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심리학, 부록
일상의 평범함은 가까이서 보면 지루하지만 멀리서 보면 비범하게 빛난다. 이따금 정처 없이 방랑하는 내 정신과 마음도 본연의 내 모습이라는, 돌아갈 곳을 향한 믿음이 있어 가능하다. 그리고 여행이야말로 어떤 마음으로, 어디로 떠날지라도 언젠가는 돌아올 집이 있어 더 과감해지는 거 아닐까. 한해를 살아가며 어느 시점에 다다르면 본능적으로 솟아나는 유랑과 방랑을 향한 욕망. 그것은 결국 잠시 현실의 삶과 거리를 두고 낯선 곳을 누비는 것, 그리고 돌아갈 시간 즈음에서 내 삶을 멀찌감치 바라보며 다시금 한줄기 비범함의 빛을 발견하기 위한 것 아닌가 말이다. 나태주 시인의 동시집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가 떠오르누나. 자세히 보아야 예쁜 건 다름 아닌 나와 당신의 '일상'인지도 모른다.
코로나 일상은 사람과 사회로부터 얼마간의 거리를 두고 분리되어 지내는 대신 집과 가족 또는 내면의 나 자신과는 더 가까이 밀착되는 삶이라 할 수 있다. 한동안은 그 분리와 밀착의 스펙트럼에서 잘 적응할 뿐만 아니라 제법 즐기는 듯한 내 모습에 만족하며 지냈다. 프리랜서와 다름없는 업무 환경과 방식, 1인 가구로서 방해도 간섭도 없이 모든 상황을 만끽하는 듯한 모양새와 생활패턴 그리고 집과 동네를 벗어나지 않는, 마음껏 게으를 수 있는 자유를 얻은 것만 같았다. 이제야 적성에 맞게 사는 것도 같았지 말이다. 아, 그런데 삶에도 일상에도 그 틈새라는 게 중요했다. 틈 없이 고밀도로 꽉 찬 시공간은 멍하니 누릴 여백의 미란 게 없더라는 것. 부모님의 입원과 수술이 겹쳐 힘겨웠던 여름이 저물어 가면서 가을을 만났지만 일상에서는 변한 게 없어 계속 지치기만 했다. 그나마 아빠의 퇴원으로 한시름 놓을 수 있었던 건 선물 그 자체였지만 내려놓을 수 없는 염려와 누적된 피로 그리고 엄마의 전원과 남은 회복의 과제 등으로 꽉 찬 삶에서 전혀 찾을 수 없던 여백. 돌아보니 그 몇 주의 결정적인 시기 동안에는 번아웃되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나 보다. 인정하는 순간 더 이상 끌어다 쓸 정신과 육체의 에너지가 없을 것만 같아서였을까. 그러나 저항할 수 없는 때가 다가오면 항복하자. 우리, 그럽시다. 실체가 없고 보이지 않지만 나를 짓누르는 부담감과 의무감에 백기를 제대로 들고 재빠르게 움직여 탈출을 감행했다. 어디긴 어디겠나, 이제나 저제나 호텔로 간다. 레스케이프(L'escape) 호텔을 파리(Paris)라 생각하면서 말이지. 6월에 내가 있어야만 했던 곳은 다름 아닌 파리인걸, 이라 생각하며 가슴을 부여잡고. 지난 3월 독일과 프랑스 여행 예약을 취소하며 느꼈던 절망감과 답답함도 씻어낼 겸.
호텔 체크인을 마치고 엘리베이터에 들어서면 순식간에 순간 이동을 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벨에포크 시대의 멋진 여성들이 소셜 네트워킹하고 있는 듯한 벽면 그림 장식과 짙은 갈색의 프레임 그리고 낮은 조도와 붉게 물든 조명 빛이 조성하는 분위기 때문이다. 발음이 동그랗고 실키한 불어 안내방송까지 나오니 부러 착각에 빠지고 싶어 진다. 지금의 파리가 아닌, 아주 오래 전의 파리에 들어서는 것 같다랄까. 잘 알지는 못하지만 꽤 오래전부터 19세기 말 프랑스 벨에포크(La Belle Époque)에 푹 빠져 지냈다. 알려고 하기보단 그저 빠져들었던 그 자체만으로도 참 즐거웠던 기억이다. 여전히 그 아름다웠다던 문화 부흥기를 생각하면 뭔가 비밀스러운 기분이 드는데 과연 그게 뭘까. 아름다운 시절, 좋은 시절을 회상할 때마다 프랑스인들은 벨에포크를 떠올릴까, 궁금하다. 벨에포크 관련된 온갖 책을 찾아 읽었고,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와 '파리의 딜릴리'에 흠뻑 빠져들어 수십 번을 탐닉하며 나만의 벨에포크적 상상을 채워나갔다. 호텔 밖 세상은 하룻밤 잊고 지낼 심산이니 여기는 파리고 나는 벨에포크시대의 여행가, 라며 혼자 조용히 속삭인다.
