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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데이수 Aug 24. 2020

인문학, 이제는 조금 식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요…

그리스 로마 신화를 전공한 서울대 교수의 책 <천년의 수업>을 읽고


인문학이라는 말이 반짝반짝 빛나던 시절이 있었다.


점점 더 살기 팍팍해지는 세상 속 사람과 세상에 대한 질문에서 위로를 받아보려는 시도였을까? 인문학이라는 키워드가 제일 핫했던 때가 언제더라. 혼자서 기억을 되짚어보다가, 구글 트렌드의 도움을 받아보았다.


아래 그림은 2013년부터 2020년까지 사람들이 구글에 인문학 이라는 키워드를 얼마나 검색해보았는지를 보여준다. 2013년 말 정도부터 무섭게 성장해서, 2016년 초중반까지 피크를 쳤다. 그 후에는 그냥저냥 평범한 수준의 관심도를 유지하고 있다.


구글 트렌드에 "인문학"이라는 키워드를 검색해보았다.


독서모임에서 책 읽고 나눈 이야기를 전하는 매거진 <일요일엔 책들>, 오늘 소개할 책은 그리스 로마 신화를 전공한 서울대 교수가 쓴 책인 <천년의 수업>이다.


책 소개에 앞서 왜 인문학 얘기를 하느냐면, 이 책에 대한 소개를 읽고 새삼 "2020년에 아직도 인문학 도서가 나온다고?"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반짝반짝 하던 키워드였는데, 어느샌가 빛이 바랬다. 물론 인문학 이라는 키워드가 한 물 갔다는 거지, 인문학 열풍의 기저에 깔린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관심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자동차는 자율주행 우리의 일은 인공지능에게 자리를 뺏기게 생긴 요즘이니만큼, 이 질문이 오히려 과거보다 더 큰 시의성을 가지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이 책 역시 "인문학"이라는 식상한 단어를 덜어내고, "서울대 교수" "나와 세상의 경계를 허무는 질문"이라는 키워드를 더해 표지를 만들었다. 오늘 리더를 맡은 멤버 A도 순전히 표지가 예뻐서 이 책을 골랐다고 했으니 성공한 전략이라고 할 수 있으려나.


출판사에서도 아마 "인문학"이라는 키워드가 이제는 식상하게 보인다는 데 대해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책 표지에 "인문학"이라는 단어가 보이지 않는다. (표지사진 출처: 알라딘)


오늘 모임도 역시, 책에서 출발은 했지만 도착지는 책 밖의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로 결론이 났다. 최근 모임에서 유독 경제나 사회 같은 "큰 주제"를 놓고 이야기한 적이 많았는데, 오랜만에 나와 우리에 대한 "작은 주제"로 돌아갈 수 있어서 즐거웠다. 그럼, 시작합니다. :)





나는 누구인가?


저자가 던지는 첫 번째 질문, "나는 누구인가?"이다.

특히 '내가 보는 나'와 '남이 보는 나'의 차이에 대해 생각해보자고 한다.


화상회의 중이었는데도
모임에 참여한 멤버들이 다 B를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이유가 있다. B는 매 생일마다 생일선물 대신으로 생각해달라며 주변 사람들에게 서베이를 돌리곤 했다. B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장점과 단점은 무엇인지,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으면 좋겠는지에 대해 주변 사람들이 답을 적는 거였다. '남이 보는 나'에 대해서 몇년 간 꾸준히 데이터를 쌓아올린다는 게 어떤 의미일까? 그 경험이 B를 어떻게 변화시켰을까?


보통 우리 모임은 일요일 오전 10시에서 12시까지 한다. 가끔 이야기가 길어질 때도 있지만 12시 반을 넘어가는 경우는 잘 없다. 이 날은 아주 이례적으로 1시까지 연장전(?)을 했다. 누구나 '남이 보는 나'에 대해 궁금해 하지만, 본격적으로 서베이를 만들어 돌릴 정도의 용기와 의지가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연장전 1시간 동안 우리는 서로에 대해 피드백을 해 주는 시간을 가졌다.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와도 "너는 어떤 사람이야"라는 주제로 이렇게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할 기회가 잘 없다. 더군다나 술 한 잔 안 마신 맨정신으로는 더욱... 구체적으로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자세한 내용은 적지 않겠지만, <천년의 수업>이라는 책이 내게 준 영향에 대해 이야기하라면 이 날의 12시부터 1시까지의 1시간 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우리는 무엇에 근거하여 판단하는가.


저자는 그리스인들이 가치판단을 하기 위해 던진 세 가지 질문을 소개해준다.


나에게 이익이 되는가 손해가 되는가?
옳은가 아니면 그른가?
아름다운가 추한가?


