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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endy An May 30. 2024

누군가의 실수가 '선물'이 된 '시간’

왈츠와 자허토르테

여행과 실수는 대립하기보다는 양립하는 ‘사이’ 아닐지. 일분일초가 아까운 여행의 순간엔 어떤 모양이든, 누구에 의해서든 실수가 달갑지 않기 마련이다. 하지만 시간이 여물어 훗날 돌아보면 실수로 기억되는 건 많지 않다. 그저 추억일 뿐이다. 어떤 추억은 감정보다 몸이 앞서 좋은 기분을 피부로 감지한다. 또 어떤 추억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떠올리긴 해도 이내 얼굴에 미소가 감돈다. 나 홀로 여행에서 하는 실수는 여행하는 동안 나만 간직하는 비밀이 된다. 세상의 모든 일에 있어 유일하게 공평한 게 있다면 바로 ‘해석’이라 할 수 있다. 실수인 듯 보이는 일에 나만의 해석이 따른다면 전혀 다른 차원의 여행으로 순식간에 전환시킬 수 있다. 이를 테면, ’짜릿한 발견’, ‘깨알 재미 에피소드 확보’ 혹은 ‘깨달음이 찾아온 터닝포인트’ 등으로 해석해 보는 거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기억은 분명 어떤 형태로든 왜곡되거나 덩어리째 사라질 테니 그때를 위해 재해석의 여지도 남겨두자는 속셈이다.


기회만 되면 밝히고 있는, 소싯적-‘종이 지도 여행’-시절엔 길을 잃는 게 기본이었다. 길은 일단 찾아야 잃을 수 있는 법 그리고 잃어야 결국 찾을 수 있다. 길을 잃었지만 당황하지 않는 경험이 여러 겹 쌓이면 찾아오는 여행자의 자기 효능감을 생각해 보시라. 꽤 꿀맛이다. 여러 번 길을 잃고 나면 ‘일단 그냥 걷고 보자’는 심산으로 그저 걷게 된다. 다른 방도가 없다는 사실 자체가 리워드가 된달까. 그 걸음걸음 끝에 재미와 발견이 기다리고 있었느냐고? 물론이다. 그저 의미 없는 고생으로 끝난 적도 더러 있었지만 상관없었다. 의도대로, 계획대로 되는 여행에서 뜻밖의 재미나 발견을 기대하긴 쉽지 않다. 스마트폰 구글맵 여행에 접어든 지 꽤 오래지만 예상과 달리 종종 잘못된 길에 들어선다. 다행이고, 다행이다. 길을 잃는 특권은 이제 없을 줄 알았는데 세상이 가끔 버퍼링 지연에 걸리곤 하니 이 얼마나 기쁘고도 기쁜지.


과연 실시간 교통 정보와 최적의 경로가 여행에 최우선으로 중요할까? 돈과 몸고생으로 시간을 사고, 그 시간을 망나니처럼 써버릴 자유와 권리를 멋대로 행사하는 내 여행에선 부디 차순위로 남길 바란다. 틈만 나면 '비효율을 추구하는 쾌감’을 대체 여행이 아니고서는 언제 어디서 맛보고 누리고 즐겨본단 말인가. 효율은 빠르고, 차갑고, 경제적이다. 비효율은 느리고, 따뜻하고, 호감이 넘친다. 여행에서 부디 비효율을 추구하는 경험을 해보시길. 그리고 그 산뜻한 즐거움을 오래도록 기억하시길. 비효율이 건네주는 선물도 부디 놓치지 않길! 여행에서 배운 ‘허용의 기쁨’에는 내 정신의 성숙과 성장을 견인한 지대한 공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늦잠을 자는 바람에 이른 아침 갤러리 산책 계획을 놓쳐도, 낮잠을 잔 바람에 가고 싶었던 곳에서의 점심식사를 놓쳐도 마냥 허허실실 웃음이 나왔다. 느지막이 거리를 거닐어 보며 여유와 행복감에 휩싸여 잃기만 했던 게 아니란 걸 깨달았던 것이다.


하나를 잃으면 둘을 얻을 때도 있고, 둘을 잃어 투덜대다가도 뒤늦게 얻은 하나에 행복감이 배가 되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때 ‘이게 바로 여행이구나’를 체감했다. 특별할 거 없어 보이는 깨달음이지만 내 삶에 지각 변동을 일으켜준 셈이다. 마치 발길 닿는 도시들은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인 듯 기존의 삶과는 전혀 다른 정체성과 마인드로 이리저리 휘젓고 다닌다. 서울에서의 나도 나고, 여행을 하며 다른 듯 보이는 나도 나다. 다만, 시간이 흐를수록 여행 속 ‘나’에 더 애착이 간다. 서울에선 ‘느릴’ 기회가 많지 않다, 혼자 있을 때와 연인과 함께 있는 순간을 빼면 나도 모르게 빠르게 생각하고 움직인다. 여행에선 24시간이 전부 ‘느릴 기회’가 된다. 굵직한 계획, 가령 미리 티켓을 사둔 박물관 입장 시간이나 음악회, 디너 예약 등의 시간은 대체로 지키지만, 나머지 시간은 어떻게 써도 괜찮다는 ‘다짐 어린 마음가짐’을 장착한다. 여행의 시간이 내게 건넨 ‘선물’과 다름없다.


