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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Sep 12. 2022

어떤 설명은 무의미하다 (1)

#1.


2011년 12월 18일. 아바나에 들어온 지 5일 차. 어김없이 ‘까사’에 굴러다니는 ‘정보북’을 펼쳐 들었다. 거기에 소개된 장소들 중 한 곳을 찾아왔다.


‘까사’는 스페인어로 집을 뜻하는 말. 쿠바에 온 배낭여행자들은 으레 일반 가정집, 즉 ‘까사’에서 민박 형태로 숙박했다. 쿠바에 저가형 숙소 인프라가 갖춰져 있지 않아서였다. 그중에서도 한국인, 일본인 여행자들 사이에선 아바나 여행 성지처럼 유명한 까사가 있었다. 바로 호아끼나 할머니네 까사. 나도 아바나에 들어오자마자 정해진 수순을 밟듯 호아끼나네에 짐을 풀었다. 호아끼나는 서양인 숙박객들은 시끄러워 싫다고 했다. 비교적 온순한 성정을 지닌 한국인, 일본인 숙박객들을 받는 게 정신 건강에 이롭더라고 했다.


호아끼나는 날 보자마자 노트 두 권을 내밀었다.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정보북’이구나. 마땅한 쿠바 가이드북이 없던 시절. 인근의 5성급 호텔 로비에 가서 한 시간에 만 원 가량을 내고 와이파이 신호를 잡아 써야 겨우 인터넷 접속이 가능했던 시절. 까사를 거쳐 간 선대의 여행자들은 몸소 체득한 아바나 관련 정보들을 노트에 수기로 남겨뒀다. 후대의 여행자들은 바로 그 노트를 동아줄 삼아 아바나라는 불확정성의 구덩이에서 탈출했다. 여행자들은 그 노트를 ‘정보북’이라고 불렀다. ‘정보책’도 아니고 ‘인포메이션 북’도 아니고 ‘정보북’이라니. 제법 이상한 명명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이름은 입에 딱딱 달라붙었다.


이날 내가 ‘정보북’을 보고 찾아온 곳은 하멜 거리(Callejón de Hamel)였다. 고작 두 블록쯤 되는 하멜 거리에 강렬한 아프로 쿠반(Afro-cuban) 문화가 오색찬란하게 펼쳐져 있었다. 벽화의 형태로, 조각의 형태로, 그리고 음악의 형태로.


벌써 골목 가득 음악이 울려 퍼졌다. 일요일 정오마다 여기서 음악 공연이 펼쳐진다던 정보북 내용이 사실이었다. 룸바 공연이었다. 아프리카 음악에 기원을 둔, 오늘날 쿠바의 가장 특징적인 민속 음악 장르. 골목 한편에 마련된 작은 무대로 흑인 공연자들이 한 명 한 명 올랐다. 이제 곧 아프로 쿠반 음악의 정수가 눈앞에서 펼쳐지리란 기대에 가슴이 설레어 왔다. 바로 그때,


“¡Cierra la foto!(카메라 꺼!)”


사나운 목소리에 가슴이 철렁했다. 건장한 남성 공연자 한 명이 객석을 향해 소리친 거였다. 제일 좋은 상석에 앉아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면서도 팁 지불은 끝끝내 거부한 한 서양인 관광객의 행태가 눈에 거슬린 모양이었다. 그 관광객은 그제야 사태를 파악하고 쭈뼛쭈뼛 팁을 냈다. 뒤이어 팁 바구니가 내 앞에 왔을 때 나도 얼른 팁을 냈다. 처음부터 낼 요량이었지만 더욱 적극적으로, 더욱 능동적인 포즈로 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 일련의 사태 또한 아프로 쿠반 문화의 정수를 드러내는 단면인 건가. 아바나를 고작 5일 경험했을 뿐이지만 쿠바인들의 가감 없이 직선적인 화법이 벌써 익숙했다. 그것은 비단 화법에 국한되지 않고, 삶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와도 직결되는 인상이었다.


공연이 시작됐다. 마이크 앞에 선 남녀 공연자들이 노래를 했다. 높이가 칠팔십 센티는 족히 돼 보이는 쿠바식 타악기 ‘콩가’를 연주하는 남성 공연자들도 있었다. 그리고 무대 중앙에서 묘기에 가까운 춤사위를 선보이는 공연자들이 있었다. 노래, 춤, 퍼커션은 룸바를 구성하는 기본 3요소였다.


그중 춤을 추는 여인 한 명에게 유독 눈이 갔다. 150센티를 겨우 넘어 보이는 작은 몸집에서 믿을 수 없이 강렬한 에너지와 유려한 춤사위를 끌어내던 여인. 못해도 40대 후반은 돼 보이는데, 포니테일 스타일로 묶은 머리와 청남방, 청바지를 배치한 청청 패션이 자연스러웠다. 나뿐이 아니었다. 하멜 거리에 모여든 구경꾼들 전부 그녀의 움직임에 빠져 있었다.


