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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anna Mar 05. 2021

밤 그리고 아침

우울증 일기 13

유난히 잠이 오지 않는 밤이 있다. 그럴 땐 마치 영원히 아침이 오지 않을 것만 같다. 그 시간을 견뎌내는 것이 삶과 죽음을 선택하는 마음과 같다. 갑자기 찾아오는 '가라앉음'의 정도가 덜컥 겁이 날 만큼 커질 때엔, 그걸 외면하기 위해서 약을 찾는다. 내가 갑자기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어 질까 봐, 차라리 약을 먹고서라도 억지로 잠을 자는 편이 사는 길로 느껴진다.

    우울함은 규칙성이 없는 주기가 있는 것 같다. 며칠은 막연한 희망으로 멋진 미래를 꿈꾸다가도, 또 다른 날들은 현실의 밑바닥에 엎드려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신세가 되곤 한다. 동시에 과거에 지독히도 힘들게 보냈던 시간들이 또다시 밀려와 지난 과거의 나로 돌아가는 듯한 기분을 영원히 간직하고 살아가야 할 것만 같다. 이런 생각을 하며 사는 나에게도 과연 신에게 기도할 자격이 있긴 할까. 매일 살아가면서 늘어가는 건 나의 죗값일 텐데,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살아도 괜찮은 걸까. 어찌 보면 아무 생각 없이 보내는 시간도, 깊은 가라앉음 속에 허우적대는 시간도, 막연한 희망에 젖어있는 시간도 모두 다 잘 살고 싶은 내면의 모습인 것을. 영영 고칠 수 없는 정신적인 장애를 갖게 된 것이라 할지라도, 나는 분명 자유로워질 수 있음을 알고 있다. 

    언제나 아침은 온다. 다시는 주어지지 않을 '하루'가 주어진다. 그 '하루'를 열심히 살지 않았다고 느껴질 때마다 죄책감이 들었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그 죄책감을 씻어내기로 했다. 매일 매 순간마다 내가 진심으로 사람을 대하고, 작은 일이라도 하고 싶은 것들을 찾아 나서는 것이 나에게 주어지는 '하루'를 가장 갚지 게 보내는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만큼 열심히 살지 않아도, 누군가처럼 봉사하는 삶을 살지 않아도, 그저 매일 같은 일상을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때가 있다. 매일 행복할 수는 없다. 그리고 매일 우울할 수도 없다. 분명 나를 미소 짓게 하는 것들은 가까이에 있다. 그 사실을 종종 잊어버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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