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산책 일기

20220230

by 아무개

우리 부부는 저녁을 먹고 산책을 한다. 비가 오지 않는 한 거의 매일 나간다. 같이 나간다고 해서 꼭 둘 다 원하는 것은 아닌데, 주로 내가 나가고 싶어해서 오빠는 끌려나가는 편이다. 세상에서 제일 편한 차림으로 바람을 맞으며 걸으면 하루 동안 쌓인 가슴의 답답함이 어느 정도 풀린다. 자유로운 기분이 든다.


목동으로 이사온 후 일년이 지나니, 몇 개의 산책 코스가 만들어졌다. 각 코스마다 분위기가 달라서 그때 그때 기분에 따라 선택하게 된다. 어제는 대일고등학교 앞 대로를 따라 등촌역 근처 시장을 한 바퀴 돌았다. 조금 시끄럽고 자동차 매연을 많이 마시게 되지만, 구경거리가 많아 기력이 남을 때 간다.


걷다가 오빠가 무슨 얘기를 해서 막 웃었는데, 잘 기억이 안 나네. 여하간에 그렇게 시덥잖은 얘기를 하면서 걷는다. 배가 불렀지만 입이 좀 심심해서 홈플러스 익스프레스에 들려 ‘고소아’라는 과자를 샀다. 홈플러스 PB상품인 거 같았는데 꽤나 맛있었다. 홈플러스 바로 옆에는 작은 동물병원이 있는데 길 고양이를 무료 분양한다. 한동안 어미 고양이만 있었는데 어제 보니 손바닥만한 아기 고양이가 세 마리 있었다. 동물병원 앞에서 한참을 쪼그려 앉아 ‘키우고 싶어?’, ‘에이 못 키우지’하는 부질없는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결론은 언제나 ‘못 키우지’ 쪽으로 끝나는데 맨날 똑 같은 얘기를 반복한다.


또 한참을 걸으면 불 꺼진 꽃집이 나온다. 퇴근하고 저녁 먹고 나오면 언제나 9~10시라서 문을 닫은 가게들이 대부분이다. 저번에 봤던 시계꽃이 다 시들어서 쭈글쭈글해졌다. 화려하기는 한데 왠지 조금 무섭게 생겼다. 납작한 화분에 올망졸망 심어져 있는 수국이 예쁘다. 6월 중순 즈음엔 화담숲에 수국이 만개할 텐데, 다시 한 번 가보고 싶다.


내일 저녁에 뭘 먹을지 이야기 하다가 지난번 사놓은 순대를 볶아먹자는 의견이 나왔다. 그동안 거의 소금간만 해서 하얗게 볶아먹었는데 내일은 고추장 양념을 해서 위에 치즈까지 얹어서 만들어보리라, 마음 속으로 생각한다. 오빠는 빨간 양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시장을 지나면서 순대볶음에 넣을 깻잎을 산다. 그 옆에 파프리카도 두 개에 천원이라니 안 살 수 없지. 야채를 파는 남자가 내 앞을 지나는데 땀 냄새가 훅 끼친다. 목청을 높여 호객을 하고 박스를 정리하고 돈을 세며 바쁘게 보냈을 그의 낮이 떠오른다.


묵직해진 장바구니를 어깨에 매고 집으로 가는 골목으로 들어선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끝나니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음식점, 술집들이 새로 보이는 것 같다. 휘청거리는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는 아저씨들, 그 옆에 지루한 얼굴로 게임하고 있는 아이들. 시계를 보니 아홉시 삼십분이다. 들어가서 <우리들의 블루스>를 두 개는 볼 수 있을 거다. 드라마를 생각하니 발걸음이 바빠진다. 들어가자마자 화장실로 직행해 씻으라고 오빠에게 신신당부를 한다. 주부 9단인 남편은 집에 들어가면 할 일이 막 보이는지 언제나 바쁘다. ‘그래도 오늘은 꼭 바로 씻어야 해!’ 5층 계단을 오르며 계속 얘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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