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호텔 이야기나 할까요?

호텔심리학, 부록

by Wendy An

2020년 우리네 삶에 일어난 변화는 일상과 여행에 새로운 이름을 부여했다. 부르기만 해도 슬픈 그 이름, 바로 '코로나 일상'과 '코로나 시대 여행'. 평범한 일상을 조금은 지루한 듯 투덜거릴 수 있는 날은 과연 언제 찾아올까. 예전처럼, 아니 예전보다 곱절은 더 설렘에 취해 여행을 준비하는 달뜬 기분은 언제쯤 다시 맛볼 수 있을까. 코로나와 함께 봄을 맞이했는데 어느덧 가을의 중심에 다다랐다. 크고 작은 여행 계획을 취소하며 맛본 쓰라림을 겨우내 추스르며 새로운 모습을 띤 일상에 매진해보고 있지만, 도무지 포기할 수 없는 여행을 향한 애달픈 사랑과 향수에 여전히 허우적거린다.


코로나 시대 여름은 강렬했고 자못 잔인했다. 약속한 것처럼 엄마와 아빠가 겹치는 일정으로 입원을 해야만 했고, 병원은 극도의 통제와 주의가 요구되는 환경인만큼 지정 보호자 단 한 명만이 간병을 위해 환자 곁에 머무를 수 있었다. 같은 병원인 것에 그저 안도하고 감사할 뿐 날마다 동관/서관 및 집을 오가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닌 일로 여겼다. 마치 내 몸 어딘가 깊숙한 곳에 체력을 숨겨놓았다가 적시에 꺼내 쓰는 듯한 기세로 몇 주의 강행군을 감당했다. 수술과 치료와 회복 모든 것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순조롭게 이루어진 것만으로도 그간의 마음앓이와 체력소모에 다 보상받은 것 같았다. 하지만 몸과 마음에 쌓여온 피로가 서서히 자취를 드러냈고, 일상에 다시 스며들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이름 모를 불안이 종종 찾아왔다. 당장의 오늘 하루를 어찌 살아가야 하는지 알 수가 없어 멍하니 시간을 보내다 괴로워하는 일이 반복되기도 했다. 마치 지진의 여진처럼.


