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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광용 Jun 24. 2024

교사 아빠의 육아휴직 롸이프 9

비둘기와의 이별

<비둘기 집>이라는 노래엔, '비둘기처럼 다정한 사람들이라면~'이라는 가사가 나온다. 이 가사를 쓴 사람은 비둘기의 속성을 잘 알고 있다. 비둘기는 인간에게도 다정한 새다. 다만 관계에선, 무심한 것보다 일방적으로 다정할 때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


베란다 바깥에 달린 실외기 공간에 처음 비둘기의 흔적을 발견한 건, 한 달 전이었다. 동전 크기의 변이, 물감을 떨어뜨린 것처럼 실외기 옆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몇 달 전에, 엘리베이터에 공지 하나가 떴었다. 실외기 전체를 모기장 같은 걸로 감싸는 작업 공동구매를 진행한다는 내용이었다. 비둘기 방지를 위한 것이었다. 우린 그때, 다른 집엔 비둘기가 오나보네? 하고 흘렸다.


한 두 개의 변으로 시작된 흔적은, 점차 늘어났다. 한 달 만에  실외기 아래와 옆이 비둘기 변으로 가득 찼다. 비둘기는 이제 그곳을 집으로 여기고 있었다. 새벽에 날아든 비둘기는 그르렁그르렁 울며 우리의 잠을 깨웠다. 날이 더워져서 베란다 문을 열어놓기 시작했는데, 비둘기 소리가 수시로 들려왔고 냄새도 솔솔 풍겨왔다. 가까이 가보니 비둘기가 실외기 아래쪽을 활보하고 있었다. 거대한 몸집의 비둘기를 가까이서 보니, 덜컥 겁이 났다.


우리집에 오려다가 나와 딱 마주치고는 윗집에 날아가 앉은 녀석.


청소를 차일피일 미룬 사이에, 비둘기 똥이 뒤덮었다. 비둘기 똥은 묘하게 향긋한 구석이 있었지만, 그냥 둘 수는 없었다. 경각심을 느끼고 검색에 나섰다. 비둘기는 귀소 본능이 강해서, 한 번 집으로 생각하면 쫓아내도 계속 돌아온다고 했다.


이미 누군가는 비둘기와 집을 놓고 다투고 있었다는 점을, 검색 끝에 알게 되었다. 비둘기 퇴치와 관련해서 거대한 시장이 형성되어 있었다. 서치 끝에, 버드스파이크라는 기구를 구매했다. 뾰족뾰족한 가시 모양으로, 새가 내려앉을 때 통각을 느끼게 해서 다시 오지 않게 하는 기구였다.

 

토요일 오후 몇 시간 동안, 청소를 하고 비둘기 퇴치기를 설치했다.


결과는 대성공. 비둘기가 접근하지 못했다.  자신의 집 중 하나를 잃은 비둘기는 푸드덕 소리를 내며 날아와서 주변을 맴돌기도 했다.


 추가 구입해서 베란다 난간에도 깔았다. 아내는 새벽에 비둘기 날갯짓 소리를 들었지만, 비둘기가 몇 번 앉으려고 시도하다가 날아가는 것 같았다고 했다.


 비둘기와 이별하는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난 교훈을 얻었다. 내 안에 나쁜 것들이 집을 짓는 경우가 있다. 나쁜 습관, 생각들. 처음엔 조그만 흔적만 남긴다. 대수롭지 않게 지나간다. 이내 그것들이 온 마음을 가득 채운다. 나중에 치러야 할 대가가 크다. 초반에 움직여야 한다.


다정한 비둘기에겐 미안한 비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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