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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데이수 Sep 20. 2020

죽음에 대해 이야기해야 할 때

법의학자 유성호 교수의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간다>를 읽고

우리는 삶(Life)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한다. YOLO의 'L'도 'Life'이고, 워라밸의 '라'도 라이프다. 요즘은 특정 카테고리에 넣기 애매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일컬어 라이프스타일이라고들 한다. 라이프스타일 편집샵인 콘란샵(THE CONRAN SHOP)처럼 말이다. 이 라이프스타일에도 라이프가 들어간다.


반면 다른 극단에 있는 죽음(Death)에 대해서는 잘 이야기하지 않는다. 데스 하면 만화책 <데스노트>가 생각난다. 상상력을 총동원해서 현실과는 백만광년 떨어 진 사신(死神)의 세계 정도는 만들어 줘야 죽음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 정작 그 죽음이 우리에게 가까워질 듯 싶으면 뒷걸음을 친다. 서울에서 한시간 이상은 떨어진 용미리 산골짜기에 공동묘지를 만들고, 명절이나 제삿날이 아니면 가급적 얼씬도 하지 않는다. 왠지 어렵고, 마음이 불편하다.


그래서 이 책이 고마웠다.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오늘 모임에서 몇년 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한꺼번에 다해버렸네. 나와 내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을 맞는 자세에서, '아무도 죽지 않는 세상'이 올지에 대한 토론까지. 오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이 책은 어땠냐면


저자와 책을 분리해서 이야기하기 어려운 책이 있다. 책이 곧 저자고, 저자가 곧 책이다. 이런 책을 만나면 이렇다 저렇다 평가하기도 미안해진다. 저자가 걸어온 삶에, 그리고 그 삶을 책이라는 매개로 공유해주기로 한 결정에 리스펙을 표할 뿐이다.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라는 제목은, 다소 도발적으로 들리지만, <그것이 알고싶다>에도 종종 나오는 법의학자 유성호 교수에게는 지극히 담백한 사실의 기술일 뿐이다. 저자가 의대생이던 시절만 해도 법의학 이라는 학문은 한국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분야였다. 주변의 반대를 물리치고 2세대 법의학자가 되었다. 한국의 법의학자들이 학회를 열면, 절대로 같은 차를 타고 이동하지 않는다고 한다. 만의 하나 불의의 사고라도 나서 고작 한 줌 정도 되는 한국의 법의학자들이 다 세상을 떠나버리면 당장 법의학이라는 분야의 명맥이 끊길거기 때문이란다.


이 에피소드를 읽고 첫째, 매일 죽음을 가까이 하는 사람이라 자신의 죽음이라는 가능성도 늘 삶 가까이 두고 지내는구나 라는 걸 느꼈고, 둘째, 이 교수님은 스스로의 죽음이 개인에게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삶을 살아왔구나 라는 걸 느꼈다. 어느쪽이든 조금 뭉클하기도 하고. 그랬다.


매주 책 읽고 나면 이 책은 이랬다, 저 책은 저랬다, 불만이 많은 우리 멤버들이지만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를 읽고는 모두 입을 모아 "좋은 책이었다"고 했다. 신기한 순간이라고 할까.



죽음에 대비하는 자세


독서모임에서 죽음에 대한 책을 읽은 게 처음은 아니다. 몇년 전 <숨결이 바람될 때>를 같이 읽었다. 뇌 수술 분야에서 능력을 인정받던 20대 신경외과 의사가 폐암 말기 판정을 받는다. 시한부 선고를 받고 2년 간 스스로의 죽음을 앞에 두고 느낀 소회를 기술한 에세이다.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에서 유성호 교수가 3인칭으로 이야기하는 이슈들, 연명치료, 호스피스 치료, 존엄사, 이런 주제들을 <숨결이 바람될 때>의 저자는 1인칭으로 이야기했었다.


그 책을 읽고 나눈 이야기들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그런데, 당시 우리가 이야기했던 내용들 - 나와 내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에 대비하는 게 좋겠다 - 을 실제 행동에 옮긴 멤버가 있었다.


멤버 A는 미국 유학 중이다. 공부를 마치고도 미국에서 잡을 찾을 생각이라고 하니, 한국의 부모님과도 꽤 오랜 시간 떨어져 지내게 된다. 그는 미국에 가기 전 가족들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고 한다. A가 가족들과 구체적으로 어떤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는지를 공유하는 게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장기기증을 원하는지

나의 시체를 어떻게 해주기를 원하는지: 매장 화장 등

나의 사후(死後)에 제사는 어떻게 할지: 1년만 할지, 3~4년은 할지, 10년은 해줬으면 하는지 등

뇌사상태에 빠진 경우 존엄사를 원하는지: 3개월 뒤, 6개월 뒤, 1년 뒤 등

말기암에 걸렸을 때 연명치료를 희망하는지, 또는 호스피스 치료를 받고 싶은지


SF 소설보다도 더 비현실적인 이야기 아닌가?