어떤 사물이나 대상이 특정한 의미를 갖거나 특유의 분위기를 자아낼 때 떠오르는 단어는 단연 '오브제'다. 내 마음에 와 닿는 오브제를 만나면 이상하리만치 기분이 매우 좋은 것.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방향을 틀고 보니 다이얼 전화기가 메모지와 함께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풍경에 마음 한켠이 간지럽더라. 유럽 여행에선 종종 만났던 오브제이지만 서울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것이어서 더 반가웠다. 어릴 적 소위 옛것, 빈티지 등에 큰 관심을 가졌었던 것은 오래된 것을 향한 일종의 경이로움을 품게 되면 서다. 살아본 적 없는 시대 속 어느 멋진 사람들로 인해 탄생한 것들이란 생각이 드니 상상력이 마구 자극되면서 공상에 날개단 듯 신이 났었다. 수집가도 아니고 모든 것을 다 기억하지도 못하지만 오래된 것에 깃든 경이로움은 여전히 공감각적으로 흠모한다. 그 느낌을 가질 수 있는 공간을 만나면 가슴이 뛴단 말이지. 성인이 되어 켜켜이 나이가 들어가면서는 이 정도의 삶을 살아왔다는 게 무언지 안다면서 세월과 인생에 대해 어떤 나이 든 공간이나 오브제를 향해 공감하듯 아는 척을 할 수 있어서 좋은 것도 같다. 알지, 내가 좀 알지, 세월이 흐른다는 건 말이야, 인생에서 나이 든다는 건 말이지, 라면서.
입고 갈 드레스는 없지만 무도회가 열리면 좋겠다,라고 생각한다. 레스케이프 호텔이 단 하루라도 벨에포크 시대의 파리 막심(Maxim)을 재현해준다면 숨은 제야의 고수, 아트 브로커 콘셉트로 등장하고 싶다. 아주 오래전부터 품어온 상상인데, 고수 브로커라면 모든 분야의 예술가들과 조우할 수 있을 것만 같아서다. 복도를 걷기만 해도 온갖 장면이 눈앞에 슬라이드처럼 펼쳐지곤 지나가고 또다시 새롭게 펼쳐지며 정신이 흥미진진 사납다. 룸에 들어서니 새빨간 벽에 걸린, 여유만만 우아한 미소를 띤 여성의 초상화가 샛노란 조명의 세례를 받으며 빛나고 있다. 마치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듯 반겨준다. 그렇다, 내 선택은 옳았던 것이다. 파리는 빨강일까? 파리는 정말 다채롭지, 생각한다. 파리를 애정 하는 모두에게 파리의 색은 무엇인지 묻고 싶어 진다.
지니에게 부탁한다. 지니야, 카를라 브루니(Carla Bruni) 틀어줘. 그녀의 앨범이 랜덤 선택되어 흐르며 방안을 감싼다. 한곡이 끝나기가 무섭게 또박또박 외친다. 지니야, 에디트 피아프(Edith Piaf), 파리 하늘 아래서(Soul le ciel de Paris) 틀어줘. 여기는 프랑스다, 라는 주문과 쇠뇌에 샹송만큼 제대로인 게 있을까. LP를 올리고 치지직 바늘 소리 은은히 울려 퍼지는 게 더욱 어울리겠지만 1박 2일 내내 지니 의존도가 세상 높았기에 애정을 숨기려야 숨길 수가 없네. 욕실로 달려가 어여쁜 욕조를 확인하니 없던 에너지도 솟아나더라는. 블랙과 레드의 강렬한 색의 대비가 욕조를 둘러싸고 있다. 쉼도 강렬할 수 있다고 말해주는 것 같네. 평화로운 쉼, 초록의 쉼, 푸르른 쉼도 다 좋지만, 파리에서의 쉼은 강렬함을 택하겠다. 배쓰밤도 플라스크에 담아온 위스키도 이토록 현명할 순 없었다지.
