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러버
친한 사람들이나 지인의 소식이 궁금할 때, 페이스북 메신저나 인스타그램 DM을 보내면 거의 실시간으로 소통이 가능한 시대. 이런 SNS의 발달로 사람 간의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는 어느 때보다 빠른 세상을 살고 있지만, 넘쳐나는 피드와 댓글의 홍수 속에서 오히려 마음의 공허는 깊어져 간다는 생각도 든다.
나는 사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을 그렇게 활발히 하는 사람은 아니다. 사회적 관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계정을 팠고, 소식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생존신고라도 하려고 간간히 게시물을 올리는 정도. 하지만, 나도 지금의 Z세대 못지않게 아주 활. 발. 히 사회적 관계망 서비스를 활용하던 때가 있었다. 대학교 1학년 생활로 거슬러 올라가 본다.
싸이월드를 아시나요...? 2000년 대 초고속 인터넷이 집집마다 깔리면서, 천리안과 야후와 엠파스를 이용해 본 세대라면 아마 '싸이(싸이월드의 준말)'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거다. 각자의 캐릭터를 살려 미니미를 만들고, 내 방보다 더 정성스럽게 꾸며놓은 미니홈피, 온갖 알쏭달쏭한 말을 매번 바꿔가며 적어놓는 홈피 대문의 인사말, 당시 최고 인기를 누리던 가요들 (브라운 아이즈-벌써 일 년/ izi - 응급실 / 장나라 - 아마도 사랑이겠죠 등등)로 BGM 설정하기...
여기서 끝이 아니다. 친구들끼리 미니홈피 방명록에 장난 삼아 남기는 메시지들 읽는 재미도 상당했는데, 그땐 카카오톡이 없던 시절이기 때문에(네이트온은 있었다) 방명록을 활용해 실시간으로 메시지를 주고받기 위해, 계속 새고 로침을 누르며 방명록 도배도 했었다. 제일 조심해야 했던 것은, 술에 취했거나 제정신이 아닐 때 새벽에 올리는 감성 충만한 글들... 이게 당시에는 멋있어 보여서 누가 와서 봐주기 바라는 마음으로 실컷 써놓는데, 일주일만 지나도 손발이 오글거려서 이불킥을 하게 된다. 필자도 자다가 일어나 민망함을 감추지 못하며, 곧바로 지운 글이 참 많았다. 그런 순수한 시절이 있었다. 쩝.
얼마 전 싸이월드가 다시 서비스를 시작해 이제 앱으로도 볼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부푼 기대감을 안고 왕년의(?) 내 미니홈피에 들어가 봤다. 그런데 너무 늦게 들어왔는지 이전의 사진들은 다 지워졌고, 대학교 4학년 때 졸업 앨범에 들어갈 개인 사진을 찍던 날의 풍경 하나만 덜렁 남아있었다. 아쉬운 마음이었지만 기분이 묘했다. 그래도 방문한 김에 기념으로, 오랜만에 도토리를 사서 BGM을 바꿨다. 크러쉬의 노래로.
이제는 '제페토'나 '본디'라는 메타버스를 기반으로 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가 싸이월드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나도 계정을 만들어 두 군데 다 이용 중이다. 제페토 안에서는 한강 공원으로 이동해 벚꽃 구경도 하고, 본디 안에서는 밝은 달밤에 혼자 나룻배를 타고, 끝도 없이 넓은 바다 위를 유유히 헤엄쳤다. 디지털 세계 안에서 내가 누린 최초의 낭만이었다. 아직은 메타버스라는 단어도 낯설고 개발도 초기 단계지만, 10년 후에는 지금보다 훨씬 사실적이고 실제적인 세계가 우리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을 것 같다.
지난 2023년 4월 24일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디지털 잊힐 권리 시범사업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쉽게 말해, 인터넷상에서 한 때 자신이 실수로 남긴 '지우고 싶은 과거'를 지울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 정부 ‘개인정보 포털’ 내 ‘잊힐 권리 신청(지우개)’ 게시판에 요청 게시물 ULR과 요청사유 등을 기입한 신청서를 제출하면 된다. 삭제 신청자와 담당자가 일대일로 연결되고,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이 상담을 지원한다고. 그런데 이 서비스는 현재 시범 운영 중이라, 만 24세 이하(청소년 연령 상한)만 가능하다고 한다. 지우고 싶은 과거가 있는 30,40 세대들도 꽤 많을 것 같은데 아쉽다. 누구에게나 잊힐 권리는 있으니까. 건투를 빌어 본다.
*참고
: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의 ‘디지털 잊힐 권리 시범사업’은 자신의 개인정보가 포함된 게시물을 다른 사람이 검색하지 못하도록 하거나, 삭제·수정·파기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서비스다. ‘잊힐 권리’를 강화해 인터넷에서 생산·저장·유통되는 개인의 사진, 게시글에 대한 소유권을 강화하는 것이다.
-출처 : 일요서울 i(http://www.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