다정한 봄의 어느 날 연인과 함께 오스트리아 빈과의 첫 만남 계획에 돌입했다. 베를린에서 돌아오며 다음 여행은 꼭 빈으로 가자며 둘이서 한마음이 되었던 참이었다. 함께 꼭 하고 싶었던 건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이하 빈필)를 만나는 것이었는데, 전 세계를 누비는 빈필을 우리의 휴가 일정에 맞춰 만난다는 건 꽤나 운이 필요한 일이었단 걸 한참 후에야 깨달았다. 아쉽게도 우리와 빈의 첫 만남이 성사된 여름의 끝자락에 빈필은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연주하고 있었다. 괜한 서운함을 달래려 이런저런 탐색을 하던 중 뇌리에 스친 또 다른 음악, 그것은 바로 ‘왈츠’! 왈츠의 도시 빈을 요한 슈트라우스의 음악으로 만난다는 것도 제법 근사한 일 아니겠나. 부디 우리가 머무는 일정 내에 시간이 딱 맞는 연주가 있길 바라며 열심히 찾아보았다. 단 하루 왈츠 연주를 들을 수 있는 기회를 발견했고, 주저함 없이 예매를 완료했다.


아름다운 공간과 왈츠 음악으로 빈에서의 밤이 채워진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충분히 달래졌다. 왈츠는 가깝지만 먼 당신이랄까. 음악의 스타일엔 익숙하지만 실내악 연주로 직접 들어본 적 없었고, 더욱이 ‘빈 왈츠’는 생애 처음이니 말이다. 친근하지만 동시에 낯설다는 게 매력으로 다가왔다. 비엔나클래식닷컴에서 e-티켓을 구매했고, 주소와 좌석 번호 등 상세 정보를 이메일로 전달받은 후 8월의 마지막주가 오기를 간절히 기다렸다. 마침내 디데이, 여행의 마지막날이 되었다. 그날의 메인이벤트는 ‘왈츠’였기에 시간의 사치를 마구 부리며 하루 종일 여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저녁 8시 음악회를 앞두고 신나게 저녁거리 장을 본 후 집으로 돌아가 스테이크를 구워 와인 한 잔을 곁들였다. 물론 요리는 나보다 훨씬 탁월한 요리 실력을 지닌 연인이 맡아주었다. 와인에 취하는 건지 남다른 기분에 취하는 건지 아무튼 창밖 노을 지는 하늘 풍경과 함께 마음도 얼굴도 붉게 물들어갔다.


사건의 발단은 이지점부터. 부른 배와 알딸딸해진 정신에 더할 나위 없는 행복감에 취해 택시를 불렀고, 구글맵을 연신 째려보며 호프부르크 왕궁 앞에서 내렸다. 무슨 연유에선지 왕궁은 수십 명의 경찰들로 둘러싸여 있었고, 구글맵이 가리키는 방향으로는 갈 수가 없었다. 다른 길을 찾아 한참을 걸어 음악회가 열릴 어딘가를 찾아 나섰지만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요제프 2세 황제의 동상이 있는 광장과 알베르티나 박물관 뒷골목 그리고 호프부르크 신궁을 잇는 삼각형 구도 안에서 돌고 돌고 또 돌았다. 음악 소리가 새어 나오는 듯한 건물에 들어서 3층까지 올라가 보았지만 그곳은 아이들의 학예회 장소였다. 민망함을 감춘 채 그곳을 빠져나와 다시금 길 위를 헤맸고, 도움을 건네준 몇몇 사람들과 함께 찾아보기도 했지만 실패였다. 주소가 잘못됐다는 생각에 다다르기까지 ‘내가 길을 못 찾는 것’이라는 이상한 착각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그럴 리 없어’라며 어떻게든 실패의 원인을 내게서 찾으려는 바보짓은 빠르게 끝내는 게 좋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한참 내린 소나기 덕에 기온이 뚝 떨어져 있던 빈의 밤이 갑자기 차디 차게 느껴졌다. 고운 원피스를 차려입은 것도, 골목을 누비고 거리를 뱅뱅 돌며 에너지를 길바닥에 쏟아부은 것 모두 후회가 밀려왔다. 정확히 저녁 7시 30분까지는 완벽에 가까운 빈에서의 일주일이었는데 마지막날 밤에 이렇게 삐끗하다니. 운명의 장난이 얄궂기도 하여라. 어차피 음악회 시작 시간이 20여분 지나있었고, 화인지 설움인지가 섞여 감정이 복잡 미묘했던 터라 찾는 걸 포기하고 집에 돌아가기로 했다. 씩씩 거리며 허공을 바라보다가 순간 한 번도 내 손을 놓지 않고 등을 토닥여주며 나를 위로해주고 있는 연인을 바라봤다. 함께 속상한 일인데 왜 나만 그의 위로를 받는가 싶어 이내 정신을 가다듬고 나쁜 기분을 길바닥에 내동댕이쳐버렸다. 그러고는 ‘혹 내 실수 일지 모르니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나도 그에게 진심으로 위로를 전했다.


