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에 입학을 하였다. 때는 2006년 이었고, 지긋지긋한 수험생, 학생신분에서 벗어나 세상에 나갈수 있다는 설렘보다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라는 무거운 인생의 숙제를 떠안은 채 대학생활은 잔인하게 시작되어 버렸다.
초등학교6년, 중학교3년, 고등학교3년인 무려 12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한번도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잘하는지, 무엇을 할때 즐거운지에 대해 성찰을 하지 못한 채 그저 공부만하고 수능을 위해서만 살아 왔던터라 대학입학은 홀가분함 보다는 막막함이라는 감정이 나의 인생을 가로막았던 것이다.
'너는 수학, 과학을 잘하니까 취업잘되는 4년제 국립대에 기계공학부를 가라' 라는 단순한 조언을 듣고 그대로 이행하였다. 조언이라기 보다는 거의 지시와 다름없었고, 그것에 거부할수 있는 뚜렷한 나의 논리와 깊은 고민이 없었다는게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어쩌면 그런 지시가 인생을 오래살아온 인생선배의 올바른 방향 지시일수도 있다라는 믿음조차 있었는지도.
좋아하는 것이라는 착각, 잘한다라는 믿은 오래지 않아 무너져 내렸다. 고등학교 시절 모의고사를 보면 줄곧 수리영역에서 만점을 받은적이 있던터라, 대학 1학년 과정의 교양과목들 중 수학은 누워서 떡먹기라 생각했다. 하지만 모든 책들은 원서였고, 그냥 수학이 아닌 공학수학이었다. 공학수학을 공부하는데 즐거운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잘해보고 싶은 의욕도 없었고, 한장 한장 넘기는게 곤욕이었기에 성적은 좋지 못하였다. 그리고 그때 처음 깨닫게 되었다. 나는 수학을 좋아하고 재능이 있는게 아니라, 다른 과목에 비해 수학공부를 더 많이 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좋아하고 잘하게 된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렇게 수학/과학을 잘하니까 기계공학을 선택한 논리가 무너지게 되면서 기계공학은 적성에 맞지 않다는 결론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이었고, 그에 따른 결과는 '대학생활 부적응' 이었다. 강의를 들어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으며, 동기들과의 대학낭만은 미래에 대한 걱정과 당장 내일의 수업에 압도되어 즐겁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 지겠지, 익숙해 지겠지, 좋아지겠지 라는 희망은 이루어 지지 못하고, 2학년 3학년이 거듭될수록 심리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듬이 가중되어 갔다. 취업은 고사하고 이대로 가다가는 인생자체가 꼬일 지경이었다.
"정말 적성 이란게 있는걸까?"
정말 많이도 고민하고 스스로에게 던졌던 난제였다. 적성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하는 질문을 수없이 던졌다. 적성에 맞다, 적성에 맞지 않다 라는 말은 모든 일의 선택의 기준이 되었기에 나에겐 정말 풀어야할 중요한 질문이었다.
답을 찾기 위해 학창시절을 떠올려 보았다. 그나마 좋아하고 잘했던 수학을 어쩌다가 잘하게 되었고, 수학공부는 적성에 맞아라고 한때 말했는지 말이다. 알고 보니 아주 단순한 이유때문에 수학이 적성에 맞게 된 것임을 알게 되었다.여기서 주목해야 할것은 '적성을 찾은게' 아니라, '적성에 맞게 되었다'는 것이다.
중학교 시절 어머니가 수학학원을 등록해 주었고, 그때의 수학학원 선생님이 좋았다. 좋았기에 더 열심히 공부해서 칭찬 받고 싶었고, 그렇게 되었다. 그래서 더 열심히 하였고, 그러다 보니 더 흥미가 생기고 재밌게 되었다.성적이 올라가니 더 재밌어 지고 욕심이 나는 선순환 이었다. 어느새 수학공부가 재능이 되고 적성이 되어가는 과정이었다.
