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구원처, 오이드 비센
7년 만이었다. 인생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옥토버페스트를 다시 와보다니. 나의 첫 옥토버페스트는 환희로 시작해 고통으로 끝났었다. 주량을 망각한 과음으로 독일 국민에게 못 볼 꼴을 보였던 기억은 여전히 이불 킥을 차게 한다. 40대 초반, 아직 열정이 남아있을 나이였기에 가능했던 일들이었다.
두 번째 옥토버페스트는 달라야 했다. 2024년 9월 22일, 옥토버페스트가 열리는 테레지엔비제를 향하며 두 가지 미션을 세웠다. 첫째, 절대 주량을 넘기지 말 것. 이제 나이도 있으니 맥주보다 분위기를 즐기자. 대한민국 국격을 훼손하는 일은 절대 삼갈 것.
둘째, 여섯 개 빅 텐트를 모두 방문하자. 2017년에는 파울라너와 아우구스티너 빅 텐트에서 만취가 된 덕분에 다른 텐트를 가보지 못했었다. 돌아보니 맥주를 업으로 하는 사람에게 가장 아쉬웠던 순간이었다. 이번에는 반드시 모든 빅 텐트를 가보리라.
2024 옥토버페스트가 열리는 첫 번째 날, 뮌헨 시내는 여성 전통 복장 디른들(Dirndl)과 남성 전통 의상 레더호젠(Lederhosen)을 입은 현지인들과 관광객으로 바글거렸다. 아침부터 호프브로이 하우스를 비롯한 비어홀과 비어 가르텐은 1리터 마스 잔에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로 북새통이었다. 우리도 빠질 수 없지. 오늘을 그리며 몇 년 동안 욕망을 참으며 통장을 채우지 않았던가.
7년 전 옥토버페스트도 행사 첫째 날에 방문했다. 오늘보다 선선했고 사람도 그다지 많지 않았었다. 이 기억이 문제였다. 조금 느긋하게 가도 괜찮겠지라고 여유를 부린 게 실수였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옥토버페스트는 예전과 달라져 있었다.
지하철 우반(U-bahn)을 타고 테레지엔비제 역에 내리자 약간의 긴장감과 아드레날린이 느껴졌다. 입구는 인산인해였지만 가벼운 가방 검사만 했을 뿐 들어가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광장 초입으로 들어서자 거대한 텐트와 화려한 놀이기구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익숙한 풍경이었다. 문제는 그다음.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그 넓디넓은 공간을 빈틈없이 채우고 있는 게 아닌가.
첫 번째 미션 ‘과음하지 말 것‘을 생각할 새도 없이, 두 번째 미션 ’여섯 개 빅 텐트를 방문할 것‘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딱 봐도 대부분 텐트들이 이미 만석일 듯했다. 나는 황급히 동행한 사람들에게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알렸다. 우선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뢰벤브로이 텐트로 가서 상황을 파악해 보기로 했다.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어깨와 어깨가 부딪혔다.
그러면 그렇지. 뢰벤브로이 텐트는 이미 문을 걸어 잠그고 있었다. 입구에는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로 아우성이었다. 그곳엔 어떤 질서도 없었다. 한국이었다면 대기 줄을 만들거나 대기표를 나눠줬을 텐데, 돌아가라는 경호원들의 손짓만 허공을 가르고 있었다.
작전 변경, 큰 텐트는 포기하고 작은 텐트로 간다. 옥토버페스트에는 기본적으로 뮌헨에 양조장을 두고 있는 6개 브랜드, 파울라너, 슈파텐, 학커-프쇼, 아우구스티너, 뢰벤브로이, 호프브로이만 참여할 수 있다. 각 브랜드들은 빅 텐트뿐만 아니라 개성을 살린 소규모 텐트도 운영하고 있었다. 과연 작은 텐트는 승산이 있을까?
혹시나 하는 생각이 역시나로 바뀌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작은 텐트뿐만 아니라 근방에 있는 비어 가르텐도 만석이었다. 순간 식은땀이 흘렀다. 이러다 아무 곳도 못 들어가 게 아닐까? 내일 비행기를 타야 하는 우리와 달리 또 방문할 수 있는 현지인들이 야속하게 느껴졌다. 물론 텐트에 못 들어가 당황하고 있는 건, 이들도 마찬가지였지만.
