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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데이수 Jun 21. 2020

연결되기 위해 기꺼이 돈을 지불하는 사람들

독서모임에서 <아픔이 길이 되려면>을 같이 읽고 나눈 이야기

독서모임에서 나눈 이야기를 글로 전하는 매거진 <일요일엔 책을>, 지난 포스팅(링크)에 이어 김승섭 작가의 <아픔이 길이 되려면>을 읽고 나눈 이야기를 소개한다.





연결될수록 오래 사는가?


<아픔이 길이 되려면>의 후반부 한 챕터에서 저자는 사회적 관계망이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연구의 역사를 소개해준다.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여러 연구 중에서도 특히 해외로 이주한 일본인들이 본토에 사는 일본인보다 심장병 발병률이 높다는 연구를 보고 좀 뭐랄까, 뜨끔했다. 당장 나부터가 해외거주중이다보니, 그 연구결과를 보고 해외거주 때문에 내 심장병 발병률이 높아진 게 아닐까 라는 불안감이 들어서였다.


이 연구에는 사족이 붙어있다. 캘리포니아에 이주한 일본인 안에서도 일본식 전통문화를 고수하는 집단이 서양식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집단에 비해 심장병 발병률이 낮다는 것이다. 사회적 관계망의 관점에서 보면, 다른 문화권에서 소수자로 살아가는 우리가 출신 문화권에의 연결을 끊지 않고 있는 게 우리 신체에는 긍정적인 영향으로 작용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마침 이번 모임에 참가한 멤버들은 해외거주와 사회적 관계망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딱 좋은 구성이었다. 6명 중 절반인 3명이 해외에 거주하고 있고, 나머지도 유학이나 한달살기 여행 등으로 해외거주와 유사한 상황을 경험해 본 적이 있었다.


해외에서 우리는 한국과의 연결을 유지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을까?



우리가 한식을 먹는 이유


미국 거주중인 A가 그 날 아침 김치찌개를 먹고 왔다고 고백(?)하면서 서두를 열었다.

앗, 일본에 사는 나도 부대찌개 먹고 왔는데.


사실 나도, 한국에서는 한식을 꼭 먹어야 한다는 생각을 안 했다. 부모님이 해 주시는 집밥을 먹고 나와서, 밖에서는 주로 한식 외의 음식을 사먹었다. 일식 중식 베트남식 멕시칸 등등. 일본생활 2년차, 지금 나는 집에서 밥 먹을 때 거의 3분의 2 이상의 비율로 한식을 선택하고 있다.


일본에는 맛있는 음식이 참 많다. 일식이 입에 안 맞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굳이 한식을 챙겨먹는 이유는, 그 음식에는 어렸을 때부터 한식을 먹으며 축적된 기억들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팬데믹 이후 국경 간 이동이 제한되어 한국에 가기 어려운 상황이 되자 더욱 한식이 내게 주는 심리적 안정감이 크게 느껴진다.


예를 들어 일본에서 맛있는 가츠동을 사 먹었다고 하자. 가츠동은 그냥 가츠동이다. 소스맛을 듬뿍 머금은 돈까스, 부들부들한 계란, 단맛이 날 때까지 볶은 양파와 밥. 맛있지만, 내게는 맛있다는 것 이상의 의미는 없다. 물론 지금부터 가츠동에 대한 추억을 만들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앞으로 새로 써 나가야 하는 영역이겠다. 하지만 내 과거에는 가츠동이 없다.


모임에 참석한 멤버들 중에는 해외거주 중 평소보다 한식을 더 찾게 되었다는 사람도 있고, 오히려 현지음식이 너무 잘 맞아서 한식을 굳이 찾지 않았다는 사람도 있다. 결국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다고 결론을 내야겠지만, 적어도 내 경우에는 내 뿌리가 있는 한국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기 위해 오늘도 김치 잔뜩 넣어서 오징어 김치부침개를 만들어 먹는다.



해외에서의 한국인 커뮤니티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한식에서 커뮤니티로 넘어갔다. 프랑스에서 생활한 경험이 있다는 멤버 B는 프랑스에서 한국인 유학생들끼리 모여 콜라 부어 찜닭도 만들어 먹고 하면서 서로 스트레스도 풀고 정보 공유도 했다는 이야기를 꺼내면서, 유학 갔으면 한국인끼리만 있지 말고 현지인들과 어울려야 한다는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을 던졌다.


아, 이건 참 어려운 문제다.


학교다닐 때 교과서에 세계화라든지, 뭐 이런 단어들이 등장하곤 했다. 옆에 반드시 사진이 함께 있었다. 우리 또래 아이들이 전 세계 다양한 인종 사람들에 둘러싸여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 말이다. 그 사진의 메시지는 뻔하다. 세계화 시대에 세계로 진출했다면 현지화 되어야 한다. 로마에 갔으면 로마법을 따라라.


나도 좀 더 어렸을 때는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유럽으로 교환학생 가서도, 일본에서 직장생활 하면서도 한국어로 애기하는 게 훨씬 편하니까 한국 친구들과 자주 만나게 되는데, 그럴떄면 "내가 유럽/일본 사회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는 것일까?"라는 모종의 죄책감이 따라온다.


(멤버 C가 내 고민을 한 마디로 요약해주었다. "가성비를 뽑아야 하니까".)


