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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작가 Jun 30. 2023

영화 <가재가 노래하는 곳>

온전한 아웃사이더가 사는 세상


습지는 늪이 아니다

습지에는 빛이 가득하고

물에서는 풀이 자라고

물줄기가 하늘과 맞닿는다


그런 습지 내 구석구석에는

정말 늪이 있다


노스캐롤라이나 바클리 코브

1969년 10월 30일


두 꼬마가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시체를 발견하며 영화는 시작된다.


습지는 죽음을 통달하고 있다

비극이라고 규정짓지도 않는다

죄는 더더욱 아니다


 시체의 이름은 '체이스 앤드루스'. 인근 마을 부유한 젊은 남자의 죽음은 순식간에 무성한 소문들을 불러일으킨다. 낙하가 주요 부상 원인이라는 의사의 소견이 있음에도, 경찰들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가 피살당한 것이라 주장하는데.. 체이스가 입고 있던 재킷에서 나온 붉은 울이  증거물. 경찰들은 이것이 스웨터나 목도리의 일부였을 거라고 추정한다. 현모양처에 화목한 가족을 이루고 있었지만, 동네 여자들에게 집적대기 선수였던 체이스. 사람들은 그가 죽기  자주 만났던 '습지 소녀'와의 관계를 의심한다.


노스캐롤라이나 습지의 음침한 집에서 은둔하며 혼자 사는 소녀 캐서린 대니얼 클라크. 소녀를 쫓아온 보안관들. 소녀는 본능적으로 그들을 피하지만 결국 붙잡히게 된다. 소녀의 구금된 방으로 나이 든 변호사 톰 밀턴이 찾아오고, 자신이 변호를 자원했다고 하는데...


사람들은 껍데기 안에 

생명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죠

저도 가족이 있었어요

저를 카야라고 불렀어요


시간은 1953년, 카야의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배에서 논다고 아이들의 뺨을 인정사정없이 때리는 난폭한 카야의 아버지. 카야마저 때리려고 하는데, 그 장면을 목격하고 그를 말리려다 카야와 함께 같이 맞는 어린 '테이트'. 자신을 말리는 아내도 무자비하게 때리는 난봉꾼이다. 그날 밤, 폭력을 견디다 못해 집을 나가는 카야의 엄마. 이윽고 두 언니와 두 오빠도 떠난다. 머프가 가장 먼저, 몇 달 후 맨디와 미시가, 결국 마지막 남은 오빠 조디도 떠났다. 조디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


카야, 몸 조심 해

문제가 생기면

습지 깊숙한 곳

가재가 노래하는 곳에 숨어

엄마가 늘 그랬듯이.


카야는 아빠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될 수 있으면 아빠 눈에 띄지 않고 모습을 보이지 않으며 혼자 사는 법을 배운다. 조디 없이 혼자 배를 타고 습지에 나왔다가 마찬가지로 길을 잃은 친구 '테이트'를 만난 카야. 카야도 다른 아이들처럼 배를 타고 옆 마을에 있는 학교에 가지만, 카야를 보자마자 더럽고 냄새나는 습지쥐라며 놀리는 반 아이들. 수치심을 이기지 못하고 자리를 뛰쳐나온 카야는, 사람들을 피해 자연에서 배우며 살아가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한다.


항상 아무도 믿어선 안되고 스스로 지켜야 한다고 가르치는 아빠. 한동안  카야에게 잘해주었다. 하지만 어느  집으로  엄마의 편지를 받자마자 태우는 아빠. 아빠는 엄마의 모든 흔적을 태운다. 그러던 어느  아빠도 사라졌다. 그리고 먹고사는 문제가 남았다. 카야가   아는 유일한 음식, 옥수숫가루.


습지에서 홍합 같은 자연물을 채취해 식료품점에 겨우 팔아먹고 살아가는 카야. 마을에서 유일하게 카야에게 편견을 갖지 않고 잘해주는 점핑 부부. 메이블 부인은 맨발로 다니는 카야에게 신발도 맞춰주고, 옷도 주고, 숫자 세는 법도 가르쳐준다.


영화는 다시 현재 카야가 살인용의자로 지목된 시점으로 돌아온다. 재판에서 지면 사형을 선고받게 된 카야에게 변호사 톰 밀턴은 유죄를 인정하고 10년형을 받자고 하지만, 절대 유죄라고 인정하지 않겠다는 카야.