어딘가로 훌쩍 떠날 수도 없는 환경이었고, 떠날 힘도 없었다. 떠나고 싶지 않았다는 게 더 정확하지만. 그렇다면 내가 나를 구하기 위해 내릴 수 있는 극약처방은 무엇일까, 를 생각해보니 뭐 그리 어렵지 솔루션이 나왔다. '호텔로 가면 되는걸...' 잠시 내게서 지워진 줄로만 알았던 설렘의 미소가 새어 나왔다. 그럼 그렇지 뭐, 나와 호텔 사이란 게 이런 즉각적인 반사 반응처럼, 이런 거지 뭐, 싶더라. 오랜만에 열의와 에너지를 뿜어내며 선택이라는 즐겁고도 신나는 정신활동에 돌입했다. 어느 호텔과 만날 것인가를 찾고, 고민하고, 선택하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마침, 8월 초 오픈 소식을 우연히 접했던 몬드리안 호텔 이태원에 슬그머니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던 참에 주저 없이 예약을 하고 그곳으로 향했다. 아니, 도망가 숨었다는 게 더 정확하려나. 일상으로부터 잠시 거리를 두는 탈출(escape)이자 내 방식대로 심신을 달래며 쉼을 가지려는 일종의 의식(ritual)을 치르려는 셈이니 새롭고 낯선 환경이 제격이란 생각이었던 것. 몬드리안 호텔의 애매한 위치가 오히려 호텔 밖 세상을 향한 관심을 잠시 꺼두려는 계획에도 적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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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시 체크인에서부터 다음날 정오 체크아웃까지의 1박 2일의 머무름을 여행의 축소판으로 여기고 하고 싶은 것들을 촘촘히 설계해볼 수 있다. 가령, 티타임, 독서, 넷플릭스 타임, 거품목욕 또는 호텔 공간 구경과 같은 특별할 건 없지만 여전한 방식으로 나를 즐겁게 해 줄 만한 것들 말이다. 아, 적당히 늦은 밤 바(bar)에서 칵테일 한 잔 하는 건 꼭! 이 모든 게 그저 버겁고 귀찮다면 그저 멍하니 하루를 보내되 그 느긋함을 그런대로 즐기면 그만이다. 내 방식대로, 나에게 최적인 여정을 디자인하면 되는 것이다. 그저 날마다의 삶과는 사뭇 다른 환경이 잠시 필요한 것일 수도 있으니. 타인으로부터 얻어낸 위로가 아닌, 잠깐일지라도 내가 나를 위해 만든 시간과 계획과 움직임, 즉 이 총체는 그 자체가 갖는 가치 이상의 힘과 용기로 전해진다. 내가 바라는 바를 들었고, 고민했고, 그에 부응했다는 것이 위로가 아니라면 과연 무엇일까. 지친 나날들이 지속되면 내 정신과 내면의 세계에서 나 스스로와 잠시 분리되는 게 어려운 날이 더러 있다, 많다. 그런 때가 바로 물리적 거리두기를 통해 얼마간 방황하고 있는 나와 본래의 나를 떨어트려 그 사이를 유영하며 접점을 찾아가는 회복의 시점이 될 수 있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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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과 몸만 챙겨가도 부족함 없겠지만 잠시 고민한다. 함께 하면 좋은 게 무엇일까. 단연 책이지 않을까. 서점 아크앤북이 호텔 지하 아케이드에 있다는 건 반가움 그 자체. 고민은 덜고, 재미와 안락함을 탑재하는 나만의 하루 디자인에 제격 아닌가. 아무튼 시리즈로 2권 선택. 침대에서 소파에서 그리고 욕조에서 손이 닿는 곳곳에 책이 있다는 건 그것만으로도 마음의 평화 아닌가. 긴 호흡이든 짧은 호흡이든 다른 이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는 것은 나와 잠시 거리를 두는 쉼이 되기도 하니까. 나와의 거리두기란 곧 나를 관찰한다는 것과 같다. 나를 유심히 들여다보는 게 우리네 하루의 삶에서 과연 얼마나 될까. 일상에서 부러 시간을 떼어 부리나케 여유를 소환하고 가만히 나를 생각해본다는 건 결코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에게 (먼 곳으로의) 여행이 필요한 것일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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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극적인, 잔잔한 계획을 세워본다. 그 계획이란 게 기껏해야 의식의 흐름대로 하고 싶은 걸 하되 사실은 아무것도 하지 않기. 호텔 밖 세상은 하루 동안 잊어버리기 그리고 먹고 싶을 때 먹고 마시고 싶을 땐 마시기. 그러다 문득 떠오르는 무언가에 생각과 마음을 빼앗길라치면 골똘히 빠져들어버리기까지. 주니어 스위트룸에 들어서니 온 몸에 감도는 환영과 쉼의 기운. 구석구석 설렘의 구경을 마치고 나서 재빨리 폭신한 슬리퍼로 갈아 신고 옷도 던져버린 채 로브로 갈아입는다. 생수를 시원하게 들이켠 다음 캡슐을 골라 머신에 넣고 진한 커피 한잔을 내린다. 긴 소파에 반쯤 누운 듯 기대어 다리를 쭉 펴고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며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 그 짧은 순간을 만끽한다. 커피를 다 마셔갈 때쯤이면 곧 여러 모양과 색깔의 상념과 염려가 들이닥칠 테니. 몸도 마음도 정처 없을 계획이니만큼 커다란 침대에 뛰어들어 갑자기 텔레비전을 켜고는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에 잠시 마음을 빼앗긴다. 삼사십여분 쯤 지났을까, 새하얗고 어여쁜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고 배쓰밤을 동동 띄워 그야말로 어정쩡한 타이밍의 거품목욕을 즐긴다. 뜨거운 안락함과 어여쁜 거품은 나른한 오후에 제격이란 것을 발견한다. 우리는 과연 더 나른해지기 위해 노력해본 적 있을까? 더 각성하기 위해서만 달려왔을 뿐. 내가 아무것도 아닌 기분이 이렇게 긍정적인 감정으로 연결될 수도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BGM은 어느 때곤 힐링이 되는 에디 히긴스 트리오의 고엽(Autumn Leaves)으로, 뮤직큐. 거품은 사라져가지만 다시 새물을 받으며 한층 더 깊이 멍하고 나른한 공상으로 빠져든다. 매우 옳다는 느낌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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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릿느릿 음미하며 마음껏 먹고 싶다는 열망은 나만의 쉼에 주요 키워드 되겠다. 대충 툭 걸쳐 입은 차림에 편안한 신을 신고 조금은 이른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18층에서 2층으로 향했다. 이토록 가벼운 발걸음이라니. 시원한 에일 생맥주를 먼저 한 잔 주문하고 메뉴는 고민하지 않기로 결정한다. 가볍게 비워진 몸과 마음은 어느새 코스 요리의 향연으로 빠져들어 리듬을 탄다. 잘 만들어진 음식은 그 자체만으로도 즐겁고 기쁘지 아니한가.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니 오감은 춤을 추고, 시간은 리드미컬하게 흘러가더라. 즐겁게 먹고 놀다 보니 문득 뇌리를 스치는 깨달음은 결국 나에게 생각할 시간과 여유 그리고 환경을 만들어주는 건 나 자신이라는 것이다. 쌓여있는 온갖 염려와 의무를 뒤로하고 일단은 거리두기와 쉼이라는 자가 처방을 내린 것, 아무튼 잘했다 나여. 풍성한 저녁식사를 게으르게 만끽하며 차오른 만족감도, 그 밤 무계획의 짜릿함도 생생히 기억나면서, 나를 향한 너그러움을 되찾아 본다.


