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을 읽는다는 것의 의미에 대하여.
일요일에 책 읽고 독서모임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일요일엔 책을>. 오늘의 책은 알베르 카뮈가 죽기 전 남기고 간 미완성 장편소설인 <최초의 인간>이었다. 그리고 모임이 시작된지 10분 만에 우리는 (그 책을 고른 장본인을 비롯해서) 모두가 책을 안 읽고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일주일에 한 권 책 읽기가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다섯 명이 모이면 책 다 읽고 온 사람이 한두명 정도 되면 다행이다. 그나마 책을 고른 그 주의 리더는 억지로라도 읽어오는 편인데, 이번주는 예외였다. 리더를 맡은 멤버 A가 이러이러한 이유로 못 읽어왔다고 고해성사를 시작하자, 나머지 멤버들도 책은 사서 앞부분 정도는 읽어보려 했으나 도무지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우리 모임에는 책 못 읽었다고 면박주는 사람도 없고, 책 못 읽어도 대화에 참여하지 못할 일도 없다. 자연스럽게 이야기는 고전을 읽는 게 왜 어려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한 주제로 흘러갔다.
고전을 읽는 자세
우리는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정보를 취사선택 하여 빠르게 습득하는 데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고 있다. 반면 고전은 어떠한가. 우리 삶에 즉각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 주제를 놓고, 선과 악 또는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어려운 애매모호한 상황을 설정해놓고, 지극히 추상적인 문장을 지지리도 길게 늘어놓는다.
<최초의 인간>도 그랬다. 아마도 훌륭한 책인 것 같기는 한데, 읽을 준비가 안 되어 있었다고 할까. 앞 부분 몇 챕터라도 읽어온 멤버들이 이구동성으로 묘사가 너무 길어서 호흡을 따라가기가 어려웠다는 이야기를 했다. 가령, 프랑스에서 알제리로 가는 길 배에서 파도가 어땠고 바람이 어땠고 하는 데 대한 묘사가 두 페이지 넘게 나오는데, 그래서 결국 어쨌다는 건지 결론을 찾고 싶었다고 한다.
나도 확실히 이번주는 고전을 읽을 기분이 아니었던 것 같다. 내 경우에는 고전 읽는 기분이 되려면 내 안의 스위치를 ON해야 한다. 당장 필요한 정보를 찾고, 결론부터 말해달라고 성질 급하게 달려드는 나 말고, 인간의 내면에 천착해서 애매모호한 고민 속에 기꺼이 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나를 불러오는 스위치 말이다. 요즘은 점점 그 스위치를 ON하기가 어렵다고 느껴진다. 연휴를 맞아서, 여행을 가서, 이런 특별한 상황이 아니고서는 도무지 진득하게 책에 집중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인터넷이 바꿔놓은 우리의 뇌 구조
유튜브가 바꿔놓을 우리의 뇌 구조
예전에 우리 모임에서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인터넷이 우리의 뇌 구조를 바꾸고 있다)>라는 책을 같이 읽은 적이 있다. 인터넷 세상에서 모든 정보는 인터넷에 다 있다. 우리는 검색과 하이퍼링크를 통해 필요한 정보에 접근하는 방법만 알면 된다. 인터넷 세상에 익숙해 진 우리의 사고방식은, 인터넷 세상 이전의 사고방식과 이미 달라져 있다. 인터넷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글을 읽을 때 행간의 의미와 전체적인 맥락을 찾는 게 아니라, 새로운 정보로의 연결을 찾아 헤맨다.
위키피디아는 인터넷 세상에 딱 맞는 발명품이다. 예를 들어 위키피디아 서울 페이지에 이런 설명이 있다고 해 보자. “서울은 ~한 도시로, ~라고 불린다.” ~로 표시된 부분에 보통 하이퍼링크가 붙어있다. 하이퍼링크를 클릭 클릭하며 새로운 정보로 이동하다 보면 어느새 내가 처음에 무엇을 검색했는지도 기억 안 나는 순간이 온다.
찾아보니 이 책은 2010년에 출간됐다. 10년 뒤인 2020년에 이 책을 다시 쓴다면 인터넷 말고 모바일 이야기를 해야 할 거고, 텍스트 말고 영상이나 소리 형태로 정보를 받아들이는 데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할 것이다.
영상이나 소리, 요즘 무섭게 우리 일상을 장악하고 있는 유튜브 이야기다. 미디어 분야에서 일하는 멤버 B 말에 따르면, 유튜브 시청자들은 유독 참을성이 없다고 한다. 전통적인 영상 매체인 영화나 TV와 비교할 때 그렇다. 영화는 물리적으로 영화관에 가서 봐야 하니 재미가 있건없건 관객들이 두 시간은 참아줄 거라는 전제로 만들고, TV도 정규 편성시간에 맞춰 반영되므로 한 편에 한 시간의 호흡을 상정하고 만든다. 반면 유튜브로 오면 단위가 훨씬 짧아진다고 한다. 지루하게 만드는 순간 시청자들이 떠나갈 수 있다.
이걸 인터넷이 우리 뇌 구조를 바꾸고 있다는 책의 논리에 대입하면, 유튜브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앞으로는 지금보다 더 즉각적인 자극과 명확한 결론을 원하게 되겠구나 라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의사결정자들은 왜 고전을 읽을까?
시대의 변화에 따라 가치도 변화한다. 고전이 주는 가치가 과거에는 유효했을지 모르지만, 인터넷 모바일 그리고 유튜브가 지배하는 이 시대에 우리가 굳이 지루함을 참아가면서 고전을 읽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최초의 인간>을 읽지는 못했지만, 언젠가는 읽어볼 날이 오겠지 라는 낙관론을 담아, 우리가 찾아 낸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 세 가지를 공유해본다.