자정쯤에는 썰물이었기 때문에 체이스가 탑에 도착했을 때, 젖은 펄에 남긴 발자국이 밀물이 들어오면서 없어졌다고 주장하는 변호사 톰. 발자국이 없다는 것만으로 죄를 증명할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화재감시탑은 원래 자주 열려있는 문이었고, 그냥 두면 언제든 부상과 사망사고가 일어날 곳이었기 때문에.


다시, 1962년의 여름.

가족 없이 아름답게 자란 카야. 어느 날 습지에 어릴 적 친구 테이트가 찾아오고, 테이트는 카야에게 글을 가르쳐준다. 글을 읽게 되자 집에 있는 책들을 읽게 되는 캐서린. 성경 앞 가족기록에서 부모님과 남매들의 이름을 읽으며 잠시 슬픔에 잠기지만... 매주 테이트가 빌려오는 다양한 책들을 읽으며 카야의 세상은 커져 간다.


엄마랑 여동생이 교통사고로 죽고, 아버지와 둘이 사는 테이트는 비슷한 처지의 카야에게 위로를 받으며 연인 관계로 발전하게 된다. 서로에 대한 사랑을 알게 됐지만, 테이트는 생물학 공부를 하러 대학교로 떠나게 되는데... 남겨진 카야는 독립기념일에 오겠다는 테이트의 약속을 기억하고, 출판사에 내기 위해 습지의 새 그림을 그리며 기다린다. 하지만 약속한 날, 테이트는 오지 않고... 카야는 견딜 수 없는 슬픔에 잠긴다.


그렇게 인생이자 사랑이었던 테이트는 떠나갔다.

휘청거릴 때마다 날 붙잡아준 건 습지였다


그러다 6년이 흐른 뒤, 1968년 여름. 습지로 여름휴가를 보내러 사람들이 잔뜩 몰려오고, 카야의 집을 사진 찍는 개발업자들을 통해 이곳에 호텔을 짓는다는 계획을 듣게 되는 카야. 카야는 집이 자기 소유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밀린 세금을 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800달러를 벌기 위해 그동안 그려둔 그림 원고들을 출판사에 보낸다.


카야가 체이스를 만난 것도 그 해 여름이었다. 체이스는 카야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오고, 카야는 그런 체이스가 부담스러우면서도 외롭지 않기 위해 딱히 거부하지 않는다. 체이스를 따라 애슈빌에 오게 된 카야는 모텔에서 그와 하룻밤을 보내게 되고,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데... 오랜 시간이 흘러 드디어 고향에 돌아온 테이트는 카야를 만나러 갔지만, 체이스와 함께 있는 걸 보게 된다.


밤에 찾아온 테이트를 보고 무작정 돌을 던지는 카야. 테이트가 자기를 버린 것에 대한 상처를 퍼붓는데.. 몇 년을 후회했다며 테이트는 용서를 구하지만 카야는 닫힌 마음을 쉽게 열지 않는다. 어느 날, 카야는 시내에 나왔다가 체이스의 약혼녀를 보게 되고, 믿었던 체이스에게 배신을 당했다는 사실 때문에 정신적 충격에 빠지게 된다.


혼자 살아야 했다

알고 있었던 사실이다

그것도 오랫동안

사람들은 떠난다


카야의  <캐롤라이나 습지의 갑각류> 좋은 반응을 얻게 되고, 원고에 대한 수표와 인세 5000달러를 는다. 그린빌에서 열리는 출판기념회에 초대받는 카야. 할아버지 때부터 밀린 늪지와 집의 밀린 세금을 모두 내고, 38 평의 , 습지, 떡갈나무 숲과 해변이 모두 카야의 소유임을 증명한다. 서점에서 카야의 책을 보고 집으로 찾아온 막내 오빠 조디. 카야에게 엄마가 백혈병으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하는데...


밤에 카야를 찾아와 사과하는 체이스. 약혼녀 펄이랑 결혼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자기를 버리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그만 끝내고 싶다고 하자 카야의 뺨을 때리며 본색을 드러내는 체이스. 자신을 겁탈하려고 하는 체이스를 실컷 때리고 도망치는 카야. 하지만 그날 이후, 카야를 매일같이 찾아와 멍들 때까지 때리는 체이스 때문에 두려움 속에 살게 되고.. 카야는 엄마가 맞으며 사는 삶을 포기하고 떠나게 된 것을 이해하게 된다.



