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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데이수 Jul 05. 2020

돈이 대체 뭐길래?

<50대 사건으로 보는 돈의 역사>를 읽고 나눈 이야기

일요일마다 독서모임에서 나눈 이야기를 전하는 매거진 <일요일엔 책을>, 오늘은 홍춘욱 이코노미스트의 <50대 사건으로 보는 돈의 역사>를 같이 읽었다.





텍스트? 미디어?


오늘 리더 역할을 맡은 멤버 A는 최근 이직준비를 위해 경제에 대한 팟캐스트를 많이 듣는다고 한다. 홍춘욱 님이 팟캐스트에서 여러 경제현상에 대해 통찰력있는 이야기를 해 주는 게 인상깊어서 이 분이 쓴 책을 꼭 읽어보고 싶어졌다고 했다.


아, 이 설명을 듣고보니 좀 이해가 됐다.


솔직히 이 책은 내 취향에는 안 맞았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걸 알겠는데 이게 뭐 단편소설도 아니고, 챕터와 챕터 간 연결되는 느낌이 없고 산만하다고 느껴졌다. 이 단점 아닌 단점이 텍스트에서 영상 또는 음성으로 넘어가면 장점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책을 읽을 때 우리는 한 권의 책에 일관성 있는 스토리라인이 있길 바라고, 각 챕터에서 다루는 주제들이 주장과 근거를 갖춰 그 자체로 완결성이 있길 바란다. 반면 팟캐스트를 듣거나 유튜브 영상을 볼 때는 그냥 듣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통찰을 얻으면 그걸로 만족한다.


텍스트 세상에 유효했던 정보가 미디어 세상에서는 유효하지 않을 수 있다. 텍스트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살아온 나는 늘 이 부분을 서운하게 생각해왔다. 이 책을 읽고 반대 경우도 성립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미디어 세상에 유효하지만 텍스트 세상에서는 그만큼의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 말이다.


책에 대한 아쉬움은 일단 이 정도로 해 두고, 책을 읽고 나눈 이야기를 두 가지 테마로 소개해본다.





첫 번째 테마는 돈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은 역사에 남을만한 하이퍼 인플레이션을 겪는다. 유사한 사태가 오늘날 베네수엘라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하이퍼 인플레이션 이전에 독일의 마르크화, 베네수엘라의 볼리바르화를 보유하고 있던 사람들이 앞으로 자국이 발행한 통화에 대해 신뢰를 가질 수 있을까? 조금 더 나아가서, 국가가 통화 발행을 독점하는 현재 시스템이 앞으로도 유지가 될까?



비트코인의 꿈과 좌절


먼저 비트코인에 대한 이야기가 안 나올 수 없다. 내 생각에 비트코인은 국가단위의 통화 시스템을 극단적으로 부정한 사례다. 비트코인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블록체인 이야기부터 시작을 해야 한다. 으악.


난해한 기술용어 속에서 내가 어설프게 이해하기로 블록체인은, 비트코인에 대한 정보가 모두에게 분산되어 있되 누구도 정보를 독점하기 어려운, 그러니까 극단적인 분산구조를 구현할 수 있게 해 주는 기술이라는 뜻이 아닌가 싶다.


한때 비트코인은 기존의 통화시스템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한 몸에 받는 유망주였다. 아직도 비트코인으로 유발된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관심이라든가, 가상통화의 가능성에 대한 논의는 유효하다. 그러나 비트코인이 가까운 시일 내에 기존의 통화시스템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선이 주류가 된 것 같다.



거대 플랫폼 기업이 돈을 찍어낸다면 어떨까?


다음으로 생각해 볼 건 각 플랫폼 기업들이 도입하는 가상통화이다. 페이스북이 암호화폐 '리브라'를 출시한다고 하던데. 페이스북뿐 아니라 구글, 애플, 아마존 등 우리가 하루 중 많은 시간을 보내는 플랫폼들이 플랫폼 안에서 사용할 수 있는 통화 시스템을 개발한다면 얼마나 수요가 있을까?


나는 개인적으로 해외에서 일하면서 각국 통화를 구분해서 사용하는 게 굉장히 귀찮은 일이라고 느낀다. 일본에서는 엔화를 쓰고, 한국 책을 살 때는 원화를 쓰고, 킨들에서 영어 책을 살 때는 달러화를 쓴다. 환율을 고려해서 나에게 어떤 쪽이 더 유리할까 처음에는 게산도 해 보고 했는데, 지금은 다 귀찮아서 그때그때 결제가 편한쪽으로 한다. 나 같은 사람을 위해 구글이나 페이스북에서 자체 결제 시스템을 만들어준다면 나는 꽤 호의적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수수료나 보안, 결제편의성, 화폐가치 안정성 같은 문제를 잘 해결해준다는 전제가 있겠지만 말이다.


뭐 그거야, 돈 잘 버는 글로벌 기업인데 나름대로 최선의 방안을 생각해서 출시하지 않았을까?


사실 비트코인과 페이스북 리브라를 비교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포인트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 같다. 비트코인은 블록체인 이라는 알쏭달쏭한 기술에 대한 신뢰를 기반으로 하고, 리브라는 페이스북이라는 너도 나도 다 아는 기업에 대한 신뢰를 기반으로 한다. 페이스북 피드를 보다보면 가끔 해킹 당해서 광고 글 올리는 친구를 발견하곤 하니 과연 얘들을 믿을 수 있나 싶긴 한데, 다른 한편으로는, 안 믿으면 뭐 어쩌겠는가. 좀 믿음이 덜 가도 결국은 편리하니까 쓸 수 밖에 없게 만드는 게 바로 플랫폼 기업의 힘이 아닐까 생각한다.



세상이 바뀌면 돈의 형태도 변할까?


