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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데이수 Jul 01. 2020

나는 절대 저렇게 추하게 늙지 말아야지

요즘 <놀면 뭐하니>에는 효리언니, 아니 린다G가 등장한다. 효리언니는 진짜 대단하다. 어쩌면 저렇게 시간이 지나도 항상 쿨할 수 있지? 반면 비는 진짜 시간이 지나도 항상 멋있고 매사에 열심인데, 진짜, 감 없다. 괜히 깡 같은 노래를 낸 게 아니라는 생각을 늘 한다.


지난주 방송분에 두 사람의 차이를 잘 보여주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효리언니가 몇주 전 방송분에서 Downtown baby라는 팝송을 커버했는데, 그 노래가 2년 반만에 차트 역주행을 했다. 그걸 듣고 비가 신나서 이런 소리를 한다. 나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 일주일에 한 번씩 이효리의 차트라고, 빌보드 차트처럼 해 보면 어떨까?


그러자 효리언니가 시원하게 맞받아친다.


그런 식으로 하면 안 돼
우연히, 아무 사심 없이 했을 때 되는거지



난 두 가지 이유로 감탄했다. 하나는 직장상사처럼 눈치없이 올드한 소리를 던지는 비한테 당당하게 면박주는 걸 보는 데서 오는 카타르시스. (나도 직장상사에게 거침없이 내 생각을 이야기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다른 하나는 어느덧 40대에 접어든 효리언니가 여전히 내 마음을 나보다 더 잘 알고 불편한 포인트를 콕 집어주는 데서 오는 놀라움이었다.


효리언니는 왜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쿨할까?





효리언니 같은 40대가 되고 싶다


이번주 독서모임에서는 심너울이 쓴 SF 소설을 주제로 이야기했다. 표지에 웬 생선이 둥둥 떠다니는데, 어딘지 부패의 기운을 풍기는 빨간 눈을 하고 있다. 제목 폰트도 잘 골랐다. 생선으로 상징되는 늙은이를 칼로 푹푹 찌르는 것 같은 뾰족하고 불안한 모양이다.


이번주 모임을 마치고 새삼 뭐랄까, 그간 시간이 많이도 흘렀구나 느꼈다. 우리는 20대 중후반일 때 서로를 만나서 30대 초중반이 되었다. 예전에는 모임에서 꼰대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나 말고 제3의 누군가를 이야기한다는 데 대해 컨센서스가 있었는데, 이제는 그렇게 맘 편히 떨어져 있을 수 없게 되었다. 나뿐 아니라 우리 모임에서 직장생활을 진로로 선택한 사람들은 다 그간 쥬니어 딱지는 시원하게 떼어버리고, 라떼와는 또 좀 다른 신입사원을 보며 라떼는 말이야, 이 말이 튀어나오지 않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더 효리언니 생각이 났나보다. 우리가 어릴 때 언니는 이미 핑클이었고, 지금은 어느덧 40대에 접어들었는데, 앞으로 봐도 뒤로 봐도 꼰대처럼 안 보이고 여전히 우리들과 이야기할 수 있게 열려있으니까.


40대의 우리들이 추하게 늙지 않으려면,

효리언니처럼 쿨할 수 있으려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할까?






각자의 이유


멤버 중 누군가가 이런 말을 해서 모두를 슬프게 했다. 어차피 대중문화의 메인스트림은 2~30대가 만들어간다. 메인스트림에서 빗겨 난 늙은 세대들은 점차 젊은 세대의 문화를 배워야 할 의무만 늘어가는데, 정작 그 세대는 날 끼워 줄 마음이 없는 거 아니냐고 말이다. 예를 들어, 20대처럼 힙하게 차려입은 40대 언니가 요즘 핫하다는 클럽에 나타났다고 해 보자. 어떤 상황이 펼쳐질까?


이야기를 듣고있는 것만으로도 가상의 40대 언니에게 감정이입이 되고 몸서리가 쳐 졌다. 타고나기를 노잼 인간인 내 입장에서는, 그 몸서리 쳐 지는 민망한 순간이 두려워저 지레 포기해버리는 것도 있다. 몇 달 전에 유행했던 줄임말을 어디서 듣고 와서는 "요즘 애들은 만나서 반갑습니다를 만반잘부라고 한다며~?"라고 떠본다거나, 뭐 이런 순간들.


