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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둥바둥 김대리 Nov 14. 2024

[부동산1편]차곡차곡 월급모아 11억 서울집

[#2]그대의 퇴사 고민은 안녕하신가요?



(아버지) : "아들아 ! 자 맛있는거!"


(아들) : "갑자기 어디서 돈이 나서 이런걸 사주시는 거에요?"


(어머니) : "아파트 피주고 팔아서 꽁돈 500만원이 생겼지!"


(아들) : "피가 뭐에요?"



학시절 부동산을 이렇게 간접적으로 접했다. 부모님께서 부동산으로 돈을 벌었다는데, '피를 붙여서' 팔았고 그것을 통해 앉은자리에서 500만원가량을 벌었다는 것이다. 지금 와서야 그게 '프리미엄' 즉, 웃돈을 주고 다른 사람에게 팔았다는 뜻임을 알게 되었지만, 부동산을 사고 팔면서 돈을 벌수 있다는 개념자체도 몰랐던 때라 관심을 두지 않았다.




부자를 향한 당찬 첫걸음

집은 빚으로 사는거야


나의 첫번째 집은 평택에서 시작이 되었다. 때는 2016년으로 나의 나이 30대 초반이었다. 부동산 중개수수료와 여러 세금을 포함하여 약 3억을 주고 구매한 나의 첫집이었다. 대출없이 현금으로만 주고 샀다는 사실만으로도 당시 나에게 큰 자랑거리였고, 남들 앞에서 오만을 떨수있는 좋은 술안주 거리였다. 적어도 알고 지내는 또래중에 가장 잘 나가고 가장 위대하다고 생각한 탓에 '건방짐' 이라는 옷을 24시간 입고 다녔다.



전세나 월세가 아닌 부동산이라는 것을 사야겠다고 생각이 든것은 부동산투자를 통해 큰돈을 벌어야 겠다는 생각 때문만은 아니었다. 취직하고 집을 떠난 이후부터는 인생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고, 빨리 자리를 잡아야 된다는 강박증 때문에 지나칠 정도로 저축에 집착했다. 어찌보면 전세로 계속 이사를 다니다가 돈이 쌓이다 보니 '이제는 내집을 사자' 라고 생각이 들었고, 이를 통해 집값이 오르면 더 좋으니 기왕이면 오를만한 지역과 아파트를 사자는 생각이었다.



대학시절 부모님이 '피(프리미엄)'를 받고 집을 팔았듯, 평택에 아파트를 매매할 당시 입주전 상태였고, 약 1,000만원 가량 '피'를 주고 입주권을 샀다. 인생처음으로 몇억되는 단위를 거래하는건 살떨리는 경험이었고,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서도 한참을 후회와 자책을 일삼았다. 그럴수 밖에 없는게 사고나니 내가 거래한 금액이 최고가 였고, 한참동안이나 그 기록은 깨지지 않고 그 금액보다 낮은 금액으로 거래가 되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내가 막차를 탄것 같다...



평택은 삼성전자라는 호재가 있엇고, 그것을 위안삼아 '언젠간 오르겠지', '내가 어짜피 살집인데 집값이 오르고 내리고가 무슨상관이야' 라고 다독였다. 정신승리 말고는 도저히 답이 보이지 않은 상황이었고, 이미 주변에 질러놓은 '자랑질'을 주워담을수도 없었다. 아마 업계용어로 내가 막차를 탄것 같았고, 실제로 막차였다. 그 이후부터는 1,000만원단위로 가격이 떨어졌고 정신승리만으로는 멘탈을 부여잡기 힘든 시점까지 왔다.



3억이라는 현금은 질적으로 다른 금액이었다. 버스비를 아껴가며, 놀고 싶은걸 참아가며, 인간관계를 포기해 가며, 불효를 자행하며 모은 돈이었다. 그렇기에 1,000만원 하락이 아니라 100만원 하락도 아주 큰 내상을 입혔고 하락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분석하며 반성하기보다는 우리집보다 더 많이 떨어지고 있는 아파트를 찾아가며 위안을 삼으려 했다. 못난이도 이런 못난이가 없을 정도 오른 아파트라도 우연히 발견하게 되면 저주를 퍼부음과 동시에 배아파하고 자책을 일삼았다.






(나) : "형 이사가요?! 집이 있었어요?"


(동기형) : "응. 돈이 없어서 전세도 끼고, 대출도 받고 집을 샀는데 집값이 올라서."


(나) : "기숙사 살길레 집이 없는줄 알았더니!? 얼마나 올랐길래요?"


(동기형) : "뭐...몇장 벌었어."




퇴사후 자존감은 지하동굴 세계의 하데스를 영접하러 간 시점이었고, 동기형과 안부차 연결된 전화통화의 짧은 대화는 위로와 격려보다 분함과 억움함만 남겼다. 그 이후 한동안 정신줄을 부여잡기 힘들었다. 인생이 허무해지고, 그간 자랑스럽게 여겼던 것들이 한순간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다. 인간이 선한 동물이라고 믿었건만, 시기와 질투를 넘어 동기형이 돈번 방식이 부당하고 사기에 가까운 범죄라고 여겼다.




(나) : "형, 그럼 그 아파트 언제 얼마 주고 샀던 거에요?"


(동기형) : "3억 조금 넘게 주고 샀지..."


(나) : "(궁금증을 못참고) 그래서! 그래서! 얼마 주고 팔았는데?"


(동기형) : "7억 넘게 주고 팔았어"


(나) : "!!!"



동기형이 지불한 3억이라는 금액은 내가 평택에 산 금액과 동일했다. 심지어 시점도 비슷 하였기에 그 충격은 컸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3억의 대부분은 세입자가 지불한 전세 보증금이었고, 그 나머지 금액은 대출이었다. 어떻게 이게 가능한지 믿겨지지 는 로직이자 개념이었다. 결국 본인이 모은 돈은 거의 안들어 갔다는 동기형의 부연설명은 마침내 끝까지 부여잡고 있던 마지막 나의 정신줄을 놓게 만들었다.



입사후 만나 친해진 동기형은 돈을 모을 생각이 없었다. 으레 그러하듯 보상심리로 그간 공부하고 취업준비하며 고생한 본인에 선물을 아낌없이 주었다. 젊음을 나이트클럽에서 불태웠고, 4천만원이 넘는 싼타페 차량을 할부로 사며, 여자친구와 해외여행을 다니며 즐기는 부류중에 하나였다. 나 또한 그러고 싶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그런 행보를 보이는 동기형에게 혀를 끌끌차며 '나 잘난맛'에 더욱 더 부채질하면서 스스로 우쭐댔는데, 든게 부정당해 버렸다.



계산기를 두들겨 보았다. 나는 3억 현금100% 주고 샀고 그보다 훨씬 낮은 금액으로 거래되고 있다. 동기형은 3억이라는 같은 금액으로 샀지만 세입자의 전세보증금과 빚을 낸 금액과 합쳐서 집을 샀고, 7억에 팔았다. 0원을 투자하여 4억을 번거였고, 에 나는 생돈 3억을 들여 몇천만원을 까먹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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