첫 번째, 고전을 읽으면서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를 수 있다.
고전은 때로 길고 불친절하다. 그럼에도 시간이 흐른 오늘날까지 고전으로 인정받고 있으니, 그 속에서 무언가 가치있는 통찰이 숨어있을 것이다. 모래 속에서 진주를 찾듯, 고전 속에서 가치를 찾아내는 연습을 할 필요가 있다. 인터넷 세상에 더 많은 정보가 쌓이고 쌓일수록, 그 정보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의 가치가 보다 높아질 것이기에.
멤버 C는 요즘 논문을 쓰기 위해 전공분야의 자료를 다양하게 읽고 있다고 한다. 워낙 많은 자료를 접하니 정독하기보다는 주요 내용을 스캔하는 방식으로 읽는단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렇게 접한 정보들을 본인이 이해하고 해석한 게 아니라, 단순히 요약본을 주입한 것에 불과해 머릿속에 남는 게 하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파도에 대한 한 장 반 묘사를 읽는 게 당장은 시간낭비처럼 느껴질 수 있겠지만, 스스로 생각하는 연습을 하게 해 준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다.
이 말을 듣던 멤버 A가 뼈 때리는 멘트를 던진다. 유튜브로 고전 요약 영상을 보고 나서 시간을 아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정작 그 아낀 시간을 가치있게 보내고 있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고. 하긴 그러네.
두 번째, 다른 사람의 관점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다.
첫 번째 이유와 맞닿아있는 맥락이기도 하다. “한 줄 요약”을 하는 순간 요약본에는 필연적으로 요약하는 사람의 관점이 녹아들게 된다. 원문에서 어떤 부분을 특별히 인상깊게 느꼈는지, 그 부분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한 관점이다.
내 경우에는 요즘 더 이 부분을 조심하고 있다. 사실 이 세상 모든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1차 정보를 찾아보기가 어려우니 때로는 신문기사나 블로그, 유튜브 등지에서 접한 단편적인 정보를 가지고 내 의견을 형성하게 될 때가 있다. 다른 사람이랑 이야기하다가 내가 근거로 삼은 정보들이 부정확하거나, 때로 교묘하게 현실을 자기 편한대로 해석했다는 걸 깨닫게 될 때가 있는데, 그럴때면 아찔한 기분이 든다. 나는 내 맘대로 하는 게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사람인데, 정작 나태함 때문에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가 내 의견을 좌지우지 할 수 있게 둔 것이다.
다시 고전을 읽는 이유로 돌아가면, 각자 업(業)과 관련해서든 개인적인 흥미와 관련해서든, 그 분야에서 자주 회자되는 고전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적어도 그런 고전은 꼭 읽어보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그러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멋대로 이해하고 해석한 관점에 휘둘리게 된다.
음, 이건 좀 웃긴 얘긴데. 대학교 때 심리학 수업을 듣다가 교수님이 라캉을 소개해줬다. 라캉이 뭐지 싶어서 책을 몇 권 찾아보았다. 지루해서 돌아버리는 줄 알았다. 도대체 뭐라는지 이해도 안 되고. 확실한 건 그 아리송함 속에 뭔가 매력적인 아이디어가 들어있다는 거였고, 그래서 여름방학 때 친구랑 야매 스터디를 결성해서 라캉을 같이 읽었다. 워낙 아리송한 내용이라 지금 나한테 라캉에 대해 이야기해달라고 하면 음, 한 마디도 못하겠지만, 적어도 그 다음부터는 영화나 미디어에 대해 글 쓰는 사람들이 라캉을 인용할 때 비판적인 시선으로 보게 된다. 나처럼 잘 모르면서 그냥 멋진 이름이라서 인용하는 사람인지, 아니면 제대로 읽고 인용하는 사람인지. 그 여름 고전을 읽으며 보낸 시간 덕분에 적어도 완전히 사기치는 사람을 분별(?)해낼 수는 있게 되었다.
세 번째,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가치란 무엇인지를 이해할 수 있다.
멤버 A는 요즘 <안나 카레니나>를 읽고 있다고 한다. 이 책 좋다는 사람들이 엄청 많은데, 왜 좋다는지 알고 싶어서 엄청난 두께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내어 도전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책의 배경이 되는 당시 러시아 사회는 오늘날 한국 사회와는 완전히 다른 곳이지만, 그럼에도 소설을 읽다보면 어느 순간 그녀가 느끼는 감정과 심리에 공감하게 되어 신기하다고 한다.
하긴, 그래서 <안나 카레니나> <레미제라블> 같은 고전 소설들이 몇 세기가 지난 오늘날에도 또 다시 드라마로, 영화로 만들어지는 게 아닐까 싶다. 과거가 단순히 과거에 머물러 있지 않고,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지적인 충격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 내 주변에 벌어지는 일들을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현재진행형인 경우에 그 일들을 둘러싸고 사람들이 말하고 행동하는 것 하나하나에 다 나름의 이해관계가 얽혀있다. 생각을 정리하기 어렵다. 그럴 때 고전을 찾게 되는 것 같다. 고전 속 나와 유사한 고민을 겪고 있는 누군가를 보면 현재를 살아가는 내가 내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해 어느정도 참고가 되는 부분이 있다.
코로나 팬데믹이 전 세계를 강타한 지금, 갑자기 서점 베스트셀러에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가 등장한 것도 그 때문이 아닌지. 다들 페스트 시대를 살아가는 카뮈의 주인공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가 궁금해졌던 거라고 나는 이해했다.
이번주는 독서모임으로 모여서 책 안 읽은 이유에 대한 반성회(?)로 끝이 났다. 다음주는 <기록의 쓸모>라는 책을 읽고 토론한다. 다음주에도 찾아오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