춤을 끝내주게 추는 댄서에게 시선을 뺏기는 건 자연스러운 일일 터. 다만 내게는 그녀가 온몸으로 증명해 보이는 그녀의 자유가, 혹은 자유를 향한 고집이 이국적으로 여겨졌다. 가장 강력한 사회 통제가 이뤄지는 국가에서 가장 강렬한 자유의 춤사위를 만나는 이 역설. 나는 내가 오늘의 하멜 거리를 이 여성 룸바 무용수, 즉 ‘룸베라’로써 기억하게 되리라고 예감했다. 아, 객석을 향해 윽박질을 했던 그 남성 공연자와 더불어.




#2.


2011년 12월 19일. 아바나 여행 6일 차. 나는 이 구역의 바쁜 여행자다.


아침 열 시부터 살사 수업에 다녀왔다. 쿠바 살사를 배워보는 건 쿠바 여행의 정규 코스처럼 흔한 일이지만, 호아끼나네 까사에 묵는 여행자들 사이에선 유독 그 유행이 뜨거웠다. 나는 나보다 먼저 아바나에 와서 살사를 배우고 있던 아리사의 소개로 아멧의 수업을 듣게 됐다. 195센티 장신 아멧의 ‘본캐’는 아바나 대학교 법대생. 그는 아르바이트 삼아 외국인들에게 살사를 가르쳤는데, 모범생답게도 요령 피우는 법 없이 열정적으로 수업을 이끌었다. 덕분에 두 시간 수업을 마치고 나면 나는 어김없이 녹초가 됐다. 살사 동작이 몸에 달라붙는 기분만은 짜릿했다.


심지어 이날부턴 콩가 수업까지 듣기 시작했다. (이것은 여행인가 유학인가!) 콩가 수업 역시 우리 까사와 인근의 다른 까사에 묵는 일본인 여행자들 사이에서 대유행하던 아이템이었다. 첫날에는 먼저 두 개의 나무 막대를 쳐서 소리를 내는 ‘끌라베’라는 타악기로 룸바 리듬을 배웠다. “운 도스, 운 도스 뜨레스(하나 둘, 하나 둘 셋)” 또는 “운 도스 뜨레스, 운 도(하나 둘 셋, 하나 둘)” 하는 룸바 리듬을. 그런데 이게 보통 어려운 게 아니었다. 나는 분명 선생님이 가르쳐준 대로 박자를 친 것 같은데, 선생님은 나더러 자꾸만 틀렸다고 했다. 눈물이 찔끔 날 뻔했다. 스스로를 박치라고 여겨본 적은 없었건만, 음악의 나라 쿠바에서는 나 정도 박자 감각도 박치가 되는 건가. 내 돈 주고 들은 수업에서 리듬감 대신 회의감을 얻어왔다. 그래도 일단은 계속해봐야겠지.


이날의 마지막 코스는 카페 칸탄테. 라이브 공연이 함께 하는 댄스 클럽이었다. 호아끼나네 까사에 같이 묵고 있는 치히로와 사키가 먼저 도착해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몇 년째 아바나에 거주하면서 아프로 쿠반 음악을 배우고 있다는 켄타도 함께 했다. 아바나에서 만난 일본인 여행자들은 하나같이 음악에 조예가 깊었다. 그리고 아프로 쿠반 음악 공연을 찾아다니는 데 열정이 넘쳤다. 그들 뒤만 졸졸 따라다녀도 다양한 로컬 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었다. 고소한 콩고물을 거저 얻는 셈이었다.


공연이 시작됐다. 신나는 룸바 공연이었다. 오후에 배웠던 룸바 리듬을 캐치해 보려니 도리어 머리가 아파왔다. 그런 건 잊고 공연을 즐기기로 했다. 그런데 무대에 있는 룸베라가 낯익었다. 아담한 몸집에서 터져 나오는 강렬한 춤사위. 분명 어제 하멜 거리에서 봤던 그 룸베라였다.


공연 중간에 룸베라는 직접 객석으로 내려와 사람들에게 사탕을 나눠줬다. 나도 그 사탕을 건네받았다. 룸베라는 내게 슬쩍 윙크했다. 그녀가 날 알아본 걸까? 아니면 아무 뜻 없이 건넨 눈짓이었을까? 무용수들이 사람들에게 사탕을 나눠주는 의식에는 “limpiar la cabeza”, 즉 머릿속을 정화하는 의미가 담겨있는 거라고 내 옆에 앉은 쿠바 여자가 설명해줬다. 사탕을 먹는 것과 의식을 정화하는 것 사이의 상관관계가 딱히 와닿진 않았지만 사탕은 달콤했다. 룸베라의 춤사위는 오늘도 경이로웠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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