낡은 아이패드 오랜만에 외출했다. 이 순간을 위해 살짝 아껴둔 영화 작은아씨들 플레이하고, 룸에 있는 캡슐 커피 한잔 내린 다음, 호텔 부근 딘 앤 델루카에서 사 온 딱딱하고 맛있는 바게트 샌드위치를 늦은 점심인지 간식인지 아무튼 우걱우걱 먹는다. 긴 소파에 반쯤 누웠다가는 건너편 소파로 옮겨 앉기도 하고 침대로 점프했다가 다시 긴 소파로 돌아온다. 분초를 다투며 제멋대로 변덕을 심하게 부리면서 뒹굴고 논다. 이런 게 쉼이잖아,라고 약간 쌀쌀맞게 허공에 외치면서 말이지. 얼마쯤 지났을까, 외출 아닌 외출을 감행해보기로 하고 책을 꺼내 들고 옷을 갈아입는다. 원피스에서 다른 원피스로. 보라색에서 흰색으로. 이유는 없다, 그저 마음이 시키는 대로. 챙겨 오길 잘했지 뭐야, 라며 그저 뿌듯해하면서. 오후 언저리 몇 개의 층 아래로 향해 책 여행의 공간을 읽으며 따스한 차로 차디찬 에어컨 바람에 대항해 본다. 르 살롱은 차 마시고 대화하러 네댓 번쯤 왔던 곳이라 익숙한데 이토록 사람이 없는 풍경은 처음인지라 내심 쾌재를 부르며 공간을 독차지 한마냥 머물렀다. 호텔에서 읽는 호텔이야기. 공간 이야기로 채워지는 공간. 이 모든 것들이 뒤섞여 마음 가득 채워지는 즐거움. 무언가를 하다 말다, 정신을 끌어다 놨다가 다시 내던지는 것의 반복이 주는 희열은 이 시대의 우리 모두에게 필수 활동이 되어야만 한다. 뜨끈한 목욕물에서 갓 나온 덕분이겠지만 나름 괜찮은 컨디션이 반가웠던 다음날 아침에도 르 살롱에서 조용히 머무른다. 르 살롱에서 헬라떼를 만날 수 있는 건 정말이지 행운 아니면 뭐람. 명불허전 헬카페의 헬라떼로 스스로에게 건네는 굿모닝. 아침엔 왜인지 호텔이야기가 더 즐거이 읽혀 몇 페이지는 접어두었다. 가보고 싶은 호텔이지만 과연 언제, 라는 한탄으로 결국 마무리했지만 일단은 마구 상상할 수 있으니 그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그러고 보니 코로나와 함께(with Corona), 코로나와 혹 이별한다면(post-Corona), 또는 또 다른 코로나를(another Pandemic) 만난다 해도 언제든 정신의 여행을 떠날 수 있어야겠다는 생각에 다다른다. 더욱 적극적으로 상상에 몰입해야겠다는 의지가 불타오르네. 상상해요 우리, 가고 싶은 곳, 만들고 싶은 곳, 그리고 무엇이든지요.
4년 만에 다시 조우하려던 파리. 이상하다, 가장 좋아하는 도시도 아닌데 가려다 못 가게 되니 파리가 미치도록 그리운 거다. 그리워하는 마음은 분주하되 몸은 게으를 대로 게으르게 호텔에 맡기며 그 이상함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 본다. 프랑수아 1세는 말했지. 파리는 도시가 아니라 세계다,라고(Paris is not a city, it's a world). 영화 사브리나에서 오드리 헵번은 말했고. 파리를 가는 건 언제나 좋은 생각이라고(Paris is always a good idea). 도시가 갖는 특유의 느낌과 분위기란 게 참으로 치명적이고 매력적이다. 파리가 연상시키는 많은 것들을 보면 모든 게 다 파리여야만 할 것 같단 말이다. 여행을 생각하며 거듭 품게 되는 내밀한 소망이 있다면 나이 들수록 어느 멋진 도시를 닮아가고 싶다란 것. 때로는 우아하고 차분한 비엔나를, 때로는 온갖 총천연색의 향연인 파리를, 때로는 젊고 시크한 코펜하겐을, 그리고 때로는 복잡하고 복잡한, 미묘한 서울을 말이다.
호텔 밖 세상은 잠시간 접근 금지이니 저녁식사도 나 홀로 룸에서 세상 자유롭게 어린아이처럼 먹어볼 테다. 호텔 내 레스토랑 팔레 드 신에서 미리 전화로 예약한 시추안 치킨을 픽업하고는 팻 타이어 병맥주를 한병 따고 수십 번도 더 보았지만 언제나 더 보고픈, 고 노라에프론 감독 영화 줄리앤줄리아를 정서스럽게 본다. 왜 매번 다르고 왜 매번 설레는 걸까. 노라 에프론의 매직이라 할 수 있지. 치킨 박스가 다리와 날개로만 채워져 있는 데다가 사천식 매콤함과 달콤함이 입안에 녹아들어 행복해진 덕분이기도 하고. 어느 날엔 줄리에 깊게 빠져들고 어느 날엔 줄리아와 교감하지만 지금 나는 파리에 있는 것과 다름없으니 줄리아에 주파수를 맞춘다. 맛있는 음식을 줄리아만큼 맛깔나게 먹을 수 있는 사람이 이 지구 상에 없는 것 같단 말이지. 그처럼 세상과 사람에, 음식과 요리에 감탄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아름다운 프렌치 음식을 먹는 중 그의 남편 폴이 묻는다. 당신이 정말로 하고 싶은 건 무언가요? 줄리아는 서슴없이 답하지. Eat! 실은 내 짝꿍도 내게 자주 묻는다. 그렇게 먹는 게 즐겁냐고.. 그렇게 좋답니다,라고 늘 답한다. 늘 진심으로 좋다고, 즐겁다고.
