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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지은 Jun 23. 2022

탈출구 대신 경기장을 선택하는 삶

'진짜' 어른이 된다는 것

초여름의 밤공기에는 활력과 아련함이 한데 서려 있다. 볕을  몸에 받고 숨결이 가빠진 식물들이 내뿜는 폭발적인 생기는 어둠이 드리우면   꺾인다. 나는 A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동네를 산책했다. A 까다로운 내가 우러르는 친구다. 우리의 대화 사이에는 언제나 온화한 공백이 존재하는데,  침묵의 순간은 마치 호흡의 리듬을 되찾는  같은 편안함을 준다.


키 큰 나무들이 줄지어 선 기다란 산책로를 따라 내가 졸업한 초등학교까지 걸어갔다. 돌이켜보면 열두살의 하루하루도 결코 쉽지 않았다. 삶은 구간마다 다른 종류의 부침으로 점철되어 있고, 어린애라고 생의 피로에 대한 면제권이 주어지지는 않으니까. “어른은 모든 일을 다 잘해내는 사람인 줄 알았어. 그 어떤 상처에도 끄떡없이.” 말하고 나니 의무 수행에 뒤처진 성인의 투정처럼 들렸지만, 그 시절 난 실제로 그렇게 믿었다. 이토록 지난한 관문들이 기다리고 있는 줄도 모른 채 자고 일어나면 훌쩍 자라 있기를 바랐다.


“나이에 따라 삶의 모습은 달라도 어려운 건 같을 거야.” A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다만, 어른은 도망칠 곳이 없다는 거지. 어른의 도피처는 자기 자신밖에 없거든. 뛰고 또 뛰어서 겨우 최종 탈출구에 도착했는데, 거기 내가 서 있는 거야.”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숨어버리고 싶은 요즘 내 심정을 어떻게 알았던 걸까, 넌. 문득 앞을 바라보니 우리가 걷고 있는 산책로 저 편에 또 다른 내가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았다. 남은 아무리 속여도 나를 끝까지 속일 수는 없다. 인과응보 같은 공정한 체계가 인생사에 작동한다고 믿지 않지만, 부정과 회피에 따른 책임은 제때 처리하지 않은 쓰레기처럼 내면에 켜켜이 쌓이기 마련이니까. 대충 덮어놓은 진실은 언젠가 반드시 구린내를 풍기며 불편함의 실체를 직면하기를 요구해올 것이다. 탈출구가 눈 앞에 있어도 고통이 기다리는 경기장으로 향해 그곳에서 내가 쓰러져가는 과정을 똑똑히 지켜볼 때, 몸만 자란 아이는 비로소 유년과 결별한다.


A와 나는 어릴 때 어른들을 몹시 싫어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우리는 비겁하지 않은 삶의 태도에 대해 자주 얘기한다. 우리가 질색하던 어른의 모습으로 변해가지 않기 위해서. 내가 고통을 포장하려 냉소를 흘리거나 진실을 마주하는 대신 편리한 자기혐오의 굴레로 빠져들 때면 A는 단호한 눈빛으로 나를 다잡아 세운다. 그날도 돌아가는 길 초입에 선 내게 말했다. “얼마든지 넘어져도 괜찮으니 도망치지 말고 밝은 미래로 나아가자”고.


성장은 불편함을 동반하고, 닮고 싶은 사람 곁에 나란히 서려면 꾸준한 자기개선이 필요하다. 나는 무릎이 깨질 때까지 경기에 임하는 내 성실함과 내 삶에 깊이 관여하는 이들의 신실함을 믿는다. 고된 몸을 이끌고 가야할 길의 끝에 도착했을 때, 미래를 누릴 자격이 주어진다는 법칙도. 섣부른 확정을 피하고 운신의 폭을 넓히려 애쓰는 ‘어른’인 내게 이런 확신은 이생에서 다가올 수많은 경기들을 위한 단 하나의 부적처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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