법정에 들어와 재판을 지켜보는 테이트와 점핑 부부, 그리고 조디가 보인다. 검사는, 테이트가 출판기념회에 갔다가 묵은 '스리 마운틴스 호텔' 그린빌로 가는 버스 정류장과 가장 가깝다며 카야를 계속 범인으로 모는데...

마지막으로 변호사 톰은 기지를 발휘해, 마을 사람들에게 진심 어린 호소를 한다. 카야를 향한 25년간의 뜬소문을 믿을  아니라 이제는 우리 모두 공정하게 카야를 대해야 한다고.  밀턴의  변호로 카야는 드디어 무죄판결을 받게 된다. 자신의 진정한 사랑이 테이트임을 깨닫게  카야는 그와 결혼하고평생 습지에서 생태연구를 하며 살아간다.



 영화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화려하지도, 재밌지도, 슬프지도 않다. 어떻게 보면 한 편의 다큐멘터리나 소녀의 성장 스토리를 보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영화의 제목인 '가재가 노래하는 곳'이 정확히 어디를 의미하고, 무슨 의미인지 나도 찾지 못했다. 다만, 카야의 막내 오빠 조디가 집을 떠나면서 했던 대사만이 남았을 뿐이다. 문제가 생기면 습지 깊숙한 곳, 가재가 노래하는 곳에 숨으라고... 엄마가 늘 그랬듯이. 카야에게는 습지만이 유일한 집이고 세상이었다. 갈 수 있는 곳도, 가고 싶은 곳도 없었다. 그래서 그곳을 필사적으로 지켜야 했고, 가재가 노래하는 신비하고 아름다운 풍경은 습지의 진정한 주인 카야에게만 허락된 것이 아니었을까.


검색한 바에 따르면, '가재'는 대표적인 잡식성의 청소부 동물로, 주는 대로 다 받아먹는 까다롭지 않은 식성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야생에서는 죽은 생물의 사체나 물속에 가라앉은 썩은 나뭇잎과 유목, 수초 등의 식물성 유기물들을 주로 섭취하지만, 때때로 옆새우나 플라나리아 등의 작은 무척추동물과 살아있는 물고기, 올챙이도 거침없이 사냥하는 기회주의자적 포식자기도 하다. 살기 위해 자기 생활 반경의 모든 것을 먹어 치우는 생물. 온 가족이 떠나고 혼자 버려진, 살기 위해서 버티며 강해진 카야의 모습과 흡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가재의 하위 계통 '가재상과'는 동족포식 성향이 있어서, 복수 개체를 한 곳에 사육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한다. 특히 탈피 전후로는 성격이 예민해진다고. 이건 어디까지나 순수한 내 해석이지만, 카야가 평생을 보고 겪은 습지의 모든 것을 책으로 출판해 세상으로 첫 발돋움을 하기 직전... 그녀를 붙잡고, 유일한 안식처를 파괴하려는 체이스의 존재는 카야가 지금까지 겪어온 모든 상처와 아픔보다 더 크고 강했다. 카야로서는 어떤 선택을 했어야만 했다. 화재감시탑의 철판 하나가 옮겨져 있던 것도, 체이스가 죽기 직전까지도 걸고 있던 목걸이 펜던트가 카야의 노트 뒤에 간직되어 있던 것도... 카야 자신을 지키기 위한 것이면 습지에서는 깊은 늪도, 죽음도, 비극도 모두 흡수해 버릴 수 있었을지도.


영화를 보는 내내 체이스의 죽음을 뒤쫓는 스릴도 있었지만, 가장 여운이 남는 것은 '선한 사마리아인' 존재들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25 동안 아무런 이유 없이 카야를 배척하고, 욕하고, 부정하게 취급했다. 하지만 그런 카야에게도 항상 애정과 관심, 돌봄을 줬던 사람들이 있었다.  밀턴 변호사와 점핑 부부(점핑과 메이블), 테이트. 이들은 카야가 외로움에 무너지지 않게, 비참함에 쓰러지지 않게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먼저 다가왔으며, 함께해 주었고,  같은 자리에서 그녀를 웃으며 맞이했다.


세상과 어울릴  없는 온전한 아웃사이더의 삶을 살았던 카야였지만,  고단한  가운데서도 최소한의 이웃, 최소한의 따뜻함, 최소한의 사랑은 필요했기에. 지극히 작은 자에게  것이 내게  것이라는 성경  예수님의 말씀을 읽으며, 자기 앞에 작고 약하고 힘없는 이웃 카야에게 그대로 실천한 메이블 아주머니의 햇살 같은 미소가 오래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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