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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데이수 Aug 06. 2020

파이어족, 젊을 때 불꽃같이 벌어서 은퇴하자고?

파이어족의 행동지침 <파이낸셜 프리덤> 삐딱하게 읽기

은퇴, 너무 생소한 말이다. 내게 은퇴란 뭘까. 정년까지 열심히 일해서 노후자금을 모아뒀다가, 연금을 쏙쏙 빼먹으며 가족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것? 솔직히 잘 모르겠다. 은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도 다 막연할뿐이다. 내게 은퇴는 너무 먼 일이고, 자연히 은퇴 후 삶에 대해서도 별로 상상해본 적이 없다.


책 <파이낸셜 프리덤>을 통해 파이어족이라는 말을 처음 접했다. Fire(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 놀랍도록 직관적인 약어다. 젊은 시절 불꽃같이 벌어서 하루라도 빨리 은퇴한다. 이 책의 저자인 그랜트 사바티어의 경우에는 5년만에 백만달러를 모아 30세에 은퇴했다. 은퇴 후에는 경제적 보수에 연연해 하기 싫은 일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은퇴 후 삶을 즐기고 있다고.


불꽃같이 벌어서 빨리 은퇴하자
- Fire (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족 -


독서모임에서 일요일에 책 읽고 나눈 이야기를 전하는 매거진 <일요일엔 책들>, 오늘은 책 <파이낸셜 프리덤>을 매개로 돈을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에 대해 나눠본다.




내게 백만달러가 있다면: 은퇴 한다 v. 안 한다


내게 백만달러가 있다면 어쩌지.
은퇴 할까, 안 할까?


아, 첫 질문부터 고민된다.


하고싶은 일과 해야하는 일 사이 균형점을 찾으며 위태롭게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회사생활을 그만뒀을 때, 내가 과연 새로운 자극을 받을 수 있을까? 정체된 하루하루, 그 속에서 결국은 회사로 돌아가고 싶어지지 않을까? 이런 걱정도 든다.


멤버들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백만달러가 생긴다고 해도 어떤 방식으로든 일을 계속할 것 같다고들 했다.


멤버 B는 이미 몇년 전에 비슷한 주제를 다룬 책인 <부의 추월차선>을 읽고 은퇴하려면 얼마가 필요할지 계산해본 적이 있단다. 큰 욕심 안 부리고 적당한 주거, 적당한 소비, 적당한 라이프스타일을 상정했을뿐인데도 최소 80억은 필요할 거라는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그 책의 저자는 "계산결과를 목표로 삼아서 열심히 돈을 모아봐요!"라는 취지로 계산하라고 했을텐데, B의 입장에서는 80억이라는 숫자를 보고 "나 은퇴 못할지도"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멤버 C는 프리랜서다. 직업의 특성상 어느정도는 일의 강도를 선택할 수 있다. 한 번은 빡센 프로젝트를 끝내고 좀 여유로운 프로젝트를 맡아, 주당 근무시간을 확 줄여본 적이 있었다고. 사람들은 집에서 요리 해 먹고 취미생활도 하는 그 일상을 무척 행복할거라고들 생각하는데, 그것도 며칠이지 막상 그 생활이 계속되면 하나도 좋을 게 없다고 했다. 그래서 한 달 살이가 그렇게 유행했던 걸까? 우리에게 갑자기 찾아온 여유로운 삶을 기꺼이 참아줄 수 있는 시한이라는 게 기껏해야 한 달 정도이기 때문에?



경제적 자유는 필요한가?


그래. 어쩌면 우리가 동문서답 한건지도 모른다. <파이낸셜 프리덤>의 저자도 책에서 여러 번 강조하고 있지 않은가. 파이어족의 목적이 단순히 젊은 나이에 은퇴해서 빤빤이 놀겠다는 것만은 아니라고. 그래. 은퇴하고 뭐할지는 각자 자기 취향에 맞게 결정하면 될 일이다.


진짜 중요한 건 경제적 자유가 왜 필요한지, 그리고 어떻게 달성할 수 있을지가 아닐까?


경제적 자유,
"이놈의 회사 언제라도 때려치겠어!"를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가능성


경제적 자유에 필요한 돈이 대체 얼마일까. 나는 B처럼 몇 십 년 후의 미래까지 생각해서 80억원이라는 구체적인 금액을 계산해 낼 자신은 없다. 그보다 당장은 내 고향 서울 한 구석에 아파트 한 채 살 수 있는 돈이 있으면 소원이 없겠다.


우리 윗 세대 시인들은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다든가, 잎새에 이는 바람이라든가, 뭐 이런 이야기를 썼다. 내 생각에 우리 시대의 시는 이런 것이다. 아파트에 살고싶어요. 남향이 좋지만 동향까지는 괜찮아요. 층간소음은 없었으면 해요.


