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FJ라 그런가?
이제는 서울 밤하늘에서 별을 보기가 정말 어려운 시대지만, 내가 초등학생 때만 해도 맨눈으로 별을 바라볼 수 있을 정도로 하늘이 맑았다. 아직도 남아있는 서대문구 북가좌동에 있는 한양아파트. 그 아파트 뒤로 언덕이 하나 있었는데 빌라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던 그 동네에서 나는 유년시절을 보냈다. 봄이면 개나리와 진달래가 피고, 여름이면 빌라 앞 수돗가에서 물놀이를 하고, 가을이면 잠자리 떼를 잡기 좋고, 겨울이면 눈썰매 타기 좋은 우리 동네.
지금은 재개발로 없어진 동네가 되어서 정말 아쉽지만, 아직도 눈에 선하다. 난간 아래로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서울 시내. 그곳에서 동네 언니, 오빠들과 도란도란 나누던 이야기들도 다 기억난다.
어린 시절에 잊지 못할 수많은 추억들이 있지만, 가장 베스트 기억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9살 때였나. 내가 살던 대도 빌라 사람들은 지하층에서 3층까지 총 8가구가 살았는데 다들 좋은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어머니, 아버지는 물론 나와 동생들도 빌라에 같이 살던 이웃들과 자주 왕래하고 밥도 같이 먹었다. 히트는 1994년 어느 여름밤, 역대급 폭염에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찌는 듯한 무더위가 전국에 기승을 부리던 때였다. 그때 주민 모두가 옥상으로 올라와서 은박 돗자리를 깔고, 다 같이 하늘의 별을 올려다보며 잠을 잤던 기억이 난다.
그중에서 지하에 사시던 아주머니가 유독 나를 좋아하시고 친절하셨던 기억이 나는데, "수정아, 저기 별 좀 봐라. 쏟아질 것 같지?" 하며 내 옆에 누워서 말씀하셨다. 그때 올려다본 밤하늘 때문에, 별이 하늘을 수놓는다는 표현이 뭔지 배우게 됐을 정도로 하얗고 반짝이는 별들이 눈가루처럼 하늘을 메우고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26년 전만에도 그렇게 서울에서 하늘을 올려다보기만 해도, 금방이라도 나를 향해 쏟아질 것 같은 별무리를 볼 수 있었다.
그 별들을 보면서, 나는 영원한 것들을 생각했다. 이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 시간이 가도 변하지 않고 남아있는 것. 그게 뭘까. 그런 게 과연 있기는 할까? 그즈음에 내가 정말 좋아했던 작은 아버지가 뇌출혈로 돌아가시면서, 어린 나이였지만 나는 삶과 죽음에 대해서 일찍부터 고민하게 됐던 것 같다. 사람이 죽으면 어디로 갈까? 나는 누구일까? 그런, 모두가, 일생에, 한 번쯤은 하는 질문들.
이 우주에, 지구에, 대한민국에, 서울에, 달과 별이 아주 크고 잘 보이는 언덕 동네에 살면서 소녀는 생각했다. 이곳에 속하고 있지만, 아무 데도 속하지 않는 것 같은 기분. 어디에도 속하고 싶지 않고 훨훨 날고 싶은 기분. 나의 진짜 고향이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 기분. 죽음 이후의 세계를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이, 한 번도 생각하지 않고 달려가기만 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을 해본다.
연말. 코로나 팬데믹으로 위축되어 있긴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한 해가 끝나갈 때 아쉬움을 먹고, 마시고, 쓰고 또 쓰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 같다. 그 가운데 서서, 또 함께 걸어가면서 드는 생각. 이들은 영원을 알까? 그런 것을 추구하는 사람이 이 땅에 아직도 남아있을까? 내가 죽어도,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날 수 있을까? 괴짜 같은 질문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