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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데이수 Sep 29. 2020

중국의 90년대생 '지우링허우'의 자신감

<오늘부터의 세계>를 같이 읽고, 중국의 자신감을 부러워했다.

너 책 많이 읽잖아. 추천 좀 해봐.


책 많이 읽는 사람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이 말이 얼마나 뜬금없게 들리는지를. 세상에 책이 얼마나 많은데. 당신이 어떤 목적으로, 어느 정도 시간을 투자해서, 어느 분야의 책을 읽으려는지 모르는데 어떻게 책을 추천할 수 있겠는가.


나는 이런 경우에 대비해서 "누구에게나 추천할 수 있을만한" 책 몇 권 정도를 늘 머릿속에 담고 있다. 이 리스트에 들어가려면, 내 나름대로 정한 몇 가지 조건에 맞아야 한다. 다 적고보니 이런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거려나 라는 생각도 들었다.


너무 매니악하거나 논쟁적인 주제를 다루지 않을 것.

책을 읽고 얻을 수 있는 인사이트가 너무 얕거나 너무 깊지 않고 적당할 것.

컴백트한 사이즈로 가방에 가볍게 넣어다니며 읽을 수 있을 것.

"추천의 말"로 쓸 법한 스토리텔링이 있을 것.


내가 보기에 "이 책이라면 누구에게나 추천할 수 있지" 라고 생각되는 책 몇 권을 예시로 가져와 봤다.


참고차 몇 가지 예시를 가져와 봤다. 신개념 칙릿인가 했는데 생각보다 여운을 주는 장류진의 <일의 기쁨과 슬픔>, 매주 시체를 볼 만큼 죽음에 가까이 있는 법의학자가 쓴 죽음에 대한 에세이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누구 한 사람 죽기 전엔 끝나지 않는 다툼으로 가득한 세상 속 나와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미덕을 알려주는 <무신론자에게 보내는 교황의 편지>. 말하자면 이런 책들이다.


한동안은 리스트에 <오늘부터의 세계>를 추가하려고 한다. "7인의 석학이 코로나 이후 인류의 미래에 대해 말한다"는 주제도 매우 시의성이 있고, 내용도 온건하며, 대통령이 추천한 책이라는 스토리도 살짝 끼워넣을 수 있다.


구구절절 이유를 말하긴 했지만, 솔직히 다 떠나서, 좋은 책이다. 남에게 추천하는 건데 일단 책이 좋아야 하지 않겠는가. 7인의 석학과 인터뷰를 했다니 보기에는 좋지만 먹기에도 좋기가 참 힘든 구성이다. 자칫하면 이도저도 아니고 허공에 붕 뜰 수 있다. 이 모든 인사이트를 한 권의 책으로 묶어 낸 저자가 참 대단하다. 인터뷰도 성의없이 띡 던지는 질문이 아니라, 그 질문을 던지기까지 인터뷰에 응해 준 사람의 저작을 꼼꼼히 읽어보고 고민해서 던진 질문인 게 느껴져서 배울 점이 많이 있었다.


독서모임 매거진 <일요일엔 책을>, 오늘은 "누구에게나 추천할 법한 책" <오늘부터의 세계>를 같이 읽고 나눈 이야기를 전한다.





원톄쥔 이야기로 시작했다. 그는 평생 농촌개혁을 위해 힘써 온 중국의 지식인이다. (중국정부가 발표한 대로) 중국이 코로나19 확산을 성공적으로 잠재우고 있다고 전제하며, 그 이유를 두 가지로 분석한다. 하나는 자연에서 살아가는 농촌인구의 비중이 높아 바이러스가 전국에 퍼지지 않았다는 점, 나머지 하나는, 좀 논쟁적일 수 있는 부분인데, 서양의학이 코로나19의 치료기전을 명확하게 밝혀내고 있지 못하는 상황 속 중국의 전통의학이 어느정도 치료에 기여했다는 점이라고 한다.


선데이수는 중국 사람이 중국의 코로나 현황에 대해서 한 이야기를 이번에 처음 들어봤다. 미국이나 한국 언론에서 자기 입맛대로 해석한 버전은 물론 봤다. 중국에 대해 그렇게 많이 이야기했으면서, 막상 중국 스스로 중국에 대해 어떻게 말하는지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다니.