그래 좋다. 경제적 자유. 80억이든 서울의 아파트이든 본인만의 기준을 세우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절약하고 모으는 것 다 좋다.


<파이낸셜 프리덤>의 저자가 돈에 대해 시시콜콜 많은 이야기를 하지만, 그의 핵심주장은 두 단어로 요약된다. 복리. 그의 주장을 옮겨본다. 많은 사람들이 정년까지 일하고 은퇴하는 걸 목표로 돈을 모은다. 50세에 저축한 돈은 60세까지 복리이자가 붙을 시간이 10년밖에 안 된다. 반면에 30세에 저축한 돈은 30년이나 이자가 붙는다. 따라서 젊은 시절 100만원은 은퇴 직전 100만원보다 훨씬 가치가 크다.


그러니 4천원짜리 커피 한 잔 사 먹을때도 4천원 X 연 이자 7% 의 산식을 덧붙여서 이 커피의 1년 뒤, 10년 뒤, 나아가 30년 뒤 가치를 계산해보고 먹을지 말지 결정하라고 한다. 그 산식에 따르면 오늘 아침 스타벅스에서 사 먹은 4천원짜리 커피 한 잔의 30년 뒤 가치는 3만원이다. 나 그럼 아침마다 3만원짜리 커피를 사 먹고 있다고 생각하며 불편함을 느껴야 하는 건가? 오늘은 커피 안 사먹었으니 4천원을 - 미래의 3만원을 - 아낀거야 라고 생각하며?


아, 답답하다.

마침 D가 한 마디 던져줘서 속이 시원했다.


나는 아껴쓰라는 말 안 좋아해요.
뭘 커피 한 잔에 그렇게까지 고민해?



파이어족? 욜로족?


이 쯤에서 리더 A가 이런 질문을 던졌다.

스스로를 파이어족이라고 생각하세요, 아니면 욜로족이라고 생각하세요?


불꽃같이 벌 것인가,
내일이 없는 것처럼 써 없앨 것인가.


여기서부터 각자 득달같이 스스로의 소비패턴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오디오 물리고 난리났다. 우리는 꼭 이런 식이다. 1이랑 2 중에 하나 선택해주세요 라는 질문을 들으면, 1도 아니고 2도 아닌데요? 라고 반문한다. 파이어족이냐 욜로족이냐. 결론은 둘 중 어느 쪽으로도 편입되기 싫다는 것.


이 부분에 대해서는 멤버들이 한 말을 그대로 옮겨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A(특정 카테고리 한정 소비왕!):  물건   사요. 귀찮아요. 신경써서 고르는 분야는 있어요. 커피나 가전제품에는 돈을  쓰는 편이에요. 그게 쓸데없는 소비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커피는 저에게  행복을 주고, 가전제품 예를 들어 맥북, 아이패드, 아이폰   사면 고장날때까지 쓰거든요.

B(자본주의의 총아! 비싼  좋다.): 요즘 비싼 물건에 눈을 떴어요.  물건을 여러  사느니 비싼 물건을 하나 사요. 패션을 예로 들면 컨템포러리 브랜드의 옷들. 옷감도 핏도 달라요. 대신 비싸니까     신중하게 사고, 사서도 오래 입으려고 하죠.

C(소비하되 소유하지 않는 미니멀리스트!): 저는 미니멀리스트에요. 소비는 하는데 소유를 안 해요. 물건이 많은 게 싫어요. 하나 사면 하나 파는 식으로 총량을 유지해요. 매일 출퇴근을 택시로 하는데, 한 달에 30만원 정도 들거든요. 그치만 차 살 마음은 없어요. 관리하기도 귀찮고 주차 걱정도 싫고. 차 있는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감가상각 고려하면 한 달에 50만원은 들겠더라고요. 그럼 저한테는 택시 타는 게 현명한 소비인거죠.

D(귀차니스트!): 비싼 물건 좋죠. 근데 비싼 물건 관리하는 데 나의 노력이 들어가는 게 싫어요. 그래서 잘 안 사게 돼요.


<파이낸셜 프리덤>의 저자가 봤다면 우리를 파이어족에 더 가깝다고 말했을 수도 있겠다. 소비를 부추기는 세상 속 상술에 넘어가 충동적으로 소비하는 게 아닌, 내게 가치있는 물건을 신중하게 구매해 오래오래 쓰겠다는 거니까.


그래도 내 생각에 우리가 파이어족은 아닌 것 같다. 그냥 사회초년생 시절 돈 생각 안 하고 신나게 소비하다 보니 어느순간 현타(?)가 와서 소비가 줄어든거지, 저자처럼 젊은 나이에 은퇴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계획적으로 절약을 실천하는 건 아니니까.



돈에 대해 생각하기


지금까지 흐름을 정리해보면 이렇다.


내게 백만달러가 있다면 은퇴할 것인가? 안 할건데? 일하는 거 좋다.

