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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데이수 Jun 14. 2020

어느 독서모임 이야기

한국에서부터 쭉 함께 해 오던 독서모임에 다시 합류할 수 있게 되었다. 코로나 이후 대면모임이 좀 꺼림칙해지고, 차차 모임을 쉬는 날이 늘어나던 차에, 누군가 화상 독서모임을 해 보자고 제안한 덕분이다. 일요일 아침 10시, 나는 어린왕자를 기다리는 여우처럼 Webex 회의실에 접속해 회의가 언제 열리나 오매불망 기다렸다. 이윽고 미국과 독일, 중국, 일본, 그리고 한국의 각지에 흩어져 지내던 반가운 멤버들이 화면에 나타났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2013년부터 만으로 7년을 함께 해 온 독서모임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독서모임과의 만남


2013년이 내게 어떤 해였더라. 불확실한 진로, 휴학하느라 알게 모르게 소원해진 인간관계, 머릿속으로는 이런저런 고민에 빠져 있으면서 정작 하루종일 미드만 켜 놓고 시간을 보내던 때다. 스펙업 카페를 유랑하다 한 독서모임 홍보글을 발견했다.


그 글은 지금 생각해도 스펙업 카페랑은 안 어울렸다. 게시판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게 우스울 정도로 긴 글이었다. 삼 년 넘게 모임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 일주일에 한 권씩 책을 읽고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다는 점 등등을 적어놓고 그때까지 읽었던 책들의 리스트를 쭉 붙여두었다.


이상한 리스트였다. 놀랄만큼 일관성이 없다는 점에서 그랬다. 어느 날은 200페이지도 채 안 되는 가벼운 에세이를 읽고, 어느 날은 마키아밸리의 군주론 같은 어마어마한 책을 읽는다고 했다. 대체 이 집단은 뭐 하는 집단이지. 이 일관성 없는 다양함. 내 앞에 펼쳐진 세상의 여러 면모를 뜯어보고 싶은 호기심. 묘한 동질감이 느껴졌다.


바로 게시자에게 메일을 보냈다. 게시자가 그 독서모임에 대해 우스울만큼 진지하게 소개해준 것처럼, 나도 쑥쓰러움을 무릅쓰고 나에 대해 진지하게 소개하려고 노력했다. 책 읽는 것,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는 건 나의 아이덴티티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였으니 있는 그대로를 풀어놓는 셈이 됐다. 대화란 그런 것이다. 상대방이 자신을 얼마나 보여주는지에 따라서, 나도 나를 얼마나 보여줄지를 결정하게 된다.


그렇게, 매주 일요일 10시에 약속이 생겼다.



일주일에 한 권 읽고 만나기


우리 모임은 일주일에 한 명씩 리더를 정한다. 리더는 그 주에 읽을 책을 정하고, 우리가 만날 장소도 정할 수 있다. 책과 장소를 정하는 데 있어서는 리더에게 전적으로 자율성을 준다. 음, 명목상으로는 그렇다. 실제로는 리더 혼자만 좋자고 재미없는 책을 고르거나, 너무 한쪽으로 치우친 장소를 고르면 그 날 모임 참석률이 저조해지는 문제가 있다. 리더가 제안하고, 다른 멤버들이 불평하는 과정에서 나름대로 타협점을 찾아간다.


리더가 분량이 많거나 딱딱한 내용의 책을 선정할 때가 있다. 왜 굳이 그런 짓을 하는가. 최근에 꽂힌 주제를 다루는 책이라서, 신문이나 TV에 자주 언급되는 책이라서, 등등. 이유는 다양하다. 이런 경우에 리더는 이 책을 꼭 읽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새삼 구구절절 설명을 한다. 그래도 반응이 마땅치 않으면 반만 읽고 와도 된다는 제안을 한다. 정 이런걸로 설득이 안 되면 책은 좀 어렵겠지만 장소를 핫플레이스로 선정하겠다거나, 모임 끝나고 맛집에 같이 가자는 걸로 꼬시기도 한다. 그 줄다리기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일주일에 한 번이면 꽤 빈도가 잦은 편인데, 출석률은 어떻게 관리하는가. 이것도 물론 중요한 문제다. 우리가 다들 학생일때는 지각하면 얼마, 책 안 읽으면 얼마 라는 식으로 벌금을 매겨서 쌓아두었다가 일년에 한두번 연극도 보고 맛있는 것도 먹으러 가고 했다. 시간이 지나 다들 직장인이 되고 보니 그 정도 돈으로는 인센티브가 되지 않았다.


나중에는 연대감이랄까, 뭐 그런 마음으로 움직였다. 내 경우에는 그랬다. 나름 리더라고 일요일 아침부터 부지런히 나온 누군가가 허탕치고 집에 가는 일이 없었으면 했다. 우리 모두 각자의 사정이 있으니 때로는 그게 더 힘들고 덜 힘들고 했지만, 서로가 서로의 빈 자리를 메꿔준다는 생각으로 말이다.



대화에 대하여


얼마 전에는 시어도어 젤딘의 <대화에 대하여>라는 책을 같이 읽었다. 작가는 대화에 대해 탐구하는 연구자다. 그는 낯선 사람들 간의 지적인 교류를 돕는 비영리단체를 운영하는 행동가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는 대화의 만찬(Conversation dinner)라는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부분이 인상깊었다. 이 특별한 만찬은 낯선 사람과 테이블에 마주앉는 데서 시작한다. 만찬이라고는 하지만, 맛있는 요리 대신 스물 네 가지 질문이 적힌 '대화의 메뉴'를 건네준다. 두 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자신의 삶과 생각에 대한 질문에 답하고, 그 답에 대한 생각을 나누면서 대화를 이어나간다.


