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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Mar 23. 2024

Onírico

꿈같은

다니엘에게 <스페인의 빨간 맛>을 선물했다. 책이 출간된 게 2020년 봄이었으니까 딱 4년 만이었다. 마침내 다니엘 손에 이 책을 쥐어주게 된 게.


다니엘의 반응은 다른 스페인 친구들과는 달랐다. 다른 친구들은 자기 얘기가 등장하는 챕터를 보며 환호한다든지(‘읽을’ 수 없으니 ‘보는’ 수밖에.), 발렌시아 사진들을 보며 우리가 거기서 함께 보냈던 시간을 추억했다. 그런데 다니엘의 입에서 흘러나온 첫 문장은,


“O, aquí está escrito el número ISBN. (오, ISBN 번호가 여기에 적혀 있네.)”


친구가 출간한 책을 처음 펼쳐 보면서 ISBN(국제 표준 도서 번호)부터 찾아보는 너란 남자. 왼쪽 페이지 하단에 적힌 건 뭐고 오른쪽 페이지 하단에 적힌 건 뭐냐는 둥, 책의 형태부터 분석하는 남자. 일종의 직업병일 것이었다. 다니엘은 비블리오떼까리오(bibliotecario), 즉 사서다.


다니엘이 근무하는 도서관을 둘러봤다. 총 7층 규모를 자랑하는 공립 대학 소속 도서관이었다. 근무 시간 대부분 동안 컴퓨터 모니터를 보며 업무를 보거나 공부를 한다고 했다. 다니엘의 성정에 딱 맞아 보였다. 원체 다독가인 데다, 대상을 낱낱이 분석하거나 체계를 갖추어 조직화하는 것을 잘하고, 차분한 시간을 좋아하는 내 친구.


‘이 직업이 너랑 잘 맞아 보인다’는 말을 전하고 싶은 거였는데 어쩐지 적절한 스페인어 표현이 떠오르지 않아 나는 우물거렸다. 역시나 내 의도를 빠르게 간파한 다니엘. 적절하고도 유용한 스페인어 표현이 있다며 곧장 내게 알려 줬다. “Este trabajo me pega” 또는 “Este trabajo me sienta bien”이라고 말하면 된단다. ‘이 일이 나랑 잘 맞는다’는 뜻이란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잘 맞는다’는 뜻으로 쓴 동사들의 쓰임새를 구체적으로 설명해 보였다. 각각의 동사를 활용해 이런 문장도 만들어 보이고 저런 문장도 만들어 보였다. 이 또한 직업병인 걸까? 다니엘은 나의 스페인어 선생님이었다.


6년 전 딱 지금 같은 봄날에 다니엘을 처음 만났다. 발렌시아 어학원에서 강사와 수강생으로. 다니엘은 그때도 지금과 다르지 않았다. 내가 품은 의문을 얼렁뚱땅 넘기는 법이 없었다. 늘 침착하고 성실하고 합리적인 설명으로 나를 납득시켰다. 나는 내 궁금증을 풀고자 하는 욕망, 다른 수강생들의 진도를 방해하지 않아야 한다는 자각 사이에서 균형을 지키려고 노력했는데, 그런 상황에서 다니엘은 내 마음이 가장 편하게 여기는 선생님이었다. 다니엘은 절대 내 질문에 감정적으로 응수하는 법이 없었다.


5개월 여의 수강을 마치고 어학원 선생님들과 작별 인사를 했던 그 해 가을날. 그 가을날의 한 장면도 다니엘을 떠올릴 때면 생각나곤 한다. 그날 오후 나랑 다니엘은 카페테리아 테이블에 마주 앉아 있었다. 장면은 우리가 이런저런 수다를 떨며 에스프레소 잔을 비워 갈 즘 벌어졌다. 갑자기, 다니엘이, 담배를 말아 피우기 시작한 것이었다! 다니엘이 흡연자란 사실이야 진작부터 알았다. 그런데도 그 장면이 충격적이었던 이유는 내 코 앞에서 다니엘이 담배를 피우는 건 처음 있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다니엘의 인식 속에서 내가 학생에서 친구로 넘어가는 순간, 그러니까 우리 관계가 공적인 관계에서 사적인 관계로 전환하는 순간을 목도하는 기분이 들었다. 처음으로 담배 냄새가 유쾌했다.


