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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머리 감사기도 묵상

주님은 밥상에 계셨네.

by 김틈

양배추를 먹으며 양배추에게 감사한다

이 양배추를 키워 가져와주신 분께도

계란을 먹으며 닭과 닭이 되지 못한 이 계란에게 감사한다. 물론 그 닭과 계란을 키운 분께도

생선을 먹으며 유명을 달리한 생선과 그 생선을 키워준 바다에게 감사한다.

그림이나 동상 아닌 살아 움직이는 예수를 본 적이 없어서 성당에 나가지 않는다는 핑계를 자주대는 나는 살아있다가 죽어 내게 와 내 살아감의 힘이 되어주는 이 밥상 위의 다른 존재들에게서 가끔 예수를 본 것 아닌가 착각한다.


양배추도 계란을 주는 닭도 바다를 떠난 생선도 그걸 굽고 계신 엄마도... 모든 나 아닌 다른 것들이 나를

살게 하시니 모든 곳에 계신 하느님의 현채인가 믿지 않는 내가...때론 믿고 싶다.


하지만.


믿는다는 것은 눈을 가리고 걸음을 내딛는 일 그러므로 때론 거칠고 포악해질 수 있는 광장의 메가폰. 그러나... 시끄럽지 않게 일상의 밥상에서 발견하고 맛보고 느끼는 믿음은 눈을 감게 만든다. 손과 발을 내밀게 만든다. 기도다.


그래도 여전히 80 된 노모의 기대와 달리... 돌로 쌓아놓은 거대한 성전의 성당엔 발걸음이 잘 들여지지 않는다. 대신 내 운명이 다하는 날 내 육신을 나 아닌 것들에게 내어주고 싶다. 그간 고마웠다고. 살아있는 동안 내 재주와 내 힘과 생각을 그 모든 것들의 번창과 조화를 위해 쓰고 싶다.


지나친 잡초는 뽑고 조금은 남기고

꽃이 주인공이 될 땐 다시... 뽑고

다만. 어느 누구 하나

너무 많이 가지고 해치지 않도록.


묵상을 하니

나 아닌 모든 다른 존재가


주님이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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