경제적 자유는 필요한가? 있으면 좋기야 하지. 그렇다고 커피 한 잔에 그렇게까지 고민해야 해?

파이어족인가 욜로족인가? 둘 다 아닌데?


저자가 우리 얘기를 들었으면 뒷목을 잡았을 것 같다. 얘들 왜 이렇게 삐딱하게 굴지? 그런데 어쩌겠는가. 우리는 원래 이런 애들인데.


돈 버는 방법을 알려주겠다는 책의 저자들에게는 크게 두 가지 특징이 있다.


(1) 돈 벌고 싶다는 강한 의지가 있다.

(2) 이러저러한 방법으로 부지런하게 돈을 번다.


<파이낸셜 프리덤> 류의 경제서들은 대체로 (1)을 전제로 (2)에 대해 이야기한다. 만약 책을 읽고 (2)의 방법론을 익혀 나의 재테크에 적용할 수 있다면 책값은 아깝지 않은 투자가 될 것이다. 아쉽게도 나는 그렇게가 잘 안 된다. 애초에 내 안에 (1)에 대한 강한 의지가 있는지 없는지를 먼저 돌아보게 된다. <파이낸셜 프리덤>의 저자 그랜트 사바티어 역시, 25세에서 30세까지 백만달러가 넘는 돈을 모으기 위해 자나깨나 돈에 대해 생각하고, 평일 저녁이나 주말에 남는 시간에는 부업을 해서 시간을 돈으로 변환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반면에 나는 어떻냐면, 돈에 대해 생각하는 게 귀찮다. 나도 돈 좋아하고 돈이 모자라서 하고싶은 일 못 하는 건 싫다. 집도 사고 싶다. 그럼에도 월급 날 인터넷뱅킹 사이트에 접속해서 이런저런 업무 처리하는 게 기쁘기보다는 귀찮고, 원금손실의 리스크가 있는 주식이나 펀드를 시작해야 할 때면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부족한 정보로 나름대로의 방향을 정해야 하는 게 막막하다. 나한테 정말, 돈 벌고 싶다는 강한 의지가 있는 걸까?


(2)의 방법론을 익히기는 커녕, (1)에 멈춰서서 불편한 마음만 갖게 된다. 그러니 자연히 돈 벌게 해주겠다는 종류의 책을 피하게 된다. <파이낸셜 프리덤>도 독서모임에서 멤버들과 토론에 참여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읽은거지, 내 손으로는 절대 안 골랐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어떨까?


연봉 얼마 이상의 직장을 잡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는 A, 스타트업에서 일하면서 내가 창출한 가치에 비해 충분히 보상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껴 퇴사하고 자기 사업을 시작했다는 B,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혼자 살아가기 위해 탄탄한 경제적 기반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2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재테크를 시작했다는 C, 최근 본인의 업(業)에 대한 지식을 기반으로 기업에 대해 공부해 주식투자를 시작했다는 D의 이야기까지.


역시. 내 입장에서는 젊은 나이에 은퇴하기 위해 자나깨나 돈만 생각했다는 그랜트 사바티어보다는, 지금 내 커리어에 만족하기는 하지만 앞으로 돈에 쪼들리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다는 우리 멤버들의 이야기가 더 가깝게 와닿았다.


성인이 되어 취미로 피아노를 시작한 사람이 조성진처럼 연주 못 한다고 피아노 자체를 그만둔다고 해 보자. 자기 선택이긴 하지만 좀 안타깝다. 나라면 조성진 연주영상과 현재의 자신을 비교하며 공연히 스트레스 받지 말고, 주변에 취미로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만나보라고 할 것 같다. 그렇게 또래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각자의 단계에서 고민되는 것들을 이야기하면서 꾸준히 피아노 치는 시간을 쌓아가는 편이 낫지 않을까?





이 다음에는 각자 피아노를 치는 방법, 그러니까 각자 자산을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지에 대해 경험과 생각을 나눴다. 누구 한 사람이 답을 가지고 있는 문제가 아니다보니 "이건 이렇다더라" 정도의 대화였지만, 내 주변 사람들은 이런 방법으로 돈을 관리하고 있구나 라는 걸 알게 되어서 충분히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오늘 포스팅은 여기까지로 마친다. 다음주는 제러미 리프킨의 <글로벌 그린 뉴딜>을 읽고 토론한 이야기를 가지고 돌아올게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글로벌 그린 뉴딜> 예고!
화석연료 없이 재생에너지만으로 도시가 굴러갈 수 있을까? 유럽에서는 2030년이면 자동차 내연기관이 사라진다고 하고, 그래서인지 테슬라 주가는 끝을 모르고 치솟는다고 하는데, 우리도 당장 새로운 시대에 맞게 새로운 스킬을 익혀두지 않으면 그린 사회에서 도태되어 버리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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