2020년 부모님의 건강문제, 일의 부진, 미진한 자기 관리와 커리어에 대한 고민 등 고초를 겪는 가운데 코로나라는 강력한 핑계 뒤로 숨고 싶었다. 그저 모두가 힘든 때이니 나도 힘든 것일 뿐이라며 묻히고 싶었다랄까. 하지만 그렇게 지나가는 건 나와 맞지 않는 옷을 입는 것과 다름 아니며, 더 나은 해결책을 강구해낼 수 있는 방법도 아니었다. 날마다 강도만 높아지는 고민에 휩싸여 지내느니 쉼표를 찍고 멈추는 게 어쩌면 더 용감한 선택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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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은 산책하고 감상해야 마땅한 곳이다. 아니 그러한가. 누군가에게는 공간에 숨겨진 기획 의도와 스토리를 찾아보는 일이 되기도 하겠고, 누군가에게는 공간을 구석구석 살펴보며 감각적 자극을 얻기도 하겠다. 그러다 잠시 머물고 싶은 자리를 찾으면 그곳에 앉아 그 순간을 누리는 거다. 오감을 자극하는 무언가를 만난다면 더 즐거운 산책과 감상이 되겠지. 호텔 밖 세상을 잊기로 작정했으니 저녁식사 후 산책은 역시 호텔 안에서다. 몇몇 층층을 거닐며 조형물이나 공간 디자인도 구경하고, 다채로운 제각각의 색감과 모양을 지녔지만 묘하게 공간과 조화를 이루는 어여쁜 가구도 만져보고 앉아본다. 촉감으로 만나는 공간은 또 다른 즐거움을 발견하곤 하니까. 아날로그 조형물과 가구 그리고 미디어 작품이 호텔 곳곳에서 제 역할을 하는 모습에서 문득 내가 있을 곳은 어디이며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역할은 무엇인가를 또 생각해본다. 만약 이런 게 공간과의 교감이라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더 많은 호텔을 만나 교감하고 생각하고 싶다. 스테이케이션은 정말이지 스스로 기획하고 또 해석하기 나름이다. 무언가 한두 가지 솔루션을 찾아야 하거나 선택을 해야 하는 고민거리가 있을 때 잠시 호텔로 몸과 마음을 옮겨두고는 내 방식대로 교감하는 시간을 통해 답을 찾거나 또는 그 자체만으로도 쉼이 되는 위안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언젠가 꼭 나만의 이런 경험을 스토리로 풀어내는 자리에서 많은 이들과 '나만의 스테이케이션, 나만의 호텔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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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과 교감의 마무리는 후각과 미각의 종착지, 바(bar)에서 한다. 은은한 조명 빛이 나를 감싸네. 쓸쓸함마저 느껴지는 호젓한 공간에서 조용히 칵테일 한 잔을 정성스레 고르고 주문한다. 창밖 밤 풍경이 고요하고 차분한 느낌을 안겨준다. 창틀이 프레임이 되고 풍경이 한 폭의 그림이 되는 듯한 장면이 정면으로 펼쳐지는데, 예술이란 건 이렇게 삶의 일부였어, 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분명 우리네 삶 가까이에 늘 존재한다는 새삼스러운 깨달음. 칵테일의 상큼한 향과 달콤한 맛에 하루가 지나가는 게 싫지 않은, 기분 좋은 느낌이 얹어진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 같은데 생각과 마음에 잔잔히 채워지는 만족감은 오랜만에 느껴보는 종류의 감정이다. 짧지 않은 날들 동안 날마다 할 수 있는 만큼의 역할과 의무를 한 것 같은데도 맛볼 수 없었던 것 중의 하나가 바로 만족감이었다. 만족은커녕 그동안 날마다 하지 못한 것, 불충분한 것, 더했어야 하는, 다르게 했어야만 하는 것들로만 채워져오고 있었다. 어려운 상황이 겹치고 겹친 결과였지만 환경이 중요한가 인간의 의지가 중요한가, 라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식의 의미 없는 쳇바퀴를 돌고 있었던 것이다. 평범한 생각과 일상이 결국 비범한 것이구나, 를 깨닫는다. 왜 그랬을까, 라는 식의 회한은 하지 않는다. 다만, 그 순간의 깨달음을 마음에 새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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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식은 설렘이고 사랑이다. 하루를 여는, 커피를 곁들이는 식사라는 것만으로도 일상에서조차 설렘을 종종 일으키지만 호텔에서의 조식은 아무튼 기분이 다르니까. 지중해식 레스토랑에서 만난 지중해식 조식. 풍성함에 배인 정성과 재료의 신선함이 아침이라는 시간과 참 닮아있더라. 주주브레드에 후무스와 신선한 야채를 빵빵하게 넣은 다음 레몬즙을 흩뿌려 그린 올리브 두어 개 올려 한 입 베어 무니 건강한 감칠맛이 감돈다. 기분과 감정과 먹는 행위의 즐거움에만 몰입할 뿐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 순간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정말 소중하지 않은가. 짝꿍이 자주 묻는다, 먹는 게 그리 좋으냐고. 물론 갖가지 맛있는 요리를 늘 해주며 잘 먹는 내게 건네는 일종의 감탄사다. 달리 말로 표현할 길 없어 만면에 가득 미소를 머금고 고개를 끄덕이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몰입의 즐거움 갖기도 하고. 감각의 파티랄까, 미각뿐만 아니라 여러 감각기관을 활짝 열고는 모든 자극에 반응하며 집중하는, 정신과 신체가 열띤 상호작용을 하는 활동이지 않은가. 먹는 게 그저 좋은 이로서 거창하기 짝이 없는 소리지만 호텔 조식에서의 몰입은 정말 그렇다, 믿어주시라.


