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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rtyfourtySimplythirsty Mar 21. 2021

중년이 되어 한라산에 처음 가려해.

중년소년한라산등정기


사실 그렇게 등산을 좋아하지도 않았다.

자연은 좋아하지만 등산이나 하이킹의 자연이 아니라 보송보송한 킨포크의 자연을 좋아했다.

다리 아픈건 질색이나 이쁜건 좋잖아.


자연은 힘들게 지켜야해

그리고 내 최근 분노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미세먼지만큼은 정말 혐오스럽잖아. 나뿐만 아니라 내 아이에게 이런 세상을 물려줘야한다는게 괴롭잖아? 그리고 함께 사는 모든 이들을 위해 사는것이 우리 모두를 위하는거잖아. 인간이든, 동물이든, 식물이든, 우리 모두 잘 살아서 모두가 행복하고 초록하고 분홍하는 삶을 살면 되지 않아? 모두 하나씩만, 딱 하나씩만 변화하면 무언가 초록하며 분홍해지지 않을까?


알면서도,

어제는 배가 너무 고파서 오겹살을 구워먹으러 먼 길 마다하지 않고 내 2013년식 디젤 차량을 몰고 찬바람의 제주를 가로질러 갔다. 초록하고 분홍하는 삶보다는 중년의 체력을 구해줄 돼지고기와 중년의 지갑을 구해줄 디젤차량이 먼저인 삶이다. 그래, 다 알겠지만 곤란한게 삶이다.


허겁지겁 번호판을 가렸다.


생각한대로 내 인생은 개척하는줄 알았다.

중년이 시작될때쯤 “어어? 아닌가?".

갑자기 사는게 무서워졌다. 분명 내가 생각한대로, 원하는대로 최선을 다하면 그렇게 올 줄 알았고, 구질구질하지 않게 살려고 노력하면, 최소 찌질해지지 않을 줄 알았다. 나이를 하나 둘씩 먹다가 한대접씩 먹기 시작한 이후부터는 사람들이 다 싫어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멋지게 보이던 사람들도 인수분해를 하고나니 다들 그저 그런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된 다음부터는 어쩔 줄 몰라했다. 나도 멋지게 되긴 글렀겠구나. 인간은 닝겐이라 그냥 그런거란 걸 못받아들이더라.


그 중에서도 제일 못 미더웠던건 나더라.

제일 못났는데, 극강으로 오만방자했으니 당연히 못미덥더라.

남들은 넌 이걸 잘하니까 좋겠다, 넌 이런 학위가 있으니까 부럽더라, 이런 말들을 소곤소곤 전할때마다 빼에엑거리고 싶었다. "모르겠다고! 정말!".


중년이 되니까 사춘기만큼 모르겠더라.

그때와 달라진건 열악해져버린 체력과 그 체력을 조금 상쇄해줄 아주 약간의 돈뿐이더라.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고, 좋다고 하더라. 다들 그러더라. 무엇도 되지 말고 니가 되라고. 그냥 니가 되라고. 그게 제일 어려운 일인데  내가 아닌 니들이 나보고 내가 되라할까?


휴직을 하게되었다. 1달.

뭔가 어른 스러운 일을 하고 싶었다. 이타적인 일을 해낼수 있을 만큼 건강하게 마음이 이쁜 사람이 아니다.


그냥 무언가 멋진 일을 하고 싶었을 뿐이다. 제주에 가면, 웬지 백록담을 보고 나면, 새사람이  지도 모르겠다. 평생 한번도   없는  .

생각했으니 짐을 싸자.
차를 목포로 운전해서 배를 타고 제주로 들어온다. 아무 생각없이 진행한다.

 

평생 등산이라곤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다.

그리고 운동이라곤, 요가를 빙자한 스트레칭정도가 다였다.

게다가 나이는 40이 후울쩍 넘어 50에 가까워버렸다. 살짝 두렵지만 지금 아니면 언제 가능할쏘냐.

제주에 조금 일찍 가서 매일 훈련을 하자. 조금씩 훈련하다보면 한라산에 가까워지지 않겠나?


내가 생각하는 가장 이쁜 등산복 브랜드 케일(CAYL)에서 등산복을 구매하고, 제일 핫한 아웃도어브랜드인 아크테릭스에서 등산배낭도 구매했다. 나이를 먹으니 차려입는게 먼저다. 구질구질해보이긴 싫다. 맞다. 등산화는 호카오네오네에서 직구까지 했다. 남들 다 신는 등산화도 아니고, 또 달라보이고 싶은 등산화를 사고 말았다.


제주로 가면 웬지 따뜻할것 같고, 백록담을 보고나면 웬지 중년이지만 다른 중년이 될지도 모르겠다.


후다닥 모든걸 마친 나는 어느새 서귀포의 작은 숙소에 혼자 정착했다. 우선 1주만이다.

여기에선 바닷가도 즐기고, 올래길과 오름을 올라 등산을 준비할거다.

등산을 하기전 올래길을 걸었다. 빠른시간동안 쉬지 않고 걸었다.


제주의 찬바람을 뚫고 첫날부터 강행군의 훈련을 시작했다. 풍랑주의보라던데, 저 바다의 돌 위에서 낚시하는 사람들은 다 뭐지?


3-4시간을 걸어서 2만보를 넘게 해안도로를 뛰어다니고 왔다. 찬바람에 소스라치게 춥고 당황했지만 이겨내려고 더 빠르게 걸었다. 스스로 더 격하게 오르고 내렸다.


한라산에 오르고 싶다. 오고나니 더 절실하다.

해안으로  오솔길  빠른 걸음으로 뛰었다.

한라산에 오르려면 그 정도는 해야할 것 같다.

왜 절실해지는지 모르지만 더 절실해진다.


얘도 중년인갑다. 얼기설기 엉켰다.


더더욱 한라산을 가야하겠다.

점점 더 왜 가는지 모르겠는데, 가야겠다.


젠장. 추위에 뛰더니 벌써 몸살이 난듯 하다.

이제 고작 시작인데 말이다.


항상 무리한다. 어리석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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