‘넌 학생이고 난 선생이야’의 속박에서 벗어나고서부터 우리 사이가 한결 이완된 건 사실이었다. 말하자면 쓸데없는 경직으로부터 해방된 느낌. 교실에서였더라면 입 밖에 내지 않았을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게 된 사이. 다만 공적인 관계의 형식을 벗어던진 모든 사람들이 우리처럼 가깝게 지내는 건 아니란 걸 보면, 우린 그냥 처음부터 쿵짝이 잘 맞았던 것 같기도 하다. 나는 다니엘이 들려주는 이야기들이 재미있었다. 영화 이야기, 책 이야기, 연애 이야기, 사는 이야기. 형태와 내용이 모두 합리적인 다니엘의 문장들을 그 얌전한 음성으로 듣는 게 포근했다. 어쩐지 정적이면서도 날카로운 다니엘의 유머 코드도 늘 내 허를 찔렀다. 다니엘도 내가 하는 이야기들을 흥미롭게 듣는 것 같았다. 외국인 수강생의 조악한 스페인어 문장들을 끈덕지게 들어줘야 하는 임무 같은 건 이젠 그에게 없는데도.


다니엘이 어학원 일을 그만두고 새로 취직한 도서관에 내가 처음 가본 그날도 우리는 오만 가지 이야기를 나눴다. 5년 만에 회포를 푸는 자리에서 나누는 이야기치고는 상당히 사소한 이야기들. 예를 들면 얼마 전 산탄데르의 마리아네 집에서 마리아랑 내가 영화 <헤어질 결심>을 본 이야기 같은 것. 전 세계 예술 영화들만 모아놓은 독특한 스페인 OTT ‘필름인(Filmin)’을 통해 영화를 봤다고 말했더니, 다니엘도 필름인을 즐겨 이용한단다. 특히 필름인에 올라와 있는 몽환적인 영화들을 틀어놓고 밤에 스르르 잠드는 기분이 좋단다.


“오니리꼬(Onírico).”


다니엘이 힘주어 말했다. 내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핸드폰에 음성 입력 모드라도 켜놓았더라면 한 글자도 틀리는 법 없이 제대로 받아 적혔을 정확한 발음으로.


‘오니리꼬’는 꿈결 같은 대상을 묘사할 때 쓰는 단어란다. 다니엘은 ‘오니리꼬’를 활용해 이런 표현도 만들어 보이고 저런 표현도 만들어 보였다. 몽환적이라는 말을 하고 싶은 상황에서 쓰면 되는 단어겠구나, 하고 나는 이해했다. 뭔가 일본 ‘오니기리’를 연상하면서 외울 수도 있을 것 같고(물론 오니기리는 조금도 몽환적인 면이 없지만), 둥그런 발음, 네모난 발음, 거센 발음을 모두 가진 단어라서 입으로 내뱉어 보는 것도 재미있고, 무엇보다 단어가 가진 뜻이 사랑스러워서 인상에 남았다. 다니엘은 알고 있었다. ‘오니리꼬’는 내가 처음 들어보는 단어이리란 걸.


다니엘의 막간 강의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바티스페라(batisfera)’는 구형 잠수기를 뜻하는 단어. 다니엘이 좋아하는 동네 책방의 이름이기도 하다. (구형 잠수기를 타고 해저를 탐험하듯 책을 통해 세상을 탐험하라는 의미이려나?) ‘오리날(orinal)’은 요강. 책방 ‘바티스페라’ 바로 옆에는 카페 ‘바티스페라’가 붙어 있는데, 그 카페 한편에 오브제처럼 놓여 있는 철제 항아리가 옛날에 요강으로 쓰이던 물건이란다. ‘데스뽀하르(despojar)’는 빼앗다. 내가 책방 ‘바티스페라’에서 산 중고 책의 첫 페이지에 나온 단어였다.


