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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데이수 Sep 15. 2020

인풋을 넘어 아웃풋으로

독서모임에서 <드디어 팔리기 시작했다>를 읽고 나눈 이야기

지난 7년간 책에 대한 이야기로 일요일 아침을 열어 온 독서모임에서 나눈 대화를 전하는 매거진 <일요일엔 책을>, 오늘은 '브랜드 보이' 안성은 님의 <드디어 팔리기 시작했다>를 읽고 나눈 이야기를 전합니다. :)



 



이 책을 읽기로 한 이유


멤버 A 최근에 <아비투스: 인간의 품격을 결정하는 7가지 자본>라는 책을 읽었다. 프랑스 사회학자 부르디외의 이론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책이다. 부르디외는 사회경제적 자본으로 규정지어지는 계층구조가 문화자본과 어떤 영향을 주고받는지에 대해 연구했다. <아비투스> 작가는 부르디외의 이론에서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을  빼고, 사회경제적 계층구조가 문화자본과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현상만 끄집어내서 "부자처럼 입고 쓰고 행동하자" 취지로 책을 냈다. (부르디외가 자기 이론이 이렇게 쓰이는 걸 알았다면 화가 나서 무덤에서 벌떡 일어났을지도 모르겠다.)


책에 대한 호오와는 별개로, 타인과 나를 구별지으려는 욕망이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에 대해 조금  생각해보고 싶어졌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구별짓기의 욕망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틀은 브랜드다. 이번에는 브랜드를 테마로 하는 책을 골라보자, 는 마음으로 인터넷 서점 사이트를 뒤진 끝에 이 책을 발견했다고 한다.




불평불만이 많은 독서가들


독서모임을 하다보면, 리더를 맡은 멤버가 책을 선정한 이유를 유독 구구절절 이야기할 때가 있다. "이건 우리 멤버들이 별로 안 좋아하겠는데?"라는 느낌이 들면, 책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기 전에 지레 방어진을 쳐 놓으려는 것이다. 리더의 마음이란. :)


사실 <드디어 팔리기 시작했다>라는 제목과, 온라인 서점 사이트의 책 소개를 보고 우리가 기대한 건 "어떤 브랜드가 팔리기 시작하려면 어떤 '한 방'이 필요할까?"라는 질문에 대한 저자 나름의 답이었다. 아쉽게도, 우리는 이 책에서 답을 찾지 못했다. 사명, 문화, 다름, 집요, 역지사지 라는 키워드로 나름 분류를 해 놓기는 했는데, 각각의 키워드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또 그 브랜드와는 어떤 관련이 있는지에 대한 인사이트가 충분히 드러나지 않아서 아쉬웠다는 평이었다.


한편 브랜드 사례집으로서 의미가 있을 수는 있다. 저자가 트렌드 세터로서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은 브랜드를 새롭게 소개할 수 있다면 말이다. 멤버 B에 따르면, 이 책에 소개된 브랜드 대부분 낯익은 거라서 그다지 신선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만큼 요즘은 한국시장이 글로벌 유행의 앞단에 있다는 거겠지. 그나마 일본의 편집샵 강자 빔즈, 로컬 커뮤니티와 공존하는 에이스호텔, 도쿄 한복판에서 압도적인 고요를 전한다는 호시노야, 그리고 한국의 전통문화에 천착했던 잡지 뿌리깊은 나무의 사례를 인상깊게 읽은 편이라는 정도.



우리도, 인풋을 넘어 아웃풋을 고민해본다.


그래도, 나는 이 책 읽기를 잘했다고 본다. 브랜드보이로서의 저자 말고, 브런치 작가로서의 저자에게 흥미를 느꼈다. 자신이 쓴 글을 엮어 책이라는 완결된 형태로 세상에 내놓아야겠다는 결심과, 그 결심을 행동으로 옮긴 의지가 대단하다. 나였다면, 내가 과연 브랜드에 대한 책을 쓸 자격이 있을까? 라는 질문에 갇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을 것 같다.


선데이수가 <일요일엔 책들> 매거진을 시작하고 싶다고 알렸을 때 멤버들이 물었다.


재밌겠다. 그런데 그거 왜 하는데?


