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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방장 Jun 06. 2019

쉼표를 찍자, 여러 번

2018. 8.21.


이번주 주제인 '쉼이란 단어를 받아들곤 참 낯설다고 느꼈다.  
언제 한 번 제대로 쉬었다라고 느껴본 적이 있는가 말이다.
휴가라도 다녀온다 치면 돌아올 다음날이 끔찍하게도 싫은걸.
그래도 우리의 일상은 돌아가야 한다. 노동이 없었다면 쉼의 의미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참으로 잘 쉬었다 라는 말 한 마디 뱉을 수 있는 날은 죽어서 뿐인가 라는 생각도 든다. (쉼의 의미는 무슨, 계속 놀고 싶어)
일단은 작게라도 요즘 나의 쉼을 이야기 해보려 한다.

#1. 금요일 저녁 <나 혼자 산다>를 보고 새벽이 다되서야 잠든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못봤던 예능을 또 하나 틀어 본다. 그리고는 밍기적거리며 일어나 커피를 내리고, 냉동고에 얼려놨던 빵을 꺼내고, 어떨때는 샐러드도 꺼내놓고, 또 여력이 있을 땐 프렌치 토스트를 굽던지, 특별식을 만들던지. 그렇게 주말을 위한 나의 식탁을 만든다.  그리고는 주방 창문 저 너머로 보이는 산의 능선과 높게 솟은 나무들을 보며 멍을 때리는 것이다. 시력 검사할 때 저 멀리 뜬 노란색 열기구를 보는 것처럼. 그러고 나서는 다시 침대에 누워서 또 밀린 TV를 본다. 
언덕집에 이사오고 나서 생긴 토요일 아침의 루틴이다.
주말을 위한 예열의 단계랄까, 이렇게 지난 5일의 기억을 조금씩 잊는다.
일요일
에도 평일과 같이 아침 일찍 일어 나기 때문에 일주일 중 온전히 늦잠을 잘 수 있는 날은 토요일밖에 없어서 더욱 끔찍히 아끼는 요일이기도 하다. 

 #2. 평일에 하는 쉼이란 TV와 유투브를 보는 것 뿐이다.
요가학원 수강이 만료되고 본격 여름을 맞기 전까지는 요가가 평일의 쉼이였지만, 지구 폭발 직전의 여름을 잘 나기 위해 육체의 돌아봄은 잠시 내려놓았다고(하자).
이번 여름은 정말 아무 재미 없이, 느낌도 없이 온갖 영상들을 봤던 것 같다.
샤워하고 밥 먹고 침대에 누워 에어컨 바람을 쐬면서 주구장창 티비를 보는 것이 내가 회사에서 퇴근을 기다리며 상상하는 쉼이다.
그렇게 나는 회사의 일로부터, 끈적한 여름으로부터, 그리고 사람들로부터 도망쳐 나의 뇌의 회로를 닫고, 일방적으로 전달해주는 정보들을 받았다. 사실 이건 현실도피이지 진정한 쉼은 아니였던 것 같다. 쉰다고 하지만 정작 나의 눈과 뇌와 귀는 쉬지 못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선택했던 이번 여름의 쉼이였다. 

#3. 가끔 아이가 있는 친구의 가족이 우리집에 놀러오거나, 내가 그 집에 놀러 갔을 때 그건 참된 쉼이였다고 느꼈던 것 같다. 최근 몇 번의 경험들은 그랬다.
가족없이 혼자 사는 나에게 결핍된 관계들을 경험하는데서 쉼이 충족됐던 것이다.
하릴 없이 지나가는 시간들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함께 있음으로 내가 인간으로서 갖춰야할 부분들이 채워지는 느낌이였다.
이렇게 밖이 아니라 집에서 이뤄진 이런 만남들은 꽉 채워진 쉼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4. 부득부득 시간과 힘을 짜내 새로운 장소와 경험을 얻는 것은 정신의 쉼이다. 매일 똑같은 시선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들을 경험하면서 숨 쉴 수 있는 작은 구멍들을 늘려 간다.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에 균열을 내는 것 만으로 만족할만한 쉼이다.

#5. 영적인 쉼의 영역도 있다.
예배를 드리며 나라는 존재가 이 세상에 살아가는 이유를 상기시키고, 수 많은 저울질 속에 어떤 추를 더 달아야할지를 가늠하며 내 인생의 방향들을 정비해 간다.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일들 속에서 상처받았던 순간들을 위로 받고, 때로는 나의 부족한 것들을 구하며 힘을 얻을 때 전쟁통 속에 다친 곳들이 치유되기도 한다. 
그런데 솔직히 이야기하면, 요즘은 예배를 제대로 드리지 않은지가 꽤 되어서 그 때 누리던 진정한 쉼의 느낌이 그리울 뿐이다. (교회를 다닌다고 해서 예배를 잘 드리는 것은 아니다. 말로만 듣던 썬데이크리스챤이 여기 있네.)

여러분의 쉼의 모습은 어떤지,
그것들이 지금의 삶에서 어느 정도의 윤활유가 되는지 궁금한 밤이다.
쉰다는 것의 의미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봤더니 피로를 풀거나, 잠을 자는 것 뿐만 아니라 어느 곳으로 갈 때 잠시 머무르거나, 일이나 활동을 잠시 그치거나 멈추는 행동이라고 한다.
결국 쉰다는 것은 계속 되는 연속성 안에서의 의미를 갖는 것이다.
지친 모습들을 본 지도 꽤 오래 되었고, 꾸역꾸역 살아가고 있음이 느껴질 때마다 오지라퍼처럼 속상한 마음이 든다.
20대에 잘 쉬지 못했던 나는 쉼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난 뒤엔 기를 쓰고 쉼의 구역들을 확보해가고 있다. 
그래도 여전히 인생을 잘 돌리기 위한 쉼이 뭘까 계속해서 찾아가고 있지만.

각자의 인생사에서 계속되는 문장을 쓰기 위해 꼭 필요한 쉼표를 찍어나가길 바랄 뿐이다.
그것에 뭔지 잘 모르겠다면 다른이의 쉼표들을 모방해 나가면서라도. 꼭, 여러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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