일말의 아쉬움마저 이 동네에 털어 버리고 돌아가자는 마음에 일단 함께 걸었다. 대로변으로 나가 택시를 타려는 심산이었다. 그런데 걷다 잠시 멈춰 서서 왼편을 바라보니 ‘카페 자허 빈(Café Sacher Wien)’(이하, 카페 자허)이 그윽한 빛을 뿜어내고 있는 거 아닌가. 관심이든 계획이든 없던 곳이었지만 우리는 순간 눈이 마주치며 촉촉한 눈빛을 교환했다. 잠시 카페 자허에서 몸을 녹이고 가자는 무언의 동의가 이루어졌고, 냉큼 안으로 들어섰다. 늦은 저녁의 카페 자허는 고요하고 차분했다. 레드카펫 위 낡지만 우아한 클래식 테이블에 앉아 진한 크림이 얹어진 멜랑즈를 마시고 나니 경직됐던 몸과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의도와는 달리 이렇게 운명처럼 카페 자허와 만난 김에 달콤한 마무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란 것. 그 유명한 자허 토르테를 보았노라 먹었노라 즐겼노라.


음식과 술과 디저트에 온 마음을 다하는 여행자였던 우리는 당연히 1인 1 토르테를 했다. 실은 각자 하나씩 먹지 않으면 후회할 거라는 홀 매니저님의 세치 혀에 사로잡힌 셈이었지만. 짙은 초콜릿 색으로 뒤덮여 있는 고혹적인 자태에서 뻗어 나오는 이미지와는 달리 꾸덕하기보단 부드러웠고, 달달하기보단 쌉싸름한 맛이었다. 토르테 사이사이 틈새에서 삐져나오는 살구잼의 맛이 초콜릿과 어우러지는 풍미가 꽤 매력 있더란 것. 오스트리아의 토르테 오리지널 다툼은 우리나라의 냉면과 설렁탕 원조를 가리는 집안싸움 못지않다고 한다. 자허토르테가 만들어진 게 1832년이라고 하니 187년이 지나도록 고아함을 잃지 않은 디저트를 음미할 기회가 있었다는 게 뿌듯했다. 이게 바로 오래된 유럽의 도시를 여행하는 묘미 아니겠나. 관광객들의 긴 줄과 비싼 가격으로만 바라봤던 카페 자허를 이렇게 만나게 되다니. 역시 경험해보지 않은 채 함부로 만들어내는 편견과 선입견은 경계해야 한다. 나여, 부디 머리 말고 손과 발이 먼저 움직입시다.


뜻밖의 만남이지만 이렇게 토르테 세상에 발을 들여놓은 김에 빈에 올 때마다 새로운 토르테를 하나씩 맛보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계획은 행동으로 옮길 때 빛나는 법. 2023년 오랜만에 다시 빈을 만났을 때엔 카페 임페리얼(Café Imperial)에서 임페리얼 토르테를 맛보았고 토르테를 향한 진정한 사랑이 시작됐다. 또 어떤 토르테를 찾아볼까나. 빈을 가야 하는 많고도 많은 이유들에 또 하나 살포시 얹었다. 카페 자허에서 충전한 에너지에 힘입어 긴 밤을 더 달콤하게 보낼 수 있었다. 미리 장을 봐둔 덕분에 맥주와 와인을 벗 삼아 마일즈 데이비스와 파바로티 앨범을 밤이 새도록 들었다. 왈츠는 놓쳤지만 잊을 수 없는 마지막 밤을 얻었다. 쉴 새 없이 대화를 나누며 웃고 또 웃었다. 밤이 지나도록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지 여전히 알 길은 없었지만, 누군가의 실수가 우리에게 최고의 밤을 만들어준 셈이었다. 우린 더 호탕하게, 시원하게 웃어젖혔다.


역시 시간이 흐르면 실수를 실수로만 기억하지 않는다. 다른 새로운 문을 열게 된 계기로 기억하고, 예상치 못했던 만남을 선사해 준 사건으로 기억한다. 기억은 희석되고 뒤틀리기 마련이지만 그런들 이런들 어떠하리. 서울로 돌아와 비엔나클래식닷컴에 항의 및 문의 이메일을 보냈다. 한주가 지난 후 본인들의 실수였다고 미안하다며 환불 처리를 해주었다. 가장 재밌는 건 아직도 그곳, 그러니까 ‘우리가 가야만 했던 그곳’이 어디인지 모른다는 거다. 물어본 것 같지만 이젠 더 이상 중요치 않아 기억 속 저편에 묻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환불받은 돈은 잘 두었다가 비용을 조금 더 보태어 호캉스와 디너를 즐겼다. 서울 호텔이지만, 차이니즈 레스토랑이지만 대화의 주제는 온통 ‘실수가 만들어준 선물 같은 시간’이었다. 서울과 빈 사이 8,272km의 거리가 무색할 만큼 이야기와 추억으로 빈을 다시 여행했다. 인생에 버릴 경험이란 건 정말 없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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