나와 내 가족의 죽음에 대해 이렇게까지 소상히 이야기를 나누다니.


물론, A에게도 쉬운일은 아니었다고 한다. 유학을 가게 되면 아주 긴 시간 동안 가족들과 떨어져 지낼 거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왠지 반성하는 마음이 들었다. 선데이수도 일본에 이주하기 전 같은 기회가 있었지만, 이런 이야기 꺼낼 수 없었다.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만 해도 눈물이 주룩주룩 날 게 뻔하다. 도무지 A처럼 꼭 필요한 이야기들을 정리해놓을 수 없었을 것 같다.


다른 한편으로는 뇌사, 호스피스, 존엄사, 연명치료 같은 키워드에 대해 적합한 배경지식을 갖고있지 않다는 점도 고려해봐야 한다. 내 경우에 <숨결이 바람될 때>나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같은 책을 읽으며 그나마 배경지식을 조금 가지고 있지만, 부모님이 연명치료의 개념을 잘 이해하고 계실지, 잘 모르겠다. (물론 이 주제로 이야기를 안 해 봐서 그렇지, 어쩌면 나보다 더 잘 아실수도 있다. 주변 사람들의 죽음을 나보다 많이 지켜보셨을테니까.)


어쨌든, 죽음에 대한 결정은 정말 어려운 것인데, 뇌사가 무엇이고 연명치료가 무엇인지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않은 채로 그 상황이 닥치기도 전에 미리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아, 어렵다.



내가 일주일 뒤 죽는다면


다들 생각에 잠겨있는데, 오늘의 리더 B가 지혜롭게 다음 질문을 던져주었다. 내가 일주일 뒤 죽는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가?


멤버 B는 전 세계 각지에 떨어져 있어 지금은 예전처럼 가깝게 지내기 어려운 과거의 인연들을 찾아 가 보고 싶다고 했다. 일주일 뒤 죽는다거나 하는 무거운 이야기는 빼고, 그냥 그간 생각처럼 안 됐던 인연의 타래를 정리한 후에 떠나고 싶다고.


멤버 C는 지금 자가격리중이다. 지난 2년 간 중국에서 지내다가 한국 부모님 집으로 돌아온 지 딱 2주. 딱 이번주 모임이 격리 마지막날이었다. 줄곧 부모님에게서 독립해 자취를 하다가, 중국에서 2년을 보내고 돌아온 탓에, 부모님 집에 있는 C의 방이 C에게는 그다지 익숙한 공간이 아니었다. 그간 부모님도 그간 몇 차례 이사를 했고, 그때마다 C의 물건은 그냥 Ctrl+C, Ctrl+V  되었다.


몇년만에 열어보니 입지 않는 옷, 읽지 않을 책들이 많아 격리기간을 틈타 정리 했다고 한다. 정리를 하면서 묘하게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다고. 죽음은 누구에게나 예기치 않은 순간 찾아오는 것인데, C가 생각하기에 그 죽음이 지금 이 순간 찾아온다면, 다른 때보다는 조금 더 잘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B의 이야기도, C의 이야기도 다 이해가 됐다. 죽음을 앞두고 나의 삶을 정리하고 싶은 마음으로 이해했다. 나의 죽음 이후에도 누군가의 기억에 남아있을 나의 모습을 정리하는 것, 그리고 내 삶의 궤적이 담긴 소지품을 내 나름대로 판단해 정리하는 것. 죽음을 피할 수 없지만, 죽음을 앞둔 일주일의 짧은 시간 만이라도 내 삶에 통제권을 행사할 수 있다면, 그 통제권을 어떻게 사용하겠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각자의 대답일 것이다.



죽음 뒤에 남겨진 사람들


죽음. 삶의 끝. 그러나 누군가의 죽음 뒤에 남겨진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이 마음이 아파서 뭐라고 쓸 말을 못 찾겠다. 죽음 뒤에 남겨진 사람들의 마음도 다 그렇지 않을까. 장례식장에서 꺼이꺼이 통곡을 하는 상주의 마음 같은 것.


A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꺼냈다. 미국에 히어애프터(Hearafter)라는 스타트업이 있다고 한다. 임종을 앞둔 사람의 기억과 목소리를 데이터로 옮긴 다음, 대화형 인공지능에 주입시켜 챗봇을 만드는 것이다. 창립자 제임스 블라호스가 아버지의 죽음을 앞두고 만든 '대드봇(Datbot)'을 모델로 했다고. 


선데이수는 기술에 대한 이야기를 좋아하지만, 정작 기술이 인간의 영역을 대체하려는 시도에는 저항감을 갖는 편이다. 히어애프터 이야기를 듣고도 소름이 끼쳤다. 아버지를 기억하고 싶은 마음이야 잘 알겠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흐려지는 것 역시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특혜 아닌가. 대드봇은 봇일뿐, 아버지가 아니다.


