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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데이수 Sep 06. 2020

우리는 어떤 공간에서 편안함을 느낄까.

독서모임에서 건축가 유현준 교수의 <공간이 만든 공간>을 같이 읽었다

코로나, 언제 끝날까?


얼마 전 세계보건기구(WHO) 총장이 인터뷰에서 '2년 안에 종식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빨라야 2년이라는 뜻이다. 지난 반 년 동안에도 이미 전염병 이라는 요소가 우리 일상의 곳곳을 바꿔놓았는데, 이 상황이 앞으로도 한동안은 지속될 거라고 생각하면 어딘지 아찔하다. 코로나 이후의 세상은 코로나 이전의 세상과 완전히 다른 곳일 거라는 확신이 든다.


온라인 독서모임에서 나눈 이야기를 전하는 매거진 <일요일엔 책을>, 오늘 같이 읽은 책은 <알쓸신잡>에도 출연했던 건축가 유현준 교수의 신작 <공간이 만든 공간>이다. 저자의 전작 <어디서 살 것인가>,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를 아주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에 책을 읽기 전 기대감이 상당했다.


결론부터 이야기 하면, 처음에 기대했던 것과는 맥락이 좀 다른 책이었다. 지금 이 순간의 건축에 대해 해설해주기 위한 책인 줄 알았는데, 그보다는 그 건축이 있기까지 어떠한 배경이 있었는지를 알려주는 책이었다. 기대와 달라 실망했다는 반응도 있었다.


그래도 미래를 내다보려면 피상적인 현상보다는 그 현상이 있기까지의 원리를 아는 편이 좋다. 코로나 이후의 세상을 그려나갈 때 빠질 수 없는 키워드가 바로 공간 아닌가. 코로나 이후의 세상에서 우리는 앞으로 어떤 공간을 만들어 나가게 될까. 그리고 우리가 만들 공간에는 어떤 역사적, 문화적 배경이 녹아있어야 할까? 질문에 답을 주지는 않지만, 생각해 볼 만한 거리를 던져준다는 점에서 이 시점에 읽어볼 만한 책이라고 느꼈다.


그럼, 바로 시작합니다.






벽이 중심에 있는 건축
기둥이 중심에 있는 건축


책 서두에서 저자는 상당한 분량을 할애해 서양과 동양을 비교해놓는다. 요약하면, 서양과 동양의 기후적인 차이로 인해 문명의 발전경로가 각각 다른 방향으로 뻗어나갔다. 강수량이 적은 서양에서는 밀 농사를, 강수량이 많은 동양에서는 벼 농사를 지었다. 밀 농사는 개인의 역량으로 할 수 있는 영역이라 서양이 개인주의적인 사회로 발전했고, 벼 농사는 집단이 힘을 합쳐야 할 수 있는 영역이라 동양이 집단주의적인 사회로 발전했단다.


이러한 영향은 건축에도 나타났다. 서양은 강수량이 적기 때문에 지붕을 튼튼하게 만들 필요가 적었다. 자연히 바깥과 안쪽의 영역을 구분하는 '벽'을 중심으로 건축이 발달했다. 반면 동양은 강수량이 많기 때문에 지붕이 무너지지 않도록 튼튼하게 만드는 게 중요했다. 자연히 지붕을 받쳐줄 수 있는 '기둥'을 중심으로 건축이 발달했다.


기둥 중심의 건축에서는 지붕을 받치기 위해 굳이 벽을 세울 필요가 없다. 기둥과 기둥 사이가 뻥 뚫린 개방감을 갖기 쉽다. 책의 한 구절을 인용해본다.


동양 건축에서는 내외부의 경계가 모호한 공간감이 발달하게 되었다. 동양은 안에서 밖을 보는 일이 일상이었고, 집의 내부와 바깥 경치의 관계가 중요했다. 그래서 우리는 주변 경관과의 관계를 생각하면서 건축물의 배치를 결정한다. 안에서 밖이 어떻게 보이느냐가 건축 디자인의 중요한 결정 요인이 된 것이다.