중국인 커뮤니티는 어느 나라에서든 차이나 타운을 만들고 그 안에서 서로 돕기로 유명하다. 누구한테 아주 사소한 부탁이라도 해야 할 때 "저도 중국사람인데요"라고 운을 뗄 수 있다는 점에서 부러운 포인트다. 멤버 A에 따르면, 중국은 중국이 세상에서 제일 잘났다고 믿는 중화사상을 가진 나라다. 다르게 말하면, 로마에 가도 로마법 말고 중국법을 따르겠다는 자신감으로 볼 수 있다. 그러니까 굳이 로마인들이랑 어울릴 필요 없이 차이나 타운을 만들고 차이나 타운만의 규칙을 만들어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해외에서의 한국인 커뮤니티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이건 사실 답이 없는 문제다. 해외거주한다고 100% 현지인들하고만 어울리겠다고 콧대 세우고 다니는 것도 좀 우스운 일이고, 그렇다고 한국인들과 보내는 시간에만 익숙해지면 본래의 목적(학업, 커리어 개발 등)을 이루는 데 지장이 있다. 결국 어느 한쪽이 옳다고 고집하지 말고, 양쪽을 조금씩 섞어 타협점을 찾아보자는 이야기를 하고 다음 주제로 넘어가기로 했다.


해외에 있는 우리들은 사람과 사람을 잇는 연결을 찾아 한식도 먹고, 한국인 커뮤니티와도 교류하고 있다. 그러나 연결에의 욕구는 비단 해외거주자만 가지고 있는 고민이 아니다. 누구나 연결되고 싶다는 니즈를 가지고 있다. 누군가는 이 니즈를 포착해 수익화 모델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예를 들면, 단순한 오피스 대여를 넘어 업계트렌드를 공유하는 네트워크 플랫폼 서비스로 거듭나겠다는 위워크(그리고 비슷한 포맷의 다른 서비스들), 독서모임을 비즈니스 관점에서 새롭게 제안해보겠다는 트레바리 등이다.


그렇다면, 커뮤니티를 수익화하려는 일련의 시도들은 과연 지속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이 될 수 있을까?



연결되기 위해 기꺼이 돈을 지불하는 사람들


우리 모임에는 직간접적으로 여러 커뮤니티 서비스에의 참여 경험을 나눌 수 있는 멤버들이 많아서 이 주제로 이야기할 게 꽤 있었다. 우리가 다 공감한 포인트가 있다면, 역시 커뮤니티 서비스의 성패를 좌우하는 키는 그 커뮤니티에 어떤 사람들이 참여하느냐는 데 있다는 거였다.


폐쇄성을 유지하고, 높은 입장료를 받아서 수익을 유지한다.

외부에서 멤버를 유입하고, 박리다매로 수익을 낸다.


이 중 어떤 전략을 선택할지는 서비스 운영자의 판단이고, 어느쪽을 선택하든 장단점은 있을 것이다. 폐쇄성을 유지하면 고인물이 되고, 멤버 유입을 활짝 열면 커뮤니티의 아이덴티티와 안 맞는 사람이 섞여 들어올 수 있다는 점에서다. 어쨌든 기업이 크려면 두 번째 전략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그 과정에서 초기의 충성고객을 잃는 건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그런데 그렇게 새로 유입된 멤버들이 계속 커뮤니티 서비스를 구입하려고 할까?


이런 질문을 하게 되는 이유는, 애초에 커뮤니티 서비스가 홍보했던 가치는 초기 멤버들의 아이덴티티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을 거기 때문이다. 가령, 우리 커뮤니티에 가입하시면 스타트업 창업자들과 자유롭게 네트워크를 형성하실 수 있어요 라고 홍보한 커뮤니티가 있다고 하자. 초기 멤버인 스타트업 창업자들은 멤버 유입으로 분위기가 변한 데 실망해 떠나가버리고, 정작 유입된 멤버들은 스타트업 창업자 모임에서 스타트업 창업자를 못 찾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뜻이다.


사실 이런 문제는 커뮤니티 서비스 말고도 많은 기업들이 고민하는 문제일 거라고는 생각한다. 소비자 입장에서 커뮤니티 서비스가 조금 더 뭐랄까, 걱정되는 이유는, 커뮤니티 서비스가 제공하려는 가치가 손에 잡히지 않는 무언가이기 떄문이다.


마트에서 수박을 샀다. 수박을 집에 가지고 왔다.

동영상 편집 프로그램을 샀다. 처음에 약속된 기능이 들어있다. 내 실력과 노력 여하에 따라 튜토리얼에 나오는 만큼의 퀄리티로는 영상을 만들지 못할 수도 있지만, 어쨌든 영상을 만들 수 있다.

커뮤니티 서비스에 가입했다. 모임에 참여했지만,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달랐다.


정확히 뭐라고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각각의 경우에 느끼는 실망감의 정도가 다를 거라고 생각하고, 커뮤니티 서비스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려면 이 실망한 사람들을 어떻게 다시 서비스로 끌어들일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마지막으로 멤버 A가 또 생각할 만한 포인트를 던져주었다. 우리는 커뮤니티 서비스가 최근에 등장한 트렌드라고만 생각하지만, 사실 사람과 사람의 연결을 돕는 시도는 인류 역사에서 아주 흔하게 발견할 수 있다. 고대 그리스의 포럼 문화, 프랑스의 살롱 문화 등등.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혼자 있으면 고독하다. 이 사실이 변하지 않는 한 어떤 형태로든 연결되기 위한 시도는 계속 존재할 것이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누군가는 연결의 가치를 시장에 적용할 방법을 계속 찾을 것이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을 읽고 나눈 이야기를 두 편의 포스팅으로 정리해보았다. 전혀 무겁게 쓰여진 책은 아닌데, 아무래도 이 책이 다루는 주제들이 건강과 공중보건에 대한 이슈들이다보니 좀 딱딱한 주제로 이야기가 오갔던 것 같다. 우리는 서로 다른 환경과 분야에서 서로 다른 경험을 가지고 있다. 오늘도 멤버들과 함께 여러 관점을 나눌 수 있어서 행복했다.


일요일엔 책을, 다음에 또 찾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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