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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데이수 Jun 21. 2020

위험에 대한 안테나, 이제는 내리고 싶다.

독서모임에서 <아픔이 길이 되려면>을 같이 읽고 나눈 이야기

<어느 독서모임 이야기> 포스팅에 이어, 독서모임에서 나눈 이야기를 연재한다. (이전 포스팅 링크)



오늘 같이 읽은 책은 차별경험이나 고용불안 같은 사회적 요인이 사회적 약자의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연구하는 사회역학자 김승섭 작가의 저서인 <아픔이 길이 되려면>이다.





코로나바이러스와 신속대응


21세기 이후 세계보건기구(WHO)가 어떤 질병의 확산상황을 팬데믹으로 정의한 건 이번이 세 번째다. 2003년의 SARS, 2009년의 조류독감(H1N1), 그리고 2020년의 코로나바이러스다. WHO가 팬데믹 상황을 종료하기 전까지 사망자수를 보면 SARS는 약 1천명, 조류독감은 약 1만8천명이었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아직 현재진행형이며, 현재까지 이미 46만명 이상이 사망하는 결과를 불러왔다.


팬데믹이 장기화됨에 따라 3월 중순까지 팬데믹 선언을 미룬 세계보건기구, 마스크 착용과 사회적 거리두기 같은 감염병 예방 수칙을 신속하게 적용하지 않은 각국 정부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런데 과연, 국제사회가 이 바이러스의 위험성을 빠르게 받아들이고 적극적인 대응에 나섰다면 문제가 달라졌을까? 우리의 건강을 잠재적으로 위협하는 요인을 발견했을 때, "유해하다"고 규정하고 행동에 나서는 데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 과학적 데이터가 충분히 쌓일때까지 기다려보자고 말해도 되나? 반면, 과학적 데이터가 충분히 쌓이지도 않았는데 섣불리 행동에 나서도 되나?


<아픔이 길이 되려면>은 코로나바이러스 사태 한참 전에 출간된 책이지만, 공중보건 관점에서 중요한 결정을 어떻게 내려야 할지에 대해 여러가지 예시들을 들어가며 다루고 있는 부분이 있다. (담배, 벤젠, 가습기살균제 등 화학물질의 유해성을 어느 시점에 어떤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이다.)


공중보건에서 판단을 미루는 것은 여러 위험 요소들로부터 현재 영향을 받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는 결정을 뜻합니다. 적절한 데이터나 과학적 연구가 부족하다는 것을 핑계나 변명으로, 더 나아가 특정 입장을 옹호하기 위한 무기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과학적이면 다 옳은가?


과학적이라는 말에는 사실 가치판단이 들어있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일상속에서 과학적이라는 단어를 긍정적인 의미로 많이 활용한다.


정부는 과학적 근거에 기반해서 어떤 정책결정을 내렸다.


과학적이라는 말을 객관적 또는 합리적이라는 말로 바꾸어도 의미가 바뀌지 않는다. 신기한 문장이다.


마침 우리중에 화장품 업계에 종사하는 멤버가 있어서 화장품에 들어가는 특정성분이 유해성분으로 지정되는 과정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여러 실험을 통해 어떤 성분이 유해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왔을 때, 이 성분을 규제할 것인가 아니면 충분한 데이터가 쌓일 떄까지 기다릴 것인가. 당위적으로야 얼마든지 "조금이라도 우려가 있다면 금지해야지!"라고 말할 수 있지만, 사실 화학성분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게 어느 한쪽으로 잘라서 말하기가 어려운 부분이다보니, 현실에서는 어느 한쪽으로 결정하는 게 무조건 옳다고 말하기 어렵다.


이 때 업계 메이저 기업들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다. 이 말을 듣고 나는 거대 글로벌 기업에 대한 편견부터 떠올랐다. 유해성 우려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이 성분을 사용하겠다고 로비하는 악당 말이다.


실제로는 그런 건 아니라고 한다. 로레알 같은 거대 화장품 기업들은 유해성이 우려되는 성분에 대해 대체성분을 찾는 것은 물론, 특정 성분의 유해성 등등 화장품 성분과 관련한 연구에 누구보다 많은 자본을 투자하고 있다. 특정성분에 대한 규제 이야기가 나오면, 기업들은 현재까지의 연구를 통해 문제가 되는 그 성분을 대체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지에 대한 가능성을 제시한다고 한다. 대체성분 개발이 가능하다면, 그 성분을 쓰지 말자는 쪽으로 결론이 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하긴, 납득이 안 되는 것도 아니다. 대체성분도 없는데다가, 유해성이 확실하게 입증되지도 않았는데 무조건 규제부터 한다고 능사는 아니니까.


이렇게 되면, 영화를 보러 갔는데 악당을 시원하게 욕할 수 없어서 찝찝한 기분이 드는 것처럼,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에 대해 시원하게 대답을 정할 수 없어 답답한 기분이 든다. 그래도 우리 모임에서는 포기하지 않고 이야기를 이어간다.



때로는 정부가 아니라, 기업과 기업이 서로를 견제하기도 한다.


화장품 업계의 사례에서는 화학성분의 유해성에 대한 기준을 정하는 공적부문과, 화장품을 만들어 수익을 얻으려는 사적부문이 여러 정보와 영향을 주고받으며 규제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이번에는 누군가 자율주행 자동차 이야기를 꺼냈다. 자율주행 자동차 안에 탑재된 솔루션이 아무리 똑똑해도 사고확률이 0%가 될 수는 없다. 자율주행 자동차가 도로에 등장하면 분명 사람이 운전하는 자동차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영향을 법과 행정의 영역에서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한 연구는 누가 하지? 자동차 회사가 하나? 그럼 자동차 회사에만 좋은 방향으로 결론이 나지 않을까?