각 질문이 우리를 각각 다른 판단기준으로 안내한다. 첫 번째 질문은 경제적 또는 실리적 판단으로, 두 번째 질문은 윤리적 판단으로, 세 번째 질문은 미학적 판단으로 이어진다. 헷갈리면 안 된다. 윤리적으로 옳은 것이 반드시 아름다운 것은 아니며, 반대로 윤리적으로 그른 것이 반드시 추한 것은 아니다.


이 지점에서 B가 영화 <조커> 이야기를 꺼냈다. 이 영화가 처음 개봉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걱정했던 포인트가 있다. 조커는 절대로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자다. 그런 조커에게 거창한 서사를 부여하고, 그의 일탈행위를 아름답게 묘사해서는 안 된다.


나도 이 걱정에 공감했다. 차라리 영화를 못 만들었다면 좋았을텐데, 이 경우에는 영화를 잘 만들어버려서 문제였다. 고대 그리스인의 세 가지 질문을 대입하면, 조커에 대한 윤리적 판단(그르다)과 미학적 판단(아름답다)는 명백히 다른 층위에 있다. 이 엄청나게 파워풀한 영화를 만드느라 고생한 관계자들 입장을 대변해보자면, <조커>는 범죄자 조커를 미학적으로 아름답게 그렸을뿐, 조커가 윤리적으로 옳다고 정당화하려는 의도는 없었을 것이다.


여기서부터는 이성과 감성의 문제로 연결된다.


이성적으로는 윤리적 판단과 미학적 판단이 서로 다른 층위에 존재한다. 영화를 보는 우리들이 이성적으로 판단하여 두 가지 판단기준을 각각 적용하면 된다. 조커는 윤리적으로 그르지만 미학적으로 아름답다.


이성 말고 감성을 놓고 보면 이야기가 좀 달라진다. 영화는 두 시간 동안 지독하게 아름다운 이미지로 조커의 이야기를 전달해준다. 나는 많은 경우에 영화에 대해 잘 기억을 못 하는 편인데, <조커>는 좀 달랐다. 영화 본지 1년이 지난 지금까지 선명하게 연상이 된다. 그 이미지에 윤리적 판단이 어쩌고 미학적 판단이 어쩌고 하는 이성적인 구분을 덧씌울 수가 있을까? 영화가 주는 강렬한 아름다움에 매료된 나머지 윤리적 판단과 미학적 판단을 헷갈리게 되지는 않을까?


파국으로 가기 직전 조커의 모습. 이 영화에서의 호아킨 피닉스는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연기를 펼쳤다. (사진출처: IMDb)



낭만과 뻘소리


이성과 감성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인간은 이성적일까요?


모임에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자신의 가치관이 드러난다. 인간이 이성적일까요? 라는 질문에 대해 양극단에 있는 생각을 가진 두 사람이 있는데 바로 B와 C다. B는 자기 자신에 대한 피드백을 매년 서베이로 받아서 데이터로 축적한다는 생각을 해내는 사람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생각마저도 객관적인 데이터로 정리해놓고 싶어할 만큼 이성적 판단을 중요하게 여긴다. 반면 C는 사람들의 감성을 포착해서 아이디어로 옮기는 작가다. 추상적 세계에서 나오는 논리보다는 경험에서 나오는 직관을 중요하게 여긴다.


C가 생각하기에 요즘 사람들이 너무 경직되어 있는 거 같단다. 예전에는 싸이월드에 허세 섞인 헛소리를 마음껏 끄적이곤 했었다. 그러다 몇년 전부터 "싸이월드 허세"가 하나의 밈이 되었다. 눈치 없이 싸이월드에 헛소리 써 뒀던 사람들이 이제는 안 한다. 자기검열을 한다. 이성적으로 보면 그게 나을 수 있다. 지금 쓰는 헛소리 나중에 보면 다 부끄러운 과거의 흑역사가 될 테니까. 그래도 아쉬운 일이다.


그러면서 C가 시크하게 멋진 말을 툭 던진다.


감성은 낭만이죠.
낭만이 있으려면 뻘소리가 많아야 해요.


낭만과 뻘소리. 어디다 적어두고 싶은 말이다. :)


이야기를 들으면서 10여년 전, 내 대학생 새내기 시절이 파노라마처럼 떠올랐다. 신입생환영회 때 만나 아직은 덜 친한 친구의 일촌명을 뭘로 정해야 할지 고민했던 기억이 있다. 당시만 해도 핸드폰 화질이 구렸다. 그 구린 사진에 스티커를 붙여 원본을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만든 다음에 허세글귀와 함께 업로드를 해 놓고, 일촌들이 몰려와 댓글을 달아주면 몇 분에 한 번 꼴로 확인하느라 다른 일을 못 했던 것도 기억이 난다.


그로부터 십 년이 지나 지금은 SNS에 글 올릴 때 자기검열을 엄청 하는 30대가 되었네.