음, 나도 잘 모르겠다. 독서모임에서 나눈 이야기를 글로 옮기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 어떤 내용은 술술 써지고, 어떤 내용은 진도가 잘 안 나가고 한다. 평균적으로 글 한 편에 3~4시간 이상이 든다. 그래도 계속 쓰는 이유는, 지난 7년 간 나의 자아를 키우는 데 상당한 기여를 했던 독서모임에서의 경험을 단순히 인풋(Input) 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아웃풋(Output)으로 산출해 봐야겠다는 결심이 아직 유효해서다. (일주일에 한 번 이라는 약속 아닌 약속이 퇴근하고 귀찮은 나를 키보드 앞으로 인도해주기도 한다.)


솔직히 선데이수 라는 이름으로 블로그에 올리는 글들은 어떤 의미에서 아웃풋이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또 다른 형태의 인풋에 가깝다. 독서모임 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그 안에서 뭔가 인사이트를 뽑아내는 것, 좋다. 이 인풋을 쌓아 만들어 진 <일요일엔 책들>을 어떻게 아웃풋으로 바꿔나갈 수 있을까. <드디어 팔리기 시작했다>를 읽고 뜬금없이 그런 고민에 빠졌다.


멤버 A도 비슷한 고민이 있다고 고백했다. A는 1인 스타트업 대표로 회사명을 딴 인스타 계정을 운영하고 있다. 나도 팔로우를 하고 있는데, 내가 느끼기에 A의 인스타는 통상적인 의미에서 마케팅의 수단은 확실히 아니다. 기업 인스타 게정에서 흔히 보이는 홍보성 포스팅이 거의 없다. 그보다는, 1인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A가 일상과 비즈니스의 경계에서 얻는 단상을 담백하게 전달하는 루트 같다고 할까?


A도 주변에서 몇 천명의 인스타 팔로워를 관리하면서 인스타를 마케팅의 주요 수단으로 활용하는 케이스를 많이 봤단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해 나 혼자 알고있는 게 아니라, SNS를 통해 의미있게 전달할 수 있다면 브랜드를 알리는 데 도움이 될까?"라고 생각을 하지만, 막상 그게 잘 안 된다고.


과거에는 현실 속 나를 아는 소수의 사람들에게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나 자신을 표현하면 됐다. 불특정 다수에게 보여지는 아이덴티티를 고민하는 건 TV에 나오는 연예인의 몫이었다. 커뮤니케이션 기술이 발달하면서 사정이 좀 달라졌다. 싸이월드 시대 감성적인 BGM과 텍스트로 자신을 표현했던 우리들은, 몇 장의 사진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인스타그램의 시대를 넘어, 동영상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유튜브 시대를 살아가야 한다. 그 다음은 VR/AR 기술에 올라 타 2차원을 넘어 3차원으로 '나'를 전달하는 시대가 곧 올 것이다.


아, 사는 게 참 쉽지 않네. . :)



유행은 어디에서 오는가


브랜드에 대한 책을 읽고나서 브랜드 얘기를 쏙 빼놓았네. 브랜드 얘기도 물론 많이 했다. 마치 현대미술 갤러리 같은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출발한 젠틀몬스터 이야기, 불매운동으로 유니클로를 떠난 소비자들을 영리하게 붙잡아 온 무신사 스탠다드 이야기, 10~20대 사이에 핫하다는 스타일쉐어 이야기 등등.


선데이수가 막 패션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게 대략 2015년 정도다. 지금 회사에 입사해서 수중에 돈도 좀 생겼고, 대학생에서 직장인으로 넘어가며 옷 살 일도 많이 있었다. 내가 워낙 패션에 관심 없어서일 수도 있지만, 그때만 해도 연예인이 어떤 제품 입었다고 입소문이 나면 거리에 같은 제품이 엄청 보였던 기억이다.


2014년 아이유 사복으로 떴던 니트 가디건. :) 나 진짜 이거 입은 사람 오조 오억 명 봤다.


A에 따르면, 점점 사람마다 선호하는 스타일의 폭이 넓어지면서 개성있는 브랜드들이 등장할 여건이 만들어지고 있다. 브랜드가 개성이 있으려면 가격이 좀 고가여야 한다. 다품종 소량생산을 해야 하기 때문에 규모의 경제를 기대하기 어려워서다.


