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글 Oct 27. 2019

인간만 사는 세상이 아니잖아요

출근길 작은 생명의 죽음을 마주했다

지난주 수요일이었던가. 평소보다 일찍 눈이 떠졌는데 몸이 개운했다. 일찍 일어난 김에 새우랑 감자를 굽고 사과도 썰어 넣어 점심에 먹을 샐러드도 만들었다. 그러고도 평소보다 회사 근처에 20~30분 정도 먼저 도착해서 왠지 샛길로 새고 싶어 졌다. 늘 가던 큰길을 놔두고 작은 골목길로 돌아 돌아 여유를 부렸다. 아 여기에 이런 가게가 있었구나 두리번대다가 횡단보도 앞에 섰는데... 아기 고양이가 2차선 도로 위로 뛰어내리더니 발작을 일으키듯 몸을 꼬아대고 있었다. 다행히 차는 오고 있지 않았고  달려가 고양이를 안아 인도 위로 피신시켰다. 맙소사 맙소사...무게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가벼운 아기 고양이는 안아 올림과 동시에 축 쳐져버렸다...



아 어떡하지 어떡하지 아가 정신을 차려봐.



몸은 아직 따뜻한데 눈에 초점이 없고 귀를 대보니 심장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눈 앞이 하얘졌다가 정신을 차리고 가까운 동물병원을 검색했다. 그 찰나에 머릿속으로 병원에 데려가면 살 수 있을까 생각했다. 아 그때의 나 자신이 얼마나 혐오스러운지...


그러던 중에 지나가던 여자분이 다가오시더니 눈을 살피고 몸을 만지셨다.

"제가 길냥이들 밥을 주는데요, 동공이 풀린걸 보니 죽었네요..."

나는 나보다 고양이를 잘 아는 사람이 죽음을 확인해주길 바랬던 건지도 모르겠다...다시 들어봐도 여전히 심장소리는 안 들리고 아까보다 더 축 쳐질 뿐이었다. 눈이라도 감겨주려고 했지만 아무리 쓰다듬어도 눈이 감기질 않았다. 작은 생명의 죽음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게 절망적이었다. 어떻게 할지 이야기 나누다가 다산콜센터가 생각났다. 02-120으로 전화를 걸어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는 상담사 말을 듣자 눈물이 터졌다. 상담사분께 주소를 말하자 민원을 넣어서 처리할 것이고, 처리과정은 문자로 보내주신다고 하셨다. 이전에 알던 고양이도 아니지만 연신 미안하다는 말이 나왔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인간을 대표해서 정말 미안해


가로수 나무 밑에 고양이를 기대어놓고 한참을 쓰다듬어 주다가 회사로 향했다. 불과 몇 분 사이에 벌어진 작은 생명이 죽어가는 모습이 눈앞에 아른아른했다. 처참한 마음과 동시에 다음에 또 이런 상황이 닥치면 더 나은 선택지가 있을까 싶어 고양이 카페에 물어봤다. 차에 넝마가 되도록 치이기 전에 치운 것만 해도 다행이라는 답이 달렸다...다음에 같은 상황이 닥치면 나는 더 나은 대처를 할 수 있을까.



회사에 와서 다시 정신을 차리고보니 의문이 생겼다. 교통사고를 당한 것도 아니고 전염병이 있었다면 눈과 귀가 엉망이었을 텐데 상태가 너무나 깨끗했다. 단 하나 앞발에 얼마 되지 않은 상처가 있었는데, 무언가 날카로운 걸로 내리쳐서 깊게 파여 뼈가 살짝 드러나 있었다. 고양이 카페에 들락날락하면서 거의 매달 사이코패스가 아니고서야 저지를 수 없는 잔인한 학대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의심이 됐다. 최근에는 밥에 쥐약을 뿌리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아...학대가 아니기를... 그냥 아파서 죽은 거기를... 자연이 거둔 거기를...



대부분의 길냥이들은 수명이 2~3년 정도이다.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길고양이로 살아가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게 된다. 자연적으로 음식을 구하기는 거의 불가능하고, 영역을 확보하지 못하면 살아갈 수 없는데 도시에서 동물이 살 수 있는 공간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사실상 공존이 불가능한 상태이다. 개들은 산과 들을 헤매는 들개가 되고 고양이들은 축축한 하수구, 건물틈, 보일러실과 같은 도시의 어두운 곳에서 숨어살고 있다. 인간이 아파트 공화국을 만들면서 도시에 살던 동물들은 어디로 밀려나고 있는 것인가. 동물관련 정책에 있어서 제일 아쉬운 점은 동물들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인간이 편리한 방식으로만 해결하려는 점이다. 호주에서도 길고양이 개체수가 늘어나자 200만 마리를 대량학살을 하기로 결정했다는 뉴스를 보고... 천혜의 자연이라던 호주가 그날부터 핏빛으로 보였다. 



호주의 길고양이 대량학살에 관한 뉴욕타임즈의 기사



인간만 사는 세상이 아니잖아요...?



고양이뿐 아니라 전 세계가 공장식 사육을 하면서 발생되는 온갖 전염병으로 살처분되는 동물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또 인간의 욕망을 위해 희생되고 있는 것은 어떻고. 어린 송아지 가죽, 통 라쿤털을 두른 구스다운, 부드러운 캐시미어, 자이언트 닭다리, 부드러운 스테이크 등 일상에서 우리가 소비하는 것 이면에는 동물들의 고통이 있다. 오늘날 판매되는 상품들의 설명은 곱씹어보면 얼마나 잔인한지... 캐시미어가 아닌 아크릴이 섞인 싸구려 니트를 입는 것이 환경을 위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물론 인공소재의 생산부터 폐기까지의 과정이 환경에 안 좋은 영향을 미쳐 야생동물들이 피해를 입을 수도 있겠지만 당장의 피는 보지 않는 선택일지도 모르겠다.) 우리 인간만 사는 세상이 아니잖아요. 그렇다고 모두가 비건이 될 수도 없는 노릇이지만, 최소한 내가 라쿤털이 붙은 점퍼를 사면 중국에서는 또 한 마리의 라쿤을 죽여 가죽을 벗긴다는 것을 이제는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구스 점퍼를 위해 거위들은 털을 뜯기며 비명을 지르고 있으며 질 좋은 램스울을 위해 양들은 마취도 없이 엉덩이살이 잘리고 있다. 올해는 또 뭐가 유행해서 어떤 동물이 대량학살될지 걱정되고 앞으로 어떻게 소비해야 자연에 덜 해로울지 계속 고민하게 된다. 


언제나 그렇듯이 자연이 답을 찾아 주기를 바랄 뿐이다.

인간들의 영역에서 밀려 밀려 도로밖으로 튀어나온 마주친 아기 고양아

그곳은 더 따뜻하기를...






매거진의 이전글 머리하고 상처 받은 경험 있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