확실히 낯 부끄러울 일이 많이 줄었으나, 역시 낭만은 없다.



인공지능이 까뮈가 될 수 있을까?


인간의 감성을 낭만으로 치환하고, 낭만이 있으려면 뻘소리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보니, 인공지능도 뻘소리를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은 무슨 이야기만 하면 인공지능과 IT로 귀결이 된다.


어쩔 수 없는 흐름이기도 하다. 코로나로 '집콕'과 '비대면 커뮤니케이션'이 주류가 되면서 이 분야가 실제로 무섭게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래 기사는 3일 전인 8월 21일자 보도를 가져온 것인데, 미국 7대 기술주(MS 아마존 구글 애플 페이스북 테슬라 넷플릭스)의 시가총액이 무려 7.7조 달러를 넘어섰다고 한다. 이들 기술주가 S&P 500의 25% 이상을 차지하고 있단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이 분야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는 만큼, 우리들 역시 관심도 같은 방향을 향할 수밖에.




다시 인공지능이 뻘소리를 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인간의 뻘소리에 "예술"이라는 꼬리표를 달아줄 수 있겠다. 뻘소리를 예술로 치환해보면, 미안하지만 인공지능도 이미 예술 할 수 있다. 그림이나 음악은 물론이고 소설도 웬만한 수준으로 완성시킬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다.


여기서 문제는 이것.

인공지능이 만들어 낸 예술이 인간의 예술을 대체할 수 있을까?


이 지점에서 C가 몇년 전 독서모임에서 알베르 까뮈의 <이방인>을 읽고 이야기 나눴던 경험을 끄집어 냈다. 이 소설의 백미는 역시 주인공 뫼르소가 살인을 저지르는 장면이다. 햇빛이 칼날에 반사되어 눈이 부셨다고 한다. 까뮈는 그 눈이 부시다는 묘사를 아주 정성들여 해 준다. 묘사 부분을 아래 발췌해두었는데, 사실 발췌문만 읽어서는 그 기이한 현상을 100% 이해하기 어렵다. 소설의 흐름을 차근차근 따라와 결말에 다다라야 한다. 그 날 모임에 참석했던 멤버들이 이구동성으로, 종이책 속 텍스트를 읽고있을 뿐인데 왠지 눈이 부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그 순간에 느낀 신기함이 너무나 압도적이어서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회만 되면 이야기가 나온다.


빛이 강철 위에 반사하자 번쩍거리는 길쭉한 칼날이 내 이마에 와서 부딪히는 것 같았다. 그와 동시에 눈썹에 맺혔던 땀이 한꺼번에 눈꺼풀 위로 흘러내려 미지근하고 두꺼운 막으로 덮어버렸다. 눈물과 소금의 장막에 가려져 내 눈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이마 위에 울리는 태양의 심벌즈 소리와, 칼로부터 여전히 내 앞으로 다가오는 칼날을 느낄 수 있을 뿐이었다. 그 타는 듯한 칼은 내 속눈썹을 찌르고 고통스러운 눈을 후벼 파는 것 같았다.
-     알베르 카뮈, <이방인> 중


판타지나 로맨스처럼 어느정도 정형화된 틀 안에서 잘 알려진 클리셰를 이리저리 조합해 독자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종류의 오락소설은, 인공지능도 쓸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사람보다 인공지능이 더 잘 쓸 수 있을지도. 지각이나 연재중단 없이 늘 정해진 시간에 칼 같이 업로드 해 주는 성실한 작가가 될 것이다.


반면 인공지능이 까뮈의 <이방인>처럼 2D 텍스트를 4D로 바꿔주는 신비한 경험을 가져다줄 수 있는 명작 오브 명작을 만들어낼 수 있냐고 물으면, 그건 안 될거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이라고 해도 할 말 없다.





매주 다른 책을 읽고 다른 이야기를 하지만, 이야기하다보면 신기하게 재테크나 인공지능 같은 몇 가지 키워드로 수렴이 된다. 오늘은 간만에 재테크 얘기는 빠졌지만 인공지능 얘기는 결국 나왔네.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 우리의 대화도 우리가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주제들을 향해 흘러가는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독서모임에서 책 읽고 나눈 이야기를 전하는 매거진 <일요일엔 책을>, 어느덧 11번째 이야기를 전하게 되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혼자만 알고있기 아까운 이야기를 전할 수 있기를. 다음주 책은 tvN <알쓸신잡>에 나와서 유명해진 건축가 유현준 교수님의 <공간이 만든 공간>으로 돌아오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일요일엔 책들> 매거진 지난 목차를 달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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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위험에 대한 안테나, 이제는 내리고 싶다. : <아픔이 길이 되려면> 1편, 코로나 시대와 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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