요즘은 그게 된다. 진짜 좋아하는 물건에 비싼 가격을 지불할 준비가 되어있는 소비자가 늘어났다. 어떤 카테고리는 다이소에서 사더라도, 어떤 카테고리는 백화점 브랜드에서 사려 한다. 특히, 나의 아이덴티티를 브랜드로 표현하려 하다보니, SNS를 통해 나와 유사한 또는 내가 닮고싶은 아이덴티티를 가진 사람을 발견하면 그 사람이 입고 쓰는 브랜드를 나도 갖고싶은 마음이 든다고.


멤버 B는 토론하다 어느 순간에 진짜 궁금한 표정으로 질문을 던지는 재주가 있다. 오늘의 질문은 이랬다.


유행의 시작은 어디일까요?



일본 소비자들은 왜 편집샵에서 비싸게 살까?


이때다 싶어 일본의 편집샵 이야기를 꺼내보았다. 선데이수가 일본에 와서 제일 신기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편집샵이다. Beams, Ships, United Arrows 같은 중저가 편집샵 말고도 일본에는 진짜 별의별 편집샵이 다 있다. 오모테산도나 에비스 골목을 걷다보면 도저히 가게처럼 안 보이는 건물이 있다. 들어가보면 몇백만원 짜리 진(Jean) 제품만 갖다놓은 곳도 있고, 극한의 미니멀리즘 디자인에 소재가 딱 봐도 좋아보여 가격표를 열어보니 헉 소리가 절로 나는 곳도 있다.


공통점은, 비싸다는 것.


청바지나 미니멀리즘 고가 편집샵의 경우 그 곳에 진열된 브랜드들을 내가 잘 모르니까 가격비교가 잘 안 된다. Beams나 Ships를 예로 들면, 챔피온이나 컨버스 같이 흔한 브랜드라도 편집샵에 입점이 되면 가격이 최소 1.2배가 된다. 편집샵 입장에서 그런 가격을 책정하는 이유는 이해가 간다. 매장운영도 해야 하고, MD들 인건비도 부담해야 하니.


그런데 요즘처럼 전자상거래가 편해진 세상에 소비자 입장에서 굳이 1.2배를 내고 편집샵에서 그 물건을 구매해야 할 이유가 있나? 선데이수는 한국에서도 백화점 쇼루밍족이었다. 백화점 매장에서 입어보고 구매는 백화점 온라인몰에서 한다는 뜻이다. 더군다나 일본 편집샵은 백화점과 달리 직원이 따라다니지도 않아서 품번 확인해서 검색하기도 더 편한데, 대체 왜?


"편집샵 수수께끼"는 선데이수를 꽤 오랜시간 괴롭혔던, 풀리지 않는 난제였다.

그런데 유행의 시작 이라는 질문과 연결해 보니 신기하게도 수수께끼가 풀렸다.


편집샵을 이용하는 소비자들은 유행의 시작을 알아보는 편집샵만의 안목에 가격을 지불하는 거구나. 챔피온과 컨버스 같은 뻔한 브랜드를 몰라서가 아니라, 챔피온과 컨버스의 이번 시즌 신상품 중 Beams의 아이덴티티와 겹치는 특정 제품을 바잉해온 편집샵의 수고를 보상해주는 것.


A도 재빨리 거들었다. A는 배우 출신 유튜버인 윤승아의 영상에 나오는 브랜드를 많이 참고하는데, 윤승아도 한남동 근처 편집샵에서 쇼핑을 많이 한다고 했다. 물론 여기에서 누가 먼저고 누가 나중이라는 구분은 무의미할 것이다. 브랜드, 편집샵, 인플루언서, 미디어, 소비자까지 여러 주체들이 각자의 선호를 주고받으며 유행이 만들어지는 거겠지.


(왼쪽) 마블, DC 같은 아메리칸 코믹스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편집샵, (오른쪽) 미술 도록만 몇 백 권 이상 모여있는 미술 전문서점
(왼쪽) 포장지, 리본 등 선물포장 관련 용품만 모아놓은 전문점, (오른쪽) 색색깔 풍선 같은 파티용품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가게





일본의 편집샵 이라는 주제는 나중에도 따로 한 번 다뤄보고 싶다. 편집샵 구경 정말 재밌다. 다음주는 <그것이 알고싶다>에도 자주 등장하는 법의학자 유성호 교수의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라는 책을 읽고 죽음을 준비하는 자세에 대해 나눈 이야기를 소개할게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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