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강현실> 1편, 코로나 이후 세계를 규정지을 "디지털"의 물결
코로나 이후의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제러미 리프킨의 <글로벌 그린 뉴딜>을 읽고 한국정부가 발표한 "한국판 뉴딜"을 소개한 적이 있었다.
정책자료를 잘 읽어보면 "한국판 뉴딜"은 "애프터 코로나"의 세계에서 한국이 어떻게 살아남을지에 대해 한국정부 나름대로 고민해서 낸 답을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코로나 이후 세계를 규정지을 두 가지 메가 트렌드는 "비대면/디지털화" 와 "저탄소/친환경화"이다. 한국판 뉴딜의 두 축은 이 메가 트렌드에 편승하기 위한 사회경제적 대개혁의 방향을 담고 있다. "비대면/디지털화"에 대응하기 위해 "디지털 뉴딜"을, "저탄소/친환경화"에 대응하기 위해 "그린 뉴딜"을 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사회구조가 급격하게 변화하는 과정에서 일자리를 잃고 소외되는 사람들을 위한 디딤돌로서 "안전망 강화"를 함께 가져가야 한다.
코로나 이후 세계를 규정지을 두 가지 메가 트렌드,
비대면/디지털화 와 저탄소/친환경화
한국판 뉴딜 이라는 정책패키지가 제안하는 예산 규모가 워낙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그리고 예산 재원을 조달하는 과정에서 과거에 우리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방법(국민펀드 조성)을 동원하려 하기 때문에 논쟁이 되고 있다.
선데이수도 이 정책의 모든 부분에 다 찬성하는 건 아니다. 애프터 코로나 시대 한국이 살아남기 위해 "무엇을"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에는 동의한다. 한국판 뉴딜은 한국의 미래 라는 거창한 주제를 논하고 있다. 세계시민으로 살아가는 나 역시 예외는 아니다. "디지털"과 "친환경"의 메가 트렌드에 잘 대비해, 이 중 어느 한 쪽에 편승하지 않는 한 나도 앞으로 밥 벌어먹고 살아가기가 쉽지 않겠구나 라고 생각한다.
지난 7년 간 일요일마다 책 읽고 만나 나눈 이야기를 전하는 독서모임 매거진 <일요일엔 책을>, 오늘은 "디지털"과 "친환경"의 메가 트렌드 중 "디지털"에 대해 이야기했다.
우리가 같이 읽은 책은 브렛 킹의 <증강현실>. 제목 번역이 많이 아쉬웠다. 영어 원제는 Augmented: Life in the Smart Lane 로, 디지털 기술이 인간의 신체적 정신적 역량을 끌어올린다는 의미에서의 "증강"을 전면에 내세웠을 뿐, 내용은 이 책이 출간된 2016년 시점에서의 테크 트렌드에 대한 개괄에 가깝다. 증강현실은 아주 살짝 언급됐다. 우리가 나눈 이야기 역시, 증강현실에 한정짓기보다는, 디지털 세상 속 우리들이 나아갈 방향에 대한 고민에 가까웠다.
오늘 모임에서는 크게 다섯 가지 질문에 대해 각자의 답을 나눴다.
전달하고 싶은 내용이 많아서, 두 번에 나눠서 소개하려고 한다.
기술을 보는 두 가지 관점: 낙관주의와 회의주의 중 나의 입장은?
인공지능에 의해 내 일자리가 대체될까요? 만약 그렇다면, 앞으로 무엇을 준비할건가요?
기술발전이 세상을 풍요롭게 한다고 믿나요?
휴먼 2.0 바이오 테크놀로지, 내게 기회가 온다면 참여하실건가요?
디지털 세상 속 프라이버시 이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기술을 보는 두 가지 관점
: 낙관주의와 회의주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인 <블랙미러>에 <Fifteen Millions Merits>라는 에피소드가 있다. 기술발전으로 인간이 더 이상 노동할 필요가 없어 진 세상이다. 얼핏 유토피아 같지만 디스토피아에 가깝다. 소수가 자원을 독식하고 다수가 소외되는 사회구조는 변하지 않을 거기 때문이다. 다수는 아침부터 밤까지 자전거를 타는 무의미한 노동을 하고 코인을 번다. 이 이야기에서 다수에 속하는 회색인간들이 무의미한 노동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루트는 <핫샷>이라고 불리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출연해 콘텐츠 크리에이터가 되는 것이다. 크리에이터가 되면 스크린을 "보는" 입장에서 스크린에 "나오는" 입장이 될 수 있다.