안과 밖의 구분이 없는 공간! 지난 2014년에 태국의 시골마을 빠이를 놀러갔다 온 다음부터 선데이수가 줄곧 관심을 가져 온 주제이기도 하다.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면서 이런 공간에 대한 선호도가  커졌다. 밀폐된 공간에 사람들과 같이 있으면 마치 공기 중에 바이러스가 떠다니는  같은, 찝찝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도쿄 중심부 식당의 내부공간 예시. 임대료가 비싸니 작은 공간에 많은 사람을 앉히기 위해 사람과 사람의 간격을 최소로 한다. 사진은 <고독한 미식가>의 한 장면.
안과 밖의 구분이 없는 공간의 예, 태국 빠이. 코로나 이후 밀폐된 공간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면서 이 곳이 더욱 그리워졌다.


요즘은 식당이든 카페든 한 시간 이상 체류해야 할 일이 있으면 반드시 테라스 자리가 있는지를 살핀다.


안과 밖의 구분이 없는 공간은 사실 사계절의 구분이 뚜렷한 한국이나 일본에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에어컨이나 히터로 온도조절을 하기 어렵기 때문에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춥다.


그래도 WHO 총장이 말한 것처럼 코로나 팬데믹이 앞으로 최소 2년, 또는 그 이상으로 장기화된다면 이런 공간에 대한 수요가 더 늘어날 거라고 믿는다. 도쿄는 지금도 이미 루프탑이나 테라스 자리를 갖춘 식당이나 카페들 전부 만석이다. 다들 돈을 더 내고라도 밀폐된 공간에 있지 않으려고 한다. 공간을 새로 조성하는 데는 아무래도 시간과 비용이 들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이 될 게 명확하니 이 쪽으로 시도가 많아지지 않을까. :)


왼쪽은 한쪽 벽면을 폴딩도어로 디자인해 마치 나무평상에 앉아있는 것처럼 꾸며놓은 카페, 오른쪽은 츠타야서점 앞의 테라스 테이블이다.



한국의 건축을 생각한다.


코로나의 영향으로 안과 밖의 구분이 없는 건축에 대한 수요가 늘어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수요는 곧 돈이다. "안과 밖의 구분이 없는 건축"에 자본이 밀려들 것이다. 이 돈이 어디로 가야 할까? 유현준 교수의 아이디어를 참고하면, 안과 밖의 구분이 없는 건축에 대해서는 서양보다 동양에서 더 풍부한 역사와 경험을 가지고 있다. 기왕이면 이 돈이 한국의 건축을 우리 시대에 맞게 새롭게 정의하는 데 쓰였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코로나 시대에 우리가 안과 밖의 구분이 없는 공간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할 때, 한국이 가진 장점은 명확하다. 우리는 한옥을 가지고 있다. 기둥 중심의, 안에서 밖을 바라볼 수 있는 멋진 건축물.


한옥을 과거 모습 그대로 여기저기 만들기에는 아무래도 불편한 점이 있다. 한옥이 가지고 있는 여러 부분 중 "안과 밖의 구분이 없는"이라는 요소 하나를 떼어다가 오늘날의 생활양식에 맞게 적용해 성공을 거둔 건축가가 많이 나와주면 좋겠다. 그래야 "한국의 건축" 하면 떠오르는 심상이 조선시대에서 21세기로 훌쩍 넘어올 수 있게 되지 않을까?


2015년에 창경궁 야간기행을 갔을 때 찍은 사진들. 기둥 중심의 건축, 안과 밖의 구분이 없는 공간 등의 키워드를 확인할 수 있는 공간이다. 아름답다. :)


여기에 더해, 일본에 사는 내 입장에서는 안도 타다오 이야기를 안할 수가 없었다. 한국의 건축 하면 아직도 한옥이 먼저 떠오른다. 일본의 건축 하면 떠오르는 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 경우에는 안도 타다오의 노출 콘크리트가 생각난다. 걸출한 건축가 한 사람이 "일본의 건축"에 대한 이미지를 과거에서 현재로 쭉 당겨와 준 것이다. 실제로 도쿄의 골목골목 지나다니다 보면 미술관처럼 공들여지은 건물에서뿐 아니라 개인이 사는 단독주택에도 노출 콘크리트를 활용한 건축 디자인을 아주 손쉽게 발견할 수 있다.