이 아이디어에 대해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겠지만, 내 경우에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참 대화가 고프구나, 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사실 대화라는 게, 말할 수 있는 입만 있으면, 그리고 요즘은 글을 쓸 수 있는 키보드만 있으면 이 세상 누구하고도 할 수 있는 것인데, 정작 누군가와 기억에 남을 만한 대화를 하기는 쉽지 않다.


당장 나만 해도 지난 한달 간 나눈 대화 중 특별히 인상깊었던 대화를 떠올려보라면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연인과 매일 카카오톡도 하고 전화도 한다. 분명히 대화는 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 뭐해? 저녁은 뭐 먹었어? 이런 이야기를 넘어 서서, 어떤 문제를 놓고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고민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대화로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얼마나 되는지 생각해보면 글쎄, 드물다고 답할수밖에. 마음을 털어놓고 대화할 수 있었던 날이면 서로와 조금 더 가까워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만큼 드물지만, 소중한 일이다.


그래서 독서모임에 가나보다. 책이라는 공통된 주제를 매개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 날 리더가 책을 읽으며 생각해 볼 만한 질문들을 몇 개 준비해서 모임을 진행한다. 대체로 책에 대한 감상을 물으면서 시작해서는, 책에서 던지는 질문들에 대해 나름대로의 답을 찾아가면서 이야기를 진행한다.


사실 도입부에서 책에 대한 감상을 이야기할 때는 '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니까 왠지 좀 등받이에 기대어 앉아있는 것 처럼 몰입도가 높지 않다. 하지만 책이 던지는 질문들에 대해 '내'가 생각하는 답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하게 되면 너 나 할 것 없이 묘하게 서로에게 다가가는 분위기가 된다. 때로는 서로 의견이 비슷한 걸 발견하고 공감하기도 하고, 때로는 나와 생각이 너무나도 다른 데 놀라며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캐묻기도 한다.


솔직히 각자 직장 다니면서 일주일에 한 권 다 읽기가 쉽지 않으니 책 다 읽었는지 물었을 때 진도율이 평균적으로 50% 정도 된다. 우리는 연구자도 평론자도 아니고 그냥 책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들이니까 토론의 어느 지점부터는 책보다는 우리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그러니 책을 안 읽어도 얼마든지 대화에 참여할 수 있다. 책은 대화의 재료가 된다.



그래서, 화상 독서모임은 어땠냐면


코로나가 전 지구를 강타한 후로 내 삶에도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을 활용하는 비중이 상당히 높아졌다. 업무적으로도 그렇고, 개인적으로도 그렇다. 개인적인 사례만 적어보면, 일주일에 두 번 Skype로 한국에 있는 선생님께 외국어 과외를 받고, 일주일에 한 번 Zoom으로 미국에 있는 튜터와 화상영어를 하고, 일주일에 한 번 Webex로 독서모임을 하고 있다.


내 경험상으로는 각각의 커뮤니케이션 툴 사이에 유의미한 차이는 없다. 영상과 음성 모두 클리어하게 들리고, 사용법이나 UI도 직관적으로 잘 짜여져 있어서 따로 매뉴얼 찾아보지 않고도 금세 적응할 수 있다. 그보다는 커뮤니케이션의 형태가 달라서 걱정은 됐다. 화상영어나 외국어 과외는 나랑 선생님이랑 1대1로 대화를 나누면 된다. 독서모임은 다대다 커뮤니케이션이다. 우리는 다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인데, 화상으로도 서로 말하겠다고 사운드가 겹치면 어떡하지?


다행히 이 걱정은 기우로 끝났다.


만약 우리가 처음 만나는 사이였다면 화상 독서모임이 이만큼 만족스럽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서로에 대한 배려를 익히려면 서로에 대해 알아야 하는데, 그 알아가는 과정에서 언어적 소통만으로는 전달되지 않는 대화의 공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가령 나 혼자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하고 있으면 그 자리의 공기가 미묘하게 바뀌는 느낌이 있다. 언어적으로도, 심지어 비언어적으로도 아무 시그널이 없는데, 왠지 공기가 싸해지는 그 느낌. 그걸 몇 번 겪다보면 아, 이렇게 하면 다른 사람들이 불편해지는구나, 라는 깨달음이 온다.


내 생각에 우리는 지난 7년 동안 모임을 유지하면서 공기 없이도 대화의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는 안테나를 손에 넣은 것 같다. 나 혼자 너무 많이 발언하고 있다 싶으면 적당히 다른 사람에게 발언권을 넘기고, 주제를 벗어나는 대화 흐름이 감지되면 누군가 다시 대화의 방향을 주제에 맞게 돌려놓고, 발언 타이밍이 겹치면 적당히 양보하고, 이렇게 서로를 배려하며 대화할 수 있었다.


화상으로 진행하는 데는 오히려 장점이 더 많았다. 한국에 있는 멤버들도 주말 아침부터 바쁘게 준비해서 왔다갔다 하는 부담이 없고, (나를 포함해서) 그간 줄곧 대화를 그리워하며 지내던 해외에 있는 멤버들도 오랜만에 모임에 참여할 수 있었다.





화상 독서모임에 참여한지도 어느덧 한 달이 다 되어간다. 부디 한국에 있는 멤버들도 화상 독서모임을 마음에 들어 해 주기를. 근 2년여만에 독서모임에 참여할 수 있게 되어 주말이 유독 기다려진다. 앞으로도 종종 독서모임에서 기억에 남는 대화를 하게 된 날이면 그 대화를 내 관점으로 정리해서 브런치에 글을 올려보려고 한다. 응원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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