침대에 거꾸로 누워 새빨간 벽과 꽃무늬 커튼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샹송을 듣는다. 정신이 흐물거리다 말랑해진다. 샹송을 듣고 있노라면 왜 텍스처가 단단한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떠오르는지. 내게는 불어 발음이 입안에 아이스크림 한입 머금고 둥글리며 하는 말의 소리처럼 들려서인가. 4년 전 파리 여행을 앞두었을 때 멋진 과외 선생님을 만나 여행 불어란 명목의 수업을 들었던 추억이 아른거린다. 선생님 발음에 반하고, 불어를 하는 나를 상상하며 신났던, 내 벨에포크(좋은 시절).
느리지만 밀도 있게 흘러가는 시간에 내 리듬을 맞춰본다. 그런데 그 순간 다 녹아내렸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마음 한구석 몸 한구석에서 꿈틀대는 불안과 염려가 힐끔힐끔 모습을 보이려 하지만 용납하지 않겠다는 단호함으로 물리쳤다. 쉼이란 게 그런 것이지. 방해가 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차단하는 것 말이다. 인간의 의지는 열심히 달리고 무언가에 매진하는 데에만 쓰는 게 아니다. 되려 이럴 때 더욱 빛을 발해야 하는 법이지. 아이폰도 멀찍이 던졌다. 순간 아찔했지만 다행히 소파에 착지. 밀려드는 피곤함이 싫지 않았다. 피곤할만하지 싶어 마음으로 나에게 토닥토닥을 건넸다. 잘 쉬었나, 잘 놀았나 만 생각 했다. 끝까지 마음 내키는 대로 뭐든 하다 가자 싶었고. 잠이 오지 않더라도 받아들여야지, 라는 마음도 장착했다. 잠 안 오면 생각보다 할 게 많으니까. 할 게 많은데 그게 다 엄청 게으르게 하다 말다 할 수 있는 것들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어찌나 기쁘던지. 그러다가는 스르륵 잠들어 꿈속에서나마 파리를 휘젓고 다니리라!
계단을 발견하는 건 무척 기쁜 일이다. 꼭 오르고 내리며 계단을 경험해야 한다. 아래서 바라보고 위에서 내려다보며 살피기도 하고 말이다. 호텔심리학 매거진 글 어딘가에서 계단을 흠모하는 마음을 꺼내놓은 적 있다. 누군가에겐 감흥조차 주지 않을 계단이 왜 이리도 좋은지. 어릴 때나 지금이나 계단이야말로 내게는 가장 중요한, 가장 감동적인 오브제다. 여행을 다니며, 일상에서 마주하는 공간에서, 만나는 모든 계단은 정말이지 모두 다른데 그 다름이 참 흥미롭다. 레스케이프에서 하마터면 오르고 내려보지 못한 채 지나칠 뻔한 계단을 누군가의 친절한 안내로 만날 수 있었다. 라이브러리에서 레스토랑 팔레드신 입구와 복도로 이어지는 곳인데 호텔 어느 곳보다도 여기야말로 파리가 아닐까 생각했다. 붉은 카펫의 층층대와 넝쿨처럼 장식된 화려한 꽃 그리고 블랙과 골드로 고아하게 뒤덮인 난간까지.
계단과의 조우로 꽤 괜찮은 피날레를 장식하고 나니 이제 됐다 싶더라. 체크아웃 시간까지 꽉 채워 느릿느릿 호텔을 떠나 호텔 밖 세상, 리얼이지만 매우 언리얼한 듯한 일상으로 돌아간다. 썩 괜찮은 이 마음은 뭘까. 쉼이든 놀이든 늘 부족한 건 어쩔 수 없지만 이번엔 마음 어디 한구석이 제대로 채워졌나 본데, 싶다. 며칠간은 또 벗 삼을 여운이 생겼으니 그런대로 흘러가다 보면 일상이 다시 자연스러워진다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더 달콤하니까. 호텔에선 물리적으로 나왔지만 내 상상은 아직 파리의 벨에포크를 벗어나지 않았으니 더 바랄 게 없는지도 모르겠다. 아름다운 시절은 늘 과거여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다시 만나요, 파리 그리고 좋은 시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