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갖기로 결심하고 임신, 출산, 양육을 하며 5년간 아내는 휴직을 하였다. 오롯이 엄마로서의 역할에 충실한 아내에게 소소한 즐거움이라도 줄수 있다면 YES맨이 되곤한다. 뭐가 필요할것 같다고 이야기하면 YES, 어디를 가보고 싶은데 운만 띄워도 YES, 뭔가가 땡기는데 라고 입밖으로 뱉으면 YES. 그날도 다른 엄마들과 함께 돈을 나눠서 키즈카페를 빌려 놀고 오겠다는 말에 YES를 외쳤고, 퇴근후 엄마들과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하루는 어땟는지 물었다.
육아만 하는 엄마들에게 세계관은 매우 좁을수 밖에 없다. 아이 이야기로 시작해서 아이 이야기로 끝이난다. 때론 다른 엄마들의 뒷담화로육아로 지친 영혼을 잠시나마 위로 하기도 하며 (남편 뒷담화도 여기에 포함된다), 반대로 다르엄마들의 부러움을 사면서 우쭐함으로 스스로 낮아진 자존감을 회복 하기도 한다. 그날도 어김없이 무슨 대화를 했냐는 질문에 좁은 세계관들의 이야기들을 해주었고, 엄마들중 소위 기센 엄마가 저런 질문을 했다는 것이다. 퇴근하고 나서도 '사원증을 일부로 메고 다니는 거에요?' 라고 말이다.
가정의 평화와 아내의 빠른 육퇴를 위하여 항상 빠른 퇴근을 위해 회사에서 연골을 갈아넣으며 일을한다. 집에 도착할 즈음에는 하원을 시킨 엄마와 아들이 실내 쇼핑몰에서 줄곧 함께 놀고 있기에 퇴근하면서 함께 만나 집에 들어오는게 일상의 소소한 행복중 하나이다. 그러다가 한두번씩 어린이집 같은 반 엄마들과 마주치기도 하고 몇마디 말을 섞어 보기도 한다. 눈뜨고 눈을 감는 순간까지 회사사람 아니면 우리가족 이외에 만날 사람이 없는 생활을 10년가까이 반복하다 보니, 새롭게 인연이 맺어진 이들과의 짧은 대화는 의외로 소소한 즐거움을 주기도 한다.
그중의 엄마 한명이 나의 사원증을 유심히 본듯하다. 그리고 그 위에 찍혀져 있는 회사 로고도 아주 유심히 관찰을 한것 같다. 아내에게 나의 회사를 말한적이 있냐고 물어봐도 그런 기억이 없다고 하니, 아무래도 퇴근후 아내와 아들을 만나려고 쇼핑몰에 들렀을때 이 엄마는 사원증에 찍힌 작은 회사로고로 나의 회사를 알게된것 같다. 그건 그렇다 쳐도 왜 저런 질문을 한 것일까.
아내에게 저 질문을 했던 상황과 뉘양스를 물었고, 종합하여 보니대기업 다닌다고 잘난척하고 싶어 하는거 아니에요? 라는 말을 진심 반 농담 반처럼 비꼬듯 이야기 했던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메고 다니던 사원증이 그 엄마에게 일종의 자격지심을 드러나게 하는 트리거가 된것일까.상대방 엄마의 남편은 자영업자였고, 경제상황이 좋지 않아 여기저기 업종 불구하고 곡소리를 내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기에 상대적으로 회사원이 부러웠던 것일까.
악의적인 의도는 분명 없었을 것이기에, 처음 그 이이야기를 전해 듣고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이내 얼마 지나지 않아 화가 났다. 처음 웃음은 각자 살아가는 것도 바쁘고 지치는데 남의 삶에 왜그리도 관심이 많은걸까 하는 생각에 헛웃음이 난것이고. 두번째 이어진 화남은 내가 대기업 다닌다고 잘난척 한적도 없고, 더군다나친분도 깊지 않은데 쉽게 사람을 판단한다는 생각에 열이 올랐다.
대기업 사원증이 가지는 의미가 자부심이 아닌 잘난척이 되면 안된다. 흔히 '사'자 직업을 뜻하는 판사, 검사, 변호사, 의사 등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명예도 있는 그런 직업을 얻기 위해 남들보다 더 많은 희생을 했을 사람들에게 직업은 그들의 삶의 서사를 나타내는 자부심이다. 자부심이 한순간 잘난척으로 판단을 받게 되면 기분이 어떨까 생각해 본다.그러다 문득 지금 까지 내가 뱉은 말중에 상대가 쌓아올렸을 노고가 담긴 결과물을 쉽게 판단하고, 한순간 쉽게 달성할 수 있는 결과물로 취급하지는 않았나 자기 반성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