카페 ‘바티스페라’에서 발렌시아산 와인을 마시며, 다니엘은 책의 첫 페이지 문장들을 내 귀에 읽어 주었다. 나는 첫 페이지부터 뭔 소린지 모르겠는데 어떻게 이 책을 끝까지 읽어내겠냐고 투덜거렸다. 이 책은 내 스페인어 실력으로도 읽을 수 있을 책이라고 다니엘이 추천해 줘서 산 책이었다. 다니엘은 모르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사전을 찾아볼 요량 하지 말고 사진 번역기 앱을 써가며 읽으라고 했다. 그래야 스트레스 안 받고 다 읽어낼 수 있을 거란다. 오늘만 해도 자기랑 단어를 몇 개나 익히지 않았냐며, 그 단어들을 문맥 속에서 일곱 번 이상 듣게 되면 비로소 단어들이 머릿속에 각인될 거란다.


그 뒤로 며칠 동안 나는 다니엘 집에서 묵었다. 숙박업소 대신 친구 집에서 묵는 건 여행 경비를 아끼는 덴 도움이 안 된다. 사적인 공간을 내어준 친구에게 내 나름의 보답을 하다 보면 결국엔 숙박비보다 큰 지출을 하게 되어서다. 그래도 다니엘 집에 들어가기로 했다. 발렌시아에 오면 자기 집에서 묵으라고 다니엘이 여러 차례 말했던 것도 있고, 무엇보다 다니엘 집에서 다니엘과 함께 보낸 기억이 미래의 나에게 지대한 힘이 되어주리란 확신이 있었다.


책과 식물과 햇살이 가득한 다니엘 집. 그 집에서 나는 다니엘과 다니엘의 남자친구와 샌드위치를 해 먹기도 하고, 배 부른 채로 다 같이 소파에 누워 영화를 보다가 꾸뻑 잠이 들기도 하고, 잠에서 깨서 다니엘이 요리해 준 저녁 식사를 아이처럼 받아먹기도 하고, 그러다 또다시 소파에 누워 못 다 본 영화를 마저 보다가 깊은 밤을 맞기도 했다. 내가 그 집에 머무는 동안 다니엘은 나를 자기 방 침대에서 자게 했다. 그리고 자기는 남자친구 집에 가서 자거나 거실 소파에서 잤다. 내가 소파에서 자겠다고 한사코 우겨도 말을 듣는 법이 없었다. 입장 바꿔 생각해 보면 그 마음이 이해됐다. 내 몸이 불편하더라도 상대방이 만족스럽길 바라는 마음. 만약 다니엘이 서울 우리 집에 온다면 나도 똑같은 마음일 것 같았다.


어느 날 밤 동네 산책을 하던 중. 다니엘이 주머니에서 간식을 꺼내 내게 건넸다. 작은 소바오(sobao)였다. 나는 소바오에 얽힌 이야기가 생각났다. 얼른 다니엘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 그렇지만 도무지 마음처럼 빠르게 진전되지 않던 나의 긴 이야기. 그 이야기는 이런 것이었다.


산탄데르의 마리아 집에서 머물던 얼마 전. 마리아가 아침 식사로 각진 케이크를 내어 놓았다. 마리아가 설명하기를 이 케이크는 산탄데르가 속한 칸타브리아 지역의 별미로, 이름은 ‘소바오’란다.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라 궁금한 맘에 얼른 한 입 집어 먹었더니, 이건 내가 아는 맛이다. 이건 바로, 바로, 카스텔라 맛이다!


이쪽으로 씹어봐도 저쪽으로 씹어봐도 영락없는 카스텔라 맛인데, 소바오랑 카스텔라가 무슨 연관이 있는 걸까? 카스텔라는 왜 이름이 카스텔라인 걸까? 갑자기 호기심이 폭발했다. 검색해 보니 카스텔라는 포르투갈에서 이 케이크를 스페인의 빵, 즉 ‘팡 드 카스텔라’라고 부른 데서 기원한 이름이란다. 그 빵을 포르투갈 선원들이 나가사키 항구를 통해 일본에 전파한 거라고. ‘팡 드 카스텔라’가 곧 ‘소바오’였다는 문헌은 찾아볼 수 없었지만, 아무래도 상관이 있지 않을까? 나는 내 입 안에서 녹고 있는 이 소바오가 카스텔라의 전신일 거라고 굳게 믿으며 꿀꺽, 케이크를 목으로 넘겼다.


