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젖은 뼈, 마른 뼈

- 한 마리 조개의 생사론 -

by 김틈

태어나면서부터

죽은 것


뼈를 드러내고

뼈로 살아간다


꽉 다문 뼈 안에서

컴컴한 생명은 펄떡이고

바깥의

빛나는 죽음은 단단하고 곱다.


뼈 안에 살을 숨기는 건

죽음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것

살 안에 뼈를 숨기는 건

삶의 이름으로 죽어가는 것


사느냐 죽느냐...


말을 하고 싶은데

죽음을 열지 못한다

입이 몸이고 삶이고 그것들을 다물어 예고하는 죽음은

파도를 견디는

침묵이다.


그러니 죽음의 상징인 뼈를 숨긴 살들이

죽겠네... 죽겠네... 죽겠어... 노래할 때

그 텅 빈, 물컹한 삶을 바라보며

단단한 죽음은

껍질이 되어

태양을 뒤집어쓴다.


파도를 새겨놓고 삶을 기다리다

완전한 고요를 얻고 난 뒤에서야

쉽게 열리는 입

어려운 삶이

더는 없으니 홀로 열리는


패총, 무수한 죽음이 건재하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화석같은

가끔 구멍을 내어 슬픔을 숨쉬던

속으로만 울던

한 생명


- 김틈 -


죽음에게(동화책).jpg <내가 함께 있을게> ‘볼프 에를브루흐(Wolf Erlbruch)’, 옮긴이 ‘김경연’ ‘웅진주니어 [출처] 중 한 페이지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굶는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