그새 커피잔이 빈 것을 눈치챈 매니저님이 찬찬히 다가와 커피 주문을 다시 받고는 넌지시 건네는 한마디. 레스토랑의 자랑 중 하나가 바로 천장이란다. 사진을 찍으면 천장 스테인드글라스의 빛이 반사돼 유독 멋지게 나온다며 사진을 찍어드릴까요,라고 하신다. 그 수줍지만 따스한 청에 더 수줍고도 어렵게 아침 몰골의 상태로 절대 불가하다는 사양의 말을 건네다가 어느새 대화가 시작된다. 호텔에서의 시간은 괜찮았냐며 으레 누구나 물을법한 질문으로 시작되었지만 그는 능숙한 스토리텔러였다. 말인즉슨, 커피를 다시 가져다주면서 호텔 콘셉트 및 인테리어 디자인의 기반이 우리나라 전래동화 해와 달이 된 오누이라는 사실과 그 이야기의 흐름대로 로비 인테리어와 조형물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맛깔나게 이야기로 전해주었다. 지난 하루 동안 호텔 여기저기 거닐며 보고 느꼈던 것들이 스쳐 지나가면서 하나의 스토리로 꿰어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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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이 사람이라면, 이라는 조금은 엉뚱한 생각을 종종 한다. 코로나가 없던 시절 연이 닿고 흠모하게 된 데다가 급기야는 그리움에 사무치는 몇몇 호텔을 추억할 때면 그 매력이 꼭 사람과도 맞물리는 것 같아서다. 오래된 멋이나 은은한 세련미, 또는 독특한 디자인 센스나 여백의 미가 누군가를 떠올리게 되기도 하고 말이다. 수없이 많은 여행의 매력 중 하나가 호텔과 같은 공간에서 발견한 매력과 멋을 스리슬쩍 훔치고는 내 것으로 내면화시킬 수 있다는 것 아닐까.


체크아웃을 하고 쉬이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과 아쉬운 마음을 달래려 라운지 카페에서 잠시 머무른다. 시작도 중요하지만 마무리는 더 중요해. 크나큰 의자가 있는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깊숙이 들어앉는다. 붙잡고 싶은 시간을 향한 짝사랑은 아마 평생 벗어나지 못하겠지. 돌아갈 곳이 있어 여행이 더욱 빛난다는 것을 잊지 말자, 라고 되뇐다. 차와 커피의 어여쁜 색감을 바라보며 짧은 시간 잘 쉬었다는 제법 좋은 기분에 힘입어 돌아갈 일상에서도 다시 그럭저럭 잘 살아보겠다는 느슨한 다짐도 해본다. 며칠 동안은 분명 이 만족감이 유지될 테니 그 사이에 또 다른 원동력을 찾아보겠다는 의지도 곁들여서. 앞으로의 삶에서, 당장 내일의 삶에서 과연 어떤 인연을 만나게 될까 생각하고 기대해보듯 어떤 호텔을 만나게 될까라는 기대도 놓칠 수 없다. 그 기대가 다시 우리를 미지의 세계로 데려다 줄 그날까지, 멈춘 듯한 세상이지만 우리는 멈추기보단 기대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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