내가 "요즘 애들"에게 어설픈 관심을 갖고 어설픈 지식을 습득한 다음,

맥락에 맞지 않게 들이대면 딱 그런 상황이 되어버리지 않을까?

그런데도 우리가 꼭 그들에 대해 알아야 하는걸까?


우리 중에는 업무적인 필요에 의해서 젊은 세대들이 뭘 좋아하는지를 꼭 알아야 한다는 멤버도 있었다. 미디어업계에 종사하는 언니다. 하긴. 나는 10대 후반부터 줄곧 무한도전을 재밌게 보며 시간을 보냈는데 그 무한도전은 2006년 당시 만 31세이던 김태호 PD가 만든 거였다. 우리도 어버버 하는 사이에 어느덧 그 또래가 되었다. 10대들이 좋아하는 포인트를 포착해서, 그들이 좋아할 만한 문화 콘텐츠를 만들어 배포하는 건 결국 3~40대가 할 일일 수 있다.


내 경우에는 업무적으로 필요할 일은 별로 없지만,

그래도 아예 손 놓고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이야 나도 나름의 "꼰대 레이더"를 가지고 있어서, 때로는 아차 싶을때도 있지만, 그래도 레이더에 포착되는 행동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 레이더는 이미 내가 20대에서 30대가 되는 동안 성능이 많이 떨어졌고, 앞으로는 노력하지 않으면 작동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 말하자면,


나는 절대 저렇게 추하게 늙지 말아야지


이런 이유 말이다.


(정작 소설에서는 이 문장이 완전 다른 의미로 쓰였다. 그러니까, 자기가 영원히 젊을 줄 알고 오만했던 너와 나의 노년 시절을 신랄하게 풍자하는 의미다. 작가의 의도와는 완전 다르게 사용했다. 미안하다. 그치만 문장 자체가 속 시원해서 써본다.)






코끼리 다리 만지기


음, 그 후에 트렌드를 어떻게 이해할것인지를 놓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각자 업무적으로 또는 개인적으로 관심있는 분야가 무엇인지에 따라 접근하는 관점이 다 달라서 신기했다.


미디어업계에 종사하는 A는 유튜브나 틱톡 같은 미디어를 보며 트렌드를 익히고 있다고 했고, UX 분야로 공부하고 있는 B는 미디어에 전혀 관심이 없는 대신 전자기기나 IT 분야의 트렌드에는 늘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했다. 그 외에도 향수라든지. 인터넷 커뮤니티라든지, 각자 처해있는 환경과 관심사에 따라 다른 세대를 이해하려는 경험의 양상이 완전히 달랐다.


사실은 모두 같은 생각을 하는 순간보다는, 이렇게 서로의 생각이 다르다는 걸 깨닫는 순간에 대화가 더욱 활기를 띤다. 우리가 다른 세대에 대해 이해해야 한다는 모티베이션도 공유하고 있고, 사실 우리가 이해하려고 하는 다른 세대는 그냥 그 자리에 있을 뿐인데, A와 B의 관심사가 다르다는 이유로 각자 다른 세대의 어떤 면을 이해할지에 대한 관점이 이렇게나 달라지다니.





사실 두 시간 동안 서로가 코끼리 다리를 어떻게 만지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했다. 어떻게든 옮겨보려고 고심을 하다가, 내가 이해하지 못한 이야기를 어거지로 옮기려고 하니 도저히 진도가 나가지 않아서 다 빼버렸다. 아, 브이로그니 틱톡이니 내게는 너무 먼 일이다.


그렇게 모임을 마무리하면서 멤버 C가 이런 말을 해서 내 등골을 오싹하게 했다. 꼰대들이 제일 좋아하는 말이 뭔지 알아요? 이해가 안 된다는 말이래요. 이해가 안 된다는 말을 달고 산다, 하면 내가 꼰대 아닌지 생각해봐야돼. 그 말을 듣자마자 지난 두 시간 동안 내가 입 밖으로, 또는 머릿 속으로 수없이 되뇌었던 이해 안 된다는 말이 스쳐지나가면서 "꼰대 레이더"는 바깥이 아니라 안을 향해서, 그러니까 나 자신을 겨냥해서 가동해야 하는 게 아닌가 반성하는 시간을 가지게 됐다.


어쨌든, 일요일마다 책 한 권씩 읽고 이야기 나누는 내용을 공유하는 매거진 <일요일엔 책들>. 세 번째 포스팅을 마무리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주에 다시 찾아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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