오후 4시, 하필 날씨는 구름 한 점 없이 햇볕만 뜨겁게 내리쬐고 있었다. 앉을 벤치나 그늘도 없었다. 끊임없이 서로를 피하며 몸과 몸이 부딪히는 가운데 우리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끝으로 가자. 테레지엔비제 가장 끝으로 가서 다시 도전해 보자.
광장 끝을 보니 익숙한 브랜드가 눈에 들어왔다. 2017년 나에게 좋은 기억을 선물한 파울라너였다. 물론 가장 인기 있는 파울라너 텐트가 열려있을 리 만무했지만, 마음을 굳게 먹고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 새옹지마, 제행무상, 나쁜 일이 생기면 좋은 일도 온다. 삶을 살다 보면 속담이나 사자성어가 허언이 아님을 깨닫는 경우가 있다. 2024년 옥토버페스트, 숨 쉬기도 힘들었던 그곳에 작은 희망이 솟아났다.
파울라너 텐트를 포기하고 돌아서는데 단출한 장식을 한 파란색 입구가 눈에 띄었다. 안에는 회전목마 같은 클래식한 놀이기구와 고풍스러운 비어 가르텐이 있었고 옆에는 나무로 꾸민 작은 맥주 텐트가 보였다. 나는 잠시 호흡을 고르고 상황을 관찰했다. 경호원이 있었지만 무엇인가 확인만 받으면 입장 자체가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팔찌였다. 입장하기 위해서는 4유로를 내고 팔찌를 구입해야 했다. 순간 이 기회가 마지막이라는 간절함이 몰려왔다. 어떤 텐트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일단 저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욕망이 모든 이성을 제압했다.
24유로, 6명의 입장료는 은색 팔찌로 돌아왔다. 일회용 팔찌를 높이 들고 당당히 입구를 통과하는 심정을 개선문을 지나는 나폴레옹에 비한다면 선을 넘는 것일까? 허언증이라고 해도 상관없다. 실제 그랬으니까.
안쪽은 혼돈이 가득했던 담장 밖에 비해 조용했다. 그제야 안도의 한숨이 터졌다. 아담한 크기의 텐트 입구에는 ‘Oide Wisen‘(오이드 비센)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다. 독일어를 잘 몰랐지만 어떤 의미인지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 Oide는 ’오래된’ 이란 뜻이었다. Old, Oude, Oud, 맥주를 조금 아는 사람이라면 이런 단어가 모두 오래됨 또는 전통을 의미한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Oide는 바이에른 방언으로 ’오래된’을, Wisen은 뮌헨 토박이들이 테레지엔비제를 부르는 말이다. Oide Wisen은 전통적인 맥주 축제를 재현한 장소였다. 옥토버페스트가 과도한 상업주의로 흐르는 것을 막기 위한 고육책 중 하나였다.
텐트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내부는 뮌헨의 고풍스럽고 전통적인 요소들로 가득했다. 벽과 기둥은 모두 나무로 되어 있었고 볼 전구가 천장의 장식을 따라 늘어져 있었다. 중앙에 설치된 무대에서는 사람들이 독일 민속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다. 테이블도 작고 아담했다. 빅 텐트에서는 사람들이 테이블 위로 올라가 춤을 추거나 맥주를 마시곤 하는데, 여기서는 그런 모습을 기대하기 어려워 보였다.
맥주는 아우구스티너였다. 잔도 흥미로웠다. 옥토버페스트에는 보통 마스(mass)라고 불리는 1리터 용량의 투명 잔이 사용되는데 이곳에서는 세라믹 재질의 슈타인글라스(stein glass)에 맥주가 담겨 나왔다. 이 잔은 독일 맥주의 정체성을 상징한다. 지금도 켈러비어 같은 전통 맥주는 슈타인글라스에 서빙하고 있다.