여기에 멤버 B가 자신의 전문분야에 대한 배경지식을 더해줘서 대화가 더 재미있어졌다. B는 대학원에서 AR 분야를 공부하고 있다. AR 세계에는 말 그대로 장소의 제약 - 국경 - 이 없기 때문에 AR 세계에서 굳이 달러화를 쓰는 것도 어울리지 않는다고 한다. 그보다는 게임에서 게임 머니를 사서 쓰듯이, AR 플랫폼을 보유한 기업이 AR 세계에서 통용되는 화폐를 만들어서 그 화폐로 소비할 수 있게 갈 거라는 이야기였다.


비트코인 가치가 그렇게 천정부지로 치솟은 다음에 우리는 우리 모임에서 초창기 비트코인 얘기를 한 적이 있었지, 그 때 샀어야 하는데, 라는 뭐 이런 이야기를 하며 아쉬워했다. 이재(利才)가 없는 사람들의 흔한 대화랄까. 근데 그 때만 해도 가상통화라는 게 해외토픽급의 허무맹랑한 소리로만 느껴졌고, 그걸 사야겠다는 생각으로 연결될 수가 없었다. 지금이야 AR 세계에서 AR 통화를 사용한다는 게 또 다른 허무맹랑한 소리로 들리지만, 몇 년 후에 이 글을 돌아보고 그 땐 그랬지, 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두 번째 테마는 빚이었다.



IMF 키드의 경제관념


우리가 초딩일 때 IMF가 터졌다. IMF가 미친 영향은 집집마다 다르겠지만, 어쨌든 IMF 시대를 겪으며 우리 부모님들은 함부로 빚을 내지 말고 저축을 해 둬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우리는 그런 가르침을 받고 자라서인지 빚을 낸다는 것, 다른 말로 레버리지를 일으켜서 투자한다는 데 대해 알게 모르게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


신용카드를 사용하는 것,

대출을 받아서 부동산을 구입하는 것 등등.


우리 부모님 세대의 경제상황과 우리 세대의 경제상황은 완전히 다르다. 나는 2009년도에 대학에 입학했는데, 그 때 글로벌 금융위기로 전 세계가 경기침체를 겪고 나서는 2020년이 되기까지 물론 부침은 있었지만 줄곧 호황을 보낸 것 같다.


지나고 보니 이 호황기에 레버리지를 현명하게 활용해서 자본투자를 했던 친구들은 적은 자본으로 꽤 쏠쏠한 차익을 남겼다. 이건 어디까지나 결과론적인 이야기니까 "왜 그땐 그러지 못했을까"라는 반성은 별 소용이 없을 것이다. 어쨌든 "빚을 지지 말아야지"라는 심리적인 저항감을 극복하고, 필요에 따라서는 빚을 지는 걸 하나의 선택지로 가지고 있는 게 건전한 경제관념이 아닐까.



나의 인적자원 개발을 위해 투자하기


어느 순간, 대화가 나 자신의 인적자원을 개발하기 위해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데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으로 흘러갔다. 여기서 인적자원 개발을 위한 투자란, 관심분야를 공부하기 위해 대학원에 간다든지, 전문자격을 따기 위해 로스쿨에 간다든지, 아니면 하다못해 커리어 전환을 위해 연봉을 깎고 이직을 한다든지, 뭐 이런 것들을 말한다.


말 그대로 빚을 낸다는 뜻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시간이나 돈을 기회비용으로 투자한다는 맥락에서 연관성이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얼마 전에 <Meritocracy Trap>이라는 책을 아주 인상깊게 읽었다. 이 책의 서두에서는 미국 노동시장에서 고소득자와 저소득자 사이의 소득격차가 과거에 비해 현재 얼마만큼 커졌는지를 통계로 보여준다. 같은 기업 내에서도 단순사무를 맡은 직원과 전문지식을 가진, 예를 들어 시니어 개발자 사이에는 연봉차이가 있고, 그 차이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내용이다.


이게 비단 미국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닐 것 같다. 한국에 대입해보면 어떨까. 심각한 취업난 속 한편에서는 학생들이 대기업에만 몰리고 중소기업에는 지원하지 않아서 중소기업은 일손부족 문제를 겪고 있다고 한다. 누군가는 요즘 애들은, 으로 시작하는 잔소리를 한다. 에이. 그건 좀 아니죠.


통계청에 따르면 2018년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월평균 소득은 각각 501만원과 231만원이었다고 한다. 대기업에 입사하면 나의 기대소득이 2배가 된다는 이야기다. 취업준비생 입장에서는 당연히 내 시간을 조금 더 투자해서 기대소득을 높이는 게 합리적인 선택이 될 수 있다.





최근 한 달 우리 모임에서 선정한 책은 이렇다.


-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있다면 (SF소설)

- 대화에 대하여 (인문학)

- 아픔이 길이 된다면 (사회과학)

- 나는 절대 저렇게 추하게 늙지 말아야지 (SF소설)

- 50가지 사건으로 보는 돈의 역사 (경제학)


공이 어디로 튈지를 예측하기 어려워서 재밌다. 각자 본인이 관심 가지고 있는 테마에 대한 책을 선정하니 참여하는 입장에서는 평소라면 읽지 않았을 책을 모임 덕분에 접할 수 있다. 또, 각자의 배경지식을 동원해 가며 모임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나면 작가가 의도한 것보다 오히려 더 많은 인사이트를 얻어갈 수 있어서 즐겁다.


다음주에는 다시 소설로 테마가 튀어서, 알베르 카뮈의 <최초의 인간>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음, 어떤 주제로 흘러갈까? 대화에 더 잘 참여하기 위해 이번주 내내 틈틈이 책을 읽어두기로 하고, <일요일엔 책은> 매거진은 다음주에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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