이 때 누군가 보험사에서 하면 되죠, 라고 말해서 무릎을 쳤다.

그렇구나. 보험사에서 하면 되는구나.


화장품 업계와 자동차 업계가 어떻게 다를까. 나도 두 업계에 대해 잘 모르니까 설명하기가 어렵지만, 어쨌든 자동차 업계에는 자동차 제조사뿐 아니라 보험사 등 수많은 이해관계 집단이 있어서 그 집단이 서로 견제하며 새로운 표준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늘 법과 규제에 대한 이슈는 정부와 기업 을 두 축으로 놓고 생각해왔는데, 기업과 기업이 서로를 견제할 수도 있다는 발상이 내게는 아주 신선하게 느껴졌다.


한편, 자동차 제조사와 보험사가 계속 별개의 이해집단으로 존재하면 좋겠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테슬라는 작년 테슬라 소유주를 대상으로 자동차보험을 직접 판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기사 링크) 자사 생산 차량에 대해 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있어서 보험을 더 정교하게 설계할 수 있고, 그에 따라 소비자 가격도 낮춰줄 수 있다는 논리다.


기업 입장에서는 당연히 귀찮은 외부 이해관계자들을 상대하느니 그냥 사내에서 모든 걸 다 해결해버리는 게 효율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하지만 자동차 회사와 보험사가 자율주행 자동차의 영향에 대해 서로 다른 관점의 연구를 주고받으면서 견제할 수 있어서 좋다는 애기를 하고 바로 이 이야기를 들으니 음,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코로나와 해고, 어떤 게 더 해로울까?


지금까지는 코로나바이러스를 위험으로 정의하는 데 어떤 과학적 근거가 필요할지에 대한 논의를 다뤘다. 관점을 조금 바꿔서, 코로나바이러스가 우리 사회에 주는 영향을 저울질 해 볼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에 대해서도 일부 소개해보려고 한다.


해외 지사가 많은 회사에 다니는 한 멤버가 인도 지사에서 들은 이야기를 공유해주었다. 인도는 강력한 봉쇄정책을 실시하고 있어서 길거리엔 나가면 경찰이 몽둥이로 때려서 집에 돌려보내는데, 빈민가에서는 경찰력이 안 먹히더라는 이야기였다. 빈민들 입장에서는 당장 하루 먹고 살 돈이 없어서 어디든 나가서 일해야 하는데, 경찰이 그걸 막으니, 경찰이 때리든 말든 또는 경찰을 때려서라도 외출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인도만의 문제가 아니다. 항공사, 여행숙박업은 물론, 각종 서비스업이나 요식업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코로나바이러스와 그로 인한 봉쇄정책, 사회적 거리두기 등의 영향으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이 여파로 직장에서 해고당한 사람들 입장에서 코로나가 더 무서울까, 해고가 더 무서울까?


이 책에도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의 건강 문제를 연구한 데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해고당한 이들은 우울증이나 자살은 물론, 심장병 같은 신체질환에도 상당히 취약했다고 한다.


다만, 코로나바이러스가 신체에 주는 영향이 눈에 보이는 증상 - 기침, 고열 등 - 으로 나타나는 것과 달리 해고노동자들의 신체에 나타나는 영향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실제로 영향이 나타나기까지 시간도 상당히 걸려서 우리의 레이더망 안에 들어오기도 어렵다.


이 이야기에서, 순식간에 화제가 바뀌어 우리는 위험에 대한 예민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위험에 대한 안테나, 이제는 내리고 싶다.


일본 정부가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긴급사태를 해제하겠다고 발표한지도 어언 한달이 지났다. 여전히 도쿄는 하루에 3~40명 이상의 확진자 수를 기록하고 있지만, 주말 거리에 쏟아져 나온 사람들을 보면 코로나바이러스가 현재진행형이라는 게 별로 실감이 나지 않는다. 팬데믹 초기에 우리는 모두 위험에 대한 안테나를 최대로 세우고 살아왔지만,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더 이상은 안테나를 세우고 싶지 않아졌는지도 모르겠다.


관련해서, 누군가 KBS의 <위기탈출 넘버원> 얘기를 했다. <위기탈출 넘버원> 속 세상은 일상 속 위험을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극단적인 사례다. 그 프로그램을 보고 있으면 우리 주변에 있는 모든 게 다 위험해보인다. 길을 걷다가도 죽고, 화장실에서 샤워하다가도 죽고, 설거지하다가도 죽는다.


프로그램 속 에피소드들은 다 실제사례를 기반으로 만든거라고 하니 그 프로그램에서 제시하는 위험에는 다 근거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모든 사례들을 기억하고 조심하며 사는 게 덜 위험해지는 길일까? 아, 잘 모르겠다. 위험보다 위험을 경계하는 데서 오는 스트레스로 건강이 악화될지 모르겠다.





두 시간 동안 참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중에서도 오늘은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해 이야기한 부분만 글로 정리해서 올려본다. 그 외에도 사람 사이의 연결이 어떻게 우리를 더 건강하게 해 주는지, 연결을 수익화하려는 시도인 각종 네트워크 서비스들이 과연 지속가능한 모델일지 등에 대해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내용을 다룬 포스팅을 관련글로 걸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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