기술발전이 가져 올 미래에 대해 선데이수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는 <Fifteen Millions Merits>의 디스토피아에 가깝다. 선데이수는 기술회의론자다. 기술은 도구일뿐이다. 잘만 쓰이면 인류에게 여러 혜택을 가져다줄 수 있겠지만, 나쁜 사람의 손에 들어가거나, 왜곡된 사회구조와 결합하면 오히려 인류에게 엄청난 고통을 가져다줄 것이다. <Fifteen Millions Merits>의 불쌍한 회색인간이 남의 이야기가 아닐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 책 <증강현실>을 읽으며 반감을 느꼈다. 저자의 이력을 찾아보니 기술발전이 가져다 줄 "장밋빛 미래"에 대해 글을 쓰고, 스스로 핀테크 스타트업을 설립하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이 책의 한 문장 한 문장에는 기술에 대한 낙관론이 깊이 배어있다.
예를 들면 이런 부분이다.
인공지능은 자애롭고, 안정적이고, 자기를 강화하는 내재적 동기를 따라 밑바닥에서부터 형성될 수 있다. 지능 확장에는 없는 제약을 인공지능에는 도입할 수 있다.
정말? 이라는 질문이 먼저 떠올랐다.
알파고가 이세돌을 꺾은 게 벌써 2016년의 일이다. 지난 4년 동안 알파고는 그때보다 훨씬 더 똑똑해졌을 것이다. 인공지능은 똑똑하지만, 소통이 어려운 존재다. 가령 "왜 이 수를 선택했는지?"에 대해 이세돌에게 물으면, 인간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설명을 해줄 것이다. 반면 인공지능에게 물으면, 인공지능의 언어로 답을 해줄 것이다. 인공지능이 활용하는 데이터와 변수, 로직은 이미 인간의 인지수준을 아득하게 뛰어넘었다. 인공지능이 말하는 "왜"를 과연 인간이 이해할 수 있을까? 만약 이해할 수 없다면, 인공지능에게 제약을 도입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평소에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보니, 내 입장에서는 저자가 "인공지능에 제약을 도입하면 된다"라고 해맑게 말하는 게 당연히 이상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
이 문제에 대해 독서모임의 다른 멤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서로의 생각이 하늘과 땅 만큼이나 달라서 재밌다. 오늘의 책 <증강현실>을 선정했고, 미국에서 증강현실 분야를 공부하고 있는 멤버 A는 굳이 분류한다면 기술낙관론자에 해당한다.
(선데이수 같은) 기술회의론자의 의견에도 어느정도 공감은 하지만, 신경을 덜 쓴다고나 할까. 그럴수도 있겠지, 라고 쿨하게 대답해버린다. 그 세계에 몸을 담고 있으니 어쩔 수 없을 것 같기도 하다. 급격한 변화 속 앞으로 나아가기도 바쁜데 회의론에 발목 잡혀 고뇌하고 있을 시간이 없겠다,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기술발전과 일자리
멤버 A는 이미 트렌드에 올라타기 위해 전문성을 기르고 있다.
오늘 참여한 멤버들 중 A를 제외하고는 테크 인더스트리에 종사하는 사람이 없다. 굳이 말하자면, 트렌드에 올라타야 한다는 불안감은 있지만 여러 이유로 실행에 옮기기 어려운 사람들이랄까. 그런 우리들에게 A가 뼈 아픈 질문을 던졌다.
내 일자리가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될 것 같나요?
멤버 B는 유통업계에서 MD로 일하고 있다. B가 회사에서 하는 업무 대부분은 "어떻게 하면 업무를 더 효율화할 수 있을까?"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일이다. 열심히 일을 하다보면 때로 "내 무덤을 내가 파는 거 아냐?"라는 생각이 든다고. 그렇지. 효율화의 끝에는 인건비 절감이 있으니...
멤버 C는 바이오 업계에서 데이터를 관리하고 있다. 과거에는 종이로 된 데이터를 컴퓨터로 옮기는 게 일이었는데, 요즘은 시스템이 많이 정착되어서 그런 면에서는 일이 많이 줄었다고 한다. 아직까지는 C의 업무를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지만, 앞으로는 어찌될지 모르겠다고 했다.
주제가 주제라서인지 이야기가 한숨으로 끝나버린다.
어쨌든 아직은, 앞으로는 어찌될지 모른다는 문제의식을 모두가 공유하고 있었다.
다음은 조금 더 현실에 발을 디딘 질문이 이어졌다.
만약 지금 일자리를 잃고 프리랜서 마켓에 던져진다면, 무엇을 할 건가요?
아, 울뻔했다. :)
직장인들끼리 모여 이야기를 하다보면 "전문성이 없다"는 얘기 많이 한다. 다른 말로 바꾸면,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업무가 내 직장을 떠나는 순간 의미없어진다는 뜻이 된다.
경영관리, 사무, 영업
IT 인프라 개발, 데이터 분석
전자는 내 직장을 떠나는 순간 의미가 없어진다. 후자는 내 직장을 떠나서도 할 수 있다. 이직 전 직장과 이직 후 직장의 사내 시스템이 다르고 하니 적응기간이 좀 필요하겠지만, 어쨌든 이직시장에 나가볼 수 있다는 점에서 비교적 전문성이 있는 직무라고 분류할 수 있다.