어떻게 사람이 태어날때 부터 적성이란게 생기겠는가. 적성이라는 것은 이렇게 단순한 자극으로도 생기기도 하고, 있던게 없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적성에 맞지 않던 일도 조금씩 하면서 주변의 긍정적인 피드백도 받고, 그래서 더 잘해볼려고 자료를 찾아보며 실력을 증진하다보면 없던 재미도 생기고, 없던 흥미도 생기고, 어느순간 시키지도 않았는데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하는 것이다.
기계공학공부를 적성운운하며 도망치던 나에게 이런 깨달음은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버렸다. 일부 과목을 제외하고는 적성이 맞지 안다는 핑계로 평점을 갉아 먹는 과목들이 수두룩 하였다. 거의 학사 경고수준까지 갈뻔한게 한두번이 아니었다. 취업을 하기 위해서는 최소학점이 충족되어야 하나, 그정도도 안되는 수준까지 떨어져 있던 상황이었다.
기계공학이 적성에 맞지 않는게 아니라, 적성에 맞는 환경과 자극이 필요하다는 생각. 달리 말하면 적성은 만들수 있다는 믿음으로 '앞으로 어떻게 해야 기계공학은 내 적성에 맞게 할수 있을까' 고민을 하기 시작하였다.새로운 접근방식이었다.
뭐든지 지속적으로 해 나가려면 재미가 있어야 하고, 기계공학에 대한 재미를 느낄려면 재미를 왜 못느끼는지에 대한 원인을 찾아야 했다. 그러자 바로 답이 나오게 되었다. 기계공학이 재미 없었던 이유는 실체도 못본채 앉아서 책으로 이론공부만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실체를 보면 될것 아닌가.그러면 재미를 느끼지 않을까.
기계공학의 실체, 즉 책으로만 보던 배, 비행기, 자동차 등등 기계공학의 최종 산출물들을 직접 만들고 보고 만질수 있으면 재미가 생길것 같았다. 그런것들을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자명했다. 회사에 가야 한다.
졸업도 하지 못한 대학생이, 그렇다고 졸업을 앞둔 4학년도 아닌 3학년 학생이 인턴신분으로 라도 회사를 갈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지금 생각해보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회사가 자원봉사 단체도 아닌데 월급주고 가르쳐주는 학교처럼 풋내기 대학생을 받아 줄리 만무했다.
그런데 세상에 안되는게 어디 있겠나. 회사의 인사 담당자는 나의 이런 절박함과 간절함을 읽었는지 모르겠으나, 3학년임에도 불구하고 인턴을 할수 있도록 허락해 주었다. 프랑스 기업이었고, 자동차의 주요부품을 생산하는 기업이었다. 인턴의 목표는 단 하나였다. 기계공학 공부에 흥미를 느끼자.쌀알 한톨 만큼의 재미만 느끼면 그걸로 목적 달성이다.
목표가 서니 정말 신기한 현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회사의 허드렛일부터 정직원이 하는 모든일들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려고 하였고, 다음날 아침에 또 무슨 일을 배워볼까 하는 마음에 그 전날이 너무 설렜다. 인간은 매일의 설렘을 가지고 그다음날 일어날 수 있으면 그걸로 행복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6개월 이라는 시간은 생각보다 빨리 지나갔고, 학생의 풋풋한 냄새는 어느정도 빠져 어설픈 회사원의 모습을 갖추어 갈때즈음 학교로 복귀하였다. 그렇게나 갈망하던 자동차의 부품들을 직접 만지고 직접 설계하고 직접 시제품을 만들어 시험까지해본 경험을 하고나서는 학교의 풍경이 달리 보였다. 전공서적도 달리 보였다.
이렇듯 적성이라는 것은 없다가도 생기고, 작정하고 만들수도 있는 그런 쉬운 존재이다.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그런 영역에 대한 두려움은 우리의 입을 통해 '적성에 맞지 않아'로 배설될 뿐이고, 약간의 경험을 통해 그리고 맛보기를 통해 쌀 한톨만큼의 흥미가 생기면 '적성에 맞는것 같아'로 표현되기도 하는 그런것이다.
대학시절 경험한, 그리고 전공서적에서 벗어난 그 한번의 인턴경험은 단순히 이력서의 한줄을 덧붙이는 경력사항이 된것이 아니라, 인생의 중요한 난제중에 하나였던 적성이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깊은 통찰을 안겨다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