도박방지센터가 7층으로 옮겼어?
예전엔 4층이었던 것 같은데.
어, 나 오늘 들려야 내일도 들어가지.
그래그래 같이 가.


그러고 보니 내국인은 도박중독을 방지하기 위해 카지노 출입이 제한되어 있었다. 한 달에 일정 횟수를 넘겨 방문하게 되면 도박방지센터에서 교육을 받아야 한다. 도박꾼들은 정기적으로 교육을 받으면서 카지노에 출입하고 있었다. 


처음 가 본 카지노에서는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칩을 어디에 둘지 고민할 시간도 주어지지 않았다. 오로지 인생역전을 노리고 달려드는 욕망만 득실댈 뿐이었다. 살기 가득한 눈을 한 도박꾼들을 뒤로하고 올라온 방에서는 불꽃놀이가 터지고 있었다. 돈을 크게 잃지도 않았고, 이렇게 가까이서 불꽃놀이를 볼 수 있다니. 이거야말로 오늘의 역전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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