옥토버페스트 맥주는 메르첸(Märzen)에 뿌리가 있다. 메르첸은 앰버 색에 5% 중반의 알코올을 가진 라거 맥주다. 옅은 캐러멜 향과 낮은 쓴맛 덕에 꿀꺽꿀꺽 마실 수 있다. 이 맥주가 옥토버페스트에 처음 등장한 시기는 1872년이다. 그전까지 어두운 라거, 둔켈이 축제 맥주로 팔렸다.
둔켈 보다 음용성이 좋고 알코올 또한 높았던 메르첸은 순식간에 축제의 주인공으로 떠올랐다. 현재 옥토버페스트 맥주는 메르첸에서 살짝 튜닝됐다. 색은 다소 밝아지고 알코올은 0.5% 정도 올라갔다. 메르첸 보다 더 마시기 편하고 더 빨리 취기를 돋울 수 있게 고안된 것이다. 축제 기간 동안 높은 매출을 올려야 했던 맥주 회사들이 고심한 결과다.
가격은 1리터에 16유로 정도. 7년 전에 비해 3유로나 올랐지만 테이블에 앉아서 맥주만 마실 수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 수 있었다. 자리를 못 잡을까 걱정했지만 운 좋게도 한 무리의 사람들이 우리 앞에서 테이블을 비워줬다.
맥주는 당연히 옥토버페스트 맥주, 안주는 커다란 프레츨을 주문했다. 이미 경험했던 아우구스티너 옥토버페스트 맥주였지만 전통적인 분위기 속에서 즐기니 또 새로웠다. 게다가 슈타인글라스에 마시는 옥토버페스트 맥주라니. 당케 쉔.
저녁이 되면서 축제는 하이라이트로 향했다. 전통 의상을 입은 합창단이 텐트 끝 무대에 올라 브라스 연주에 맞춰 멋진 무대를 장식했다. 이어지는 채찍 쇼도 흥미로웠다. 박자에 맞춰 번갈아 짝짝 소리를 내는 이 전통 쇼는 생경했지만 TV에서 본 듯한 익숙함도 들었다. 빅 텐트에 들어가지 못했던 불운이 이런 반전을 선사하다니. 인생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시계를 보니 8시에 가까웠다. 잠깐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4시간이나 앉아 있었다. 눈앞에 놓인 맥주잔을 보니 2리터를 마셨다. 절제했으니 망정이지, 한두 잔 더 마실 뻔했다. 7년 전에는 옥토버페스트 맥주를 꿀물에 비유했었는데, 이번에는 딱히 표현할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아마 홀로 맥주에 집중했던 예전과 달리 좋아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축제 자체를 즐겼기 때문이리라.
밖은 어두웠다. 여전히 사람들로 가득했지만 열기는 살짝 가라앉았다. 여전히 화려한 불빛을 반짝이는 텐트 사이를 걷는 도중, 독일에서 30년 동안 거주한 오랜 지인이 한 마디 건넸다. 지금까지 독일에서 살면서 이렇게 많은 독일어를 들어본 적이 없다고.
코로나의 상흔이 여전히 남아있었던 것일까. 옥토버페스트는 단절의 후유증을 극복하기 위한 거대한 해우소였다. 테레지엔비제는 결속으로 단절을 잊고자 하는 처절한 몸부림으로 가득 차 있었다. 부대끼고 밀치고 엉키는 게 마냥 나쁘지만은 않은, 오히려 사람이 모인 축제는 응당 그래야 한다는 공감대가 퍼져있는 듯했다.
한국 맥주 역사도 곧 100년이다. 한국 문화가 전 세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지금, 한국 맥주가 가진 문화적 힘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산업으로 연결시킬지 고민할 때가 됐다. 옥토버페스트 기간 동안 판매된 맥주 매출액이 1조 원에 달한다고 한다. 아마 뮌헨 경제에 미치는 파급력까지 따지면 수 조원에 이를 것이다. 무형의 문화적 가치를 계산하면 더 커질 수 있다.
누군가는 그깟 맥주라고 여기는 술 속에 의외의 큰 기회가 숨어있다. 옥토버페스트가 이미 그 답을 보여주고 있다. 프로스트, 아니, 건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