고베 현립 미술관. 노출 콘크리트를 활용한 벽면과 공간의 단면을 칼로 자르듯 차가운 층계 디자인의 조합이 인상적이었다.


한국에도 이런 식의 선순환이 있었으면 좋겠다. 코로나의 영향으로 우리 주변을 둘러싼 공간이 변화한다면,  그 변화에 상당한 돈이 몰릴거라면, 그 돈이 외국 양식을 답습하는 데 쓰이지 말고, 누군가 천재적인 한국의 건축가가 자신의 천재성을 펼치는 데 쓰일 수 있기를. :)



사실, 이 책의 백미는 후반부에 있다!


다시 책 이야기로 돌아가자. 좋은 책이었지만 논리전개나 디테일에서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건축과 도시에 대한 이야기는 유현준 교수의 전작들이 더 좋았고, 기후와 문명에 대한 이야기는 유현준 교수의 해설보다는 <총, 균, 쇠> <사피엔스> 같은 두꺼운 책 원전을 읽는 게 더 낫지 않냐는 의견이었다. 저자의 전작과 비교할 때 충분히 정제되지 않은 채 출간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하여간에 우리 모임 멤버들 참 삐딱하기도 하다.)


그렇다면 저자는 왜 책 출간을 서둘렀을까. 우리끼리 뇌피셜 추측을 해 본 바로는, 이 책의 마지막 두 장 때문이다. 이 책의 목차 기준으로 8장과 9장은 지금 이 순간의 변화를 다루고 있다. 이런 내용은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시의성이 떨어진다. 완벽한 책을 만들려고 시간을 끄느니, 시의성이 떨어지기 전에 최대한 빨리 출간하는 편을 선택했을 수 있다.


8장에서는 '학문 간 이종 교배의 시대'라는 제목으로 기술의 발달이 건축에 미치는 영향, 나아가 앞으로 건축이 인공지능과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다루고 있다.


9장에서는 '가상 신대륙의 시대'라는 제목으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융합, 그 속에서 공간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한다. 구글과 페이스북 등 GAFA가 지배하는 온라인 공간을 '가상 신대륙'으로 이해하고, 그 속에서 우리가 그 공간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에 대해 저자 나름대로의 인사이트를 준다.


8장과 9장을 읽고 나눈 이야기는 다음 포스팅에서 조금 더 다뤄보기로 한다. :)






오늘의 관련글은 태국 빠이의, 안과 밖의 구분이 없는 공간에 대해 쓴 글로 달아본다.


다음은 <일요일엔 책들> 매거진의 지난 목차입니다. 여러 분들이 응원해주신 덕분에 어느덧 열두번째 포스팅을 올리게 되었어요. 매거진의 다른 글에도 관심이 있으시다면 제목을 클릭! 해주세요. :)


1. 어느 독서모임 이야기 : 독서모임 소개글. 우리는 7년째 일주일에 한 권 책을 같이 읽고 있어요!
2. 위험에 대한 안테나, 이제는 내리고 싶다. : <아픔이 길이 되려면> 1편, 코로나 시대와 건강
3. 연결되기 위해 기꺼이 돈을 지불하는 사람들 : <아픔이 길이 되려면> 2편, 연결될수록 오래 사는가?
4. 나는 절대 저렇게 추하게 늙지 말아야지 : 동명의 소설을 읽고, 트렌드에 대해 이야기했어요.
5. 돈이 대체 뭐길래? : <50대 사건으로 보는 돈의 역사>와, 우리 주변의 돈에 대한 이야기.
6. 모두가 책 안 읽어온 날의 독서모임 : 알베르 까뮈의 <최초의 인간>을 읽으려다가 그만...
7. 기록하는 삶에 대하여 : <기록의 쓸모>, 기록을 대하는 각자의 자세를 나누다!
8. 30대에 꿈에 대해 이야기하려니 : <데뷔의 순간>과 빛이 바랜 나의 꿈...
9. 파이어족, 젊을 때 불꽃같이 벌어서 은퇴하자고? : <파이낸셜 프리덤>, 경제적 자유를 꿈꾸며!
10. 그린 뉴딜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 <글로벌 그린 뉴딜>과 그린 뉴딜 정책
11. 인문학, 이제는 조금 식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요… : <천년의 수업>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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