원래는 다니엘한테 여기까지만 이야기하려던 거였다. 그런데 말하다 보니 또 다른 이야기가 생각나 버렸다. 나는 그 이야기도 다니엘한테 털어놓았다. 역시나 내 마음과는 전혀 다른 속도로 진행되던 나의 또 다른 이야기는 이런 것이었다.


초등학생 시절. 친구랑 수영장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음료수에 빨대를 꽂아 쪽쪽 빨아 마시며 걸어가고 있었다. 맞은편에선 자동차가 오고 있었다. 그 자동차가 내 오른쪽을 지나가는 순간. “퍽!” 하는 소리가 났다. 처음엔 그게 무슨 소린지 몰랐다. 그런데 이삼 초쯤 지났을까? 돌연 오른쪽 옆구리가 아파왔다. 아니, 아픈 것 같았다. 아니, 아픈 건지 뭔진 모르겠는데 아무튼 무슨 느낌인가가 나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리고 울었다. 뿌엥! 자동차 백미러가 내 옆구리를 치고 지나간 것이었다. 오른손에 들려 있던 음료수는 온데간데없고 내 입에 빨대만 물려 있었다.


운전자가 차를 세우고 부리나케 내게 달려왔다. 젊은 남자였던 것 같은데 아무튼 그때의 내게는 아저씨였다. 아저씨는 내 상태가 괜찮은 것을 확인하고는 나와 친구를 차에 태웠다. 내게 먹고 싶은 게 있냐고 물었다. 친구는 자기가 다친 것도 아니면서 이걸 먹고 싶다고 말하라 저걸 먹고 싶다고 말하라 간섭을 해댔다. 나는 친구가 그러거나 말거나 생글생글 웃으며 대답했다.


“카스텔라요!”


아저씨는 당장에 카스텔라 몇 봉지를 사서 그대로 우리 집을 찾아갔다. 그리고 우리 엄마에게 전말을 털어놓았다. 두 손을 공손히 앞으로 모으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그저 카스텔라를 먹을 생각에 들떠 있었다. 병원에서는 이런저런 검사들을 해보더니 내게 아무 이상이 없다고 했다. 엄마가 안도했다.


휴. 이야기를 겨우 끝냈다. 소바오에서 카스텔라에서 유년 시절의 교통사고로 흘러간, 대하소설 저리 가라 할 장대한 나의 이야기.


그 긴 시간 동안 다니엘은 한 번도 내 이야기를 끊지 않았다. 마쳐질 듯 마쳐지지 않는 나의 부진한 문장을 자기가 알아서 추측해서 먼저 끝내는 법도 없었다. 지루해하거나 핸드폰을 보는 일도 없었다. 내 표정과 내 어휘에만 집중하는 다니엘의 눈과 귀가 내게도 느껴졌다.


나는 다니엘한테 너 참 대단하다고 말했다. 이렇게나 길고도 느린 이야기를 어떻게 그렇게 오래 참고 듣느냐고 말했다.


다니엘은 참는 게 아니라고 했다. 좋아서 듣는 거라고 했다. 자기는 주머니에서 소바오 한 조각을 꺼냈을 뿐인데 거기서부터 이런 이야기보따리가 펼쳐지는 게 재미있고 뿌듯하다고 했다. 말하자면 내가 자기의 ‘오브라(obra)’ 아니냐 한다. ‘오브라’는 작품이라는 말. 다니엘이 지금의 내 스페인어 실력을 완성한 장본인이니 내 입에서 흘러나오는 모든 스페인어 발화는 자신의 작품이나 다름없는 거란다.


나는 그 순간이 정말로 오니기리, 아 아니, ‘오니리꼬’하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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