...하지만.


대드봇을 만들어서라도 아버지의 기억을 붙잡아두고 싶은 창립자의 마음도 이해가 된다. 정말 미래에 기술이 충분히 발전해서 히어애프터 서비스의 접근성이 높아진다면, 나 또는 나와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앞두고 그 서비스를 찾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나는 이런 장례식을 원한다.


장례식장은 참 어둡다. 상주가 검은옷을 입고 곡을 한다. 향을 피우고, 절을 하고, 형식적인 인사를 주고받은 후 플라스틱 그릇에 든 육개장을 나눠먹는다.


장례식장까지 시간을 내 찾아와주시는 분들은 망자 본인이든, 망자의 가족이든 그 죽음과 관련된 누군가에게 위로와 추모의 마음을 표현하러 온 것일테다. 그러나 조객(弔客) 입장에서 경험한 바로는 망자의 가족을 위로하고자 장례식장에 갔다가 정작 경황이 없어 제대로 인사를 못 하고 나오는 경우도 있다. 뭐 그렇다.


이런 게 내가 원하는 추모의 모습이 맞는가.


선데이수도 장례식에 대한 회의주의에 깊이 공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혼상제의 리츄얼은 그냥 한국사회에서 정해진 절차에 따르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 내가 죽고 나서까지 남겨진 사람들에게 나의 별난 부탁을 들어주는 수고를 끼치고 싶지 않다. 상조회사들의 장삿속(?)이 좀 얄밉더라도, 뭐 어쩌겠는가. 어차피 추모의 마음은 형식과 무관하게 내가 살아 온 삶의 궤적을 반영할 거라고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한다. 코로나 이후 장례식의 모습은 코로나 이전 장례식의 모습과는 많이 달라져 있지 않을까? 그러니까, 내가 굳이 별난 요청을 하지 않아도, 코로나 이후 온라인으로 옮겨가는 사회의 변화가 자연스럽게 장례식의 리츄얼도 바뀌어가지 않을까? 라는.


일례로 요즘은 부고와 함께 부의금을 보낼 수 있는 계좌정보를 적어 보내는 경우도 생겼다고 한다. "장례식장에 가기는 어려운데, 부의금이라도 송금할 방법이 없을까?"라는 생각, 누구나 한번쯤 해보시지 않았나요. 그동안은 "그건 좀 아니지"의 터부 때문에 번거로워도 조문 가는 친구를 수소문해서 현금봉투를 들려보냈다. 그 미묘하게 불편한 매듭이 코로나를 계기로 풀렸다.


...그러나 관습과 형식을 떠난 의식(儀式)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지난 7년 간 함께해 온 독서모임의 수다를 전하는 매거진 <일요일엔 책을>, 15번째 포스팅을 마친다. 줄곧 쓰다보니 코로나 또는 테크 라는 키워드가 빠지는 적이 없는 것 같다. 우리의 내일을 결정지을 메가 트렌드이기도 하니 어쩔 수 없다고는 생각한다. 다음주는 <증강현실>을 읽고 본격적으로 미래기술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1. 어느 독서모임 이야기 : 독서모임 소개글. 우리는 7년째 일주일에 한 권 책을 같이 읽고 있어요!
2. 위험에 대한 안테나, 이제는 내리고 싶다. : <아픔이 길이 되려면> 1편, 코로나 시대와 건강
3. 연결되기 위해 기꺼이 돈을 지불하는 사람들 : <아픔이 길이 되려면> 2편, 연결될수록 오래 사는가?
4. 나는 절대 저렇게 추하게 늙지 말아야지 : 동명의 소설을 읽고, 트렌드에 대해 이야기했어요.
5. 돈이 대체 뭐길래? : <50대 사건으로 보는 돈의 역사>와, 우리 주변의 돈에 대한 이야기.
6. 모두가 책 안 읽어온 날의 독서모임 : 알베르 까뮈의 <최초의 인간>을 읽으려다가 그만...
7. 기록하는 삶에 대하여 : <기록의 쓸모>, 기록을 대하는 각자의 자세를 나누다!
8. 30대에 꿈에 대해 이야기하려니 : <데뷔의 순간>과 빛이 바랜 나의 꿈...
9. 파이어족, 젊을 때 불꽃같이 벌어서 은퇴하자고? : <파이낸셜 프리덤>, 경제적 자유를 꿈꾸며!
10. 그린 뉴딜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 <글로벌 그린 뉴딜>과 그린 뉴딜 정책
11. 인문학, 이제는 조금 식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요… : <천년의 수업>을 읽고
12. 우리는 어떤 공간에서 편안함을 느낄까 : <공간이 만든 공간> 1편, 코로나가 바꿀 공간
13. 가상공간 속 나에게 투자한다 : <공간이 만든 공간> 2편, 가상현실과 공간
14. 인풋을 넘어 아웃풋으로 : <드디어 팔리기 시작했다>와 브런치 작가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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