반성과 성찰의 분위기에 힘입어, 영화를 사랑하는 멤버 A가 슬쩍 영화추천을 끼워넣었다. 요즘 중국에서 제일 핫한 청춘스타라는 주동우가 나오는 <먼 훗날 우리>라는 중국영화다. 이 영화가 그리는 오늘날의 중국은, 헐리우드 영화에서 매번 보여주는 왜곡된 모습과는 아주 달랐다. 옆 나라 주민으로서 공감할 수 있는 부분도 많이 있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중국의 문화 콘텐츠에 좀 더 관심이 생겼다고 했다.


(모임이 끝나고 영화를 봤다. 이번 주말에 또 보려고 한다. 영화가 참 좋았다. A의 추천사처럼, 영화를 보고 나면 오늘날 중국의 모습을 잠깐이나마 엿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우리는 헐리우드 영화 속 중국에만 익숙해 있다.
중국 영화 중국을 좀 더 알 수 있다면, 중국에 대한 생각도 바뀔까?


영화 <먼 훗날 우리>가 보여주는 베이징의 쪽방촌. 우리가 고시원에서 라면을 먹듯, 중국 젊은이들도 쪽방의 얇은 벽에 둘러싸여 라면을 먹는다.


솔직히 내가 중국 지식인이라면, 미국 유럽 등 힘 센 국가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중국을 비난하고 조소하는 데 기가 죽었을 것 같다. 그러고보니 팬데믹 초기에 한국의 코로나 대응에 대해서도 묘하게 비난을 닮은 시선이 있었다.


마스크 쓰라고 강요하는 건 전체주의적인 발상 아닌가?


서구에서 이런 논의가 있었다는 걸 알게 되고 선데이수의 반응은 어땠나. "헉, 그런가? 어떡하지?" 였다. 비슷한 상황에서 원톄진은 전혀 기죽지 않는다. 논의의 차원을  끌어올려 문명에 대해 이야기한다. 서구 문명은 개인주의에, 동양 문명은 공동체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다. (너네가   모르나본데) 동양에서는 마스크 안 쓸 자유를 지키는 것보다, 마스크를 써서 공동체를 지키는   중요하다.


이것도 어쩌면 또 다른 형태의 사대주의일지 모르겠다. 원톄진의 인터뷰를 읽고 있자니 마스크에서 문명으로 가는 웅장한 스케일이, 그리고 그 자신감이 부럽게 느껴졌다.


우리 모임에는 중국을 직접 겪어 본 멤버가 있다. 중국에서 일하다가 최근에 귀국한 멤버 B다. 중국의 자신감이 어디에서 유래하는지에 대해 B가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줬다. 흔히 중화사상 얘기를 많이 한다. B가 중국에서 지내며 느낀 바로는 중국에서도 특히 90년대 이후에 태어나 '지우링허우'로 불리는 젊은 세대와 이야기를 해 보면, 자신감의 이유가 좀 다르다고 느껴진단다.


'지우링허우'가 태어나서 자라는 동안 중국은 이미 산업고도화를 이뤘고, 특정 산업분야에서는 이미 미국이나 유럽을 앞지르기도 했다. '풍요의 시대'를 살아 온 만큼, 자국에 대해서도 엄청난 자신감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아, 내가 사는 나라인 일본과 대조해 보니 좀 이해가 됐다. 일본은 반대로 90년대 이후 버블경제 붕괴로 '잃어버린 20년'을 겪었다. 90년대 이후 태어난 세대들은 해가 갈 수록 월급은 깎이지, 세계 경제에서 일본이 차지하는 위치도 예전 같지 않지, 태어나 보니 좌절뿐이었다. 그래서일지, 청년 자살률도 20년째 OECD에서 가장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태어나 보니 상승기류에 올라 타 자신감이 넘치는 중국의 젊은이들과,

태어나 보니 하강기류에 던져 져 좌절하는 일본의 젊은이들.


원톄진으로 시작해서, 중국에 대해 좀 더 알고 싶다는 지적 호기심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되었다.





지난주 <증강현실>도 2편을 써야 하고, 이번주 <오늘부터의 세계>도 1편으로는 안 끝날 것 같다. 코로나19로 좀 더 노골적으로 드러 난 혐오에 대한 이야기, 반면 전 세계가 유례없이 같은 위기와 고민을 겪으면서 연민과 연대의 희망도 생각해볼 수 있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들이 남아있다.


모임에서 나눈 이야기들이 어느 하나 버릴 게 없이 소중한데, 내 입장에서는 지속가능한 글쓰기를 위해서 포기할 거 포기하는 법도 좀 배워야 할 것 같다. <오늘부터의 세계>는 꼭! 꼭! 2편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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