선데이수가 현재 맡고 있는 업무는 전자에 가깝다. 내 직장에서 하는 업무라는 "맥락" 속에서는 충분히 의미가 있지만, 프리랜서 마켓에 던져지는 순간 "맥락"을 잃게 된다. 전자 같은 직무를 가진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으면 그간 쌓아 온 전문성과 역량을 포기하고, 프리랜서 마켓에서 시장가치를 갖는 다른 스킬을 익혀야 하는 상황에 던져진다.
다시 서두에서 소개한 "한국판 뉴딜"로 돌아가자. 한국판 뉴딜의 "디딤돌"에는 "안전망 강화"가 있다. 디지털과 친환경의 메가 트렌드 속 일자리를 잃고 삽시간에 시장가치를 잃은 선데이수 같은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사회안전망을 확충하고, 재교육을 해 주겠다는 것이다.
재교육을 받는다고 치자. 아직 살 날이 많이 남아있겠다, 밥 벌어먹고 살아야지. 그런데 대체 무엇을 배워야 할까? 각자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았다. 디자인을 배우겠다는 사람, 그때그때 관심 가는 주제에 대해 콘텐츠를 제작해 사람들과 나누는 크리에이터가 되고 싶다는 사람, 등등.
마음이 좀 그랬다. 우리가 디자인과 콘텐츠 제작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둘수도 있지만, 업계 평균연봉을 고려할 때 우리의 현 직장에 비해서는 수입이 그닥 만족스럽지 않을 것 같다. 한국의 숨고, 미국의 태스크래빗 같은 재능교류 플랫폼에서 활동하는 프리랜서들의 경우 건강보험이나 고용보험 같은 사회안전망의 혜택을 누리기도 쉽지 않다. 더군다나 프리랜서는 어디 아프기라도 하면 직장에 병가도 못 내고 돌연 수입이 0이 되어버린다.
그간 우리 세대에서 요구하는 역량을 습득하기 위해 공부도 열심히 하고, 스펙도 쌓아서 어렵게 커리어를 시작했다. 잘못이라고는 내게 주어진 업무에 충실했던 것밖에 없는데, 우리 주변의 사회가 급격하게 바뀌었기 때문에 일자리를 잃고, 프리랜서 마켓으로 던져져야 한다니. "재교육"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니. 생각만 해도 화가 치밀어 오른다.
이 모든 게 아마 멀리있는 미래는 아닐 것이다. 우리 세대가 앞선 세대를 꽉 막히고,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 한다고 비판했듯, 우리 다음 세대가 우리 세대를 같은 논리로 비판할 날이 곧 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쉽지 않다. :)
기술 이야기를 하면 할 수록 답답하다. 흐름은 보이는데, 흐름에 올라탈 능력이 내게 없어서다.
올해안에 컴퓨터 언어 중 어느 하나를 시작해 보려고 한다. 주변에 물어보니, 문과 직무에는 데이터분석이 필요하니까 파이썬을 배우는 게 방법이라고 하던데 어떨려나. 선데이수는 언어감각이 있는 편이니 시간과 노력을 들이면 컴퓨터 언어에도 적응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언어에 능통하고 싶은 건 아니다. 아주 기초적인 수준의 리터러시를 갖추고 싶다. 컴퓨터와 소통이 필요해지는 순간에 (인터넷과 유튜브 선생님의 힘을 빌려) 그 언어와 소통할 수 있도록 말이다.
멤버 A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했다. 그는 지난 7년 간 선데이수와 기술에 대해 갑론을박을 해 왔다. 기술에 대한 선데이수의 입장이 어떻게 바뀌어 왔는지를 보면 (극렬 저항에서 납득과 적응으로), 우리 사회가 기술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가늠해볼 수 있단다. 아니 이 사람이. :)
아주 잠깐 부아가 치밀었지만, 금세 납득했다. 하긴. 기술의 세계에 1도 관심없던 내가 컴퓨터 언어를 배우겠다는 결심을 다 하다니. 세상 참 많이 변했다.나는 결코 얼리어덥터가 아니다. 남들 다 하면 그때 시작하는 편이다. 실제로 내년부터 고등학교 진로선택 과목에 인공지능이 추가된다고 한다. 어쩌면 앞으로는 변화의 속도가 지금보다 더 빨라질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일요일엔 책을> 매거진의 16번째 포스팅, <증강현실> 1편은 여기까지로 마칩니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아래 세 가지 질문에 대해 나눈 이야기를 조금 더 전해볼게요.
기술발전이 세상을 풍요롭게 한다고 믿나요?
휴먼 2.0 바이오 테크놀로지, 내게 기회가 온다면 참여하실건가요?
디지털 세상 속 프라이버시 이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